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한국 밴텀급 챔피언이 된 뒤 나는 한 달에 시합을 두 번이나 치르는 고역을 겪었다. 11월 7일 장충체육관에서 필리핀 선수를 이기고 닷새 뒤 괌에서 필리핀 선수 살로마에게 패했다. 억울했다. 몸만 피곤하지 않았다면 충분히 이겼을 텐데….
다음날 매니저는 내 시합을 사람들이 좋아하니 26일에 또 한 번 하라고 했다. 시합의 대가로 주어진 돈은 고작 200달러, 당시 우리 돈으로 4만원이었다. 그 돈을 바라보면서 후회했다. '어머니 말씀 듣고 공부나 계속할 걸.' 매니저도 보기 싫고 시합도 하기 싫었다. 권투 선수 이전에 인간 대접을 못받는 듯했다. 결국 하와이로 도망을 갔다.
그러나 문제는 나 자신과의 약속이었다. 어린 내 손을 이끌고 권투시합을 구경하시던 아버지와의 약속은 무엇이었나? 돌아가신 아버지 묘 앞에 챔피언 벨트를 바치겠다고 다짐하지 않았던가. 또 세번째 패하는 날에 은퇴하겠다고 결심하지 않았던가. 두 번 졌으니 아직 한 번의 기회가 남은 셈이다. 나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시 글러브를 끼었다.
이후 아프리카에서 세계 챔피언 승전고를 울릴 때, 내 전적은 29전 25승 2무 2패. 결국 나와의 약속을 지키는데 성공했다. 파나마 출신 카라스키야 선수와의 대결도 잊을 수 없다. '지옥에서 온 악마'라는 별명이 붙은 카라스키야 선수는 11전 11승 11KO승의 찬란한 전적이었다. 언론은 '기관총으로 탱크를 쏘는 격'이라고 했지만, '그래, 기관총으로 꼭 탱크를 쏘아 쓰러뜨리마' 하는오기로 링에 올랐다.
내게는 강한 주먹 대신 맷집이 있었다. 나는 체력을 키웠고 무거운 덤벨을 입으로 물어 올리며 턱을 강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전설의 4전 5기를 만들었다. 과연 내가 권투로 그를 이겼는가? 아니다, 카라스키야가 나에게 진 것이다. 그는 네 번이나 다운된 나를 다 이겼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3회전은 좀 봐주자'하고 방심한 카라스키야를 나는 목숨을 걸고 정신의 주먹으로 물리쳤다.
아테네 올림픽 유도 금메달리스트 이원희 선수는 '남자로 태어나 대한민국에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했다고 한다. 그는 금메달리스트이기 이전에 자기 자신을 이긴 것이다. 자신을 극복하고 상대를 극복하고 금메달을 극복한 것이다. 내가 해냈듯 여러분도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