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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서에 ‘예수의 고을’(마태 9,1), ‘예수의 집이 있는 곳’(마르 2,1)이라고 불릴 만큼 예수님의 활동 중심지로 갈릴래아 호수 북서쪽에 위치한 카파르나움 유적지의 회당터 모습입니다. 베드로 사도의 집터 위에 세워진 성당과는 30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2007년 4월에 찍은 사진입니다.
회당에서 더러운 영을 쫓아내시다(루카 4,31-37)
31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의 카파르나움 고을로 내려가시어, 안식일에 사람들을 가르치셨는데, 32그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의 말씀에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33마침 그 회당에 더러운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34“아!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35예수님께서 그에게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꾸짖으시니, 마귀는 그를 사람들 한가운데에 내동댕이치기는 하였지만,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하고 그에게서 나갔다. 36그러자 모든 사람이 몹시 놀라, “이게 대체 어떤 말씀인가? 저이가 권위와 힘을 가지고 명령하니 더러운 영들도 나가지 않는가?” 하며 서로 말하였다. 37그리하여 그분의 소문이 그 주변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중풍 병자를 고치시다(마르 2,1-12)
1며칠 뒤에 예수님께서는 다시 카파르나움으로 들어가셨다. 그분께서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퍼지자, 2문 앞까지 빈자리가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음 말씀을 전하셨다. 3그때에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그분께 데리고 왔다. 그 병자는 네 사람이 들것에 들고 있었는데, 4군중 때문에 그분께 가까이 데려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분께서 계신 자리의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 중풍 병자가 누워 있는 들것을 달아 내려 보냈다. 5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6율법 학자 몇 사람이 거기에 앉아 있다가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7‘이자가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8예수님께서는 곧바로 그들이 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을 당신 영으로 아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느냐? 9중풍 병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네 들것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10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그러고 나서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11“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12그러자 그는 일어나 곧바로 들것을 가지고,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이에 모든 사람이 크게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며 말하였다. “이런 일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회개하지 않는 고을들(마태 11,20-24)
20그때에 예수님께서 당신이 기적을 가장 많이 일으키신 고을들을 꾸짖기 시작하셨다. 그들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1“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였을 것이다. 22그러니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티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23그리고 너 카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 너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소돔에서 일어났더라면, 그 고을은 오늘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 24그러니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갈릴래아([라] Galilaea, [영] Galilee)
팔레스티나 북부에 있던 고대의 지역명으로 요르단 강 서쪽의 비옥한 평야와 그 외의 바위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크기는 동서로 40km, 남북으로 100km에 이르고, 면적은 약 2,400㎢ 이다. 남부 갈릴래아는 비옥한 에스드라엘론 평야에 접하는 약간 평평한 지역이지만, 북부 갈릴래아는 팔레스티나에서 가장 높은 메이론 산(1,208m)이 있는 산악 지역이다. 이스라엘의 생명수인 갈릴래아 호수를 끼고 있는 갈릴래아 지역은 높이 2,184m의 헤르몬(Hermon) 산의 만년설이 녹아 갈릴래아 호수로 흘러드는 풍부한 물 때문에 농업과 어업이 발달한 비옥한 곳이었다.
성경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어린 시절과 공생활 전까지 생활하셨던 나자렛 마을은 갈릴래아 지방 남쪽에 있고, 사도들의 대부분도 또한 이곳 출신이었다(마태 4,18; 사도 1,11). 그리고 복음서에 기록된 37번의 예수님의 기적 가운데 대부분이 이루어진 예수님 활동의 주무대이기도 했다. 예수님의 십자가상 죽음 이후 실의에 빠진 제자들이 다시 찾은 곳도 바로 갈릴래아 지방이었고, 호숫가에 발현하시어 손수 물고기를 구워주시며 제자들에게 부활의 기쁨을 안겨 주신 곳도 바로 이곳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이곳에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시고 그를 수제자로 삼아 천국의 열쇠를 맡기셨으며, 예수의 마을이라 불릴 정도로 활발히 활동하셨던 베드로 사도의 집터가 있는 카파르나움 마을과 빵과 물고기의 기적을 행하시고 여덟 가지 참 행복에 대해 선포하신 곳도 바로 갈릴래아 지방이었다.
예수님의 ‘제2의 고향’ 카파르나움: 구원의 기쁜 소식 전한 ‘위로의 마을’
꽃이 너무 아름다워 시간을 잊고 마냥 그 자리에 서 있을 때가 있다. 이스라엘 갈릴래아 호수 북서부 연안의 작은 어촌 카파르나움은 이름 그대로 아름다운 환경이 주는 평온한 분위기여서 마냥 머물며 살고 싶은 마을이다. 카파르나움은 히브리 말로 ‘위로의 마을’, ‘아름다운 마을’이란 뜻이다. 카파르나움은 예수의 제2 고향이다. 복음서에서 카파르나움은 ‘예수의 고을’(마태 9,1), ‘예수의 집이 있는 곳’(마르 2,1)이라고 불릴 만큼 예수의 활동 중심지였다. 예수시대 카파르나움은 (시리아의) 다마스커스와 예루살렘을 잇는 교통 요충지로 로마 군대가 주둔해 있었고 세관도 있던 번화한 행정도시였다.
