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1주일(마태4,1-11)
유혹을 물리치는 길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를 구원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죽기까지 아버지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셨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셔서 우리에게 부활의 희망을 안겨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뜻 안에 머무는 동안 악마의 유혹을 받으셨고 그 유혹을 물리침으로써 우리에게 악의 유혹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하셨습니다. 이 시간 유혹에 관해 묵상하는 가운데 악을 지배할 수 있는 주님의 힘과 능력을 입으시길 기원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아무 근심걱정이 없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어떤 유혹도 없이 평온한 상태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다면 모두가 행복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믿는 우리는 근심걱정이 없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도 악의 유혹을 받으셨고 더군다나 악의세력이 뜻을 이루지 못하자 “다음기회를 노리며”(루카4,13) 물러갔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도 이러한 어려움이 생겼는데 하물며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유혹들이 있고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놓겠습니까? 그러므로 근심 걱정이 없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어떠한 유혹과 시련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실 근심과 곤란이 없으면 자만하는 마음,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 사치한 마음이 생기는 법입니다. 따라서 근심과 곤란으로서 마음의 회초리를 삼아 살아갈 수 있는 삶의 지혜를 갖추어야 하겠습니다.
아우구스띠노 성인은 “이 지상의 순례생활에는 유혹이 없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진보는 유혹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유혹을 당하지 않고는 아무도 자신을 완전히 알지 못합니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유혹을 받지 않을 만큼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오히려 거룩하고 완전하게 살려는 사람일수록 더 큰 유혹을 받게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악의세력은 거룩함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유혹에서 지면 보통 사람이고, 이기면 그야말로 큰 사람이 됩니다. 여러분 모두가 큰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나쁜 일은 멈추고 좋은 일만 해야 합니다.’ 누구나 다 아는 얘기지만 실천하기는 너무도 어려운 일입니다. 유혹을 물리치는 길을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고난을 겪으시면서 유혹을 받으셨기 때문에, 유혹을 받는 이들을 도와주실 수가 있습니다”(히브2,18). 그러나 그 길을 따르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겪은 첫째 유혹은 생계문제 입니다. 먹고 사는 문제입니다. (쓰리고의 문제입니다. 먹고 ,마시고 즐기고)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 ”고 성경에 기록 되어 있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도와주려면 무엇보다도 돈이 필요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돈이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마더데레사 수녀님의 말씀대로 “사람들이 기아로 죽어가는 것은 하느님께서 그들을 돌보시지 않아서가 아니라 바로 여러분과 내가 너그럽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손 안에 있는 그 사랑을 나누어 주는 도구가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분명, 빵이 중요하지만 빵보다 사랑이 중요합니다. 물질적인 것 위에 영적인 것이 있습니다.
두 번째 유혹은 명성에 대한 유혹입니다. 악마는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 세운 다음 성경의 ‘천사들이 너를 보호하고 받쳐주리라.’ 하는 말씀을 들먹이며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여기에서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루카4,9) 하고 말하였습니다.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도 살수 있다는 것은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하느님의 능력인 기적을 남용하라’는 요구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 하신 말씀이 성경에 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남의 눈에 띠고 인정받으며 찬사를 받고 싶어하는 것이 우리의 마음에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일상의 십자가는 남몰래 지기를 싫어합니다. 그러므로 생색내기의 유혹에서 벗어나기를 기도해야겠습니다.
세 번째 유혹은 권력에 대한 유혹입니다. 사탄을 경배하면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를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는 성경말씀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상대방을 더 많이 지배하고픈 마음,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면 불의와 타협하고도 싶은 마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순교자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많은 성인 성녀들이 하느님을 따르기 위해 세상의 부귀영화를 버렸습니다. 박해 시절에 그들이 세상과 타협했다면 목숨을 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느님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래서 모두를 얻었습니다. 우리도 지상의 조그마한 유익함 때문에 하느님을 버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정치에 발을 디뎠던 분이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정치를 하려니 “얼굴에 철판을 깔아야 하고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해야 하며 소신이 없어야 하더라.” 만약 우리가 불의와 타협한다면 그것이 사탄을 경배하는 일이 된다는 것을 잊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부, 권력, 명예의 3가지 유혹을 보았는데 결국 예수님께서는 모든 유혹을 하느님의 말씀을 통하여 물리쳤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주님의 말씀으로 무장하는 것입니다. 에페소서 6,10. 17절을 보면 “주님 안에서 그분의 강한 힘을 받아 굳세어지십시오. 악마의 간계에 맞설 수 있도록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히 무장하십시오.” “구원의 투구를 받아쓰고 성령의 칼을 받아 쥐십시오. 성령의 칼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유혹에서 자유로워지려면 성경을 읽으십시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어떤 피조물도 감추어져 있을 수 없습니다. 그분 눈에는 모든 것이 벌거숭이로 드러나 있습니다. 이러한 하느님께 우리는 셈을 해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히브4,12). 따라서 말씀에 나를 비추어 새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통해 유혹을 극복한 인물을 보면 구약의 요셉은 경호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마침 집안에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때 보디발의 부인은 요셉의 옷을 붙잡고 침실로 같이 가자고 꾀었습니다. 요셉은 옷을 그의 손에 잡힌 채 뿌리치고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창세 39,11-12).
