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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문 해설] : 고해성사기도
1. 먼저, 지은 죄를 모두 알아내고 2. 진정으로 뉘우치며 3. 다시는 죄를 짓지 않기로 굳게 결심하고 4. "고백기도"와 "통회기도"를 바친다.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아멘
†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을 굳게 믿으며 그 동안 지은 죄를 뉘우치고 사실대로 고백하십시오.
● 아멘.
● 고해한 지 (몇 일, 몇 주일, 몇 달) 됩니다. 알아낸 죄를 낱낱이 고백한다.
(죄를 고백한 다음)
●이 밖에 알아내지 못한 죄도 모두 용서하여 주십시오.
(사제는 고백자에게 훈계하고 보속을 준다. 필요하다면 고백자에게 다음 통회기도를 바치게 할 수 있다.)
● 하느님, 제가 죄를 지어 참으로 사랑받으셔야 할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사오니 악을 저지르고 선을 소홀히 한 모든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나이다. 또한 주님의 은총으로 속죄하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으며 죄지을 기회를 피하기로 굳게 다짐하오니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공로를 보시고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사제는 고백자 머리 위에 두 손이나 오른손을 펴 들고 사죄경을 외운다.)
† 인자하신 하느님 아버지, 성자의 죽음과 부활로 세상을 구원하시고 죄를 용서하시려고 성령을 보내주셨으니 교회를 통하여 이 교우에게 용서와 평화를 주소서.
나는 성부와 ╋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당신의 죄를 용서합니다. ● 아멘
† 주님을 찬미합시다. ● 주님의 자비는 영원합니다. † 주님께서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평안히 가십시오. ● 감사합니다.
[자료참조 : 《주요 기도문 풀이》- 박도식 신부 지음 (가톨릭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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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해성사 해설] :
1) 고해성사는?
가톨릭 신자들이 영세한 이후로 범한 죄를 용서받게 해주는 성사이다. '화해의 성사', '치유의 성사', '위로의 성사(평화의 성사, 새 창조의 성사)'라고도 한다.
2) 왜 우리는 고해성사가 필요할까?(루가 24.47-48 참조)
고해성사는, 인간이 하느님께 대한 사랑 고백이며, 또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이다. 우리는 이 성사를 통해서 조건 없이 용서해 주시는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체험하게 된다. 그러므로 고해성사는 우리가 매일의 생활을 반성하고, 하느님 안에서 새롭게 시작하려는 자신의 내적 성숙을 위해서 꼭 필요하다.
3) 고해성사를 올바르게 하기 위한 다섯 가지 순서
첫째: 성찰-- 무엇을 잘못하여 하느님을 슬프게 해드렸는지 알아낸다. 둘째: 통회-- 잘못한 것을 뉘우친다.(상등통회, 하등통회) 셋째: 결심(정개)-- 다시는 하지않겠다고 결심한다. 넷째: 고백-- 자기가 지은 죄를 신부님께 숨김없이 사실대로 고백한다. 다섯째: 보속-- 신부님이 하라고 정해주신 기도, 희생, 사랑을 실천한다.
4) 고해성사의 특징
첫째: 고백-- 우리는 하느님께 직접 고백하지 않고 사제에게 고백한다. 그러나 고백을 듣는 사제의 행위는 곧 가시적 대리자를 통한 그리스도의 행위이다. 둘째: 비밀-- 고백을 듣는 사제는 비밀을 지켜야 하고, 이 비밀 유지는 교회의 역사가 보장한다. (교회법 983,984조 참조) 셋째: 보속-- 죄의 고백과 그로부터의 구제는 윤리적인 차원에서 다루어진다. 즉 하느님의 계명을 어겼음을 고백하고 그에 대한 기워 갚음(보속)으로써 이루어진다. 이 모든 행위는 하느님과 신자 개인과의 화해이며 공동체 안에서의 모든 이와의 화해로서 그리스도화 되어 가는 방법이다.
5) 고해성사의 영적 효과
고해성사를 통해 하느님과 이웃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된다. 또한 교회와의 친교를 회복하게 되며 교회의 생명을 되살리는 효과를 가져온다. 그리고 인간적으로는 양심의 평화와 평온, 영적위안을 가져다준다. 그리고 앞으로의 죄에 대한 저항력과 영적 힘을 길러주고 영벌과 잠벌을 면하게 되는 효과를 가져다 준다.
