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봉 사
사랑하는 제 동창 신부 백 광진 신부는 언제나 남다른 곳이 있는 친구였습니다 . 여러 세월 끝에 첫 주임 신부 소임을 잘 마치더니 어느날 인도 콜카타의 ' 마더 데레사 ' ( 1910 - 1997 ) 수녀님께서 설립한 < 사랑의 선교회 > 로 가서 1년 동안 봉사를 하고 오겠다며 인도로 떠났습니다 .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5년 임기의 주임 신부의 소임을 잘 마치고 자신이 이제는 많이 두려워지기 시작한다면서도 다시 1년 안식년을 인도 콜카타로 또 봉사하겠다며 떠났습니다 . 다른 사제들은 황금 같이 주어지는 안식년을 여행과 뜻깊은 휴가로 즐기는데 , 동창은 생각이 달랐습니다 .
동창은 콜카타 사랑의 선교회에서 아주 더럽고 협소한 방을 얻어 새벽이면 사랑의 선교회 수녀님들과 미사를 봉헌하고 , 자신이 직접 아침을 만들어 숙소에서 먹고 , 사랑의 선교회 임종자들의 집에서 거리에 버려진 노숙인들 , 정말 죽어가는 이들을 데려다 돌보는 임종자들의 집에서 세계 각지에서 봉사온 젊은이들과 함께 그 불쌍한 이들을 씻기고 , 먹이고 돌보는 일들을 하다가 저녁에는 미리 장을 보아 김치도 담그고 , 갈비찜도 하고 , 다양한 요리를 만들어 콜카타에 봉사온 한국 청년들 , 베낭 여행 다니는 한국 청년들 , 혹은 함께 봉사하는 외국 청년들을 매일 밤 먹이는 일을 아주 즐겁게 하였습니다 .
실은 ' 마더 데레사 ' 수녀님께서 기존의 수도회인
< 로레토 성모 수녀회 > 에 입회하여 수녀회가 콜카타에서 운영하는 < 성 마리아 고등학교 > 의 지리 역사 선생님으로 재직 중에 수녀회를 나와 사랑의 선교회를 세운 가장 중요한 이유는 , 거리에 짐승처럼 버려져 감히 인간이라고 부를 수 조차 없이 비참히 죽어가는 사람들을 수없이 보았기 때문에 차마 교직에 서 있을 수 없어 새로운 활동 수녀회를 세운 것입니다 .
수녀님은 살아 생전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
" 사랑 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가난 , 가깝다고 여길 만한이 아무도 없는 가난 , 이것이 정말 큰 가난입니다 . "
우리 동창 신부는 정말 착한 신부입니다 .
저는 동창이 두 번째 인도를 갔을 때 , 내가 꼭 너를 만나러 인도에 가겠노라 약속을 했고 그 약속을 지켰습니다 .
새벽 어둠이 깔린 인도 뉴델리 국제공항은 그야말로 더럽기 이를데 없었습니다 . 푹푹찌는 뉴델리 공항에 도착하니 마중나온 동창의 모습이 마치 인도 사람 같아 보였습니다 . 엉성하게 몇가닥 되지 않은 콧수염을 길러 공항에 마중 나왔습니다 . 저는 그때 수염이 도인 같아 비교가 되어 많이 웃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 제가 인도를 오게된 몇가지 이유는 첫째 , 동창 신부와의 약속이었고 , 둘째 , 마더 데레사 수녀님의 유해가 모셔진 사랑의 선교회를 순례하는 것이었고 , 셋째 , 저를 가슴 뛰게 만들었던 가난의 아버지 , 소작농들을 위해 평생을 인도 전역을 똥을 치우며 걷고 또 걸어 대 지주들에게 토지헌납 운동을 벌였던 ' 비노바 바베 ' 때문이었으며 , 넷째는 ' 마하트마 간디 ' , 다섯째는 인도의 시성 ' 라빈드라나드 타고르 ' , 여섯째는 콜카타에서 봉사하는 독일 청년 ' 안디 ' 때문이었습니다 . 이중 살아있는 사람으로 만날 수 있는 사람은 동창 신부와 안디 뿐이었습니다 .
