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배광하신부

2015. 2. 25. 오전 11:51:53

글자

(꽃)     봉    사

사랑하는  제  동창 신부  백 광진  신부는  언제나  남다른  곳이  있는  친구였습니다 .  여러 세월  끝에 첫 주임 신부 소임을  잘 마치더니  어느날  인도 콜카타의    '  마더  데레사 '  (  1910 -  1997  )  수녀님께서  설립한  <  사랑의  선교회  > 로 가서  1년 동안  봉사를 하고 오겠다며  인도로 떠났습니다 .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5년 임기의  주임 신부의 소임을  잘 마치고  자신이 이제는  많이 두려워지기 시작한다면서도  다시  1년  안식년을  인도 콜카타로  또 봉사하겠다며 떠났습니다 .   다른 사제들은  황금 같이  주어지는  안식년을  여행과  뜻깊은 휴가로  즐기는데 ,  동창은  생각이 달랐습니다 . 

동창은  콜카타  사랑의  선교회에서  아주 더럽고  협소한 방을 얻어  새벽이면  사랑의 선교회 수녀님들과  미사를  봉헌하고 ,  자신이 직접 아침을 만들어 숙소에서 먹고 ,  사랑의 선교회  임종자들의 집에서  거리에 버려진  노숙인들 ,  정말  죽어가는 이들을 데려다 돌보는  임종자들의 집에서  세계  각지에서  봉사온 젊은이들과  함께  그 불쌍한 이들을 씻기고 , 먹이고  돌보는 일들을 하다가  저녁에는  미리  장을  보아  김치도 담그고 , 갈비찜도 하고 ,  다양한 요리를 만들어 콜카타에 봉사온 한국 청년들 ,  베낭 여행 다니는 한국 청년들 , 혹은 함께 봉사하는 외국 청년들을  매일 밤  먹이는 일을 아주 즐겁게 하였습니다 .

실은  ' 마더 데레사 '  수녀님께서  기존의 수도회인
<  로레토  성모  수녀회  > 에  입회하여  수녀회가  콜카타에서  운영하는   <  성  마리아  고등학교  > 의  지리  역사  선생님으로 재직 중에  수녀회를 나와  사랑의 선교회를  세운  가장 중요한 이유는 ,  거리에 짐승처럼  버려져  감히 인간이라고  부를  수 조차  없이 비참히  죽어가는  사람들을  수없이  보았기  때문에  차마  교직에 서 있을 수 없어  새로운  활동  수녀회를  세운 것입니다 .
수녀님은  살아  생전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

"  사랑  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가난 ,   가깝다고  여길  만한이  아무도 없는  가난 ,   이것이  정말  큰  가난입니다 .  "

우리 동창 신부는 정말  착한 신부입니다 .
저는 동창이  두 번째  인도를 갔을  때 ,  내가  꼭  너를  만나러  인도에 가겠노라 약속을  했고  그  약속을 지켰습니다 .  
새벽  어둠이  깔린  인도  뉴델리  국제공항은  그야말로  더럽기 이를데 없었습니다 .  푹푹찌는  뉴델리 공항에 도착하니  마중나온  동창의 모습이  마치  인도 사람 같아 보였습니다 .   엉성하게 몇가닥 되지 않은 콧수염을  길러  공항에 마중 나왔습니다 .  저는  그때  수염이 도인 같아  비교가 되어  많이  웃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    제가  인도를 오게된 몇가지  이유는  첫째 ,  동창 신부와의  약속이었고 ,   둘째 ,  마더 데레사 수녀님의  유해가 모셔진  사랑의 선교회를  순례하는 것이었고 ,  셋째 ,  저를  가슴 뛰게  만들었던  가난의 아버지 ,  소작농들을 위해  평생을 인도 전역을  똥을 치우며  걷고  또  걸어  대 지주들에게  토지헌납 운동을  벌였던   '  비노바 바베  '  때문이었으며 ,   넷째는   ' 마하트마  간디  '  ,   다섯째는   인도의  시성   '  라빈드라나드  타고르  '  ,    여섯째는  콜카타에서  봉사하는  독일 청년   '  안디  '  때문이었습니다 .   이중  살아있는  사람으로  만날 수 있는 사람은  동창 신부와  안디 뿐이었습니다 .

