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5.08.11) - 성녀 클라라 동정 기념일

2005. 8. 11. 오전 7:4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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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8월 11일 성녀 클라라 동정 기념일

제1독서 여호수아 3,7-10ㄱ.11.13-17
그 무렵 주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오늘부터 온 이스라엘이 너를 큰 인물로 우러르게 하겠다. 내가 모세의 곁에 있어 주었듯이 네 곁에도 있어 준다는 사실을 그들이 알게 되리라.
너는 계약 궤를 멘 사제들에게 요르단 강 물가에 이르거든 요르단 강에 들어서 있으라고 명령하여라.”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렀다. “가까이들 와서 너희의 주 하느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여호수아는 말하였다. “살아 계시는 하느님께서 너희 가운데 계신다. 가나안족은 반드시 쫓겨나리라.
이제 온 세계의 주 하느님의 궤가 너희 선두에 서서 요르단 강을 건널 것이다. 온 세계의 주 하느님의 궤를 멘 사제들의 발바닥이 요르단 강 물에 닿으면 곧 요르단 강 물은 끊어져 위에서 흘러내려 오던 물이 둑을 이루어 우뚝 서리라.”
백성들이 천막을 거두고 요르단 강을 건너는데 사제들은 계약 궤를 메고 백성들의 선두에 섰다.
그 궤를 멘 사람들이 요르단 강에 이르렀다. 마침 추수절이 되어 둑에까지 물이 넘쳐 흐르고 있었는데, 궤를 멘 사제들의 발이 물에 닿자마자 위에서 흘러내리던 물이 우뚝 일어서서 아담에서 사르단 성곽에 이르기까지 넓은 지역에 둑을 이루는 것이었다. 아라바 호수라고도 하는 사해로 흘러내리던 물이 다 끊어져 백성들은 예리고 맞은편으로 건너갔다.
주님의 계약 궤를 멘 사제들이 요르단 강 한복판 마른 땅에 서 있는 동안, 온 이스라엘이 마른 땅을 밟고 건너 결국 온 겨레가 다 요르단 강을 건넜다.


복음 마태오 18,21-19,1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와서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잘못을 저지르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이면 되겠습니까?” 하고 묻자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
하늘나라는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 어떤 왕이 자기 종들과 셈을 밝히려 하였다. 셈을 시작하자 일만 달란트나 되는 돈을 빚진 사람이 왕 앞에 끌려왔다.
그에게 빚을 갚을 길이 없었으므로 왕은‘네 몸과 네 처자와 너에게 있는 것을 다 팔아서 빚을 갚아라.'하였다.
이 말을 듣고 종이 엎드려 왕에게 절하며 ‘조금만 참아 주십시오. 곧 다 갚아 드리겠습니다.'하고 애걸하였다. 왕은 그를 가엾게 여겨 빚을 탕감해 주고 놓아 보냈다.
그런데 그 종은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밖에 안 되는 빚을 진 동료를 만나자 달려들어 멱살을 잡으며 ‘내 빚을 갚아라.' 하고 호통을 쳤다.
그 동료는 엎드려 ‘꼭 갚을 터이니 조금만 참아 주게.' 하고 애원하였다. 그러나 그는 들어주기는커녕 오히려 그 동료를 끌고 가서 빚진 돈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어 두었다.
다른 종들이 이 광경을 보고 매우 분개하여 왕에게 가서 이 일을 낱낱이 일러바쳤다.
그러자 왕은 그 종을 불러들여 ‘이 몹쓸 종아, 네가 애걸하기에 나는 그 많은 빚을 탕감해 주지 않았느냐? 그렇다면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할 것이 아니냐?'하며 몹시 노하여 그 빚을 다 갚을 때까지 그를 형리에게 넘겼다.
너희가 진심으로 형제들을 서로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실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 말씀을 마치시고 갈릴래아를 떠나 요르단 강 건너편 유다 지방으로 가셨다.





서로를 너무나도 사랑하던 연인이 있었습니다. 둘은 그동안의 만남을 통해서 상대방이 자신에게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가를 깊이 느끼고 있었고, 그래서 둘은 이제 결혼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어느 정도 갖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드디어 그 형제님께서는 청혼을 하기 위해 사랑하는 여인의 집을 향해서 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녀가 자신의 청혼을 받아 줄 것으로 굳게 믿었습니다. 왜냐하면 서로를 깊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은 도저히 의심할 수가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그 집에 도착해서 문을 두드리자 하인이 나와서 이렇게 말하더래요.

“아가씨가 이제 더 이상 당신을 만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그 형제님은 마음에 깊은 상처를 안고 집으로 돌아와 그녀에게 자신을 거절한 이유를 알려 달라는 장문의 편지를 썼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으로부터 온 회답은 이런 것이었지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며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오는 것을 보고 나는 정말로 기뻤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길에서 일하고 있던 한 여인을 밀치고 그냥 지나쳐 버리더군요. 당신은 넘어진 그 여인을 부축해 주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때 이미 당신에게 내 한평생을 맡길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불쌍한 여인에게 친절을 베풀 수 없는 사람이라면, 나에게도 진정한 사랑을 베풀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형제님은 사랑하는 애인에게 빨리 청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다른 사람에게 소홀하게 대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게 소홀했던 하나의 친절과 너그럽지 못한 마음이 인생의 동반자가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았던 사랑을 잃게 하였던 것이지요.