6) 고해성사의 중요성
고해성사는 죄지은 인간이 하느님과 화해할 수 있는 중요한 길로써 특히 대죄를 범한 자는 반드시 고해성사를 보아야 할 의무가 있다. 또한 가톨릭 신자라면 누구나 적어도 1년에 한번(부활판공)은 고해성사를 보아야할 의무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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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해성사를 해야 하는 성서적 근거]
하느님께서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써 이 세상을 당신과 화해시키시고 십자가의 피로써 천상천하의 모든 것을 평화롭게 이룩하시어 당신의 자비를 드러내셨다 (2고린 5,18;골로 1,20).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들을 죄의 멍에에서 해방시키시고(요한 8,34-36) 어두움 속에서 놀라운 광명에로 부르기 위해(1 베드 2,9) 사람들 사이에서 살으셨고,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하며 참회를 요구하는 말씀으로 당신의 지상 사명을 시작하셨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죄를 버리고 마음을 다하여 주님께 돌아오라(루가 15)고 권고할 뿐 아니라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성부와 화해시키셨다(루가 5,20;7,48). 또한 병자들을 고쳐 주심으로써 죄를 사하시는 당신의 권한을 보여주셨고(마태 9,2-8), 마침내 그분은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우리를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시기 위해 부활하셨다(로마4,25).
이런 이유로 당신이 잡히시던 날 밤, 수난에 앞서 인류의 죄를 사해주시기 위해 당신의 피로써 새 계약의 제사를 세우시고(마태 26,28), 부활하신 후에는 사도들에게 성령을 보내시어 이 지상에서 죄를 사할 수 있는 권한을 주시고(요한 20, 19-23) 당신의 이름으로 만 백성에게 죄 사함의 기쁜 소식을 전할 직무를 맡기셨다(루가 24,47).
1. 죄의 용서를 위하여
죄의 사함은 물로 씻는 성세성사로써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으로 죄중에 있던 묵은 사람이 성세에 의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죄에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새 사람으로 부활하여 하느님을 위해 살게 된다(사도 3,19;17, 30). 이 때문에 교회는 '죄의 사함을 믿으며'(사도신경)하고 신앙을 고백한다. 그뿐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에게 죄를 사하는 권한을 주심으로써 성세성사를 받은 후 죄에 떨어지는 신자들이 하느님과 다시 화해하고 은총을 회복할 수 있도록 고해성사를 당신 교회 안에 제정하셨다. 교회는 "물과 눈물을 가지고 있으니, 성세의 물과 참회의 눈물이 그것이다"(성 암브로시오).
2. 끊임없이 새로워지기 위하여
교회의 구성원인 우리는 가끔 유혹에 빠져 불행히도 죄에 떨어진다. 이와 같이 연약한 우리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는 거룩하고 무죄하고 순결하시고 (히브 7,26), 죄를 모르시는 분 (2 고린 5,21) 이셨지만 백성의 죄를 사해주시고자 이 세상에 오신 것이다(히브 2,17). 이처럼 교회는 '거룩하나 죄인들을 품고 있기'에 항상 정화되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끊임없이 회개와 쇄신을 계속해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참회의 정을 전례로써 나타낸다. 예컨대, 참회예식, 성찬의 전례 중의 참회부분 등에서 신자들이 스스로 죄인임을 고백하고 하느님과 형제들 앞에서 용서를 청한다. 죄인인 우리는 특별히 고해성사로써 범한 죄에 대한 용서를 받아 하느님과 화해하고 동시에 교회와 다시 화해한다.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은총으로 참회의 길을 걷는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신 성부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제헌하신 그리스도와, 풍성한 은총으로 우리에게 내려오신 성령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처럼 하느님의 구원계획은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는 것으로서 인류구원을 위하여 필요한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갖춘 사랑의 설계이다. 고해성사는 영세 후에 범한 죄를 용서받아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형성케 하고 악을 멀리 할 수 있는 힘을 길러 그리스도인의 품위를 갖게 한다.
3. 죄의 용서를 받는다.
사람은 하느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에 하느님의 사랑을 받으며 하느님께 사랑과 존경을 드릴 때에 삶의 보람을 느낀다. 그러나 죄는 하느님의 뜻과 사랑을 거스름으로써 하느님을 떠나게 된다. 하느님과의 분열은 죽음을 의미한다. 즉 생명의 은총을 잃게 된다. 영적으로 죽은 이가 하느님께로 다시 회두하고 하느님의 용서를 받는 것, 하느님과 화해함으로써 생명의 은총을 되돌려 받는 것은 고해성사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4. 죄벌의 사함을 받는다.
