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보기 살 돈 2만원만 꿔주세요" "3.1절 아침에 만세 세번 불렀다"▲ 생전의 천상병 시인(오른쪽)과 부인 목순옥 여사. 천상병(千祥炳·1930~1993) 시인이 1980년대 초반에 직접 쓴 일기 일부와 편지가 발견됐다. 편지는 1981년 국회의원 고(故) 정상구씨에게 2만원을 꾸어달라고 부탁하는 것과 형님에게 안부를 묻는 내용. 그러나 이 편지들은 보내지지는 않았다. 일기는 1983년 2~3월 쓴 것으로, 3·1절에 집에서 만세를 세 번 불렀으며 연동교회 김형국 목사의 설교에 감명을 받았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부인 목 여사는 “천상병 시인이 돌아가신 직후에 유고들을 정리했는데 그 때 누락된 것 같다”고 말했다. 새로 발견된 유고에 대해 천 시인의 친구였던 학술원 회원이자 극작가인 신봉승씨는 “천상병 시인의 생활상과 사상 등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역시 친구였던 강민 시인도 “처음 보는 것들로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평했다. 천상병은 사후에 날이 갈수록 애독자가 늘고 있는 시인이다. ‘천상병 문학제’에 참여하는 사람도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대표작인 ‘귀천(歸天)’은 도처에 시비(詩碑)가 세워졌고 교과서에도 실렸다. 대중가요로도 여러 가수가 불렀다. 문단에서는 “의정부에 있는 천 시인의 묘소에는 떡이 굳는 날이 없고 꽃이 시드는 날이 없다”는 말들을 한다. 그만큼 천 시인을 좋아하는 사람이 자주 찾는다는 말이다. 새로 발견된 유고를 소개한다. ◎ 편지 정상구 의원에게 보내는 편지는 200자 원고지 3매로 돼 있다. 그 중 주요 내용은 안경값 2만원만 꾸어달라는 내용. “…아내가 몇 달 전에 실직(失職)을 해서 요새는 밥도 못 해먹고 근처의 처가집에서 얻어먹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밥문제는 아니고 내가 수일 전에 돋보기 안경을 잘못 취급해서 못쓰게 되었는데 돋보기가 없으면 적은 활자는 읽을 수가 없어서 요새 가을인데 책을 못 읽어서 답답하기 그지 없어서 선생님께 편지를 씁니다. 아내에게 물으니 한 2만원이면 살 수 있다는데 좀 봐주십시오, 내년 4월이나 5월이면 본인의 책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글도 못 쓸 지경이니 어찌합니까. 책이 나오면 그 인세로 2만원 기어코 갚겠습니다. 선생님 딱 한번만 봐 주십시오.”
▲ 정상구씨에게 쓴 편지 천상병 시인은 원래 가난을 즐겼다. 그리고 아무리 어려워도 부자에게 손을 내밀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단지 오며가며 만나는 가까운 친구에게 장난삼아 손바닥을 내밀고 500원, 1000원을 얻어 막걸리를 마셨다. 돈을 적게 주던 사람이 갑자기 많이 주면 거스름돈을 주기도 할 정도였다.
1980년대 초반에 쓴 그의 시 ‘나의 가난함’을 보자. 나는 볼품없이 가난하지만 인간의 삶에는 부족하지 않다. 내 형제들 셋은 부산에서 잘 살지만 형제들 신세는 딱 질색이다. 각 문학사에서는 날 돌봐주고 몇몇 문인들이 날 도와주고 그러니 나는 불편함을 모른다. 다만 하늘에 감사할 뿐이다. 이렇게 가난해도 나는 가장 행복을 맛본다. 돈과 행복은 상관없다. 부자는 바늘귀를 통과해야 한다.![]()
(지난 주말 인사동 찻집<歸天>에서 목여사를 만날 수 있었다.
돋보기 살 돈 이만원만 꿔 주세요
2006. 3. 2. 오전 11: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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