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향의식과 진주조개, 그리고 대나무
-사이비리더여,불교의 가르침을 아는가
우리들의 인생은
1막 3장(1장은 청소년기, 2장은 장년기, 3장은 노년기)의 연극과도 같다.
누구나 자신이 직접 쓴 시나리오를 들고,
주인공의 자격으로 무대에 올라야 한다.
또 인생의 여로(旅路; 한때, ‘여로’라는
TV 드라마가 우리 사회에서 매우 큰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다.)에는
편도차표 밖에 발행되지 않는다.
마치 유턴 금지의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처럼,
한번 떠나면 원점으로 되돌아올 수 없는 세계로 나가면서 자신의 삶을 일궈내야 한다.
그것이 우리들의 인생이다.
우리는 그 과정에서
순경(順境; 일이 뜻대로 잘되어 나가는 경우를 의미한다.)과 역경을 모두 경험하게 된다.
양지에서 따뜻한 햇볕(예: 실력자의 총애)을 받으며 출세가도를 달리기도 하고,
음습한 음지에서 삭풍과 싸우며 혹독한 시련을 맛보기도 한다.
물론 음지에서의 역경을 경험하지 못하고,
일생을 마치는 행운아도 없는 건 아니다.
역경은 인간을 지혜롭게 한다!
그런데 인간의 그릇 크기는 '역경을 얼마나 잘 극복했느냐' 에 따라 결정된다.
자신이 생각한대로 모든 일이 잘 풀리고,
입신양명까지 가능하다면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역경 또한 그 나름대로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소중한 체험을 제공해 주기 때문에 반드시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역경은 인간을 고뇌하게 만들고,
고뇌는 인간을 지혜로운 사람으로 성숙시킨다고 했으니,
무릇 현자가 되길 원한다면 일부러라도 역경을 초대해서 가까이 해볼 일이다.
우리 주변에는 사업실패자, 선거에서 낙선한 사람,
동기들에 비해 승진이 늦은 사람,
상관의 눈 밖에 나서 오지나 지방근무로 좌천된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그들의 행태는 크게 두 부류로 나타난다.
첫 번째 부류는
자신이 직면한 핀치(pinch)의 본질을 직시하고,
자기혁신을 위한 피나는 노력으로 인생 역전에 성공하는 사람들이다.
적극적 사고로 무장한 이들에게 있어,
역경이란 단지 자신들의 내적 성장에 꼭 필요한 자양분일 뿐이다.
세상에 굵은 족적을 남겼던 리더들의 인생여정을 추적해 보면,
그들 중 상당수가 역경을 즐기면서
자신의 운명을 재창조해 나갔음을 확인할 수 있다.
두 번째 부류는
역경 앞에서 좌절감을 느끼거나 체념하면서
자신의 불운만을 한탄하는 미련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지금 이 나이에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어!’,
‘왜 나에겐 걱정거리만 생기지.’,
‘상황이 내게 협조를 안 해줘!’와 같은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
모든 것을 팔자소관으로 돌리는 고약한 습성이 있다.
그런 탓에 그들의 인생은
대부분 보잘것없는 초라한 삶으로 마감하는 게 보편적 현상이다.
그들에게는
‘닥쳐오는 역경을 피하는 사람은 소인배요,
극복하는 사람은 범부요,
스스로 역경을 만들면서 그것을 타파하는 사람은 비범한 사람이다.’라는 말이
한낱 잠꼬대 같은 소리로 들릴 뿐이다.
또 “지구상에 창조된 피조물 가운데 자신을 바꿀 수 있는 존재는 인간뿐이다.
인간만이 마음속에 있는 태도를 바꿈으로써 인생 전부를 바꿀 수 있다.”고
일갈했던 월리엄 제임스(James William; 미국의 심리학자?철학자로서
≪프래그머티즘≫, ≪근본적 경험론≫의 저자이다.)의 얘기가
자신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며 비웃을 사람들이다.
필자는
‘이 세상에 역경만큼 값진 것이 없다!’는 것을 시사해주는 몇 가지 사항을
그런 분들에게 얘기해 주고 싶다.
