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5.10.30) - 연중 제31주일 가해

2005. 10. 30. 오전 7:31:28

글자
2005년 10월 30일 연중 제31주일 가해

제1독서 말라기 1,14ㄴ─2,2ㄷ.8-1014
나는 위대한 왕이다. 만군의 주님이 말한다. 뭇 민족이 나의 이름을 두려워하리라.
2,1 너희 사제들에게, 나 이제 이 분부를 내린다. 2 너희가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내 이름을 기릴 생각이 없으니, 너희에게 내릴 것은 재앙뿐이다. 복 대신 저주를 내릴 수밖에 없다.
만군의 주님이 말한다.
8 너희는 바른길을 떠났다. 법을 가르친다면서 도리어 많은 사람을 넘어뜨렸다. 레위와 맺은 나의 계약을 깨뜨렸다. 만군의 주님이 말한다.
9 그래서 나도 너희를 동족에게서 멸시와 천대를 받게 하였다. 나에게서 배운 길을 지키지 않았고 법을 다룰 때 인간 차별을 한 탓이다.
10 “우리의 조상은 한 분이 아니시냐? 우리를 내신 하느님도 한 분이 아니시냐? 그런데 어찌하여 우리는 서로 배신하여, 우리 조상이 맺은 계약을 깨뜨리느냐?”


제2독서 데살로니카 1서 2,7ㄴ-9.13
형제 여러분, 우리가 7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는 마치 자기 자녀를 돌보는 어머니처럼 여러분을 부드럽게 대했습니다. 8 이렇게 여러분을 극진히 생각하는 마음에서 하느님의 복음을 나누어 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바칠 생각이었습니다. 우리는 그토록 여러분을 사랑했습니다.
9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의 수고와 노력을 잘 기억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분에게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는 동안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노동을 했습니다.
13 우리가 늘 하느님께 감사하는 것은 우리가 여러분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했을 때에 여러분이 그것을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이 하느님의 말씀은 믿는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복음 마태오 23,1-12
1 그때에 예수께서 군중과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모세의 자리를 이어 율법을 가르치고 있다. 3 그러니 그들이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본받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4 그들은 무거운 짐을 꾸려 남의 어깨에 메어 주고 자기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 하지 않는다.
5 그들이 하는 일은 모두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이마나 팔에 성구 넣는 갑을 크게 만들어 매달고 다니며 옷단에는 길다란 술을 달고 다닌다. 6 그리고 잔치에 가면 맨 윗자리에 앉으려 하고 회당에서는 제일 높은 자리를 찾으며 7 길에 나서면 인사받기를 좋아하고 사람들이 스승이라 불러 주기를 바란다.
8 그러나 너희는 스승 소리를 듣지 마라. 너희의 스승은 오직 한 분뿐이고 너희는 모두 형제들이다. 9 또 이 세상 누구를 보고도 아버지라 부르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한 분뿐이시다.
10 또 너희는 지도자라는 말도 듣지 마라. 너희의 지도자는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11 너희 중에 으뜸가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진다.”





새벽만 되면 저는 아랫배가 더부룩해지면서 화장실로 직행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때로는 그 시간이 조금 늦어지는 경우도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인터넷방송을 진행하는 시간 중에 종종 소식이 와서, 청취자들에게 정말로 죄송하지만 본의 아니게 화장실로 가야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정을 방송을 통해서 말하지는 않고, 대신 방송과 함께 동시에 이루어지는 대화방 안에서 이렇게 적습니다.

“저 지금 너무 급해서 어디 좀 다녀올께요.”

이 말에 사람들은 모두 압니다. 제가 어디를 가는지 말이지요. 그런데 어떤 분이 제게 이런 말씀을 하세요.

“신부님, 아침마다 화장실 가서 일을 보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신부님은 모르실꺼에요.”

사실 이 말을 이해하기란 그렇게 쉽지 않더군요. 당연한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늘 했었고, 때로는 바쁜 아침 시간에 이렇게 화장실에 가야만 하는 제 몸 구조를 원망했던 적도 있었거든요. 하지만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보면, 변비로 힘들어 하시는 분들에게 화장실에서 늘 시원하게 일을 보시는 분들이 얼마나 부럽게 느껴질까요?

우리들의 일상 가운데에서 나는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부러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한 부러움을 사는 것은 화장실에서 일 보는 것만이 아닐 것입니다. 노래를 못하는 사람은 노래 잘 하는 사람이 그렇게 부러울 것이고, 춤을 못 추는 사람은 춤을 잘 추는 사람을 부러워 할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는 그 사람은 정작 부러움을 받게끔 하는 자신의 그 능력을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 사람 역시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탓하면서 또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는 것을 우리들은 쉽게 발견됩니다.

이렇게 우리들은 늘 나와 다른 사람을 구별합니다. 그러면서 여기서 나오는 아주 못된 모습은 이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그 사람이 형편없다고 생각되면 한없이 깔보고 무시한다는 것입니다. 또 반대로 나보다 조금이라도 낫다고 생각하면, 어떻게든 그 사람을 그 자리에서 내려 세우려고 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도 이렇게 우리들처럼 늘 구별을 하실까요? 한 번 생각을 해보세요. 여러분들 앞에 갓난아기들이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목소리가 큰 아이가 있고, 발을 힘차게 구르는데 재주가 있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또 어떤 아이는 외모가 귀엽고, 또 어떤 아이는 키가 큽니다. 그렇다면 이 중에서 어떤 아이가 가장 사랑스러울까요? 자신의 아이가 가장 사랑스럽겠지요. 하느님의 관점에서도 이렇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어떤 능력이 있던 간에 상관없이 우리들이 당신의 자녀이기에 늘 사랑으로써 다가오십니다. 즉 차별 없이 똑같이 우리들에게 다가오십니다. 그런데 주님의 자녀라는 우리들은 왜 이렇게 구별하는 것을 좋아할까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도 이렇게 구별하기를 좋아하는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혼내고 계십니다. 그들은 선인과 악인으로 나누어 누구는 구원을 받고, 누구는 구원을 못 받는다고 그들 스스로 판단을 했던 것이지요.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식으로 말만 했던 것입니다. 정작 주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사랑의 실천은 뒤로 한 채 말이지요.

사랑의 실천을 가장 첫 자리에 두면서, 주님 앞에 겸손하게 나아가야 합니다. 그 모습이 바로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으뜸가는 사람입니다.

“너희 중에 으뜸가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과 나를 구별하지 맙시다.



당신이 웃는 모습은 사랑입니다('행복한 사람들의 이야기' 중에서)

당신이 웃는 모습은 신선합니다.
웃는 모습에서 사랑이 커져가고
꼼짝없이 사로잡는보이지 않는 사슬과 같습니다.

당신의 웃음은 마술을 부립니다.
슬퍼지면 웃는 당신
모습을 상상만해도 듣기만 해도
체면에 걸린 듯 즐거워 집니다.

당신의 웃음은 은은한 향을 지녔습니다.
그 향기에 취해 하루라도
당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신의 웃음은 내게 사랑입니다.
웃음소리만 들어도 나도 모르게 행복해 집니다.
웃음 소리가 사랑의 시작이 되었고
웃음 소리가 가슴을 설레이게 했습니다.

당신이 웃어 주면 마음은 햇살 입니다.
언제까지나 당신이 웃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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