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살짜리 꼬마가 폭풍이 치는 어느 한밤중에 무서움에 떨고 있었다. 뇌성과 함께 천둥이 내리치는 순간, 아이는 침대에서 뛰어내려 쏜살같이 달려 나가 부모의 품에 안겼다. "우리 예쁜이, 무서워하지 말아라." 아버지가 아이의 두려움을 달래려고 애를 쓰면서 말했다. "항상 너의 곁에 계시는 예수님이 너를 보호해 주신단다." 어린 소녀는 아버지에게 꼭 매달리면 말했다. "아빠, 그건 저도 알아요. 하지만 지금은 나를 안아 줄 사람이 필요하단 말이에요!" 아이들은 정말 정직하다. 이 어린 소녀는 하느님 아버지가 그녀를 보호해 줄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소녀는 언제든 달려갈 수 있는 지상의 아버지를 하느님이 자신에게 허락해 주셨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하느님은 그 아버지에게 특별한 선물을 맡겨 주셔서 그녀에게 위로한 안정감, 그리고 자신을 인정해 주고 받아들이는 애정어린 접촉을 받을 수 있도록 하셨다. 이 꼬마 소녀는 행운아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주저없이 이 중요한 축복을 딸아이에게 베풀었다. 모든 아이들에게 이런 행운이 깃드는 것은 아니다. 자녀를 잘 보살피는 가정의 대부분의 부모들 중에서도 특히 아버지들은 자녀가 일단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면 아이들과 접촉하는 일을 기피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들이 자식과 접촉하는 일을 중단하면, 자녀들에게 베풀 수 있는 중요한 축복도 끊어진다. 자녀가 14살이 되었다고 해서 애정어린 접촉을 금지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10대가 되면 겉으로는 부모가 안아 줄 때마다 움츠리고 싫어하는 내식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윽한 눈길로 어머니 혹은 아버지가 그들을 안아 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면 어찌하겠는가? 34살이 된다고 해도 부모가 안아 주는 손길은 전혀 나쁠 것이 없다. 굳이 자식이 아니라도 배우자나 가까운 친구끼리 안아 주고 위로해 주면 그 기분이 어떻겠는가? 당신의 배우자와 다른 사람들에게도 애정 어린 접촉이 필요하다. 하지만 아이들은 유달리 접촉결핍으로 인한 영향을 심하게 받는다. 접촉 부재라는 현상이 때로는 한 개인으로 하여금 결코 그들을 안아주지 않았던 팔을 찾아서 평생 동안 세월을 허비하도록 만드는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 - 성모님의 동산 월간소식 중에서 -
[스크랩] 꼭 안아 주세요
2008. 11. 15. 오후 1: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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