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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은 제가 처음 구리시에 이사 와서 컨테이너 박스로 지어진 성당에 다니기 시작한 해입니다. 성당은 점점 더 높아졌고, 지금의 모습은 조금 더 세련된 현대의 모습을 갖추고 있습니다. 저의 어머니, 아버지, 오빠, 그리고 저는 모태신앙으로써 현재는 성당에 다니고 있지 않지만 그 믿음만은 굳건한 가톨릭 신자입니다.
저는 제가 가톨릭 신자인 것이 너무나도 자랑스러웠습니다. 바르게 살라는 가르침, 양심을 따라 행동하라는 가르침,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고 낮은 곳에서는 더 낮은 자세로 상대를 대하라는 가르침. 모든 것을 가르침에 따라 행동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러한 가르침 덕분에 조금 더 나은 삶을 지향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가톨릭을 믿는 것 자체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했습니다. 제가 나락에 떨어졌을 때 손을 잡아줄 것만 같았고, 힘들 때면 성당을 찾아 구석자리에 앉아 울었고 힘든 시기를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너무 힘들어서 견딜 수 없을 때면 찾아 쉴 수 있는 쉼터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2016년 10월 8일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서 본 가톨릭은 저를 실망하게 만들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톨릭 신자인 것이 부끄럽고 수치스러웠습니다. 종교인으로써 바름으로 인도하고 약자를 보호해야 하는 자들은 약자들을 학대하였습니다. 그들이 있던 대구 희망복지원에서는 2년 8개월 간 129명이 죽어나가는 참극이 벌어졌습니다.
2016년 8월 ‘자비의 해’를 맞아 저는 골수를 기증했습니다. 모르는 이의 죽어가는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용기를 얻었던 것은 약자를 보호하라는 종교적 신념이 있었기 때문 입니다. 그런데 며칠 전 성당에서 온 엽서에는 ‘자비의 해’를 맞아 견진 성사를 속성으로 밟을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자비의 해를 맞아 차라리 '단체로 봉사활동을 하거나 남을 위해 헌신하는 기회를 가져보심이 어떤지요? 혹은 이해할 수 없는 누군가를 이해하거나 인정해주기 위해 노력해보심이 어떤지요?’가 아닌 ‘견진 성사 속성 코스’에 대한 홍보자료가 온 것에 약간의 괴리감을 느꼈지만 그냥 지나쳤습니다.
부자들의 담장이 높은 것은 결국 잃을 것이 많다는 뜻일 것이고, 교회의 문이 닫힌다는 것은 그만큼 잃은 것이 많아진 탐욕스러운 교회가 된다는 뜻일 것입니다. 약자를 위해 열려있어야 할 성당의 문은 어느 새 미사가 없는 날이면 꼭 닫혀있습니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늘 열려있던 그곳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비를 베풀어야 하는 해에는 시사 프로그램에 천주교의 이름아래서 벌어진 ‘인권 탄압’의 실상에 대해서 고발하는 내용이 나왔습니다.
저는 천주교를 부끄럽게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왜 몇몇의 성직자들에 의해 제가 왜 천주교 신자인 것에 대해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느껴야 하는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또한, 이렇게 조직적으로 은폐된 인권 유린의 현장 속에서 과연 몇몇의 문제로 이렇게 희망원이 유지될 수 있었겠는가? 에 대해서도 묻고싶습니다. 우리 성당이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신경 쓰고 싶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 유독 너만 그런 감정을 느끼느냐?’라고 물으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렇게 부끄러운 감정을 느끼도록 만든 것은 ‘공동체’의식을 가지라는 성당의 가르침 덕분입니다. ‘공동체’를 이야기 하며 개인의 부도덕을 개인의 문제로 일부의 문제로만 인식할 수 있는 것일까요? ‘공동체’를 이야기 했던 모든 성직자들과 가르침을 받고 ‘공동체’를 되뇌었던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자비에 해를 맞아 진정으로 자비가 무엇인지, 자비를 베풀 수 있는 자격요건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는 때가 아닌 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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