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제29주간화요일
“엄마, 머하노? 오늘 점심 때 무슨 일 있나? 내하고 점심 같이 먹을래?”
어머니에게 가끔 이런 전화를 겁니다.
저는 어머니랑 둘만 있을 때 말을 높이는 것이 어색합니다.
고3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는 하나뿐인 아들에게
항상 아주 가깝고 친근하게 대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요즘에는 어머니랑 밥을 같이 먹다 보면 한번씩 ‘앞으로 살아있는 동안 몇 번이나
더 어머니랑 밥을 같이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조금 슬픈 생각이 듭니다.
어머니 연세도 많아지시는 것이 느껴지고, 얼마나 더 사실지 모르겠지만
그 시간이 무작정 길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살아계실 동안 다른 작은 일들은 조금 제쳐놓더라도
한 번 더 어머니와 함께 밥을 먹고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복음도 우리에게 이런 어머니와 같습니다.
하느님은 복음을 통해, 그리고 성경을 통해 늘 우리 곁에 가까이 계시면서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을 건네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알아듣지 못하고, 그 소중함을 마음으로부터 느끼지 못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의 일상은 복음이 그 생명력을 가지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현장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똑같은 하루가 아니라
복음은 우리의 친근한 일상 한가운데서 새롭게 말을 건네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메시지를 무심코 지나쳐버릴 때가 많습니다.
“서로 사랑하십시오.”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십시오.” “하느님 아버지를 닮은 자녀가 되십시오.”
이와 같은 복음의 메시지들은 마치 어머니가 아들에게 “밥 좀 잘 챙겨 먹어라.”
“조심해서 다녀라.” “일찍 자거라.” 하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들이 어릴 때 그 말들은 그저 반복되는 하나의 잔소리처럼 들리지만,
나이가 들고 철이 들면서 결국 그 말들이 가장 사랑에 절인 속삭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의 일상을 통해 어머니처럼 말을 건네 오시는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시다.
그 메시지를 잘 알아듣는 사람은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혼인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을 깨어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똑같은 하루가 주어졌음에도,
하느님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은 혼인잔치에서 주인이 도착하는 날,
문을 두드려도 깨어나지 못하고, 그의 등불은 꺼져 있는 사람과 같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날들이 모두 끝나는 날, 우리는 이처럼 두 편으로 나누어질 것입니다.
등불이 켜져 있는 집과 등불이 꺼져 있는 집...
이는 결코 마지막 날의 운에 따라 요행히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등불은 날마다 우리의 영적인 상태가 어떤 불을 밝혀왔는가 함을 뜻합니다.
어머니에게 아들이 단 하루 맛있는 것을 사 드리고,
효도관광을 시켜드렸다고 해서 그 아들을 효자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평소에 어떤 성실과 진심을 가지고 어머니를 모셨느냐에 따라 그를 효자라고 부릅니다.
우리의 영적인 등불도 이와 같은 것입니다.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우리는 이미 우리 주 예수님의 권위로 우리에게 전해주는 것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 다만 우리의 생활 안에서 복음의 메시지들을 경각심을 가지고
귀 기울여 새롭게 알아들을 필요가 있을 뿐입니다.
분명한 것은 어머니는 무작정 언제까지나 기다려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아멘.
복자 성당 정창주(프란치스코) 보좌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