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의 생애와 사상
I. 토마스의 생애
1. 출생
토마스의 출생지와 출생년에 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토마스가 사망한 해의 나이에 관한 초기의 전기 작가들의 증언, 몬테카시노의 수도원에 들어간 나이로부터의 역산 등으로 인해 그가 1224년부터 1226년 사이에 태어난 것은 확실하다. 태어난 장소는 그에 관한 자료의 상세한 검토 결과 로마와 나폴리의 중간지점인 아퀴노의 마을 근처에 로카세카(Roccasecca 마른바위 : 몬테카시노의 아빠스인 만소네가 994년 축조)에 축조된 산성이었다. 성주인 그의 아버지 란돌포는 시칠리아 왕국과 로마 교황령이라는 두 세력이 격돌하는 지점에 있는 영지를 지켜온 무장이었고 어머니 테오도라는 나폴리 출신의 귀부인으로서 1243년경 란돌포가 사망한 후에는 1255년경 세상을 뜨기까지 로카세카에 아퀴노가의 지주로서 역할을 다한 용맹한 성품의 여성이었다. 토마스가 유년생활을 함께 했다고 생각되는 형제, 자매에 관하여 알려져 있는 사실은 조금밖에 없다. 아버지 란돌포는 먼저 세상을 뜬 아내와의 사이에 몇 명의 아이를 두었으며 테오도라와의 사이에 태어난 자녀는 남자 4명(또는 7명), 여자 5명으로 토마스는 막내아들이다. 큰 누나(장녀)는 베네딕도회의 수녀원장이 되고 그 밑의 누나 두 사람과 누이 한 사람은 각기 백작의 가문에 속하는 귀족과 결혼하였다.
토마스는 이 가운데 산 세베리노 백작가의 로게로와 결혼한 누나 테오도라에게 특히 친근감을 갖고 있었던 듯하며 토마스가 사망하기 몇 개월 전에도 누나를 방문한 적이 있음이 전기작가들에 의해 기록되어 있다. 토마스는 가문 가운데 로카세카 계열을 타고났다. 따라서 토마스에게 붙여진 '데 아퀴노(De Aquino)'라는 칭호는 일부 역사가들이 주장하듯 아퀴노 시에서 태어났다는 것이 아니라 출신 가문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나 실상 토마스는 박학하고 품위있는 귀족에 속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백작보다는 낮은 지위의 가문에서 태어났다. 형 레지날도는 1246년 카파치오에서 황제를 암살하려던 음모 때문에 프리드리히의 명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 당시 신앙과 정치가 매우 혼동되고 있었기 때문에 교황을 도와 황제를 정복시킴으로써 개인적 이득을 취하려는 욕망이 교회를 위해서 봉사하려는 열정보다 더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래서 아퀴노 가문에서는 레지날도가 신앙과 교회의 이름으로 죽은 순교자로 간주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은 토마스의 생애와 저술들 속에 반영되어 있다. 그는 그리스도 세계가 말려들고 있었던 서글픈 무질서 상태에 한편으로는 이론적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개인적으로 응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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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장배경
3. 도미니꼬회 입회
4. 활동
II.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
1. 토론
2. 진리론
3. 교사론
4. 페트루스의 108개 명제
5. 대 이교도 대전
6. 신학대전
7. 아베로에스파와의 논쟁
8. 아우구스티노파와의 논쟁
9. 토마스의 설교
10. 저작의 중단
III. 결론
<도미니코 수도회 홈페이지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