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5.12.11) - 대림 제3주일 나해

2005. 12. 11. 오전 9:06:27

글자
2005년 12월 11일 대림 제3주일 나해

제1독서 이사야 61,1-2ㄱ.10-11
1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 하느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싸매어 주며,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갇힌 이들에게 석방을 선포하게 하셨다. 2 주님의 은혜의 해, 우리 하느님의 응보의 날을 선포하고, 슬퍼하는 이들을 모두 위로하게 하셨다.
10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 내 영혼은 나의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리니, 신랑이 관을 쓰듯, 신부가 패물로 단장하듯, 그분께서 나에게 구원의 옷을 입히시고, 의로움의 겉옷을 둘러 주셨기 때문이다.
11 땅이 새순을 돋아나게 하고 정원이 싹을 솟아나게 하듯, 주 하느님께서는 모든 민족들 앞에 의로움과 찬미가 솟아나게 하시리라.


제2독서 데살로니카1서 5,16-24
형제 여러분, 16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17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18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19 성령의 불을 끄지 마십시오. 20 예언을 업신여기지 마십시오. 21 모든 것을 분별하여, 좋은 것은 간직하고 22 악한 것은 무엇이든 멀리하십시오.
23 평화의 하느님께서 친히 여러분을 완전히 거룩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여러분의 영과 혼과 몸을 온전하고 흠 없이 지켜 주시기를 빕니다. 24 여러분을 부르시는 분은 성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니 그렇게 해 주실 것입니다.


복음 요한 1,6-8.19-28
6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요한이었다. 7 그는 증언하러 왔다. 빛을 증언하여, 자기를 통해 모든 사람이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 8 그 사람은 빛이 아니었다. 빛을 증언하러 왔을 따름이다.
19 요한의 증언은 이러하다. 유다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사제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물었을 때, 20 요한은 서슴지 않고 고백하였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하고 고백한 것이다.
21 그들이 “그러면 누구란 말이오? 엘리야요?” 하고 묻자, 요한은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면 그 예언자요?” 하고 물어도 다시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2 그래서 그들이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우리가 대답을 해야 하오. 당신은 자신을 무엇이라고 말하는 것이오?” 23 요한이 말하였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24 그들은 바리사이들이 보낸 사람들이었다. 25 이들이 요한에게 물었다. “당신이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그 예언자도 아니라면, 세례는 왜 주는 것이오?” 26 그러자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27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28 이는 요한이 세례를 주던 요르단 강 건너편 베타니아에서 일어난 일이다.





저는 요즘에 기도하려 할 때면 성당으로 들어가서 꼭 대림환을 켜고서 기도를 합니다. 성당에서 기도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 않느냐고 질문을 하실지 몰라요. 맞습니다. 성당에서 기도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요. 하지만 새벽의 성당 기온은 너무나 춥답니다. 영상의 기온을 보이는 방을 버리고서, 영하의 기온인 성당에서 기도하기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거든요. 더군다나 하느님께서는 장소에 국한되시는 분이 아니지 않습니까? 즉, 제가 성당에서 기도하면 더 많은 은총을 주시고, 방에서 기도하면 들은 척도 하지 않는 분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이 추위에도 불구하고 성당에 들어가서 대림초를 키고 기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뭐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요, 단지 대림초를 빨리 쓰기 위해서 아주 열심히 초를 켜서 기도를 합니다.

사실 지금 쓰고 있는 대림초는 작년에 구입한 것을 다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작년에 워낙 커다란 대림초를 구입했기에, 미사 때만 초를 키는 것으로는 절대로 닳지를 않더군요. 그래도 3~4일이 지나면 초를 깎아 줘야 하는데, 워낙 커서 초를 깎기가 너무나 힘든 것입니다. 이 초를 한번 깎으면 온 힘이 쫙 빠질 정도라니까요. 이렇게 초를 깎으면서 저는 결심했던 것이지요. ‘내년에는 대림초를 바꾸자. 작은 것으로…….’

하지만 이렇게 바꾸려면 그래도 많이 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기도할 때에도 초를 켜는 등, 아주 열심히 초를 켜고 있습니다.

저는 무조건 큰 것이 좋은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큰 것이 불편할 때가 의외로 많습니다. 이 대림초도 그렇지만, 작년에 만들었던 구유도 그랬습니다. 워낙 크게 만들었더니만, 나중에 옮기는데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들은 큰 것을 선호합니다. 또한 높은 자리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그 선호하고 좋아하는 자리가 나에게 꼭 행복을 전해 주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나를 힘들게 하고, 절망으로 밀어 넣는 것이 바로 그렇게 크고 높은 것들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가져야 할 것은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세례자 요한과 같은 겸손함이 아닐까요?

세례자 요한에게는 많은 추종자들이 따르는 등, 당시의 사람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그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누구요? 당신이 바로 오시기로 한 그리스도요?”

만일 세례자 요한이 이 질문에 대해서, “아니, 이제야 알았소? 맞소. 내가 바로 성서에 오시기로 했던 메시아인 그리스도요.”라고 답했더라면, 한 여자의 춤 값으로 목숨을 잃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분명히 말합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메시아, 그리스도라는 호칭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럼으로써 사람들에게 더 큰 존경과 사랑을 받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높고 큰 자리를 세례자 요한은 원하지 않습니다. 비록 자신은 무대 뒤편으로 이름 없이 사라지는 한 명의 조연일지라도, 메시아를 사람들에게 만나게 하는 준비를 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커다란 기쁨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 역시 이런 기쁨을 간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기쁨은 이 세상의 큰 것으로, 또한 높은 것으로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세례자 요한의 정직함과 겸손을 갖추어 나갈 때, 진정한 기쁨을 얻을 수 있다는 것. 이 사실을 깨닫는 오늘이 되시길 바랍니다.


거짓말을 하지 맙시다.



신기한 마술(최용우)

제가 신기한 마술 하나 가르쳐 드릴께요.

'감사 마술' 이라는 것인데요, 특별히 준비할 것은 없어요.

아침에 이 마술을 가족들에게 써먹어 보세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주문만 외우면 됩니다.

마술의 주문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한번은 마음 속으로, 한번은 자신에게, 한번은 다른 사람에게 소리를 내어서 말을 하면 됩니다.

아내에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남편에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이들에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친구에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동료에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한번 해 보세요.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혈액순환이 잘 되며 하루종일 기분이 좋아지는 신기한 마술입니다.

'감사 마술'과 비슷한 마술은 '고맙습니다.' 마술입니다. 마음이 더욱 따뜻해지지요. 아무에게나 통하지는 않지만 정말 화끈한 '사랑합니다.' 마술도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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