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취록

2011. 3. 26. 오후 1:11:04

글자

2008. 5. 2(금)


제170회『강진다산강좌』개최결과

 

 

 

 

 

 


   강   진   군
제170회 『강진다산강좌』개최 결과

《강좌 개요》
 ○ 일    시 : 2008. 5. 2(금) 15:00
 ○ 장    소 : 문화회관
 ○ 참석인원 : 178명(군민 32, 군산하 공직자 146)
 ○ 강    사 : 김 옥 희(수녀, 선문대학교 교수)
 ○ 주    제 : “다산과 서학사상”
《녹 취 록》
○ 사회자 : 강신장 교육발전팀장
  강연에 앞서 강진군청 천주교 신자모임인 제롬에서 신부님께 꽃다발증정이 있겠습니다.

  자세를 바르게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제170회 강진다산강좌를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임경용 기획정책실장님께서 인사말씀과 함께 김옥희 수녀님을 소개하겠습니다.

○ 강연자 소개 및 기획정책실장 인사말씀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강진군 기획정책실장 임경용입니다. 오늘 바쁘신 와중에도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뜻 깊은 자리에 황주홍 군수님께서 김옥희 수녀님을 소개해 드려야 합니다만, 우리군 자매결연 단체인 서울 관악구 제20회 관악산 철쭉제 행사 참석으로 인해 부득히 제가 소개해 드린 점 널리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제170회 강진다산강좌에 참석하여 주신 주민과 기관 단체원 여러분께 깊은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강연해 주실 김옥희 수녀님은 천주교 순교 관련 한국 최고 전문가이면서, 다산 사상과 서학 사상에도 많은 연구를 하고 계십니다.

 주요 학력으로는 1938년 경남 창녕출생으로 수도여자사범대학에서 사학 학사과정 및 서울대학교대학원에서 국사학 석사, 그리고 프랑스 파리 제4대학교대학원 박사 과정을 마치셨습니다.

 주요 경력으로는 한국가톨릭문화연구소 소장, 부산 여대 국사교육과 과장, 수원대 박물관 관장, 부산 오륜대 순교기념관 관장, 수원대 사학과 교수를 지내셨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선문대학교 역사학과 명예교수님으로 계십니다.

 주요저서로는『한국천주교여성사Ⅰ․Ⅱ』,『최양업신부와 교우촌』,『제주도신모년교난사』,『가톨릭문화문고』,『영혼의 빛』, 『광암이벽의 서학사상』등의 다수가 있습니다.

 오늘 김옥희 수녀님을 모시고 제170회 강진다산강좌를 개최하게 됨을 매우 기쁘게 생각하면서, 수녀님을 앞으로 모실 때 뜨거운 박수로 맞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강연자 : 김옥희 수녀
  방금 소개 받은 김옥희 안나 수녀입니다. 반갑습니다. 강진군수님께서 모처럼 저 같은 사람을 다산강좌에 초대시켜주셔서 영광스럽고 여러분들을 만나게 되어 감개무량하게 생각합니다.

저는 다산 정약용 선생님에 대해서 많은 분들께서 다산 선생의 학문, 정신, 사상, 저서, 업적 등은 저보다 더 많이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 강연할 주제처럼 여러분께서 다소 생소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또한 천주교 신자들 그리고 유학계에서도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다산 선생님과 서학사상과의 관계부분에서 말씀을 올리고자 합니다. 정약용이 살고 있던 그 시대에 서학사상이라는 것은 천주교, 가톨릭을 비롯한 서양과학 사상을 모두 망라하는 것을 의미하겠습니다.

다시 말해서 천주교 신자들, 성직자들도 잘 모르고 그래서 거부감을 느끼며 유학계에서도 다산 정약용선생의 가톨릭 서학사상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오늘 다산 선생님의 천주교와 서학사상 관계부분에 대해 확실하게 말씀을 드리고자 나왔습니다.

