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순특강② |
||
|
어떻게 저에게 마실 물을 청하십니까? (요한 4,4-42) |
||
예수님께서 갈릴래아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 지방을 가로질러 간다. 지친 예수님은 야곱의 우물에서 쉬다가 한 사마리아 여인이 물을 길러 오자 마실 물을 청한다. 유다 사람이 사마리아 사람을 배척한다는 사실을 잘 아는 여인은 예수님께서 어떻게 사마리아인인 자신에게 마실 물을 청할 수 있는지 의아해한다. 이것만 봐도 사마리아 사람 역시 유다 사람에게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물가에 온 이 여인은 예수님을 배척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에게서 이방인과 함께 하늘나라로 가기 위한 동반자의 가능성을 찾아 내고, 사마리아 여인은 자신들이 그토록 기다려온 메시아임을 고백한다. 유다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을 왜 싫어할까? 기원전 8세기 아시리아가 북왕조 이스라엘을 점령한다. 많은 유다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가지만 일부 이스라엘인들은 남아 있는다. 그 사람들이 사마리아 지역에 남아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이다.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인들은 남아 있던 이스라엘인들을 다른 민족으로 취급한다. 우리는 고생을 하면서도 신앙을 지켜 왔는데, 너희는 이민족과 결혼해 피가 섞였으니 하느님이 차려 주시는 밥상에서 함께 식사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얼마전 TV 퀴즈 프로그램에 "위험에 처한 사람을 도와 줄 수 있는데도, 도와 주지 않으면 이 법의 제재를 받는다. 이 법의 이름은?"이라는 질문이 나왔다. 답은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 이 법은 길에서 강도를 만나 쓰러진 사람을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도와줬다는 배경(루카 10,29-37)이 있다. 미국의 일부 주나 유럽의 일부 국가에는 이 법이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없다. 이 법을 제정한 것은 사회 공동체에 대한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사회는 혼자 힘으로 살아갈 수 없는 구조를 갖고 있다. 아무리 혼자 똑똑하다고 해도 혼자 살아갈 수 없다. 한국은 이 법이 시행 단계에 있을 무렵(1953년 경)에 국회에서 삭제됐다. 위험에 처한 사람이란 어떠한 사람이고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하다가 위험에 처할 수도 있는데, 상황을 판단하고 기준을 잡는 게 애매모호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꼭 결정적일 때 헷갈린다. 하늘나라도 헷갈리면 가지 못한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에 매우 어려운 조건을 가졌다. 그러나 구원은 인종이나 학력이 아니라 행실에 따라 이뤄진다.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일은 낙타가 바늘 귀로 들어가는 것 보다 어렵다." 이론 상으로 부자는 절대로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하지만 살아서 육신으로는 바늘귀를 통과할 수 없지만 선행에 의해 죽어 영혼이 바늘귀를 통과하게 된다. 손에 많은 돈을 쥐고도 약한 이들을 위해 펼 줄 모르면 구원의 문은 육으로나 영으로나 좁다. 누군가가 우리에게 도움을 청한다면 우리에게 퍼 줄 사랑이 있다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은 자신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잘 안다. 누가 우리의 사마리아 사람인가? 우리가 배척하는 사람들이다. 베풀 여유가 없어서가 아니라 귀찮기 때문이다. 사회는 자신의 일에만 몰두하도록 요구한다. 자기 분야에서의 일인자를 추구하다 보니 자신의 것이 아닌 것 외에는 관심이 약해진다. 우리에게는 나눠야 할 메마르지 않는 물이 있다. 사순 시기는 우리가 청하고 마실 물을 향해 나아가고, 그런 우리를 기다리는 주님을 받아들이는 시간이다. 우리가 사는 우물가에서 주님을 만나 참된 부활을 향해 가는 그리스도인이 되길 빈다. |
||
| [기사원문 보기] | ||
| [평화신문 2008.02.28] | ||
사순특강 (2)
2008. 3. 9. 오전 4:18:57
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