다윗은 자기를 시기하여 죽이려고 하는 사울을 오히려 죽임으로써 원수 갚을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알리는 아비새를 타이르며 말했습니다. “그렇게 해치워서는 안 된다. 누가 감히 야훼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어른에게 손을 대고 죄를 받지 않겠느냐?”(1사무 26,8-9) 하며 유혹을 물리쳤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3번의 유혹을 받으셨는데 “성경에 기록 되어있다. 주 너희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마태4,7).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사람은 빵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마태4,4).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사탄아 물러가라.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마태4,10). 하시며 하느님의 말씀으로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뱀과 여인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고 말았습니다.(창세3,1-7) 그리고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다가 그만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다.(창세19,26) 에사오는 떡과 불콩죽을 받아먹은 후 야곱에게 장자의 상속권을 팔아먹었습니다. 아론은 금으로 신상을 만들어 놓고 그 앞에 제단을 만들고 축제를 올렸습니다.
다윗은 어느 날 궁전 옥상을 거닐다가 목욕을 하고 있는 한 여인을 보게 되었고 결국 그 여인을 불러다가 정을 통하고 돌려보냈습니다(2사무 11,2-4). 다윗은 유혹을 이긴 사람이기도 하지만 유혹에 넘어간 사람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이렇습니다. 선한 일을 하고 좋은 결심을 해도 한 순간에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유혹을 한번 이겼다고 해서 방심할 일이 아닙니다. 베드로 사도는 말합니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의 적대자 악마가 으르렁대는 사자처럼 누구를 삼킬까 하고 찾아 돌아다닙니다. 여러분은 믿음을 굳건히 하여 악마에게 대항하십시오”(1베드5,8).
가리옷 유다는 적신 빵을 예수님으로부터 받자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유다에게 “네가 하려는 일을 어서 하여라.”하고 이르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유다는 빵을 받고 바로 밖으로 나갔습니다. 때는 밤이었습니다(요한 13,25). 그리고 마침내는 예수님을 팔아 넘겼습니다.
그렇다면 유혹에 넘어가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자만해서 그렇습니다. 이사야서 47,10에서는 “네가 실컷 나쁜 짓을 하면서도 ‘나를 감시할 눈이 없다.’하고 자신만만이구나. 너는 지혜로운 체, 세상일을 다 아는 체하며 ‘이 세상에 나 밖에 없다.’고하다가 제 꾀에 넘어가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뱃속까지 환히 들여 다 보시는 하느님께서 보고 계신데 하느님을 의식하지 못한 탓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자기 욕심에 끌려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사람이 자기 욕심에 끌려서 유혹을 당하고 함정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죽음을 가져 옵니다”(야고 1,14-15). 더 많이 소유하고 지배하고자 하는 욕심이 우리를 병들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유혹을 물리치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무엇보다도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함께 기도하기를 청한 다음 겟세마니 동산에 오르시어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에 남아서 깨어 있어라. 부탁하고 조금 더 나아가 엎드려 기도하셨습니다”마르14,36). “기도를 마치시고 세 제자에게 돌아와 보시니 제자들은 자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너희는 나와 함께 단 한 시간도 깨어있을 수 없단 말이냐?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말을 듣지 않는구나!”하시며 한탄 하셨습니다(마태26,40-41).
이성과 육이 따로입니다. 바오로 사도도 “나는 내가 하는 일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나는 내가 바라는 것을 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싫어하는 것을 합니다. 한 법칙을 발견합니다. 내가 좋은 것을 하기를 바라는데도 악이 바로 내 곁에 있다는 것입니다. 나의 내적인간은 하느님의 법을 두고 기뻐합니다. 그러나 내 지체 안에는 다른 법이 있어 내 이성의 법과 대결하고 있음을 나는 봅니다”(로마7,15.21).
주님의 기도에서도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하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기도하면서 하느님의 말씀과 함께하면 유혹은 은총입니다. 자신을 확실히 볼 수 있는 기회이고 죄가 많은 곳에 은총도 풍성하게 내렸으니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유혹을 받는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그 유혹을 이기셨습니다. 소유와 지배, 명예, 현세적인 권세, 정치적인 유혹으로부터 끝까지 지켜줄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뿐이라는 것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말씀이 능력으로 살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주님은 친히 유혹을 받으시고 고난을 당하셨기 때문에 유혹을 받는 모든 사람을 도와 줄 수 있으십니다.(히브2,18) 그러므로 우리는 유혹을 무서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유익한 것이며 필요하기도 합니다. 유혹은 자신을 확실히 볼 수 있는 기회이며 주님께 간절히 매달릴 때입니다. 유혹이 없기를 기대하지 말고 유혹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쌓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가슴에 안고 사시는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미루지 않는 사랑, 미룰 수 없는 사랑에 눈뜨기를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