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5.10.31) - 연중 제31주간 월요일

2005. 10. 31. 오전 8:14:22

글자
2005년 10월 31일 연중 제31주간 월요일

제1독서 로마 11,29-36
형제 여러분, 29 하느님께서 한 번 주신 선물이나 선택의 은총은 다시 거두어 가시지 않습니다.
30 전에 하느님께 순종하지 않았던 여러분이 이제 이스라엘 사람들의 불순종 때문에 하느님의 자비를 받게 되었습니다.
31 이와 같이 지금은 순종하지 않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도 여러분이 받은 하느님의 자비를 보고 회개하여 마침내는 자비를 받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32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불순종에 사로잡힌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그 모두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33 오! 하느님의 풍요와 지혜와 지식은 심오합니다. 누가 그분의 판단을 헤아릴 수 있으며 그분이 하시는 일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34 주님의 생각을 잘 안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주님의 의논 상대가 될 만한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35 누가 먼저 무엇을 드렸기에 주님의 답례를 바라겠습니까? 36 모든 것은 그분에게서 나오고 그분으로 말미암고 그분을 위하여 있습니다. 영원토록 영광을 그분께 드립니다. 아멘.


복음 루가 14,12-14
그때에 예수께서 당신을 초대한 바리사이파의 한 지도자에게 말씀하셨다.
12 “너는 점심이나 저녁을 차려 놓고 사람들을 초대할 때에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잘 사는 이웃 사람들을 부르지 마라. 그렇게 하면 너도 그들의 초대를 받아서 네가 베풀어 준 것을 도로 받게 될 것이다.
13 그러므로 너는 잔치를 베풀 때에 오히려 가난한 사람, 불구자, 절름발이, 소경 같은 사람들을 불러라. 14 그러면 너는 행복하다. 그들은 갚지 못할 터이지만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하느님께서 대신 갚아 주실 것이다.”





오늘 새벽에는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얼마나 온 몸이 쑤시던지, 도대체 아프지 않은 곳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저의 트레이드마크라고 말할 수 있는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더군요. 이런 상태에서 새벽에 하는 인터넷 방송을 할 수 없었고, 또한 매일 새벽 5시에 발송되는 새벽 묵상 글도 이렇게 뒤로 미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제 자신을 천하무적으로 알았는데, 저 역시 한 명의 나약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오늘에서야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사실 저는 감기를 이렇게 심하게 앓아본 적이 없습니다. 1999년에 감기 걸려서 조금 고생한 기억 외에는 단 한 차례도 감기에 걸려본 적이 없는 건강 체질이었습니다. 더군다나 꾸준히 운동을 했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기 때문에 감기에 걸릴 일이 없다고 확신을 했었고, 그래서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그 심하다는 감기도 제가 더 심하기 때문에 도망갑니다.”

그런데 이번 감기의 시작을 생각해보니 아주 작은 데서 왔던 것 같습니다. 아니 모든 병의 시작은 이렇게 적은 곳에서 찾아오는 것이 아닐까 싶은데요. 즉, 저는 처음에 목이 조금 아픈 것으로 감기가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별 것 아니라는 생각에, 나의 체력으로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는 오만감에, 지금은 이렇게 몸살에 두통까지도 달고 있네요.

자그마한 부분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곳이 바로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세상입니다. 어떤 일이든 다 마찬가지라는 것이지요. ‘이쯤이야~~’라는 생각이 우리들을 얼마나 힘들게 만들었습니까?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렇게 작은 부분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주시기 위해서 항상 자그마한 사랑의 실천을 강조해서 말씀하셨던 것이 아닐까요? 바로 앞으로 더 힘들어 질 수 있는 ‘나’를 너무나도 사랑하시기 때문이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한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집에 초대받으셨습니다. 아마 그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하느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을 것입니다. 메시아라는 호칭까지 얻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 이 분이라면 야훼 하느님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자세히 설명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무엇이세요? 하느님에 대한 말이 아니라, 우리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 다가가야 하는지를 이야기 하십니다. 즉,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 ‘가난한 사람, 불구자, 절름발이, 소경 등과 같은 어렵고 힘든 사람에게 사랑을 실천하라’는 말씀만 하십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위해서 오셨지만, 그 하느님에 들어가는 방법을 바로 우리 곁에서 이루어 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자그마한 사랑의 실천이라도 아끼지 않는다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나라. 그 나라가 바로 하느님 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나는 어떤 사랑을 꿈꾸고 있나요? 혹시 가까이에 있는 사람도 사랑하지 않으면서, 기회만 닿게 되면 사랑할 것이라고 큰 소리 뻥뻥치는 것은 아닐까요?


자신의 가족에게 사랑의 표시를 합시다. 어떻게? 여러분 마음이에요.



나누는 것만큼 새 것으로 채워라('좋은 글' 중에서)

고인 물이 썩는 것은 자연의 섭리다.

그러나 옹달샘은 그렇지 않다.

샘물이 솟아나는 만큼 다람쥐, 산토끼가 와서 먹고 주변의 풀이나 나무 뿌리에 물을 공급해 주기 때문에 샘 자체는 땅 속에서 새로 솟아난 물로 언제나 깨끗하고 신선하게 유지된다.

옹달샘이 아낌없이 자신의 물을 주변의 동식물과 나눌 수 있는 이유는, 항상 새로운 물을 새로이 공급받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도 무릇 그 옹달샘 같아야 하지 않을까?

가진 것이 하나 밖에 없는 사람은 그 하나를 누군가에게 주고 나면 빈털터리가 된다.

그래서 자기 것을 지키려고 신경을 곤두세운다.

반면에 지금은 하나밖에 없지만 곧 다른 것으로 채울 자신이 있는 사람은 그 하나를 아낌없이 나눌 수 있다.

하나 이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함께 나누는 게 아까워 언제까지나 품고 있으려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그것을 지키기 위해 새롭게 솟아날 더 깨끗하고 신선한 물을 그냥 흘려보내는 것은 아닐까.

사람도 그릇과 같아서 자신에게 알맞은 용량이 있다.

그 용량을 넘어서면 나머지는 그냥 흘러 넘쳐서 버려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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