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꾸르실료가 싫어요
“난 공산당이 싫어요!” 아홉 살 이승복 어린이가 남침한 북한군 앞에서 당당히 외쳐 한 시대의 명언(?)이 된 말이다. 과연 그 어린 소년이 자본주의니 공산주의니 하는 사상을 알면 얼마나 알고서 좋으니 싫으니 했을까마는, 나도 아는 분들이 꾸르실료 교육을 권할 때마다 비명처럼 “난 꾸르실료가 싫어요!”라고 말한다. 꾸르실료에 대한 내 소견도 아마 이승복 어린이가 공산당을 아는 비슷한 수준에서 나온 편견일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이런 마음을 그리 쉽게 떨쳐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그날의 서운함이 너무 크게 상처로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8년전, 원주교구 공소사목협의회 회장직을 맡고 있을 때의 일이다. 원주교구는 강원, 충북, 경부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을 관할하고 있고, 한때는 100개가 넘는 공소를 갖고 있었다. 지금은 그 수가 차츰 줄어들어 48개 공소만 남았지만, 교구에서는 어렵고 힘든 여건 속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공소 교우들을 위해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
그중 한 행사가 일 년에 한 번 순교자 성월 때 가는 공소 합동 성지 순례다. 그날도 절두산과 새남터로 성지 순례를 가기 위해 300여 명의 교구 내 공소 교우들이 8대의 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9시까지 원주에 집결하기 위해서는 먼곳의 공소 식구들은 2~3시간 전부터 서둘러야 했고, 원주에서 절두산까지도 2시간 넘게 걸리는 거리다 보니 길게는 왕복 10시간이라는 멀고도 힘든 성지 순례였다. 대부분 60~70대 고령이었지만 한국의 대표적인 성지를 순례한다는 즐거움에 나이도 잊은 채 모두들 즐거워했다. 떡을 해온 공소, 밥을 해온 공소, 국이며 김치, 반찬까지도 각 공소에서 한 가지씩 나누어 마련해 와서 공소 합동 성지 순례는 그야말로 우리들만의 특별한 축제가 되었다. 휴게소에서 잠시 쉬는 동안에도 서로들 8대의 버스를 오가며 악수하고 포옹하고 반가워하여 무슨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모두들 기쁜 마음에 들떠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8명의 운전기사가 모였는데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다. 서울 지리를 잘 모르니 절두산 가는 방법이 서로 다른 것이다. 네비게이션도 없던 시절이라 하는 수 없이 서울 사는 잘 아는 교우 분께 도움을 청했더니 기꺼이 동승하여 절두산까지 안내해 주셨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서울 풍경에 모두들 감탄(?)하고 있는데, 공소 신자가 아닌 유일한 본당 신자인 바울라 자매님은 깊은 추억의 상념에 잠겨 있었다. 20년만의 만남, 절두산 성지에 여고 시절 은사님이 수녀님으로 계시다며 이번 기회에 꼭 찾아뵙고 싶다고 동행한 자매님이었다. 바울라 자매님은 그 학창 시절로 돌아가 있는 듯했다. 절두산에 도착하니 자매님이 미리 연락을 하셨는지 수녀님이 나오셔서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셨다.
야외 미사를 드린 후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수녀님 안내로 성당으로 향했다. 출발 때부터 흐렸던 날씨는 미사 도중에 빗방울도 멏 개씩 떨어지기 시작했는데, 별도의 식당도 없고 비를 피할 마땅한 장소도 없으니 점심을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불안해서 들락날락거리는 내게 수녀님이 구원의 손길을 주신 것이다. 이곳에 꾸르실료 사무국 식당이 있으니 그곳에 가 보고, 한꺼번에는 힘드나 나누어 이용하면 식사가 가능하니 한번 알아보라셨다.
