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제국의 도미시아누스 황제(81-96년 재위)는 말년에 자신을 '주님이요 하느님'(Dominus et Deus)이라 자처하며 황제 숭배를 강요했고, 이를 거부하는 유대교인과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요한 묵시록 저자는 에페소 일대 아시아 속주 일곱 교회에 편지를 보내 신앙을 굳건히 지킬 것을 촉구했습니다. 성서에서 '일곱'이란 전부를 가르키는 충만한 숫자이기 때문에 묵시록의 일곱 교회는 세상 모든 교회에 보내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에페소 일대 아시아 지방은 사도 바오로의 주 활동 무대이기도 했지만 1세기 말엽 요한계 문헌이 씌어질 당시 이 지역은 사도 요한의 영향력이 컸습니다. 그래서 비잔틴 시대에 지어진 거의 모든 성당들이 요한 성당으로 명명되었지만 바오로 성당은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사르디스(지금의 샤르트 마을)에서 동남쪽으로 45km 떨어진 곳에 옛날의 필라델피아(현재 알라쉐히르 읍내)가 있습니다. 요한 묵시록의 일곱 교회 중에서 스미르나 교회와 함께 꾸중이 아닌 칭찬을 받은 곳입니다(요한 묵시록 3,7-13). 14세기 주변 모든 곳이 오스만 투르크군에게 점령당했을 때에도 필라델피아만은 그리스도교 도시로 자체 방어를 하다가 1379년 비잔틴 황제 요한 5세와 오스만 투르크 술탄 무라트 1세 간의 정치적 거래로 오스만 제국에 편입된 곳입니다. 위의 사진은 비잔틴 시대에 지은 사도 요한 성당터로 현재는 11m 높이의 거대한 붉은 벽돌 기둥 3개만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성당터 주변에 이미 개인집들이 들어서 있습니다. 성당터 왼쪽 첫번째 집에 관리인이 산다고 하는데 마침 집에 없어서 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