실로 인도는 첫 인상이 솔직히 더럽다는 것이었습니다 . 소똥및 온갖 짐승 똥들로 즐비하고 온갖 매연들 , 고막이 터질것 같은 시끄러운 소음들 , 각종 쓰레기들 , 더러운 도로 , 무질서한 교통체계 , 수시로 내뱃는 인도인들의 더러운 침 , 날씨 , 음식 , 냄새 등은 저를 시작부터 지치게 만들었습니다 . 어떻게 이런 곳에서 살 수 있단 말인가를 수 천번 되뇌이게 만들었습니다 . 어디를 가든 사방을 둘러보아도 다 더럽고 무질서하고 시끄러움 뿐이었습니다 . 나중에 인도 여행을 다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 인천공항에서 서울을 지나 강원도 제가 있던 피정의 집까지 오는 그 길 , 특별히 서울 시내는 인도에 비해 그야말로 정적이 감도는 침묵의 도시로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
이런 곳이 뭐가 좋아 동창은 두 번이나 왔을까 ... ? 생각하고 또 생각하였습니다 . 둥창은 옛날 첫번째 인도 봉사를 마치고 한국에 왔을 때 제게 콜카타에 사랑의 선교회 임종자들의 집에서 봉사하는 세계 각국의 청년 천사들을 소개한 ' 조 병준 ' 선생의 책
< 제 친구들하고 인사하실래요 > 를 선물로 주었는데 , 저는 그 책을 읽어 내려가는 내내 훌쩍거렸습니다 . 사제인 제가 그곳에 봉사하는 청년들보다 못하다는 사실과 너무 많은 부끄러움과 청년들의 모습이 너무도 감동적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
책을 읽으며 특히 제게 감동을 준 청년은 독일인 봉사자
' 안디 ' 였습니다 . 안디의 원래 이름은 ' 안드레아스 ' 입니다 . 안디 는 그의 애칭입니다 . 그는 둑일의 유명한 대학을 나와 은행원으로 한 때는 BMW 를 몰며 잘 나가던 청년이었습니다 . 그도 남들처럼 평범한 , 그러나 야망의 꿈을 키워가던 젊은이였을 것입니다 . 그러던 그가 인도를 여행중 콜카타에서 마더 데레사 수녀님을 만나고 봉사를 하던 중 , 그의 인생이 송두리채 바뀌게 됩니다 . 처음 인도에 외서 봉사하기를 일주일 , 두 번째는 여섯 달 , 세번째 1년 , 네번째 4년 , 그리고 안디의 마지막 꿈은 독일의 모든 재산을 처분하여 인도로 돌아와 마더 데레사 수녀님이 다 돌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자신이 돌보다가 인도에 뼈를 묻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 가슴이 뜨겁고 숨이 막힐 것같은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 이러니 책을 읽는 동안 감동이고 송구스러움이며 , 그들에게 죄스러운 마음뿐이었습니다 .
독일의 ' 슈바이처 ' ( 1875 - 1965 ) 박사는 그야말로 잘 나가던 사람이었습니다 . 그는 이미 약관의 나이에 철학 박사 , 신학 박사 , 대학 교수이자 바흐 음악과 파이프 오르간의 대 음악가였습니다 . 그랬던 그가 어느날 세상 탄탄대로의 잘 나가던 그 모든 것을 버리고 의학을 공부하여 의사가 되고 아프리카로 떠나버립니다 . 그리고 그곳에서 병들고 고통받는 원주민들을 위하여 일생을 바칩니다 .
사람들은 그에게 묻습니다 . 왜 편한 인생을 버리고 이런 고생을 하냐고 ... .. ?
슈바이처 박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
" 제가 예전 행복하고 평안하던 시절 어느날 , 집 뜰에서 봄 햇볕을 즐기며 휴식을 즐기고 있을 때 , 저는 갑자기 섬광 같이 저를 일깨우는 가르침을 들었습니다 . 그것은 , 내가 이렇게 행복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날 대신하여 고통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
진정 나는 세상과 사람들에게 빚을 진 것을 갚고 있는가 ?
이런 생각은 저를 그냥 두지 않았습니다 . 그래서 저는 이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 "
진정 세상이 아름답기 위해서는 , 세상이 사람 살만한 곳이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생각의 전환 , 사랑을 위한 도전의 삶을 사는 이들이 많아져야할 것입니다 .
책을 쓰신 조 병준 선생도 콜카타 임종자들의 집에서 함께 봉사하며 성자처럼 살고 있는 안디에게 많은 감명을 받은듯 보였습니다 .
어느날 그가 안디에게 묻습니다 .
" 안디 ! 왜 결혼은 안해 ? "
안디가 대답합니다 .
" 내가 사는 모습을 봐 ! 어떤 아가씨가 나 같은 사람에게 시집을 오겠어 ? "
" 안디 이런 일이 왜 , 그리도 좋아 ? "
" 헤이 , 준 . 그건 아주 간단해 . 이 일을 하면 우선 내가 행복하거든 . 그리고 내가 조금 도움을 주는 저 아프고 가난한 사람들도 아마 조금은 행복할 거야 . 그러면 저 위에서 세상을 보고 계시는 그분께서도 행복해하시지 않겠어 ? "
아 ..... !
이런 명콰한 대답이 ....
