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마오의 나그네
신학교에서는 점심과 저녁 식사 후 교수 신부들이 산보를 한다.
아마도 오랜 전통이 아닌가 싶다. 내가 신학생이었을 때도
교수 신부들의 식후 산보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행복한 일도 드물다.
꼬마들이 떠들며 지나가는 것을 보거나, 여학생들이 재잘대며
걸어오는 것을 보면 저절로 그들의 행복이 전해져 온다.
오늘 미사에서 내 시선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는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머문다.
나도 슬쩍 예수님과 제자들 틈에 끼어들고 깊다.
엠마오의 제자들에게만 예수님이 동행하실까.
아니다. 우리 인생길에 언제나 동행하시는 주님이시다.
그저 마음의 눈을 뜨고 말씀을 건네 오시는 주님을
발견하기만 하면 나와 주님은 함께 걷게 된다.
지난 2월 13일 48세 나이로 세상을 떠난
황명훈 요왕마타가 생각난다.
그는 순창 본당 쌍치 공소에서 선교사로 15년을 살다가 갔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쌍치 공소에 와서 젊음을 온통 불태우다
갔다. 암으로 쓰러진 것이다.
서울 대방동 성당에서 거행된 장례미사에는 평소에 고인을 알고
지내던 사제, 수도자, 그리고 평신도 선교사들이 참석하여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고별식에서 한 후배 선교사가 고별 가를 불렀는데
가톨릭 성가 400번 ‘주님과 나는’ 이었다.
요왕마타 선교사의 삶과 너무나도 어울리는 노랫말이어서
여기 그대로 옮긴다.
“주님과 나는 함께 걸어가며 지나간 일을 속삭입니다.
주님과 내가 함께 걸어갈 때 천국의 일을 말해 줍니다.
‘이 세상 꿈이 모두 사라질 때 천국의 영광 보게 되리라.’
험하고 먼 길 주님 함께 가며 생명의 친구 되었습니다.
잠시의 세상 충실하게 살아 영원한 세상 얻으렵니다.”
하느님 나라에서 영생을 누리는 선교사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주님께서 저에게 생명의 길을 가르치시니 주님 면전에서 넘치는 기쁨을,
주님 오른쪽에서 길이 평안을 누리리이다.(화답송. 제1독서 참조).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각자의 행실대로 심판하시는 분을 아버지라 부르고 있으니,
나그네살이를 하는 동안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지내십시오.”(제2독서)
광주가톨릭대학 총장
정승현 요셉 신부
엠마오의 나그네 - 광주가톨릭대학 정승현 요셉 신부님글
2008. 4. 10. 오후 10:52:27
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