이 고을 이름이 ‘카파르나움’으로 불리게 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설이 있다. 먼저 ‘경제지역’, ‘제한지역’이란 뜻의 히브리 말 ‘케파르 테구민’에서 나왔다는 설. 그 이유는 카파르나움이 갈릴래아와 골란 지방 사이에 있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설은 ‘나훔의 마을’이란 뜻의 히브리 말 ‘케파르 나훔’에서 나왔다는 주장이다. 예언자 나훔의 고향인 ‘엘코스’가 원래 이 마을 이름이었으나 마을 주민들이 그를 존경해 ‘케파르 나훔’으로 고을 이름을 바꾸었다는 것이다. 성서학자들은 대체로 후자를 더 신빙성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예수는 세례자 요한이 체포됐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 나자렛을 떠나 즈불룬과 납탈리 지방 호숫가에 있는 카파르나움으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예수는 이곳에서 이 지역 출신인 베드로와 안드레아,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을 제자로 삼았다. 또 베드로의 병든 장모를 비롯해 백인대장의 종, 중풍병자, 나병환자, 마귀 들린 자들을 고쳐주었고,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리는 기적을 행했다. 예수는 아울러 이곳에서 율법학자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권위 있는 가르침으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회개하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것을 설교했다. 하지만 카파르나움 사람들은 예수의 설교와 놀라운 기적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았다.
예수는 너무나 실망해 “너 카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 너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소돔에서 일어났더라면, 그 고을은 오늘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마태 11,23-24; 루카 10,15)고 저주했다. 예수의 말 때문인지 영화롭던 카파르나움은 7세기 초 페르시아 군대의 침입으로 폐허가 됐다.
카파르나움은 고고학자들에 의해 오늘날까지 가장 잘 확인된 성지 가운데 하나로 인정되고 있다. 고고학자들에 따르면 예수 시대 카파르나움은 그 길이가 1km에 달했다고 한다. 2세기 말 로마 하드리아누스 황제 시절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이 대거 카파르나움으로 이주해 이 도시는 더욱 번창해졌다. 그래서 4세기경에는 예수가 새로운 가르침을 전하던 카파르나움 회당을 부수고 그 자리에 더 큰 회당을 세웠다.
교회 전승에 따르면, 교회 창설 초기부터 카파르나움에 살던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은 베드로의 집에 모여들어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함께 기도했다고 한다. 5세기 경 갈릴래아 지역 신자들은 베드로의 집을 개축해 팔각형의 큰 성당으로 꾸몄다. 하지만 이 성당은 614년 무슬림 페르시아군의 침입으로 폐허가 됐다. 그 후 1200여 년 동안 베드로의 집은 카파르나움과 함께 인적이 끊긴 채 무성한 들풀만 자라는 성경 속의 안식처가 되고 말았다.
카파르나움에 대한 본격적 발굴 작업은 1894년 작은형제회가 일대 부지를 매입하면서 시작됐다. 작은형제회는 1921~1926년, 1968~1984년 두 차례에 걸쳐 대규모 발굴 작업을 벌였다. 그 결과 회당과 베드로의 집터를 발굴했다. 베드로의 집은 카파르나움 회장에서 약 30m 떨어져 있다. 베드로의 집은 5세기경에 지은 팔각형 성당 한 가운데에 보존돼 있다. 이곳이 베드로의 집터라는 확실한 증거가 있다. 그리스 말로 쓰여진 ‘베드로’라는 푯말과 어선의 그림을 이 집에서 발굴했기 때문이다. 현재 작은 형제회는 베드로의 집터를 보존하려 그 위에 팔각형 성당을 지어 순례자들을 맞고 있다.
베드로의 집은 곧 예수의 집이다. 예수는 베드로의 집에 자주 묵었다(마르 1,29-30. 2,1. 3,20-21; 요한 1,38-39. 2,12). 예수의 숨결과 체취뿐 아니라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 열정과 번뇌가 배어있는 집이다. 온 힘을 다해 제자들을 가르치고, 지친 몸을 뉘었던 예수의 안식처를 카파르나움은 품고 있다. 카파르나움 베드로의 집은 부활한 예수를 만나기 전 사도들의 피난처였을 가능성이 크다. 부활하신 예수가 제자들에게 발현해 베드로에게 수위권을 준 타브가와 크게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의 체취를 느끼고 예수의 안식처에서 믿음의 삶을 되돌아보고자 위로의 마을 카파르나움에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바람이 꽃의 눈물을 보고 꽃의 소리를 전해 주듯, 순례자들은 이곳에서 인간 예수를 보고, 돌같이 굳은 영혼을 살같이 부드럽게 되돌리는 생명의 소리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평화신문, 제911호(2007년 3월 11일), 리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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