실로  인도는  첫 인상이  솔직히 더럽다는  것이었습니다 .   소똥및  온갖  짐승 똥들로 즐비하고  온갖  매연들 ,  고막이 터질것 같은  시끄러운  소음들 ,  각종 쓰레기들 ,  더러운  도로 ,  무질서한  교통체계 ,  수시로 내뱃는  인도인들의  더러운  침 ,  날씨 ,  음식  ,  냄새 등은  저를 시작부터  지치게  만들었습니다 .   어떻게 이런 곳에서  살 수 있단 말인가를  수  천번 되뇌이게  만들었습니다 .   어디를  가든  사방을  둘러보아도  다  더럽고  무질서하고  시끄러움  뿐이었습니다 .  나중에  인도  여행을  다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  인천공항에서  서울을  지나  강원도 제가 있던 피정의 집까지 오는  그  길 ,  특별히 서울 시내는  인도에  비해  그야말로  정적이  감도는  침묵의 도시로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
이런 곳이  뭐가 좋아  동창은  두 번이나 왔을까 ... ?   생각하고  또  생각하였습니다 .  둥창은  옛날  첫번째  인도 봉사를  마치고  한국에 왔을  때  제게  콜카타에  사랑의 선교회  임종자들의  집에서 봉사하는  세계  각국의  청년  천사들을  소개한   ' 조  병준 '  선생의  책
<  제 친구들하고  인사하실래요 >  를  선물로  주었는데 ,  저는  그  책을  읽어 내려가는  내내  훌쩍거렸습니다 .   사제인  제가  그곳에  봉사하는  청년들보다  못하다는 사실과  너무  많은 부끄러움과  청년들의  모습이  너무도 감동적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 

책을  읽으며  특히 제게  감동을  준  청년은   독일인 봉사자 
'  안디  '  였습니다 .  안디의  원래  이름은   '  안드레아스  ' 입니다 .  안디 는 그의  애칭입니다 .  그는 둑일의  유명한  대학을 나와  은행원으로  한 때는  BMW  를  몰며  잘 나가던 청년이었습니다 .  그도 남들처럼  평범한 ,  그러나 야망의  꿈을  키워가던  젊은이였을 것입니다 .  그러던  그가  인도를 여행중  콜카타에서  마더 데레사  수녀님을  만나고  봉사를  하던 중 ,  그의  인생이  송두리채  바뀌게 됩니다 .   처음  인도에  외서  봉사하기를  일주일 ,  두 번째는  여섯 달 ,  세번째  1년 ,  네번째  4년 ,  그리고  안디의  마지막  꿈은  독일의  모든 재산을 처분하여 인도로 돌아와  마더 데레사 수녀님이  다 돌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자신이 돌보다가  인도에  뼈를  묻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   가슴이  뜨겁고  숨이  막힐 것같은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  이러니  책을 읽는 동안  감동이고  송구스러움이며 ,  그들에게  죄스러운  마음뿐이었습니다 .

독일의   ' 슈바이처  '  (   1875 -  1965  )  박사는  그야말로  잘  나가던  사람이었습니다 .  그는  이미  약관의  나이에  철학 박사 , 신학 박사 ,  대학 교수이자  바흐 음악과  파이프 오르간의 대 음악가였습니다 .  그랬던  그가  어느날  세상  탄탄대로의  잘 나가던  그 모든 것을 버리고  의학을  공부하여  의사가 되고  아프리카로  떠나버립니다 .  그리고  그곳에서  병들고  고통받는 원주민들을 위하여  일생을  바칩니다 . 
사람들은  그에게 묻습니다 .  왜  편한 인생을  버리고 이런   고생을  하냐고 ... .. ?
슈바이처 박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

"  제가  예전 행복하고 평안하던 시절  어느날 ,  집  뜰에서  봄  햇볕을  즐기며  휴식을  즐기고 있을  때 ,  저는  갑자기  섬광 같이 저를  일깨우는  가르침을  들었습니다 .  그것은 ,  내가  이렇게  행복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날 대신하여  고통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
진정  나는 세상과  사람들에게 빚을 진 것을 갚고 있는가 ?  

 이런  생각은  저를 그냥 두지 않았습니다 .  그래서  저는  이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  "

진정  세상이  아름답기 위해서는 ,  세상이 사람  살만한 곳이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생각의 전환 ,  사랑을  위한  도전의 삶을  사는 이들이  많아져야할 것입니다 .

책을  쓰신  조 병준 선생도  콜카타  임종자들의 집에서  함께 봉사하며  성자처럼  살고 있는  안디에게  많은 감명을  받은듯 보였습니다 . 
어느날  그가  안디에게  묻습니다 .

"  안디 !  왜  결혼은  안해  ?  "

안디가  대답합니다 .

"  내가  사는  모습을 봐 !  어떤  아가씨가  나 같은 사람에게  시집을 오겠어  ?  " 

"  안디  이런 일이  왜 ,  그리도 좋아 ?  "
 
"  헤이 ,  준 .  그건  아주 간단해 .  이 일을  하면   우선  내가  행복하거든 .  그리고  내가  조금  도움을  주는  저 아프고  가난한  사람들도  아마  조금은  행복할  거야 .  그러면  저  위에서  세상을  보고 계시는  그분께서도  행복해하시지  않겠어  ?  "

아 .....  !
이런  명콰한  대답이 .... 
저는  그만  울어버렸습니다 .
사랑의  삼위일체 ,   봉사는  진정  내 자신이  그 일이  너무 너무 좋아야합니다 .  기뻐야합니다 .  억지로라도 그리  만들어야합니다 .  그래야  ,  봉사하는  이의  기쁨이 있어야  봉사  받는 이들도 기쁩니다 .   이들의  웃음 소리는  하느님도 웃으시게 만들  것입니다 . 

