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옥 - 알프스 산의 은수자
예전에 다른 가톨릭 사이트에서 읽어두려고 저장해둔 알프스산 은수자의 연옥 신비체험 글입니다.
다시 읽어보니 또 다시 새로운 빛이 비치어옵니다.늘 겸손해야하고 ,사람은 속일수있지만 하느님은 결코 속일 수 없다는것..그 분을 두려워하는것이 지혜의 근원이라는 성경의 말씀을 다시 묵상해봅니다..
연옥 -알프스산 은수자의 글. 버나드 도일스 신부님 번역
연옥에서의 놀라운 일들
연옥에서 모든 영혼들이 똑같은 고통을 받는 것은 아니다.
많은 이들이 생각하기를 가장 죄를 많이 지은 이들이 가장 오래 고통을 받을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많은 경우들에 있어서 사실이겠지만, 꼭 그렇지 않은 경우들도 있다.
연옥에서 내가 배운 것은 이런 일에 관하여 일체의 판단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용서해주시기 위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유들을 가지고 계신다.
그리고, 그 이유들을 연옥에서 발견하는 것은 좋은 경험이었다.
영원 안에서는 우리가 지상에서 생각하는 것과 매우 다르다.
지상에서는 우리가 정확한 확신을 가지는 것이 어려우며, 따라서 우리가 판단할 자격이 없다.
오, 신적인 재판관의 결정하심이 우리들의 것과 얼마나 다른지!
우리는 자주 이렇게 생각한다:
“이 영혼은 틀림없이 상실되었다. 아니면, 연옥의 맨 밑바닥에 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 영혼이 이미 천국에 가 있을 수 있다.
또는 우리가 이렇게 생각하기도 한다:
“이 영혼은 틀림없이 천국에 갔을 것이다. 그는 너무나 거룩하였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연옥에 있을 수 있다.
그렇다. 하느님께서만 당신의 피조물들의 마음 속을 아신다.
하느님께서만 정확하게 판단하실 수 있으시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판단하심에 있어서 대단히 인자로우시며 친절하시다.
반면, 우리는 가혹하며 퉁명스럽다.
주님께서는 아무에게도 부당하지 않으시다.
재판관으로서도 그분께서는 너무나 인자하시고, 사랑으로 넘치시고, 정의로우시다.
선의를 가진 모든 이들이 지극한 친절로써 다루어진다.
연옥에 있는 영혼들은 그들이 지상에서 살면서 그들 자신을 감싼 두꺼운,
말하자면, 수의(壽衣)에 감싸져 있다.
그것은 자기 본위 주의(즉, 자애심)의 의복이다.
이 세상에서 그들이 가장 열심히 돌본 것은 자기 자신들이었다.
세상에서의 최고의 이상이 자아를 영광스럽게 하고 자아에 영예를 초래하는 것이 아닌가.
바로 이 자기 중심 주의가 그 거친 의복을 만들었으며,
그 때문에 하느님의 빛이 뚫고 들어가기가 지극히 어려운 것이다.
지상에서 많은 이들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심각하게 하지 않는다:
“내가 사는 방식이 과연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인가?”
그 대신, 그들은 별로 걱정함도 없이 그들의 생활이 올바르며 매우 칭찬할 만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사실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교회에 즐겁게 가고, 기도를 바치고, 자선의 행위를 하지만,
그들의 영혼 주위에 단단한 껍질을 두르고 있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그들이 하는 모든 것들이 하느님을 대단히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진정으로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사랑이 없이, 하느님께 대한 거룩한 두려움이 없이 모든 행동을 한다.
그들은 외적인 의무들을 수행하면서 그들의 내적 양심이 무디어지는 것을 초래한다.
만일 누가 그들의 잘못에 대하여 지적하면, 그들은 즉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변호한다.
연옥에는 이런 영혼들이 많이 있다.
