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티아디라: 성당터3

2001. 8. 16. 오후 2:5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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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의 도미시아누스 황제(81-96년 재위)는 말년에 자신을 '주님이요 하느님'(Dominus et Deus)이라 자처하며 황제 숭배를 강요했고, 이를 거부하는 유대교인과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요한 묵시록 저자는 에페소 일대 아시아 속주 일곱 교회에 편지를 보내 신앙을 굳건히 지킬 것을 촉구했습니다. 성서에서 '일곱'이란 전부를 가르키는 충만한 숫자이기 때문에 묵시록의 일곱 교회는 세상 모든 교회에 보내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에페소 일대 아시아 지방은 사도 바오로의 주 활동 무대이기도 했지만 1세기 말엽 요한계 문헌이 씌어질 당시 이 지역은 사도 요한의 영향력이 컸습니다. 그래서 비잔틴 시대에 지어진 거의 모든 성당들이 요한 성당으로 명명되었지만 바오로 성당은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베르가모에서 동남족으로 85km 떨어진 평원 한가운데 요한 묵시록의 일곱 교회 중 하나인 티아디라(지금의 아키사르)가 있습니다. 위의 사진은 도심 한가운데 세워진 비잔틴 시대 성당터 모습입니다. 기원전 680년경 리디아인들이 티아디라와 사르디스 일대에 리디아 왕국을 건설했으나 기원전 546년 페르시아 제국 고레스 2세 대왕에게 멸망했고, 기원전 323년 알렉산더 대왕 사후 그 휘하의 셀레우코스 니카토르와 리시마쿠스가 번갈아 티아디라를 차지했고, 기원전 190년에는 베르가모 왕국의 땅이 되었습니다. 티아디라는 터키에서 가장 귀한 자색 옷감 생산지로 사도 바오로가 제2차 전도여행중(50-52년경) 필립비에서 전도할 때 처음 입교한 이가 바로 티아디라 출신 자색 옷감 장수 리디아라는 여인이었습니다(사도 16,14-15). 현재는 거의 폐허로 변한 성당터만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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