동창과 저는  콜카타  사랑의 선교회 수녀원으로 향하였습니다 .  수녀원으로 가는 길에도 가난한 이들은  줄을  서 있었습니다 .  아주 작고  소박한  수녀원 정원은  그야말로  정말 작았고  성모상이  작게 세워져  있었습니다 .   저는  기도를  바치고  낮 미사를 드리러 동창과  함께   마더 데레사 수녀님의  유해가 묻혀진  작은 성당으로 들어갔습니다 .  수녀원으로  가기전  저는 동창에게  물었습니다 .

"  백 신부 ,  사랑의 선교회에  가면  혹시  안디를  볼 수  있을까  ?  "

동창은  대답하였습니다 .

"  아니 ,  이제는  안디를  볼 수  없어 .  안디는  이제 이곳에  봉사하러 나오지 않아 .   안디가 그렇게  원했던 것처럼  이제  안디는  작은  건물을  구입해  오갈데  없는  아이들을 돌보고 있어 .  "

참으로  못내  아쉬웠습니다 .  그런데  호주 신부님의  주례로  미사가  거행되고  제 1독서를  할  때였습니다 .  청바지와  흰색  긴팔  와이셔츠를  조금  접은  옷을 입은  백인  남자가  독서를  하러  독서대로 오르자  갑자기  동창 신부가  저를  조용히  부르더니   그가  바로  안디라는  것이었습니다 .  저는  제  눈을  의심하였고  그를 미사 내내  눈여겨  보았습니다 .  책에서는  수염을 조금  기른  모습이었는데 ,  아주 깔끔해 보였습니다 .  안디는 제가   
'  안디 '    '  안디  '  하고 부를  나이가  아닌 것이었습니다 .  그는 이미  예순의  세월을 살았던 것입니다 .  그런데도 너무도  맑고  순수해 보였습니다 .

미사가  끝나고  동창에게  나를  안디에게  소개좀  시켜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  동창이  안디  형님  (  ?   ) 에게  가서  한국에서 온  동창 신부라고  하니  반갑게  악수를 청하는  것이었습니다 .   동창은  제가  한국에서  조 병준 선생이  쓴  안디가  나오는 책을  읽고 안디를  무척이나  존경한다고  안디에게  이야기  하였습니다 .  그러자  안디는  손바닥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부끄러워하며 ,  자기도  한국 사람들에게  그 책에  대해  많이 들었는데  조 병준 씨가  자기를  너무  많이 과장되게  칭찬하여  들을  때마다  부끄럽다는  것이었습니다 .

여기서 저는  어린이와 같이  순수한   사랑의   성자를  또  보았습니다 . 

평생을  집없는  사람들을  돌보는   엠마우스 공동체의  창시자인  프랑스의  성자로  일컬어지는   '  아베  피에르  '  신부는  그  고단한  일상의  삶에서도  이렇게  가슴  뜨겁게  고백합니다 . 

"  그러나  저는  혼자서  가슴  속으로  눈물을  흘리면서도  당신을  사랑하는  것을  멈출  수  없습니다 .   사랑은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고통과  어둠의  밤을  통해서  저에게  기쁨을  주기  때문이지요 .  그러기에  저는  저의  기쁨을  위해   당신의  기쁨을  사랑합니다 .   "

아  !
사람들이  왜  이렇게  더럽고  시끄럽고  불쾌하고  무질서한  곳 ,  인도를  찾는지를  저는  사랑의 선교회에서  안디를  만났을  때와  임종자들의  집에서   진정  기쁨으로  봉사하는  세계의  수 많은  젊은이들을  보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  
바로  그곳에  성인들이  계셨습니다 .   바로  그곳에  살아있는  성자들이  계셨습니다 .  바로  그곳에서  예수님을  참으로  만날 수 있었습니다 . 

그리고  그곳에서  비로소  인간도   그토록  숭고해질 수 있구나 !   인간도  예수님  말씀처럼  하느님께서 완전하시니  너희도  완전한 자  되라  하신 말씀의  참  의미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
그곳에  태초에  아름답게  창조하신  인간이  있었기에  사람들이  인도로 인도로 향하였던  것입니다 .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그리 말씀하셨고 ,  그  말씀을  온  몸으로  실천하시며  당신을  불사르신 것이었습니다 .


"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  "
        (   마태  20 ,  27 - 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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