죄벌은 영벌과 잠벌이 있다. 우리는 죄로 인하여 하느님과의 관계를 끊어 영원한 벌[영벌]을 자초하였지만, 하느님은 고해성사로써 죄와 영벌을 면하여 주신다. 그 대신 인자하신 하느님은 당신의 정의 때문에 사제를 통하여 현세에서 보속하기를 원하신다. 만일 현세에서 이 보속을 다 채우지 못한다 하여도 연옥에서 채울 수 있는 일시적 벌이기 때문에 잠벌이라 한다.
5. 죄에서 해방시켜 준다.
사람은 나약하기 때문에 큰 죄를 범하면 자포자기 할 수도 있고 죄에 무뎌져 점점 더 깊이 빠져들고, 이에 따라 죄벌은 겹겹이 쌓여가고, 하느님과 점점 더 멀어져 간다. 고해성사는 이같은 죽음의 구렁에서 우리를 헤어나게 한다.
6. 공로를 회복한다.
사람이 하느님 앞에서 선을 행할 때 의로우신 하느님은 그것을 상 주신다. 은총 중에 살면서 행한 모든 선행을 우리는 공로라고 한다. 공로는 하느님의 순수한 호의에 의해서 인간의 노력에 가치를 부여해 주시기 때문에 있을 수 있다. 생명의 은총을 잃으면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끊어짐으로 공로도 잃게 되지만 죄의 용서를 받음으로써 공로도 되찾게 된다.
7. 마음의 평화와 희망을 준다.
사람은 죄를 짓고 나면 불안하게 마련이다. 그리하여 누구에게인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하소연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다. 고해성사는 이러한 심적 갈등을 해소시켜 주며 죄의 용서에 대한 확신은 마음의 안정을 되찾게 하고 새롭게 살고자 하는 의욕을 갖게 한다. 죄인은 교회를 통해 하느님의 용서를 확인하고 성세의 은총을 되찾아 하느님의 자녀로서 살 게 된 기쁨을 생활로써 드러내며 이 세상에 봉사한다.
8. 죄에 대한 저항력을 준다.
새 생활의 기쁨을 체험한 사람은 죄를 두려워하게 되고, 죄의 기회까지 피하겠다고 결심하는 그 의지는 도움의 은총으로 삼구의 유혹에 대적할 힘을 얻는다.
9. 선에로 이끈다.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어 고백하는 사람에게 하느님은 당신의 은총을 아낌없이 내려주신다. 고백으로 사제는 고백자의 마음 상태를 정확히 알 수 있기에 훈계[처방]하여 선에로 이끌어 준다. 자신을 고발하는 겸손한 죄인은 사제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따르게 된다. 더 많이 용서받은 사람은 더 많이 사랑하는 법이다 (루가 7,36-50 참고).
10. 완덕에로 나아가게 한다.
고해성사를 규칙적으로 성의를 다하여 자주 받는 것은 단순한 형식적 반복이나 심적 수련이 아니라 성세의 은총을 완성하려는 항구한 노력이고, 우리 죄 때문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의 희생을 스스로 체험하는 것이며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몸 안에 살게 하는 것이다(2고린 4,10 참고).
많은 성인 성녀들이 성인이 되는 첩경은 고해성사를 잘 받는 것이라고 가르쳐주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성사를 세워주신 예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성사에 임할 것이며 자신의 쇄신을 계속하기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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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개신교인의 고해성사에 대한 견해] :
고해성사에 대해 개신교 측은 부정적입니다. 개신교는 고해성사의 공덕 자체를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견해를 보면, 종교개혁을 일으킨 마르틴 루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루터는 수도원에서 수도사로 있으면서 매일 매일 어떤 때는 하루 6시간 이상을 고해하며 죄용서를 놓고 매달렸답니다. 그런데도 죄 문제는 그대로 그를 괴롭혔다는 것입니다. 결국 루터가 깨달은 것은 우리 인간의 그 어떤 노력으로도 죄 문제를 해결할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제자 베드로의 후예인 로마 교황이나 그 어떤 성인도 자기 스스로 자신의 죄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겁니다. 성경에서 우리인간에게 요구하는 것은 일점 흠도 없고 점도 없이 깨끗하게 살아야 할 뿐만 아니라 사랑하고 서로 도우며 살아야 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랍니다. 다시 말해 깨끗하지 못하고 사랑하고 서로 돕는 삶이 아니면 그 자체가 죄라는 거지요. 일반 사람들은 남에게 폐 안끼치고 떳떳하기만 하면 되고, 그 위에다 이웃을 도와주고 사랑하고 살면 보너스 포인트가 쌓인다고 알고 있지만 그건 신의 기준이 아닙니다.
