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제국의 도미시아누스 황제(81-96년 재위)는 말년에 자신을 '주님이요 하느님'(Dominus et Deus)이라 자처하며 황제 숭배를 강요했고, 이를 거부하는 유대교인과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요한 묵시록 저자는 에페소 일대 아시아 속주 일곱 교회에 편지를 보내 신앙을 굳건히 지킬 것을 촉구했습니다. 성서에서 '일곱'이란 전부를 가르키는 충만한 숫자이기 때문에 묵시록의 일곱 교회는 세상 모든 교회에 보내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에페소 일대 아시아 지방은 사도 바오로의 주 활동 무대이기도 했지만 1세기 말엽 요한계 문헌이 씌어질 당시 이 지역은 사도 요한의 영향력이 컸습니다. 그래서 비잔틴 시대에 지어진 거의 모든 성당들이 요한 성당으로 명명되었지만 바오로 성당은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기원전 323년 알렉산더 대왕 사망 후 리시마쿠스 장군이 차지한 베르가모(지금의 베르가마)는 베르가모 왕국의 수도였다가, 기원전 133년 로마 공화국의 아시아 속주에 편입된 곳으로 묵시록의 일곱 교회 가운데 하나입니다(요한 묵시록 2,12-17). 베르가모 도심에 사도 요한 성당이 있는데, 이 성당은 원래 2세기에 이집트의 신 세라피스를 섬기기 위해 붉은 벽돌로 지은 신전이었으나 비잔틴 시대에 내벽을 쌓아 성당으로 개조한 것으로 그 규모가 상당히 큽니다. 위의 사진은 베르가모 사도 요한 성당의 옆모습입니다. 사진의 왼쪽이 성당 입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