제1독서 사무엘 상권 1,24-28 그 무렵 24 아이가 젖을 떼자 한나는 사무엘을 데리고 올라갔다. 그는 삼 년 된 황소 한 마리에 밀가루 한 에파와 포도주를 채운 가죽 부대 하나를 싣고, 실로에 있는 주님의 집으로 아이를 데려갔다. 아이는 아직 나이가 어렸다. 25 사람들은 황소를 잡은 뒤 아이를 엘리에게 데리고 갔다. 26 한나가 엘리에게 말하였다. “나리! 나리께서 살아 계시는 것이 틀림없듯이, 제가 여기 나리 앞에 서서 주님께 기도하던 바로 그 여자입니다. 27 제가 기도한 것은 이 아이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제가 드린 청을 들어주셨습니다. 28 그래서 저도 아이를 주님께 바치기로 하였습니다. 이 아이는 평생을 주님께 바친 아이입니다.” 그런 다음 그들은 그곳에서 주님께 예배를 드렸다.
복음 루가 1,46-56 그때에 46 마리아가 말하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47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48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49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50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51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52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53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54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55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56 마리아는 석 달가량 엘리사벳과 함께 지내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어제는 강화도에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제가 그렇게 눈을 좋아하지 않는답니다. 물론 저 역시 다른 젊은이들처럼 눈을 좋아했었던 적이 있었지요. 괜히 눈이 오면 가슴이 설레고, 강아지처럼 눈 위를 밟으면서 마구 뛰어다니는 것을 신나했던 적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하지만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고, 이곳 갑곶성지에서 생활하면서 눈 오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혼자서 이 넓은 지역의 눈을 쓰는 것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러다보니 강화도에 첫눈다운 눈이 왔을 때에도 그렇게 반갑지 않았답니다. ‘왜 눈은 이렇게 많이 와서 나를 힘들게 하는거야?’라는 생각을 가지면서 눈을 쓸었지요. 그러다보니 작업의 능률도 그렇게 오르지 않는 것입니다. 6시간 동안 비질을 한 뒤에나 겨우 성지의 눈을 모두 치울 수 있었습니다.
어제 또 눈이 왔습니다. 짜증이 났습니다. 바로 그 순간,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고 말했던 어떤 분의 말씀이 떠올려졌습니다. 하긴 그렇지요. 제가 짜증을 낸다고 해서 눈이 갑자기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햇볕이 비추어져서 왔던 눈을 모두 녹여버리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쓸지 않고 둔다면, 오시는 순례객들에게 커다란 불편을 드릴 것입니다.
결국 눈을 쓸어야 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이지요. 따라서 피할 수 없으니 즐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기왕 치우는 거, 신나게 노래를 부르면서 눈을 치웠습니다. 가사를 몰라도 상관이 없었지요. 그냥 가사를 만들어가면서 신나게 노래를 불렀습니다. 하긴 저밖에 없는데, 가사가 틀리면 어떻고 박자가 틀리면 어떻겠습니까?
그런데 지난번에 눈을 쓸 때는 6시간 가까이 걸렸는데, 이번에는 3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은 것입니다. 유쾌한 마음을 가지고 일을 하니 그만큼 일의 효율도 오르고, 시간 절약도 할 수 있게 되더군요.
어떤 일이 있어도 부정적인 생각을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부정적인 생각 자체가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긍정적인 생각은 상황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즉, 할 수 없어 보이는 일을 가능하게 하는 것, 정말로 하기 싫은 일이 하길 잘 했다고 말할 수 있게 하는 것 등은 바로 긍정적인 생각으로 가능해진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성모님께서는 ‘성모찬송’(Magnificat)이라는 찬미와 감사의 노래를 부르십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세요. 정말로 이러한 노래를 부르실 정도로 행복하였겠는지……. 아니지요. 어쩌면 최악의 상태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러한 상태에서도 ‘성모찬송’을 부를 수 있다는 것, 바로 이러한 마음이 예수님을 모실 수 있게 만든 것이 아닐까요?
예수님을 모실 수 있는 마음은 바로 이렇게 긍정적인 마음입니다. 어떠한 순간에도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릴 수 있는, 그래서 누구보다도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의 마음속에 예수님께서는 자리하십니다.
이제 내 안에 있는 부정적인 생각들을 하나씩 제거해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께서 오실 자리가 더욱 더 넓어지거든요.
할 수 없다는 생각은 이제 그만. 예수님과 함께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습니다.
관계의 견고한 진(강준민, '관계의 법칙' 중에서) 비난을 통해서는 좋은 인간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비난을 잘하는 그런 사람 곁에는 언제나 비난하는 사람들이 모이게 됩니다. 그런데 비난하는 사람들의 문제는 자신을 비난하는 데도 익숙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남을 비난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황폐한 사막과 같습니다.
인간의 삶은 거울과 같습니다. 우리가 하는 말과 행동은 자신의 생각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제가 까닭 없이 비난하거나 무슨 일을 만나든지 비판하기를 일삼는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는 까닭은 그들이 자신을 참으로 사랑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존귀히 여기고 참으로 아끼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존귀히 여기고 아끼는 것입니다. 유유상종이란 말을 기억하십시오. 비난하는 사람들은 비난하는 사람들끼리 모입니다. 비난도 배우는 것입니다. 비난하는 사람들을 가까이 하다보면 비난하는 사람을 닮습니다. 싫어하면서 배우고 싫어하면서 물듭니다.
비난도 습관입니다. 비난이 습관이 되면 인생이 어두워집니다. 비난이 습관화된 이들은 긍정적인 사람들, 밝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없기에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 사람 곁에는 좋은 사람이 따르지 않습니다. 습관적인 비난은 치료해야 할 병입니다. 무너뜨려야할 ‘견고한 진’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