우선 과연 다산선생과 서학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천주교 영세를 받았느냐에 대해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1975년에 프랑스에 있었을 때 대한민국의 삼보 즉 세가지 보물에 대한 기사가 났습니다. 대한민국의 삼보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기재가 되었는데 그 때 저는 한창 프랑스에서 이벽선생님의 학위논문을 쓰고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으로 6개월간 파견된 르몽드 편집장이 세가지 보물 즉 첫째 자연, 둘째 문화재, 셋째 인물분야로 기사을 냈습니다.
자연으로는 대한민국의 가을의 푸른 하늘 그다음으로 문화재로는 고려청자 특히 상감청자, 마지막으로 인물로는 다산 정약용 선생이라고 했습니다. 설명하자면 프랑스 파리에서는 푸르고 맑은 하늘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대부분 뿌연 하늘입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푸른 하늘이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중국 송나라하면 도자기 왕국이고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도자기가 가장 많이 발전했던 송나라 송황제도 우리나라 상감청자를 보면서 이것이 과연 사람이 만든 것이냐 할 정도로 감탄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고려청자에서 그런 빛깔이 나왔냐면 고려시대 종교는 불교입니다. 불교 교리로 이야기하자면 영생으로 올라가서 선의 수행의 결과로 나온 불교의 빛깔입니다. 즉 불교의 사상이 고려청자의 빛깔을 만들었습니다. 르몽드 편집장이 대한민국에 6개월간 우리나라 여러가지를 공부하면서 다산 선생님을 세계적인 인물로 뽑았습니다.

한 사람이 세계적으로 500~600여권의 책을 쓴다는 것은 불가사의한 일인것입니다. 즉 인간을 초월한 겁니다. 가톨릭 성인중의 아우구스나 토마스아퀴나스도 저서를 많이 남겼습니다만 다산 선생님만큼 광범위한 사상 즉 사회, 문학, 경제, 정칙학, 의학, 주역 등 쓴 사람은 없습니다. 근세빼고 우리나라에서도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290여권의 책을 저술했습니다.
저는 1991년에 다산의 서학사상이라는 책을 저술했습니다. 다산의 서학사상 책을 쓰면서 다산이 정말로 가톨릭 신자였고 가톨릭하고 얼마나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었는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 세권을 가지고 여기 강진 초당에 왔습니다.
여담이지만 하나는 다산 초당 석가래 밑에 놓고 하나는 청소하시는 아저씨분께 드리고 나머지 하나는 다산 초당에 놓고 앉아 가지고 다산 선생님과 한바탕 이야기를 했습니다.
‘선생님을 위해서 학자들이 많은 연구를 하고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는데 이 책은 어떻습니까?’다산 선생님의 아픈 상처를 모두 꺼내서 이 책에 하나 하나 해설에 놨습니다.

그런데 한참 있다가 선생님의 이야기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 당신이 쓴 책이 가장 마음에 든다.’그날 17년 전에 인정을 했습니다. 여러분한테 여담으로 소개는 했고 사실처럼 들리지는 않을 겁입니다만 사실로 받아들였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우리 인간은 차원이 있습니다. 인간이 오를 수 있는 단계는 3차원 단계라고 합니다. 1차적인 차원에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 즉 돈, 명예, 권력 이런 것들은 굉장한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1차원적 차원에 불과합니다. 2차원적 차원은 정신적인 것 즉 문화, 철학, 예술 이런 것까지만 해도 괜찮은데 인간은 이것으로도 부족해서 3차원적 차원까지 갑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 즉 종교적으로 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실질적으로 모든 종교인들이 다 겪지는 못합니다.

왜 이런 차원적 세계를 말하는가 하면 다산 정약용 선생님은 1차원, 2차원, 3차원적 세계까지 모두 누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성인들이 누리는 소위 보이지 않는 영생 그 단계까지 간 것입니다.

