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질 무렵 산을 내려오다가 한 사찰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여러 스님
들과 마주쳤습니다. 보아하니 학생 스님들 청소시간인 듯 했습니다.
소박한 회색빛깔의 옷, 맨발에 고무신, 빡빡 깍은 머리, 밑으로 내려
깐 눈... 그럼에도 불구하고 앳된 얼굴까지 감출 수는 없었습니다.
산을 내려오면서 한참 생각했습니다. 저분들이 저리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등지고 저토록 단순하게, 가난하게, 소박하게 살아가는 이유
는 무엇일까?
가끔씩 들르는 수녀원 양성소도 마찬가지입니다. 또래 처녀들이 세
상모르게 쿨쿨 자고 있는 꼭두새벽부터 깨끗이 단장하고,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성당에 앉아있는 예비수녀님들 바라보면 약간은 측은해보
이기도 하고 약간은 안쓰러워 보이기도 합니다.
그분들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 인간이 위대한 이유
는 바로 이런 것 때문이겠지? 보다 높은 이상을 성취하기 위해, 자신
이 믿는 보다 높은 가치관을 추구하기 위해 때로 젊음이든, 인생전체
이든,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는 존재가 인간인가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세상을 등지고 살아가는 그
분들의 얼굴이지만, 어찌 그리도 고운지, 어찌 그리도 맑은지, 뭐가
그리도 좋은지...
삶의 에너지를 영적인 곳에 집중시키다보니, 그러기 위해서 삶을 최
대한 단순화시키다보니, 그 분들 얼굴은 어찌 그리도 때깔이 좋은지
모릅니다.
별로 잘 먹는 것도 없는데도 윤기가 돌고 빛이 납니다. 생활이 간소
하다보니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알게 됩니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기뻐
합니다. 행복해합니다. 마치 어린이들과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늘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우리가 상상을 초월하는 평수의 아파트에 살면서, 우리 같은 사람 평생
만져보지 못할 많은 액수가 은행잔고에 남아 있으면서도, 이 땅에서 못
이룬 것 하나 없이 모든 것을 다 이뤘으면서도 ‘나같이 불행한 사람 있
으면 나와 보라 그래’ 하는 얼굴로, 그래서 마치 연옥 벌이라도 받고 있
는 얼굴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반대로 가진 것 하나 없으면서도 걱정하나 없는 왕자처럼, 모든 꿈을 다
이룬 황후처럼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니 왜 그런지 팍팍하기 그지없습니다. 없
이 살던 시절, 그래서 고생이 많던 시절에도 이렇지는 않았던 것 같았는
데...
행복지수는 경제성장과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는 말이 실감 있게 다가
옵니다.
우리가 그토록 염원하는 하늘나라, 우리 자신을 낮춰야, 우리 자신을 작
게 만들어야 쉽게 들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복잡한 우리 삶을 보
다 단순화시켜나갈 때 하늘나라는 더욱 가까이 다가올 것이라고 생각합
니다.
우리 하느님은 자비의 하느님이시니, 그 하느님께서 우리 인생길을 활짝
펴주실 것이니, 그저 그분 은총의 손길 안에 하루를 지내려는 소박한 마
음가짐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보다 자주 내려놓음을 통해, 보다 밑으로 내려감을 통해, 보다 작은 자 되
려는 노력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께서 강조하시는 ‘어린이’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장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