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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1월 4일 연중 제31주간 목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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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로마서 15,14-21 14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이 더할 나위 없이 마음이 너그럽고 지식이 풍부하여 서로 충고할 만한 능력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15 다만 내가 이 편지에서 가끔 지나칠 정도로 강조해서 말한 것은 하느님께서 내게 은총으로 주신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여러분의 기억을 새롭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16 그 사명은 내가 이방인들을 위한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으로서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제의 직무를 맡아 성령으로 거룩하게 된 이방인들을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아 주실 제물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17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 예수와 한 몸이 되어 하느님을 위하여 일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18 이방인들을 하느님께 복종시키신 분은 그리스도이시고 나는 다만 그분의 일꾼 노릇을 했을 따름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19 나는 그분에게서 기적과 놀라운 일을 할 수 있는 힘 곧 성령의 힘을 받아 예루살렘에서 일리리쿰에 이르기까지 두루 다니면서 말과 활동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남김없이 전파하였습니다. 20 그리고 나는 남이 닦아 놓은 터전에는 집을 짓지 않으려고 그리스도의 이름이 아직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만 복음을 전하려고 애써 왔습니다. 21 나는, “그분의 소문을 들어 보지도 못한 사람들에게 그분을 보여 주고 그분의 이름을 들어 보지도 못한 사람들에게 그분을 깨닫게 하여 주리라.”고 한 성서 말씀대로 실천한 것입니다.
복음 루가 16,1-8 그때에 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부자가 청지기 한 사람을 두었는데 자기 재산을 그 청지기가 낭비한다는 말을 듣고 2 청지기를 불러다가 말했다. ‘자네 소문을 들었는데 그게 무슨 짓인가? 이제는 자네를 내 청지기로 둘 수 없으니 자네가 맡은 일을 다 청산하게.’ 3 청지기는 속으로 생각했다. ‘주인이 내 청지기 직분을 빼앗으려 하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창피한 노릇이구나. 4 옳지, 좋은 수가 있다. 내가 청지기 자리에서 물러날 때 나를 자기 집에 맞아 줄 사람들을 미리 만들어 놓아야겠다.’ 5 그래서 그는 자기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하나씩 불러다가 첫째 사람에게 ‘당신이 우리 주인에게 진 빚이 얼마요?’ 하고 물었다. 6 ‘기름 백 말이오.’ 하고 대답하자 청지기는 ‘당신의 문서가 여기 있으니 어서 앉아서 오십 말이라고 적으시오.’ 하고 일러 주었다. 7 또 다른 사람에게 ‘당신이 진 빚은 얼마요?’ 하고 물었다. 그 사람이 ‘밀 백 섬이오.’ 하고 대답하자 청지기는 ‘당신의 문서가 여기 있으니 팔십 섬이라고 적으시오.’ 하고 일러 주었다. 8 그 정직하지 못한 청지기가 일을 약삭빠르게 처리하였기 때문에 주인은 오히려 그를 칭찬하였다. 세속의 자녀들이 자기네들끼리 거래하는 데는 빛의 자녀들보다 더 약다.”
평소 건망증 때문에 물건을 잘 잃어버리던 어떤 사람이 학교를 끝내고 집에 와서 세수를 하고 있는데 경비실의 방송이 들렸습니다.
“아아, 잠시 안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지금 경비실에 검은색 가방 하나를 보관하고 있습니다.”
세수하다가 검은색 가방이라는 소리에 이 학생은 그때서야 가방을 엘리베이터 앞에 놓고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급하게 가방을 찾으려 현관문을 나서는데 방송이 계속 되는 것입니다.
“아아, 가방 안을 보니 에로비디오 테이프가 있는데 제목은 ‘XXX'입니다. 이 테이프가 들어있는 가방 주인은 속히 경비실로 와주길 바랍니다.”
가방을 찾아오기 위해 경비실로 내려가며 ‘어휴, 창피해. 이게 웬 개방신이람, 그래도 이웃 사람들은 가방 주인이 누구인 줄 모를테니 그나마 다행이네’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 방송 멘트가 또 이어졌습니다.
“아아, 가방 속에서 우편물이 하나 발견되었습니다. A동 ○○○호 김 아무개 씨, 김 아무개 씨. 빨리 와서 가방 찾아가세요.”
친절하게 주인을 찾아준다고 노력하고 있는 경비실 아저씨가 연상되십니까? 그 경비실 아저씨는 주인을 찾아주겠다고 가방을 열어 보았고, 또 그 안의 특징적인 에로비디오를 이야기했고, 또 결정적으로 주인을 알 수 있는 이름이 적혀 있는 우편물도 찾았습니다. 하지만 이 아저씨의 노력에 의해서 한 사람은 얼마나 큰 망신을 당하게 되었는지요? 조금만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이 아저씨에게 있었다면, 우편물에 발견된 그 집으로 인터폰을 하는 것이 더 지혜로운 모습이 아닐까요?
생각해보니 우리들의 생활 가운데에서 이렇게 지혜롭지 못한 때가 참으로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었던 적도 얼마나 많았을까요? 이런 차원에서 오늘의 복음 말씀이 이해됩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청지기는 주인의 재산을 잘 관리하지 못했습니다. 그 때문에 주인에 의해서 이제 해고가 될 위기에 놓였습니다. 그 처지가 얼마나 난감했겠어요? 책상에 앉아 계약 문서나 작성하고 펜대나 굴리고 있었으니, 막노동을 할 힘도 없고, 그렇다고 구걸을 하자니 체면이 안서는 것이었지요.
하지만 이 청지기는 자신의 위기를 극복하려고 수를 씁니다. 빚진 사람들을 하나씩 불러 반절이나 1/4을 탕감해 주었지요. 왜냐하면 자신이 청지기 자리에서 물러났을 때, 자신을 집에 맞아줄 사람들을 미리 만들어 놓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영리한 행동이기는 하지만, 분명히 부정직한 행동이지요. 그런데 주인은 청지기의 이런 부정직한 행동들을 오히려 칭찬합니다.
우리의 관점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청지기의 부정직한 행동 자체를 두고서 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자기 자신을 위한 청지기의 지혜로움을 칭찬하는 것입니다. 또한 여기서 특이한 것은 자신을 살리는 그 지혜로움이 바로 남에게 대한 배려와 베품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참된 지혜를 간직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남에 대한 배려와 베품이 동반되는 지혜를 간직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결국 바로 나를 위한 것이며, 우리의 주인이신 주님께도 칭찬받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말을 하기 전에 남에 대한 배려를 먼저 합시다.
뒤에야(진계유, '행복한 동행' 중에서) 고요히 앉아 본 뒤에야 평상시의 마음이 경박했음을 알았네.
침묵을 지킨 뒤에야 지난날의 언어가 소란스러웠음을 알았네.
일을 돌아본 뒤에야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냈음을 알았네.
문을 닫아건 뒤에야 앞서의 사귐이 지나쳤음을 알았네.
욕심을 줄인 뒤에야 이전의 잘못이 많았음을 알았네.
마음을 쏟은 뒤에야 평소에 마음씀이 각박했음을 알았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