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

2013. 10. 6. 오후 11:47:28

글자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

오늘 복음 말씀은 사도들이 주님께 믿음을 더해 달라는 청으로 시작합니다.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루카 17,5). 주님 응답은 단순합니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루카 17,6).

이 가르침에 따르면, 믿음이란 주님 자비를 체험하는 데서 시작한다고 보입니다.

주님이 보여주신 자비를 생활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하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믿음이 아닌가 합니다.

주님 자비는 신앙공동체 구성원들의 내적이고 외적인 모든 면을 구성하는 정신인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공동체는 주님이 보여주신 바로 그 자비의 마음을 기초로 살아간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신앙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완벽한 신앙인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주님이 우리의 부끄럽고 수치스런 마음을 보듬어주고 받아들여 주셨다면,

같은 처지에 있는 형제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주님 자비인 것입니다.

주님 자비는 이렇게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뿌리가 되는 힘이며,

여기에서 주님의 조건 없는 은총이 나오며, 이를 믿는 것이 바로 신앙 생활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믿음에 관해 자주 언급하셨습니다.

세상 고통과 시련을 상징하는 호수에 이는 풍랑을 가라앉히시면서,

그것에 놀라고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너희의 믿음은 어디에 있느냐?"(루카 8,25)고 하셨습니다.

더러운 영을 내쫓지 못하는 제자들을 보면서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루카 9,41)라고 한탄하셨습니다.

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찾으면서, 세상 걱정에 싸인 제자들에게는

"믿음이 약한 자들"(루카 12,28)이라고 걱정하셨습니다.


이렇게 믿음은 주님 사랑과 은총에 뿌리를 둔 주님 자비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는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처럼,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루카 10,37)하고 권고하십니다.

주님 자비를 체험하고 그 체험한 것을 실천하는 것, 이것이 믿음을 더하는 방법인 것입니다.

사실 우리 믿음의 역량으로는 돌무화과나무를 복종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믿으면 모든 것이 가능해집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루카 1,37).


그래서 믿음을 겨자씨에 비유합니다.

겨자씨는 아주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이지만, 눌러 으깨지면 강한 향기를 발산하는 힘을 내재하고 있습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눌러 으깨면 으깰수록,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산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필리 4,13).

암브로시오 성인 말씀처럼, 믿음이란 달에도 비유할 수 있습니다.

달은 보름달로 있기도 하고 또 작아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달이 어두워지거나 작아지는 때가 있어도 아주 없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만 신뢰하는 교만한 마음을 멈추고, 주님이 자신 안에서 활동하고 움직일 수 있도록

자리를 비우고 맡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께서는 이런 믿음의 신비를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님께서는,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리스도의 힘이 나에게 머무를 수 있도록 더없이 기쁘게 나의 약점을 자랑하렵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약함도 모욕도 재난도 박해도 역경도 달갑게 여깁니다.

내가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하기 때문입니다(2코린 12,9-10).


그렇습니다. 자신의 뜻이 없어지면 없어질수록, 주님의 움직임은 더 넓어지고 강해집니다.

이것이 믿음의 신비이며 종의 비유가 의미하는 것입니다.

종은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고 주인 뜻을 실행합니다.

우리는 믿음에 있어서, 종에 비유됩니다. 자신의 뜻이 더 이상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속박 때문이 아니라, 사랑에 기초한 더 높은 자유를 실현하기 위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이익과 유익을 얻기 위해 봉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리는 쓸모없는 종인 것입니다(루카 17,10).

주인이신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만 하는 단순한 종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바오로 사도처럼, 이렇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갈라 2,20).

- 홍승모 신부 ( 평화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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