이들은 연옥에 와 있으면서도 진리에 대하여 아직 완전히 수용하지 못한다.
변화는 오직 서서히 올 뿐이며,
하느님의 은총이 그들의 수의를 뚫고 들어가 그 영혼들을 잠에서
깨어나게 하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이 필요하다.
진정한 지혜와 신심
연옥에는 지상에서 위대한 지혜와 학식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다른 이들을 위하여 많은 좋은 일들을 했으며, 정의를 수호한 영혼들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 행동들을 자신의 야심적인 동기로 인하여 행하였다.
그들은 세속의 정신에 깊이 젖어 있었으며, 이기적이고 독립적인 생활을 영위했으며,
그들의 주님이시며 창조주께 대해서는 전적으로 무시하였다.
이러한 영혼들은 하느님께 대한 지극히 미소한 지식만을 가지고 영원 속으로 들어간다.
지상에서는 모든 것을 잘 알았으나, 그들은 이제 크나큰 당황 속에 빠지게 된다.
전에는 그들이 매우 많은 교육을 받은 이들이었으나, 이제는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참으로 위대한 것들을 겸손한 자들에게만 밝혀 주시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명한’ 이들은 대개 피상적인 영혼들이다.
그들은 그들이 자아로부터 벗어날 때까지, 그들의 잠으로부터 깨어날 때까지,
그들이 자신을 위하는 마음을 완전히 잃어버릴 때까지 연옥에 오래 머물러 있게 될 것이다.
그들은 영원한 빛이 드디어 영혼의 내부까지 꿰뚫고 들어올 수 있을 때까지
그들의 수의 안에서 죽어서 생명이 없는 것처럼 누워있다.
그들은 가장 도움받기 어려운 이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세상과 자신의 것들을 그토록 많이 가졌었기 때문이다.
연옥에는 세상 사람들 사이에 큰 존경을 받던 현명한 이들이 있다.
이제, 그들은 크게 당혹스러워 한다.
왜냐하면, 그 곳에서는 보잘 것 없는 어린 아이가 그들보다도 현명한 경우들이 많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겸손한 자들에게 위대한 것들을 밝혀 주신다.”
재판을 하심에 있어서, 주님께서는 무한히 자비로우시다.
그분께서는 영혼이 지니고 있는 참으로 선한 것들을 정화하시고 티없이 순결하게 보존하신다.
그리하여 그들에게 영원히 보답을 주실 수 있으시다.
그리고, 수많은 잘못들과 실수들도 있었지만, 이로 인하여 선행이 상실되지 않도록 하신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모든 좋은 행위를 존중하시며,
지극히 작은 봉헌까지도 높이 보시기 때문이다.
아, 그렇다. 우리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좋은 것들을 깨달을 수만 있다면!
지상에서 경건하고 신심깊었던 영혼들은 그들이 사람들로부터 받은 존경 때문에
연옥의 고통을 오랫 동안 받게 된다.
나는 연옥에서 자신의 의지와 자애심으로 성인이 되고저 했던 많은 영혼들을 보았다.
그리고, 고해 신부나 영적 지도자를 기쁘게 하려고 열심히 신심 생활을 한 이들과,
하느님이 아니라 자신들을 영광스럽게 하고 자신들의 이기심을 추구한 많은 이들을 보았다.
그렇다. 이들은 신심을 실천한 이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겸손하지 않았으며, 자신 안에서의 결점들을 보기 원치 않았고,
자신의 생활 방식이 최선의 것이라고 자만했으며,
겸손과 통회로써가 아니라 자랑스럽게 보속을 행한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보속은 참된 것인 것처럼 보이지만, 하느님을 속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들은 거룩하게 되고자 하는 교만한 욕심을 가진 이들이었으며,
그들이 행한 극기와 희생들을 계속 되돌아보고 세어보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위대한 일들을 행할 수는 있었을지라도, 작고도 중요한 의무들은 소홀히 하였다.