결국 이세상에 죄 안지은 사람은 없는거고. 그러니 교황이던 베드로든 성모 마리아든 다 죄인인데 자신도 신 앞에서는 죄인인 주제에 누굴 구원하겠습니까? 그러니 교황의 대리자인 사제에게 가서 죄를 고백하고 사제의 속죄선언으로 죄 용서를 받는다는 것 자체가 모순인 것입니다.
신은 성경을 통해 분명이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거룩하니 나의 형상대로 창조된 너희 인간들도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 - 구약 성서 출애굽기 / 예수님도 신약에서 직접 인용 "나는 죄 있는자를 결코 죄없다 하지 않겠다." - 구약 성서
결국 루터가 깨닭은 것은 죄 용서는 오직 신만이 가능하며 우리 인간이 신을 뵈옵고 용서를 구할때에만이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는 거에요. 그리고 신에게 나아가는 통로가 바로 예수라는 것입니다.
"하늘 아래 세상의 그 어떤 인간중에 구원을 베풀만한 다른 이름을 주지않았다." -사도 바울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 - 예수
개신교에서 예수 믿어라 할때는 위에 기술된 이런 의미입니다. 이 모든 것은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루터는 '오직 성경' 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종교개혁을 하게 됩니다. 예수를 통해 신을 직접 뵈옵고 죄 용서받는 체험을 '중생' 또는 '거듭남' 이라 하고요. 이후로 신의 거룩한 경지까지 영적수준이 성장하는 것을 성화라고 합니다.
물론 이 성화의 과정에서 죄를 전혀 안짓는다는 것은 말이 안되요. 성경에 보면 바울이나 베드로도 거듭남의 체험을 한 뒤에 다시 죄를 짓고 괴로워한 이야기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그분들은 매일같이 신께 죄 문제의 해결을 놓고 기도했다고 해요.
오랜 기간이 지난 뒤에 바울 사도는 이런 고백을 합니다. "내 인생의 길을 다 달려가고 이제 죽음을 앞에 둔 지금에서야 나는 나를 잡아 끌어가려하는 죄의 사슬을 끊고 신 앞에 설수 있게 되었다. 이제 나의 이 말을 읽는 사람 중에 혹 나처럼 일어선 자가 있더러도 조심하여라. 사람인 이상 다시 넘어질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너의 모습이 전보다 더 비참한 나락으로 떨어질수 있다. 내 죽는 순간까지 나는 나의 이 모습을 끝까지 지켜서 신앞에서 가길 원한다."
개신교가 사제에게 죄를 고백하지 않는다고 해서 죄의 고백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니며 죄 용서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솔직히 가톨릭이나 개신교 모두 별차이는 없습니다. 다만 가톨릭은 나 - 사제(주교 및 교황 포함) - 성인(마리아 포함) - 신 의 코스를 밟는 것이 아니라 나 - 예수(예수는 사람으로 이 땅에 내려운 '신' 자신입니다. 이것은 삼위일체, 예수의 동정녀 수태와 함께 거듭남의 체험 없이도 죽었다 다시 살아나도 이해 할 수 없고 믿어지지도 않는 기독교의 증상(?) 3가지 중 하나입니다) 이라는 고속도로를 타는 것 뿐입니다.
안타까운것은 운전면허가 없어 이 길을 달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고속도로는 내가 직접 운전을 하지 않아도 달릴 수 있지만 천국의 고속도로는 내가 직접해서 운전해 가지 않으면 안되지요. 그 운전 면허증은 바로 예수입니다.
이 내용은 개신교인이 인터넷에 올린 글을 발췌한 것입니다. 똑같은 하느님을 믿고, 똑같은 성경으로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해석들이 다릅니다. 갑갑한 노릇입니다. 난 쉽게 해석하는 편이라 그런지 모르지만, 하느님 말씀에 너무 놀지적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냥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주신데로 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가톨릭은 보편적이며 공통된 진리를 따라가기에 고해성사가 신앙생활에서 당연한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성서에 기록되어 있듯이......'고해성사'라는 단어는 없지만, 고해성사를 해야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앞에서 충분히 근거를 제시했으니까.....우리는 열심히 고해성사를 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