최근 우주에 갔다 온 이소연양이 우주 갔다고 3차원에 갔다고 생각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사실은 우주도 1차원적 세계에 불과합니다. 제가 차원의 세계를 잘 설명은 못하지만 여러분도 대충 알아 들으셨을 겁니다.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다산 선생님께서 정말 천주교 신자였는가 그 부분에 먼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다산 선생님은 천주교 세례 영세를 받고 세례명이 요한입니다. 천주교 신자들은 세례를 받습니다. 저는 안나, 다른 분은 마리아, 요셉 등등 본명이 있는데 다산은 정요한이십니다. 사도세자를 본 받은 요한이십니다.

어떻게 영세를 받았느냐 하면은 다산 선생님은 양평 팔당중심으로 이벽, 다산4형제가 살았습니다. 중국이나 유구 사신들로부터 전해 받은 가톨릭, 철학서, 교리서 등을 읽으면서 다산 선생님은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산 선생님은 형제들과 어릴 때부터 성호선생님 집을 왔다갔다 하면서 당시 서양사람들의 교리서, 새로운 종교책들 빌려보면서 모두 망라하고 섭렵하셨습니다. 그리고 남인 학우분들과 강학회도 열고 새로운 종교에 대해 연구하고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천주교에 대해 읽을 것이 많고 이론이 좋아서 빠져든다고 서술하고 그랬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천주교 영세를 받지는 않았습니다.

정식적으로 1875년 갑진년에 영세를 받습니다. 1875년 갑진년은 이승훈이 북경에 가서 영세를 받고 돌아온 해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받느냐고 하면은 갑진년 4월 기망 즉 보름날은 다산 정약형의 형수님의 제사 날입니다. 이 때 이벽, 이승훈 등 팔당의 남인 신진들이 모두 모여서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리고 팔당이니깐 배로 서울로 돌아오면서 한강 배위에서 기망 보름이니깐 삼형제를 놓고 배 위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 당시 젊은 정약용은 이벽의 말이 너무나 재미가 있어서 그 자리에서 한강 물을 떠서 삼형제가 세레를 받았습니다.「자찬묘지명」에서도 세례를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산어보를 쓴 정약전은 요한이라는 세례를 받고 정약종은 아우구스티노, 다산은 정약전 형님과 같이 요한 세레명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가톨릭 안에서도 밖에서도 다산을 천주교 신자로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1936년 다산 정약용 선생님의 문집을 정인보 선생님께서 영인본을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정인보 선생님께서 다산 정약용 선생의 천주교 색채가 짙은「자찬묘지명」등을 빼 버렸습니다. 다산을 철저히 파악해 보지 않는 사람 빼놓고는 이 사실을 모릅니다. 규장각 안에서도 집중본 강중원본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원본이 없으니깐 할 수 없이 다산과 이벽 관계, 천주교 관련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그러나 다산 정약용 선생님과 천주교 관계를 알아내신 분이 주재용 신부이십니다. 그 때 정인보 선생님과 지상토론을 벌였는데 그 때 천주교 가톨릭 청년이라는 잡지를 보면 얼마나 치열하게 벌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럼 다산 선생님은 세례를 받고 어떻게 천주교 활동을 했는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당시 이벽과 다산 형제들이 천주교 정례를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벽이라는 단어가 여러분들께서 생소하신 분도 계시겠지만, 한국 천주교의 처음으로 1784년 중국에 가게 된 이승훈에게 영세를 받아올 것을 부탁했고, 그가 세례를 받고 돌아오자 다시 그에게서 세례를 받아 정식으로 천주교도가 되었습니다. 또한 실록 기록에 의하면 천주교 괴수라는 명칭이 나옵니다. 이처럼 이벽이 한국 천주교의 창시자로 볼 수 있습니다. 이벽은 선배이고 다산은 후배로서 이벽의 논문을 쓸 때 다산 문집에서 발췌하고 그랬습니다.