이것은 약 20년 전쯤에 읽었던 ≪일하기 싫을 때 읽는 책
(이 책은 1984년, 일본에서 출간되어 공전의 히트를 거두었던 베스트셀러이다.),
가사마끼 가쓰토시 저≫에 나오는
오향의식五香儀式과 진주조개, 그리고 대나무에 얽힌 얘기를
필자의 버전으로 새롭게 각색한 것임을 밝힌다.
오향의식, 진주조개, 대나무가 시사하는 것
옛날에 중국인들은
갓난아이가 태어나면, 오향의식을 치렀다고 한다.
오향의식이란, 초(酢), 소금, 한약, 구등(鉤藤; 콩과에 속하는 만초로서
어린이의 간질병을 치료하는 약재로 쓰인다.),
사탕 등 다섯 가지 물품을 아기엄마의 젖꼭지에 묻혀 빨리는 것을 말한다.
그들이 오향의식을 중시했던 이유는,
아이들이 자라서 진정한 단맛(성공)을 느끼기 위해서는
사전에 시고, 짜고, 쓰고, 매운 것(역경)을 경험해야만 한다는 생각에서다.
이에 대해 ‘판단능력이 전혀 없는 갓난아이들에게
그런 교육을 시킨다는 것은 너무나 지나친 처사다.’라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중국인들의 오향의식에 대해 비판하거나 폄훼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다.
매사를 ‘내 새끼 제일주의’에 입각하여
자신의 아이들에게 역경을 경험할 기회조차 주지 않으려는
한국의 이상한(?) 엄마들을 생각하면 더 더욱 그렇다.
또 진주는 여성들이 좋아하는 보석류 가운데 하나이다.
다이아몬드보다는 값이 싼 편이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소유할 수 있는 물품도 아니다.
가격이 결코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진주 반지나 진주 목걸이를 갖고 싶어 하는 여성들도
정작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
게다가 진짜 진주와 가짜 진주를 정확하게 구별해낼 수 있는
기초지식(가짜 진주는 입으로 깨물었을 때 미끌미끌 거리는 느낌을 주는데 반해,
진짜 진주는 무언가 긁히는 느낌을 준다.)조차 갖고 있지 않다.
그러다보니, 가짜 진주를 파는 외국상인들에게
한국 관광객들은 언제나 봉(鳳) 일 수밖에 없다.
‘상처 난 진주조개가 진주를 만든다.’는 얘기가 있다.
이는 진주가 진주조개로부터 일정기간 동안 양식된 후, 채취되는 것임을 시사한다.
진주조개는 조개의 사새목 진주조개과의 한 종(種)으로서,
어미 진주조개는 7~9월경에 알을 낳으며, 식용도 가능하다.
진주조개로부터 진주를 얻는 과정은 간단하다.
진주조개의 생식선에 구멍을 뚫은 후,
패각 조가비를 둥글게 깎은 핵과 외투막을 4~9mm2 크기로 자른 절편을
그곳에 넣어 몇 년 동안 양식하면 진주가 만들어진다.
그런데 진주조개의 생식선에 구멍을 뚫는다는 것은,
곧 그것에 상처를 낸다는 의미다.
생식선에 들어간 이물질(異物質; 잘게 자른 패각조가비의 껍질)이 고통을 주게 되고,
조개가 그것에 대응하는 성분을 방출하면서 진주가 생성된다는 것이다.
산모가 극심한 산통을 겪어야만 어여쁜 아이가 태어나는 것처럼
진주조개도 조갯살이 찢어지는 아픔을 겪어야만
영롱한 빛깔의 진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보면, ‘역경 없는 환희는 진짜 환희가 아니다.’는 얘기가
나름대로 일리 있는 것 같다.
또 한국에는 두 종류의 사군자가 존재한다.
하나는 학식이 많고 덕망이 높은 사람을 가리키는 사군자(士君子)고,
다른 하나는 품성이 고결한 군자와 같다는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를 일컫는 사군자(四君子)다.
그런데 후자의 사군자(四君子) 중에서
역경과 가장 잘 어울리는 대상은 대나무다.
평소 대나무를 주의 깊게 관찰한 사람이라면,
대나무 가지가 마디에서만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대나무는 자신의 의지로 마디를 만들면서 성장을 계속한다.
속이 텅 빈 대나무가 20~30m이상을 올곧게 자랄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마디를 계속해서 만들 수 있는 대나무의 독특한 습성 때문이다.