맞습니다. 우리의 삶 안에서 펼쳐지는 나의 불친절과 너그럽지 못한 마음들이 스스로를 더욱 더 힘들게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질문, 즉 자신에게 잘못을 저지른 형제를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하느냐는 질문에 “일곱 번 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라는 명언을 남겨주십니다. 일곱 번씩 일흔 번이면 모두 490번 용서하고서 491번째에는 용서하지 말라는 것일까요? 아니지요. 무조건 용서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할 때, 마음의 평화와 함께 주님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나 자신을 위해서 용서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한다는 것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하지만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하는 습관만 갖게 된다면 어렵다고만 말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산길을 걸을 때,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길보다는 자주 다녀서 확실하게 길이 생긴 곳으로 자연스럽게 발길을 옮기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길이 쉬운 길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그 길이 처음부터 이러했을까요? 처음에 이 길 역시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길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 명이 지나고, 또 한 명이 지나고… 이런 식으로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다 보니 길이 단단해지고 넓어지면서 편하고 쉬운 길이 된 것이지요.

우리가 그렇게 어렵다는 용서도 이렇지 않을까요? 예수님의 말씀처럼 계속해서 용서하다보면 그렇게 어려워 보이는 용서도 편하고 쉬운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혹시 지금도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래서 스스로 힘들어하십니까? 그렇다면 다시금 용서하는데 노력을 해보세요. 딱 490번만 용서해보십시오. 아마 491번째에는 사랑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합시다.



마음과 생각의 크기

어느 날, 몸 지체들이 비상회의를 열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코가 일어나 말했습니다.
“여러분! 지금처럼 경기가 어려운 때에 우리 중에 혼자 놀고먹는 못된 백수가 한 놈 있습니다.
바로 저하고 제일 가까이 사는 입이라는 놈인데, 그 입은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는 혼자 다하고, 먹고 싶은 음식은 혼자 다 먹습니다.
이런 의리 없는 입을 어떻게 할까요?”

그 말에 발이 맞장구를 쳤습니다.
"저도 입 때문에 죽을 지경입니다. 우리 주인이 얼마나 무겁습니까? 그 무거운 몸으로 몸짱 만들겠다고 뛰니 발이 아파 죽겠습니다. 그래서 내가 왜 이 고생을 하나 하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저 입이 혼자만 많이 먹어서 그런 것입니다.“

그때 손도 말했습니다.
"게다가 입은 건방집니다. 먹을 때 자기 혼자 먹으면 되지 않습니까? 개나 닭을 보세요. 그것들은 스스로 먹을 것을 잘 먹는데, 입은 날 보고 이거 갖다 달라 저거 갖다 달라 심부름을 시키고 자기만 먹습니다. 정말 메스꺼워 견딜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눈이 말했습니다.
"이렇게 비판만 하지 말고 행동을 합시다. 앞으로는 맛있는 음식이 있어도 절대 보지도 말고, 냄새 맡지도 말고, 입에게 가져다주지도 맙시다."

그 제안이 통과되어 즉시 입을 굶기기 시작했습니다.
사흘이 지났습니다.
손과 발은 후들후들 떨렸습니다.
눈은 앞이 가물가물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고,
코는 사방에서 풍겨오는 음식 냄새로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바로 그때 조용히 있던 입이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러면 우리가 다 죽습니다. 제가 저만 위해 먹습니까? 여러분들을 위해 먹는 것입니다. 먹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때로는 입술도 깨물고, 혀도 깨뭅니다. 그러니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고 서로 협력하며 삽시다."
그 말에 다른 지체들도 수긍하고 예전처럼 자기의 맡은 일을 해서 건강하게 잘 살았다고 합니다.

사람은 다양합니다.
재능도 다르고, 성품도 다르고, 취미도 다릅니다.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닙니다.
다양성에 대한 이해는 공동체 정신의 꽃입니다.
이해는 사랑과 용서의 출발점입니다.
오해(5해)가 있어도 세 번 ‘자기’를 빼고 생각하면 이해(2해)가 될 것입니다.

작은 이견(異見) 앞에서도 조급하게 화를 내는 자에게 지혜는 머물지 않고, 반대자를 귀찮다고 무조건 잘라내는 자에게 행복은 머물지 않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현재의 친구를 존중하면서 새로운 친구를 만들 줄 아는 ‘마음과 생각의 크기’에 달려 있습니다.
사람 사이에 있는 사소한 차이를 '배타와 편견의 구실'로 삼지 않고 '사랑과 이해의 도전'으로 볼 때 행복의 샘은 바로 우리 곁에서 넘쳐 흐르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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