요즘 이산이라는 연속극에서 정조대왕을 보고 있겠습니다만 정조는 우리나라 조선왕조를 다시 새롭게 하기위해 성균관을 부흥시키고자 하였습니다. 1873년 정조시절에 성균관에서 30명 학생에게 4서중의 중용에서 70여 문제를 뽑아서 학생들에게 문제의 답을 제출하라고 했습니다. 그럼 이 사서중에서 왜 중용이냐하면은 논어와 맹자는 인간과의 관계, 정치 그런 내용이지만 중용은 하늘과 인간과의 관계를 잘 설명해 놓은 책입니다. 중용을 읽다보면 하느님을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정조는 이 학생들에게 하늘 즉 천명을 따라 살고 정직한 양심대로 살기를 원했던 것 같습니다.

그 때 다산은 정조에게 잘 보일려고 천학을 잘 아는 이벽에게 가져가 이 문제에 대해 같이 의논을 해서 답안을 제출합니다. 정조가 여러 가지 답안들중에서 다산 선생님의 답안이 희안하다고 신하들을 모아놓고 이야기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이후로 정조한테 다산 선생님은 신임을 얻습니다.

신유박해 때 강진으로 귀향 가서 그 때 답안으로 제출한 이벽 선생님과 같이 논의하고 답변 한 것을 모아 놓은 게 중용강인본이란 책입니다. 그 당시 이 책은 한국 천주교 신학서가 아닌 가 할 정도로 잘 쓰여진 책입니다.


다산 선생님께서 저술하신 목민심서, 경세유포, 흠흠신서 다 알고 계시지만 천주교에 대해서 저술하신 책들이 있습니다. 그 중 전해 내려오지 않는 것이 한국복음전례사가 있습니다. 비록 현존하고 있지는 않지만 「자찬묘지명」안에 기록은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만천유보의 책이 있습니다. 만천은 이승훈 선생님의 호입니다. 다산 선생님께서 18년간 귀향생활을 하고 돌아가시고 남은 서학 인사들의 순교 동료들의 쪽지, 시집을 모아 발간한 책이 만천유보의 책입니다.

그 다음으로 「자찬묘지명」에도 천주교에 관련 된 내용들이 쓰여 있습니다. 이런 책들을 읽어보지 않고 다산 선생님이 천주교 신자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겁니다.

안다벨리주교 한국이름으로는 안토니오주교이신데 대원군때 1866년 보령에서 순교하신 분입니다. 1845년 김대근 신부와 함께 입국해서 1857년에 주교가 되셨습니다. 이분이 주교로 있으면서 충청도에서 작은 집을 얻어서 당시 천주교 신자들의 자료를 모아서 불란서에 보냈습니다. 이게 한국 천주교 교회사가 쓰여진 겁니다. 안다벨리주교님이 20년동안 계시면서 살아 있는 신자들까지 수집, 기록했는데 이것을 거짓말로 볼 수는 없을 겁니다. 많은 내용들이 안다벨리 비망록에 나오는데 다산 선생님에 관한 내용도 나옵니다.

대개 천주교와의 관계가 믿거나 말거나 상관이 없지만 분명히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은 역사적 사실 기록을 바탕으로 말씀을 드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산 선생님은 귀향에서 풀려나고 2~3년 후부터 신앙생활을 다시 시작 하셨습니다. 자주 잦은 단식과 수행을 했습니다. 먼저 돌아간 순교하신 분에 대한 아픔을 느끼고 묵상을 자주 했습니다.

1830년 귀향에 풀려나서 더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1801년에 입으로 배반한 것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세상과 떨어져서 천주교 신자로 돌아왔습니다.
즉 천주교의 종부선사를 받았고 천주교 신자로서 돌아왔다는 역사적 기록이 확실하게 남아 있습니다.

종부선사를 받은 게 문제가 아니라 과연 다산 선생님은 과연 제3차원적 세계 즉 수행의 경지에 살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신경리듬과 수학이라는 책을 일고 신경리듬에 관한 책을 섰습니다. 여기에서 수행의 삶 즉 영생의 삶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유교냐 천주교냐 이 둘중 어느 것을 믿었느냐는 저도 답변을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세계 즉 신에 대한 영성, 마음, 인식에 대해서는 진심이었습니다. 즉 우리 인간 마음 속에 함께 있으면서 우리 마음을 비추시고 양심 안에 살아서 작용하시는 분이라고 인식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산 선생님은 인간관계의 대한 덕행을 두가지로 나눴습니다.
첫째, 수기치심관 즉 마음을 다스리는 덕행관이고
둘째, 덕행치심관 즉 웃어른으로서, 지도자로서 덕행관입니다.