고마운 마음에 미사 중에 뛰어 내려가 사무국 문을 두드렸다. 가슴에 명찰을 단 아주 점잖은 형제(?)님이 나오셨다. 반가운 마음에 문 좀 열어 달라며 우리의 사정을 얘기했다. 그런데 나만 반갑고 좋았지 그분은 그렇지 않았나 보다. 문도 안 열어주고 잘 들리지도 않는 목소리로 손을 내저으며 안 된다는 것이다. 이곳은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그런 곳이란다. 난 ‘아무나’가 아닌데…. 우린 하느님의 자녀로 다 같은 형제자매라고 하는데… 꾸르실료는 그렇지 않은가 보다. 특별한 교육을 받은, 특별한 사람들을 위한, 특별한 사람들이 출입할 수 있는곳. 그런 곳을 시골에서 올라온 촌 교우들이 이용하겠다고 하니, 우린 ‘아무나’가 되고 말았다. 수녀님이 가 보라해서 왔다는데도 그분은 문도 안 열어 주고 문전박대를 했다. 우리 동네에선 거지가 와도 이렇게는 안 하는데…, 우린 어쩌다 찾아오는 도시 교우들을 한 형제자매로 생각하고 그저 반갑고 좋았는데…. 물 한 모금, 밥 한 그릇이라도 기쁜 마음으로 나누었는데 서울은, 꾸르실료는 그게 아닌가 보다. 무척이나 서운하고 슬펐다. 난 그분의 명찰을 보고 그 이름을 새겨 두었다. 수녀님에게 이르거나 아니면 언젠가 하느님께라도 이르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얼마 전 교회 신문을 보니 꾸르실료의 놓은 분들 이름 중에 그분이 있었다. 대문짝처럼 크게 실린 그 기사를 그분도 보셨을 테고, 이제 유명해지신 만큼 더 겸손해지셔서 그런 행동은 하지 않으실 테니까….
다행히 비가 멈추어 우리는 흐르는 한강 물을 볼 수 있는 우아한 노천 식당에서 고가도로를 지붕 삼아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우린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난다. 그 수많은 사람들에게 모두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남아 있기란 쉽지 않다. 특히 하느님을 전하는 사람에게는 더욱 힘든 일이다.
내겐 일 년에 꼭 한 번밖에 만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크게 기다려질 것도 반가울 것도 없는 그런 사람이지만, 난 그를 만나면 행복하다. 그가 하는 일은 더럽고 악취 나고 함든 일이지만 그에게선 늘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일 년에 한 번 정화조 청소를 하러 오는 그분은 큰 소리로 가족 안부도 묻고 농사일도 챙겨준다. 특히 연로하신 어머님의 건강을 염려해 줄 때는 내 가슴이 뭉클해진다. 삼한 악취에 얼굴을 찌푸릴 만도 하지만 그분은 늘 웃으며 감사해한다. 그에겐 향기가 있다. 삶의 향기, 감사의 향기, 사랑의 향기가 풍겨난다. 그는 정화조에서 더러운 오물만을 퍼가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오물까지 퍼간다. 세상을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새삼 알게 해주는 아저씨다. 그가 다녀가면 난 늘 상쾌하고 즐거워진다.
나는 어떨까? 내게선 어떤 향기가 날까? 예수님의 향기일까, 아니면 욕심과 자만이 가득한 자의 악취일까? 공소 회장을 하면서 예수님보다 꼴 난 내 모습을 더 내세우지는 않는가?
하느님 일을 하는 수많은 개인이나 단체에서 십자가의 예수님보다 규율이나 전통, 형식 등이 더 우선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레지오 마리애 회합 때 꽃이 오기를 무한정 기다리고 있으면서도 미처 참석하지 못하는 단원을 기다리는 데는 인색한 쁘레시디움이 되고 있지는 않는가? 예수님은 착한 사마리아인과 함께 감실 속에 계시고, 우리는 바라사이와 율법학자가 되어 현실 속에 살고 있지는 않은가?
다음에 꾸르실료 교육을 받을 기회가 주어진다면 꼭 참석하여 내게 있는 편견을 씻어내고 예수님의 향기로 새로 태어나고 싶다.
글을 다 쓰고 볼펜을 놓고 일어서다 깜짝 놀랐다. 볼펜에 뚜렷이 새겨진 글씨.‘서울대교구 꾸르실료 사무국’그때 수녀님이 선물로 주신 볼펜으로 내가 이글을 쓴 것이다. 수녀님, 그땐 정말 감사했어요! 지금도 건강하시죠?
심경섭 원주교구 간현공소 회장
참좋은 당신 2008년 5월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