이러한 영혼들은 연옥의 불길 매우 깊숙히 있다.
그들의 전 생애가 하나의 오랜 기만이었다.
오, 영원하신 진리께서 그들을 얼마나 맹렬하게 태우시는 지!
하느님께서는 그들로 인해 기쁘지 않으셨으며,
따라서 그들은 크나큰 고통과 고뇌를 겪어야 한다.
그들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대로 통회할 수 있고,
그들의 교만한 자아가 겸손해지기 위해서는 그러한 혹심한 고통이 필요하다.
그들에게 통회와 겸손의 기미가 보이자 말자, 그들의 영혼은 철저하게 정화될 수 있다.
그 정화는 하느님의 은총에 의해 그들이 자아에 대한 진정한 깨달음에 이르게 될 때까지
계속되며, 그 때에는 그들이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예수님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겸손이 중요하다
더 이상 나는 영혼들 안에서 위대함을 찾지 않으며, 오직 작음과 단순함을 찾을 뿐이다.
나 자신이 점점 더 매우 작고 단순하게 되어야 함을 배웠다.
오, 연옥에는 다른 이들을 잘못 인도한 이들이 더욱 많이 있다. 슬픈 일이다.
아무도 그들을 위하여 기도해주지 않으니, 이는 그들이 지상에서 경건했다고 인정되었기 때문이다.
오, 이 불쌍한 영혼들!
예수님께서는 내가 이들을 위하여 기도해주어야 한다고 속삭여 주셨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은 그 영혼들이 이미 천국에 들어갔을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너무나 자만에 빠져 있던 이 영혼들이
그들을 겸손하게 해주는 불길 속에서 정화되어야 함은 불가피한 일이다.
겸손한 경건은 너무나 드물다. 그러나, 그것이 참된 신앙심이다.
우리가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알지라도, 가장 중요한 것,
즉 우리가 아무 것도 아니며,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그리고 우리가 하느님을 통해서만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지식을 잔뜩 쌓았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어린 아이의 지혜를 지니지 못했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이러한 지혜가 없다면, 우리는 자비로우신 사랑을 이해할 수가 없다.
자비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자는 참으로 가난한 이가 아닌가?
전적으로 자아 위에 세워진 건물은 무너지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겸손의 토대 위에 건설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겸손은 모든 은총들의 토대이며, 우리의 모든 삶의 토대이다.
이 지혜가 결핍되면, 다른 모든 지식과 거룩함이 허무한 것이 된다.
바람이 몰아치면, 금방 날아가 버린다.
겸손이 있는 곳에, 나약함이 있는 곳에 또한 하느님의 힘이 존재한다.
통회가 있는 곳에 자비가 내려진다.
연옥에 관한 성인들의 여러 어록
"연옥에서 일순간 받는 고통은 석쇠 위에서 순교한 성 라우렌시오의 고통보다 더 무섭습니다." ㅡ성 아우구스티누스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불이 그림의 불보다 더한 것처럼, 연옥 불은 이 세상의 모든 불보다 더합니다." ㅡ성 토마스모어
"나는 연옥에서의 고난의 시간을 짧은 것으로 파악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영원성과 비교할 때 그것은 단지 짧은 순간에 불과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이에른의 신비주의자 마리아 안나 요제파 린드마이어
저는 연옥이 두렵지 않습니다. 저는 제가 그 거룩한 영혼들과 함께 그 보속의 장소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또한 주님께로부터의 사랑의 불길이 연옥의 불길보다 더 성화를 이루어 준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ㅡ성녀 소화 데레사
"우리가 만일 연옥 영혼이 가지고 있는 힘을 안다면, 그리고 또 그들의 전달로 받을 수 있는커다란 은혜를 안다면 그들을 그리 쉽사리 잊어버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들을 위하여 열심히 기도하십시오. 그들도 우리를 위해 열심히 기도할 것입니다."
ㅡ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