그냥 수박 겉 핥기보다는 종교와 상관하지 말고 다산 선생님이 동서양의 모든 종교의 핵심인 3차원적 세계에 살았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다산 정약용선생님에 대해 조금이나 새로운 인식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 사회자 : 강신장 교육발전팀장
  평소 김옥희 수녀님께 여쭤보고 싶었던 질문이나 오늘 강연 중에 질문을 하고 싶은 분은 질문을 하시기 바랍니다.

○ 질의자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우선 두가지 경향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먼저 천주교도 신자였느냐 아니면 천주교 사상의 영향을 받았느냐의 두가지 인식태도로 볼 수 있을 겁니다. 복음전례사에 언급한 것처럼 다산은 열렬한 천주교 신자였습니다.

그러나 공적인 신앙생활보다는 내적인 신앙생활을 했는 점입니다. 은둔하면서 묵상, 수행, 고행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천주교 생활을 방해했던 게 뭐냐면 제 입장에서는 정조라고 생각이 됩니다. 정조가 다산을 지극히 총애했고 결국 자명소을 올린 것도 신앙보다는 신하의 총애를 배신하지 않을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신이냐, 왕이냐? 선택에서 다산 선생님께서는 정조의 뜻을 따랐다는 것이지 종교를 배신한 것으로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결국 신아의 배신보다는 임금의 총애가 더 강하게 작용해서 양자택일에서 왕을 선택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1801년 사실상 신을 거부하면서 목숨을 건졌고 그래서 오늘날 수많은 저서들이 나오게 된 것 같습니다. 신을 택했다면 살아남지 못했을 거라 생각됩니다. 강요된 선택이었고 다산 선생님의 말년에 다시 신을 선택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의 견해는 다산 선생님께서 완전히 천주교 생활을 했지만 유교생활에도 충실했다고 봅니다. 그래서 천주교 생활 뿐만 아니라 유교생활에도 충실했다고 말하고 싶은데 선생님의 의견은 어떠신지 묻고 싶습니다.

○ 강연자 : 김옥희 수녀
선생님 의견이 맞는 것 같기도 하지만 어떤 점에서는 저의 견해와 다른 것 같습니다. 특히 자명소는 정인보 선생님께서 쓰신 자명소하고 다산 후손인 정규몽 선생님이 쓰신 자명소 두가지가 있습니다. 자명소 안에 있는 한구절을 읽어보면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신이 이 책을 읽은 것은 유행의 풍조가 있었고 천주역사에 대하여 홀로 흠모하였으나 어렵고 깊은 세밀한 문장은 이해가 안되서 얻은게 없었습니다.’

그 다음 줄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오히려 신은 반대로 사생 즉 교리에 얽히고 자기를 이기는 덕행의 기이함에 황홀하게 빠져서 유교와는 다르게 인식하였고 사람들과 있을 때 숨기는 바가 없었고 당당하게 이야기 했습니다.’

즉 당당하게 정조하게 이야기를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구절을 보면서 다산 선생님께서는 일반적으로 학문이 아닌 삶과 죽음의 영혼의 문제로 인식을 하셨습니다.

 긴 시간 경청해주신 여러분께 감사 말씀을 올리면서 이상으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 사회자 : 강신장 교육발전팀장
  바쁘신 일정에도 불구하고 우리 군을 방문하여 고귀한 말씀을 해 주신 김옥희 수녀님께서 고맙다는 뜻을 담아 다시 한번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댓글 1

  • 2011년 4월 2일 오후 8:29

    일부 연도에서의 오타 (1784년이 1785년으로 오기)와 전체적으로 더 검증이 필요한 내용이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강학회 주인공의 한 사람인 정약전의 세례명이 "요한"으로 나오는 것이 중요한 자료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