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판사 부인의 가계부 - 실화(옮긴글) -

2008. 5. 23. 오후 10:04:14

글자
 
    
     
           촌년 10만원
    
    여자 홀몸으로 힘든 농사일을 하며 판사 아들을 
    키워낸 노모는 밥을 한끼 굶어도 배가 부른 것 같고 
    잠을 청하다가도 아들 생각에 가슴 뿌듯함과 
    오유월 폭염의 힘든 농사일에도 흥겨운 콧노래가 
    나는 등 세상을 다 얻은 듯 해 남부러울 게 없었다.
    
    
    이런 노모는 한해 동안 지은 농사 걷이를 이고 지고
    세상에서 제일 귀한 아들을 만나기 위해 서울 한복판의
    아들 집을 향해 가벼운 발걸음을 제촉해 도착했으나
    이날 따라 아들 만큼이나 귀하고 귀한 며느리가 
    집을 비우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손자만이 집을
    지키고 있었다.
    
    아들이 판사이기도 하지만 부자집 딸을 며느리로 둔
    덕택에 촌노의 눈에 신기하기만 한 살림살이에 
    눈을 뗄 수 없어 집안 이리저리 구경하다가 
    뜻밖의 물건을 보게 되었다.
    그 물건은 바로 가계부다.
    
    
    부자집 딸이라 가계부를 쓰리라 생각도 못했는데
    며느리가 쓰고 있는 가계부를 보고 감격을 해
    그 안을 들여다 보니 각종 세금이며 부식비, 의류비 등
    촘촘히 써내려간 며느리의 살림살이에 또 한 번 감격했다.
    
    
    그런데 조목조목 나열한 지출 내용 가운데 어디에
    썼는지 모를 '촌년10만원'이란 항목에 눈이 머물렀다.
    무엇을 샀길래 이렇게 쓰여 있나 궁금증이 생겼으나
    1년 12달 한달도 빼놓지 않고 같은 날짜에 지출한 돈이
    
    바로 물건을 산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에게 용돈을
    보내준 날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촌노는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고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아 
    한동안 멍하니 서 있다 아들 가족에게 줄려고
    
    무거운 줄도 모르고 이고지고 간 한해 걷이를
    주섬주섬 다시 싸서 마치 죄인된 기분으로 도망치듯 
    아들의 집을 나와 시골길에 올랐다.
    가슴이 터질듯한 기분과 누군가를 붙잡고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분통을 속으로 삭히기 위해 안감 힘을
    쓰고 있는 가운데 금지옥엽 판사아들의 전화가 걸려 왔다.
    
    
    “어머니 왜 안주무시고 그냥 가셨어요”라는 아들의
    말에는 빨리 귀향 길에 오른 어머니에 대한 아쉬움이
    한가득 배어 있었다.
    노모는 가슴에 품었던 폭탄을 터트리듯 
    “아니 왜! 촌년이 어디서 자-아”하며 소리를 지르자
    아들은 "어머니 무슨 말씀을...., "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노모는 “무슨 말, 나보고 묻지 말고 너의 방 책꽂이에
    있는 공책한테 물어봐라 잘 알게다”며 수화기를
    내팽기치듯 끊어 버렸다.
    아들은 가계부를 펼쳐 보고 어머니의 역정이 무슨
    이유에서 인지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아내와 싸우자니 판사 집에서 큰 소리 난다
    소문이 날꺼고 때리자니 폭력이라 판사의 양심에 안되고 
    그렇다고 이혼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사태 수습을 위한 대책마련으로 몇날 며칠을 무척이나
    힘든 인내심이 요구 됐다.
    
    그런 어느날 바쁘단 핑계로
    아내의 친정 나들이를 뒤로 미루던 남편의
    처갓집을 다녀오자는 말에 아내는 신바람이나 
    선물 보따리며 온갖 채비를 다한 가운데 친정 나들이 길
    내내 입가에 즐거운 비명이 끊이질 않았고
    그럴 때마다 남편의 마음은 더욱 복잡하기만 했다.
    
    처갓집에 도착해 아내와 아이들이 준비한 선물 보따리를
    모두 집안으로 들여 보내고 마당에 서 있자
    장모가 
    “아니 우리 판사 사위 왜 안들어 오는가”,
    사위가 한다는 말이 “촌년 아들이 왔습니다” 
     “촌년 아들이 감히 이런 부자집에 들어 갈 수있습니까”
    라 말하고 차를 돌려 가버리고 말았다.
    
    
    그날 밤 시어머니 촌년의 집에는 사돈 두 내외와 며느리가
    납작 엎드려 죽을 죄를 지었으니 한번만 용서해 달라며 빌었다.
    이러한 일이 있고 난 다음달부터 '촌년 10만원'은 
    온데간데 없고 
    
    '시어머니의 용돈 50만원'이란 항목이 며느리의
    가계부에 자리했다.
     
     
     - 옮긴글 -
     
     
       
       대학을 졸업하고 공무원을 생활을 하고 있는 아들,

     역시 대학을 졸업하고 학교 선생님으로 근무하고 있는 며느리,

     

     거기에 대학을 다니고 있는 손자,

     

     그러나 그러한 가족들에게 버림을 받아서 양로원을 찾아가야만 했던 어머니,

     

     그것도 오후에 아들 며느리가 함께 동승하여 차를 태워서 이름 모를 길에 내려 주면서 잠깐만

    여기서 기다리라고 해 놓고 다음날 새벽이 되어도 나타나지 않는 아들과 며느리,

     

     양로원에 갔다가 어느 할머니의 가슴 아픈 사연을 듣고 나는 아연실색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니의 말씀 한 마디면 공무원과 교육자라는 신분만 가지고도 아들도 며느리도 과연 안전 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 할머니는 자식이 그리워 눈물로 지내 시면서도 우리 아들이 잘 돼야 한다고 하시니

    도대체 부모님들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아범아 내 아들아 날 제발 데려 가다오.

     

    밥 굶어도 나는 좋고 헐벗어도 나는 좋단다.

     

    너의 얼굴 바라보면 밥 먹은 듯 배가 부르고,

     

    너와 함께 사는 것은 옷 입은 듯 나를 감싸니................이 곡의 1절 가사 일부다.

     

    19년 전 예천 연꽃 마을에 인 방생법회를 갔을 때 만난 어느 할머니의 이야기다.

     

    하루하루 아들을 그리워하는 할머니의 마음을 노래한 이 노래는 고학력 자식 일수록 부모님을

    외면하는 이 시대의 가장 뼈아픈 어머니의 마음을 노래 한 것이리라 생각 하지만, 아마도 젊은

    사람들은 싫어할지도 모르겠으나, 그래도 나는 이 노래를 만들어서 공연장에 가면 자신 있게

    부른다.

     

    이 시대에 효의 정신이 아롱거리는 아지랑이처럼 다시 아물아물 피어오르는 그날 까지.........                      

     

     
     
      3집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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