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 과 '네 것'

2008. 3. 7. 오전 12:11:10

글자
내 것’ 과 ‘네 것’

  

1st Reading: Eccl 1:2; 2:21-23 /2nd Reading: Col 3:1-5,9-11

Gospel: Lk 12:13-21

 

  우리말에는 글씨로 쓰면 쉽게 구분이 되지만 말로 할 때는 참 구분하기 어려운

단어들이 여럿 있습니다. 바로 그러한 단어들 중에 내 것’‘네 것이라는 단어가

있지요.


  물론 정확하게 발음하는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누가 일일이 발음 방법까지

염두에 두면서 발음하겠습니까. 대-충 발음하고 말하는 내용으로 감을 잡지요. 그런

데 사실 ‘내 것’ 혹은 ‘내꺼’ 라는 말은 자주 듣지만 ‘네 것’이라는 말은 별로 들을 기회

가 없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두 단어가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에 혼동될 우려가 있어

서 잘 안 쓰는 듯합니다. 오히려 ‘네 것’이라는 말보다는  ‘니 것’ 혹은 ‘니꺼’라는

말을 많이 쓰지요.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네 것’이라는 단어는 문자로만 쓰이지 사실 말로는 거의 사

용하지 않는 단어가 되어버렸다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네 것’이라는

말은 어느새 ‘내 것’에 묻혀서 ‘내 것’이 되어버렸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내 것’에 딴지를 거십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이렇게 이야기하지요. “스승님, 제 형더러 저에게 유산을 나

누어 주라고 일러 주십시오.” 아마도 그 형이라는 사람은 혼자서 아버지 유산을 다 물

려받았나봅니다. 하지만 동생인 자기에게는 나누어줄 생각을 안 하니까 하도 답답해

서 예수님께 하소연한 것이겠지요. 당연히 동생 역시 아버지 유산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겠지요. 그리고 자기에게 얼마가 돌아올지도 다 계산해 두었을 겁니다. 하지만

기대했던 대로 되지 않으니 얼마나 실망이 컸겠습니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입

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누가 나를 재판관이나 중재인으로 세웠단 말이냐’ 하시고는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

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하고 말씀하시지요. 결국 그 어떤 사람은 ‘내

것’을 찾으려 하다가 찾기는커녕 오히려 예수님께 한 소리 듣는 결과가 되고 말았습

니다.


  사실 예수님 시대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지만 너무 ‘내 것’을 지나치게 고집할 때

꼭 문제가 생겨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이겠지만 부

모님 유산 상속 때문에 형제들 간에 얼마나 많은 불화가 일어납니까. ‘내 것’을 제대

로 받지 못했다고 서로 얼굴 붉히고 미워하고 심지어 연락도 안하고 상종조차 안하고

지내기도 합니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아예 유산을 차지하려고 부모님을 살해하기 까

지 하는 세상입니다. 돈은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기에 그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

은 아니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서 이렇게 생명까지도 해칠 수 있

는 무서운 도구가 될 수도 있다고 하겠습니다.

 

  결국 문제는 우리 마음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우리 마음은 결코 완전하지가 않지

요. 따라서 언제든지 악에 떨어질지 모릅니다. 언제 탐욕이라는 죄에 빠져 헤매게 될

지 모르지요. 더구나 세상에서 돈, 금전이 가져다주는 부는 상당한 파워를 지니고 있

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처럼 늘 정신 차리고 확실히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

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순간 그러한 재물이 새로운 하느님으로, 즉 우상으로 둔갑할

지 모릅니다. 그래서 둘째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탐욕은 우상 숭배” 라고 분명히

말씀하지 않으십니까.


  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혹시나 지나치게 욕심을 부려, 즉 탐욕의

마음으로 ‘내 것’을 챙기려고만 하는 것은 아닌지... 그런데 그것은 꼭 재물에만 해당

되는 것은 아니겠지요. 일이나 다른 어느 것, 심지어는 자기 자녀일 수도 있을 것입니

다. 결국 지나치게 무엇엔가 집착하고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데서 문제가 생

기는 것이지요.

 

  그런데 어쩌면 근본적으로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일 수 있다는 생각

을 해봅니다.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이 세상에 ‘내 것’이 있겠습니까?? 물론 내가 수

고해서 얻은 것이기에 ‘내 것’이 아닌가 하고도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하느님

께서 내가 살아갈 수 있는 ‘생명’을 주시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모든 것이 가능할 수

있겠습니까. 다른 모든 것도 마찬가지이지요. 그렇듯 나의 생명조차 ‘내 것’이 아닌

데 대체 어떤 것을 ‘내 것’이라고 하느님께 감히 주장할 수 있겠습니까! 당장 1

초 후에, 혹은 1분, 1시간 후에 하느님께서 내 목숨을 거두어 가실지 모릅니다. 그렇

게 된다면 ‘내 것’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내가 그렇게 집착하고 있는 모든 것은 더 이

상 ‘내 것’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첫째 독서 말씀처럼, '모든 것이 다 헛될 뿐입니다.’

 

 

  우리의 관점을 바꾸어야 하겠습니다. 이제 ‘내 것’은 ‘내 것’이 아니라 전부 ‘네

것’, 즉 ‘하느님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나는 단지 ‘네 것’을 잘 선

용하는 관리자에 불과할 뿐입니다. 관리자에게는 책임이 주어집니다. 바로 하느님

께서 잠시 맡겨주신 것을 잘 관리할 책임이 있습니다. 비록 작은 것이라도 말이지요.

감사해야 하겠지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랑의 마음으로 ‘네 것’, 즉 ‘하느님의 것’

을 이웃과 잘 나눌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내 것’이 아니기에 그것은 당연한 것 아

니겠습니까. 내게 맡겨진 것을 잘 나눌 때 비로소 오히려 우리는 더 행복할 수 있습니

다.

 

  그렇게 살아갈 때 우리는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모든 집착에서 자유로

울 수 있고 그때에서야 참 자유이신 예수님을 제대로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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