만약 대나무가 마디를 만들 수 없다면,
미식가들이 즐겨 찾는 ‘대나무 통밥’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 대나무의 마디는 성장의 발판(또는 전기)을 마련하기 위한 역경을 상징한다.
우리 인생에서도 마디가 없다면, 제대로 된 성장과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가령, 우리의 삶 속에서 고교입시, 대학입시, 입사시험 등이 하나의 중요한 마디였다.
사람들은 그런 마디를 무사히 통과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과 정열을 불태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탈락시키기 위해 고안된 제도가 시험이니만큼,
그 뒤에는 반드시 희비의 쌍곡선이 난무하기 마련이다.
합격한 사람에게는 환호와 주위의 칭찬이 따르지만,
낙방한 사람은 엄청난 좌절감과 모멸감으로 마음의 깊은 상처를 감내해야 한다.
그 마음의 상처가 재도전을 위한 새로운 마디로 작용하여 마침내 큰 성공을 거둘 때,
사람들은 완성된 마디(역경의 극복을 의미한다.)가 제공해주는
‘기쁨 두 배’의 진가를 짜릿하게 경험할 것이다.
‘비가 온 뒤, 대지가 굳어진다.’는 말도
그런 경우를 묘사하기 위해서 탄생한 얘기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철학자들은 실패를 아름답고 숭고한 대상으로 바라보았는지도 모른다.
필자는 지천명을 향해가는 나이를 살아오면서 숱한 실패와 좌절을 경험했다.
그 과정에서 잃은 것도 있지만, 얻은 것 또한 결코 적지 않다.
따라서 필자는 온실 속의 화초처럼 안락한 환경에서 성장한 사람보다는
인생의 역경을 온몸으로 체험하며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가꿔온 사람들을 좋아하고
그런 분들과 오랫동안 친구하고 싶다.
불가의 가르침, 팔고와 삼일수하
역경을 경험해 보지 못하고 순풍에 돛달 듯 승승장구한 사람은
연속적인 행운에 힘입어 사회적 지위가 높을지는 모르지만,
인간의 그릇이나 사유(思惟)의 폭은 밴댕이 수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고, 거만한 태도로 일관하며,
타인을 배려하는 따뜻한 심성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도 그들만의 공통점이다.
게다가 역경을 모르기 때문에 위기관리에 취약하며,
한번 실패를 당하면 자신과 조직을 회생 불능의 어려움에 빠트릴 가능성이 매우 크다.
따라서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리더로서 부적합하다.
국민들의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을 수 있는 리더가 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 수많은 리더들이 명멸(明滅)했지만,
미국의 링컨이나 인도의 간디와 같은 경지에 오른 리더가 있었는가?
우리에게 진정한 리더가 없었던 것은,
리더를 자처했던 사람들이
인간경영에 대한 사유 부족과 끊임없는 자기혁신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불가에서 말하는
팔고(八苦)와 삼일수하(三日樹下)의 얘기를
우리 주변의 사이비 리더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팔고란,
생로병사에 따른 네 가지 고통 외에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해야 하는 고통,
증오하는 사람과 만나야 하는 고통,
간절히 원하지만 이룰 수 없는 고통,
심신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의 고통을 말한다.
그런데 리더가 인간경영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직접 팔고를 체험(간접체험이라도 좋다.)해 보면서
인간의 본성에 대해 깊이 있는 이해를 해야 한다.
그래야만 국민이나 조직구성원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감성의 리더십이나
그들을 상전으로 모시는 서번트(servant)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
또 ‘삼 일만 같은 나무 아래 머물러 있으면
집착이 생기기 쉬우므로 수도자는 늘 떠나야 한다.’는 뜻의
삼일수하(三日樹下)는 리더들에게 자기혁신을 위한 용맹 정진을 강조하는 일종의 경구다.
성공한 리더들의 공통점은
견리사의 정신과 초심을 잃지 않고,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의 자세로 자기혁신의 끈을 한순간도 놓지 않았다는 점이다.
무릇 우리의 사이비 리더들이 팔고와 삼일수하를 몸소 실천함으로써
‘진흙속의 연꽃 같은 존재’로 개과천선하여
국가와 조직구성원을 위해 멸사봉공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덕수의 파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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