저는 그만 울어버렸습니다 .
사랑의 삼위일체 , 봉사는 진정 내 자신이 그 일이 너무 너무 좋아야합니다 . 기뻐야합니다 . 억지로라도 그리 만들어야합니다 . 그래야 , 봉사하는 이의 기쁨이 있어야 봉사 받는 이들도 기쁩니다 . 이들의 웃음 소리는 하느님도 웃으시게 만들 것입니다 .
동창과 저는 콜카타 사랑의 선교회 수녀원으로 향하였습니다 . 수녀원으로 가는 길에도 가난한 이들은 줄을 서 있었습니다 . 아주 작고 소박한 수녀원 정원은 그야말로 정말 작았고 성모상이 작게 세워져 있었습니다 . 저는 기도를 바치고 낮 미사를 드리러 동창과 함께 마더 데레사 수녀님의 유해가 묻혀진 작은 성당으로 들어갔습니다 . 수녀원으로 가기전 저는 동창에게 물었습니다 .
" 백 신부 , 사랑의 선교회에 가면 혹시 안디를 볼 수 있을까 ? "
동창은 대답하였습니다 .
" 아니 , 이제는 안디를 볼 수 없어 . 안디는 이제 이곳에 봉사하러 나오지 않아 . 안디가 그렇게 원했던 것처럼 이제 안디는 작은 건물을 구입해 오갈데 없는 아이들을 돌보고 있어 . "
참으로 못내 아쉬웠습니다 . 그런데 호주 신부님의 주례로 미사가 거행되고 제 1독서를 할 때였습니다 . 청바지와 흰색 긴팔 와이셔츠를 조금 접은 옷을 입은 백인 남자가 독서를 하러 독서대로 오르자 갑자기 동창 신부가 저를 조용히 부르더니 그가 바로 안디라는 것이었습니다 . 저는 제 눈을 의심하였고 그를 미사 내내 눈여겨 보았습니다 . 책에서는 수염을 조금 기른 모습이었는데 , 아주 깔끔해 보였습니다 . 안디는 제가
' 안디 ' ' 안디 ' 하고 부를 나이가 아닌 것이었습니다 . 그는 이미 예순의 세월을 살았던 것입니다 . 그런데도 너무도 맑고 순수해 보였습니다 .
미사가 끝나고 동창에게 나를 안디에게 소개좀 시켜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 동창이 안디 형님 ( ? ) 에게 가서 한국에서 온 동창 신부라고 하니 반갑게 악수를 청하는 것이었습니다 . 동창은 제가 한국에서 조 병준 선생이 쓴 안디가 나오는 책을 읽고 안디를 무척이나 존경한다고 안디에게 이야기 하였습니다 . 그러자 안디는 손바닥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부끄러워하며 , 자기도 한국 사람들에게 그 책에 대해 많이 들었는데 조 병준 씨가 자기를 너무 많이 과장되게 칭찬하여 들을 때마다 부끄럽다는 것이었습니다 .
여기서 저는 어린이와 같이 순수한 사랑의 성자를 또 보았습니다 .
평생을 집없는 사람들을 돌보는 엠마우스 공동체의 창시자인 프랑스의 성자로 일컬어지는 ' 아베 피에르 ' 신부는 그 고단한 일상의 삶에서도 이렇게 가슴 뜨겁게 고백합니다 .
" 그러나 저는 혼자서 가슴 속으로 눈물을 흘리면서도 당신을 사랑하는 것을 멈출 수 없습니다 . 사랑은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고통과 어둠의 밤을 통해서 저에게 기쁨을 주기 때문이지요 . 그러기에 저는 저의 기쁨을 위해 당신의 기쁨을 사랑합니다 . "
아 !
사람들이 왜 이렇게 더럽고 시끄럽고 불쾌하고 무질서한 곳 , 인도를 찾는지를 저는 사랑의 선교회에서 안디를 만났을 때와 임종자들의 집에서 진정 기쁨으로 봉사하는 세계의 수 많은 젊은이들을 보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
바로 그곳에 성인들이 계셨습니다 . 바로 그곳에 살아있는 성자들이 계셨습니다 . 바로 그곳에서 예수님을 참으로 만날 수 있었습니다 .
그리고 그곳에서 비로소 인간도 그토록 숭고해질 수 있구나 ! 인간도 예수님 말씀처럼 하느님께서 완전하시니 너희도 완전한 자 되라 하신 말씀의 참 의미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
그곳에 태초에 아름답게 창조하신 인간이 있었기에 사람들이 인도로 인도로 향하였던 것입니다 .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그리 말씀하셨고 , 그 말씀을 온 몸으로 실천하시며 당신을 불사르신 것이었습니다 .
"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 "
( 마태 20 , 27 - 28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