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티성지 진입로 개설 작업

2015. 9. 10. 오후 6:5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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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티 성지 진입로 개설 작업

 

 

'삽티(揷峙)' 혹은 '삽고개'라 일컫는 이 곳은 우리 천주교회 박해시대의 애절한 역사를 간직한 산골입니다.

 충남 부여군 홍산면 상천리에서 북쪽을 향하여 내산면 금지리로 넘어가는 큰 고개를 옛적부터 ‘삽티’ 또는 ‘삽고개’라 일컬었습니다. 이 고개는 동쪽의 천보산(天寶山) 줄기가 북쪽으로 뻗어서 서쪽으로 휘어지는 산마루입니다. 이 산마루 ‘삽티’에서 서쪽으로 휘어진 산줄기가 높이 치솟는 정상을 ‘천덕산(天德山)’이라 합니다. 천덕산에서 다시 서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월명산(月明山)’으로 이어지고 월명산의 서쪽 계곡은 현재의 보령호 상류를 이루는 계곡으로 숙어집니다. 월명산 정상에서 북동쪽으로 깊은 계곡을 따라 흐르는 ‘금지천’의 상류 지점에 옛 교우촌 ‘도앙골’이 있습니다. 그 월명산 정상과 천덕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동서로 부여군과 보령시의 경계를 이룹니다. 그 동편은 부여군, 서편은 보령시가 됩니다.  

부여군에 속하는 천덕산 동편과 천보산 사이에는 남쪽으로 구불구불 3.5㎞ 가량의 계곡이 길게 흘러내려 있습니다. 이 계곡에 자리 잡은 마을을 ‘상천리’라 하는데, 동편 천보산 아래의 마을을 상천1리, 서편 천덕산 아래의 마을을 상천2리, 이렇게 행정적 구분을 합니다. 주민들은 상천1리를 ‘아랫삽티’라 하고, 상천2리를 ‘윗삽티’라 합니다. 윗삽티 마을 앞에는 계곡에서 흘러내린 물을 담고 있는 상천호(上川湖)라는 저수지가 있습니다. 윗삽티 마을의 정경을 물속에 거꾸로 담아 거울처럼 반사하리만큼 청정한 호수입니다. 이 호수를 지나 계곡 길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서 내산면 금지리로 넘어가는 높은 산마루가 ‘삽티’라는 고개입니다.

  이렇게 ‘삽티’ 고개에서 남쪽을 향하여 계곡을 따라 ‘상천호’에 흘러들어가는 물은 ‘상천천(上川川)’이라는 개천을 이루고 그 동서 양편의 여러 작은 계곡들 또한 여러 갈래의 지류를 형성하는 개울이 흐릅니다. 그 서편에서 흘러내려서 상천천에 합류하는 지류 가운데 매우 깊숙한 산속에서부터 발원한 개울을 끼고 또 다른 계곡을 형성한 곳에 옛적에 천주교 신자들이 옹기를 굽던 '즘터'가 있습니다.

 그 '즘터' 위의 비탈진 산자락에서 1964년 5월에 십자고상과 성모상과 녹슨 묵주 등 성물이 담겨진 옹기가 발굴되었습니다. 당시의 산주가 일꾼들을 동원하여 산지를 개간하던 중에 허물어진 묘터에서 그 옹기를 발굴하였다고 그 때 일했던 분들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 발굴된 성물들 일부가 서울의 절두산 성지 박물관에 보관 되어있습니다. 그 성물 발굴된 곳을 교회사 학자들은 황석두 루카 성인의 안장지와 연관성이 있는 곳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 삽티의 성모님

1964년 5월에 삽티에서 발굴된 성물중 하나

(현재 서울 절두산 성지 순교기념 박물관 소장) 

 

 

아! 삽티!

 

삽티는 황석두 루카 성인과의 관련으로 매우 중요한 곳입니다. 황석두 성인께서 ‘산막골’에서 선교사 페롱 신부를 보필하여 거주하시면서 인근 산골의 여러 교우촌들을 돌보셨습니다.

그 가운데 삽티는 산막골과 불과 30리 정도의 거리입니다. 황석두 성인께서는 자기 조카 황천일 요한을 양자로 삼아 또 다른 조카 황기원 안드레아와 함께 삽티의 교우촌을 책임지게 하고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님을 보필하기 위해 합덕 인근 신리에 가 있게 되었는데, 1866년(병인년)에 다블뤼 주교님과 함께 체포되시어 서울로 압송됩니다.

이어서 그해 3월 30일에 충청수영 ‘갈매못’ 해변에서 다블뤼주교님과 다른 두 분 신부님과 장주기 요셉 회장님과 함께 황석두 회장님께서 군문효수 치명하시게 됩니다. 그 후 삽티 교우촌에 거주하던 양아들 황천일 요한과 조카 황기원 안드레아가 황석두 성인의 유해를 비밀리에 수습하여 삽티에 모셔와 안장해드립니다. 그 일이 발각되어 황천일과 황기원은 체포되고 서울에 이수되어 무참히 처형당합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삽티의 교우촌은 버려져 있다가 교우들이 그곳에 비밀리 들어와 옹기를 굽고 살던 중 무슨 연유인지 그 교우촌이 없어지게 됩니다. 황석두 루가 성인의 유해가 그곳에 안장된 후 그 묘지를 누가 관리했는지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황석두 루가 성인의 고향인 충북 연풍 인근에 그분의 유해를 옮겨 모신 무덤을 1980년대에 발굴했다면서 현재 연풍 성지에 그분의 유해를 옮겨 모신 무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언제 누가 그곳 멀리 연풍 인근으로 이장했는지 그에 대한 증언이나 기록이 없습니다. 연풍에로의 면례(이장)에 대한 근거를 찾는 일은 아직까지 교회사 연구자들의 숙제로 남아있습니다만, 중요한 사실은 다음과 같은 증언인 것입니다.

병인 순교자들의 시복시성을 위한 조사 재판 과정 중 1922년 황 마르타의 증언이 그것입니다. 황 마르타는 황석두 성인의 조카 황기원 안드레아의 딸인데 다음과 같이 증언하였습니다.

 “(병인년의) 4월 16일(양력 5월 29일)에 나의 백부가 가서 시신을 가져왔다고 합니다. 홍산 사피(즉 삽티)에 묻었습니다. 지금은 자손이 없기 때문에 가더라도 찾지 못합니다.(시복조사 재판 34회차 제23조목 황 마르타의 증언)

위와 같은 증언자 황 마르타는 황석두 성인의 조카의 딸이므로 성인께는 종손녀(從孫女)가 되는 입장입니다. 성인의 황씨 가문이 그분의 유해를 ‘홍산 삽티’로부터 ‘충북 연풍’으로 옮겨 모셨다면, 1922년의 이 증언 이후에 그리 했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만, 그 사실에 대해서는 오리무중입니다.

황석두 루카 성인의 치명 후 그 유해를 수습하여 홍산 삽티에 모셔온 사람은 황 마르타의 증언에 따르자면 그녀의 백부인 황 예로니모입니다. 그리고 시복재판 과정의 증언자 김치선 마태오와 김흥칠 마티아 등은 황천일 요한이 성인의 유해를 삽티에 모셔왔다고 증언합니다(재판 제87 및 88차 기록 참조).

황천일은 황 마르타가 증언하는 바대로 그녀의 백부 황 예로니모와 함께 그 일을 했음이 분명하고, 황기원 안드레아는 그녀의 생부입니다. 그런데 황석두 성인을 삽티에 안장해드리는 작업을 한 황천일과 황기원은 체포되어 죽었고(치명했고), 그 후에 그 안장의 정확한 지점을 알 수 있는 ‘자손이 없기 때문에 가더라도 찾지 못한다’고 1922년에 황 마르타가 증언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주지해야 할 문제의 사실이 있습니다. 황 마르타의 증언 이후 ‘연풍 병방골’에 황석두 루카 성인의 유해를 옮겨 모신 바에 대하여 아무런 근거와 증언이 없다는 점이 문제인 것입니다.

 여하튼, 삽티에 황석두 루카 성인의 유해를 안장한 1866년으로부터 1922년까지의 56년간 아무도 그 안장 지점을 알 수 없었고, 그 증언의 1922년으로부터 1980년까지의 58년간은 공백 그 자체입니다. 이에 대한 연구와 해명이 있어야 충북 연풍에 현재 조성된 황석두 루카 성인의 묘지에 대한 신빙성이 확보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홍산 삽티의 어느 지점이 황석두 루카 성인의 유해가 안장된 정확한 곳인지, 그에 대한 연구는 그 일대 광범위한 발굴 조사가 요청됩니다. 하지만 1964년에 성물을 발굴한 지점은 현재 모 가문의 사람들이 2004년도에 문중 묘역으로 조성하고 타지로부터 그 문중 선조들의 무덤을 이장해 놓았습니다.

그 문중인들은 신도시 세종시의 건설에 따라 충남 연기군에 있던 선조들의 묘지들에 대한 보상과 더불어 부여군 홍산면의 상천리 즉 삽티에 대거 문중묘역을 이전한 것입니다. 이러한 일이 벌어지기 전, 홍산 출신의 윤종관 신부는 ‘삽티’의 교회사적 중요성을 인지하고 교회 내 관계 요로에 그 해당 토지를 확보하자고 부르짖었으나 아무런 호응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2012년 말에 윤종관 신부는 성물 발굴지에서 분할된 지번의 산지를 매입하기에 이릅니다. ‘상천리 산90-14번지’입니다. 그러나 매입한 2만 6천 평의 산지는 속칭 ‘맹지’입니다. 모 문중이 확보하고 그들의 문중묘역으로 조성한 구역을 통과해야만 접근할 수 있는 ‘맹지’입니다. 그러나 그 문중인들은 그 통과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2013년에 그 문중을 설득하여 통로를 마련할 수 있기 위한 구간을 어렵사리 추가매입하기에 이릅니다. 그 문중으로서는 아무런 쓸모없다고 여기는 계곡 습지와 급경사지 7백 평을 분할 매입한 것입니다.

일련의 이러한 토지 매입과정은 속된 말로 ‘바가지 쓰면서’ 이루어진 일입니다. 그 모든 일은 큰 덩어리의 부채를 떠안고 이루어졌습니다만, 그 계곡 습지와 급경사지를 길로 만들어야 할 추가적 숙제를 포함한 것이었습니다. 그 추가 숙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금년(2015년)의 여름에 토목공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모든 일이 눈덩이처럼 계속 불어나는 부채와 더불어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부내포성지  윤종관 신부님 글 


댓글 2

  • 2015년 9월 14일 오전 8:14

    감사합니다.새길.산길.잘다녀오겠습니다.++

  • 2015년 9월 15일 오후 1:53

    주님 안에서 좋은 순례 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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