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의 마음은 주 안에서 기뻐하리라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강론에서]

2020. 11. 18. 오전 12: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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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강론에서(10,3-11,3)

의인의 마음은 주 안에서 기뻐하리라

 

“의인은 주 안에서 기뻐하고, 그 소망을 당신께 둘 것이오며 마음 바른 모든 이는 보람을 느끼리이다.” 우리는 확실히 이 시편 말씀들을 입술로만이 아니라 마음으로도 노래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양심과 입술은 이 말씀들을 하느님께 바쳐 왔습니다. “의인은 기뻐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이 아닌 “주님 안에서 기뻐할 것입니다.” 시편은 또 다른 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의인에게는 빛이 솟아오르고, 마음 바른 이에게는 기쁨이 솟나이다.” 이 기쁨은 어디서 나옵니까? 시편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의인은 주 안에서 기뻐하리라.” “네 즐거움일랑 주님께 두라, 네 마음이 구하는 바를 당신이 주시리라.”

우리가 명받는 것이 무엇이고 또 우리에게 허락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받은 명령 사항은 무엇이고 또 주어지는 것은 무엇입니까? 주님 안에서 기뻐하라는 명을 받습니다. 그런데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해 누가 기뻐하겠습니까? 우리가 혹시라도 지금 주님을 직접 보는 것입니까? 우리는 그분을 보리라는 약속만 받았습니다. 현세의 “우리는 육체 안에 머물러 있는 동안 주님에게서 떨어져 순례하며 믿음으로 걸어갑니다.” 직접 보면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걸어가는 것입니다. 직접 볼 때가 언제가 되겠습니까? 요한의 다음 말씀이 성취될 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장차 어떻게 될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리스도와 같은 사람이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때에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참 모습을 뵙겠기 때문입니다.”

그때에는 크고도 완전한 즐거움이 있고 충만한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거기에서는 소망의 젖을 마시기보다 단단한 실재의 음식을 먹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실재가 우리에게 당도하기 전, 우리가 그 실재에 다다르기 전, 현재에도 주님 안에서 기뻐해야 합니다. 실재가 뒤따르는 그 소망이 가질 수 있는 기쁨이란 작은 기쁨일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소망 안에서 사랑합니다. 그래서 시편은 “의인은 주님 안에서 기뻐하리라.”고 말하고 나서, 의인은 아직 주님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이어 “소망을 그분께 둘 것이다.”고 덧붙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의 첫 열매들을 가지고 있고 아마도 그 이상을 가지고 있을지 모릅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그분과 가까이 있으며, 장차 실컷 먹고 마시게 될 것을 현재에도 다소나마 미리 맛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우리에게서 멀리 계신다면 어떻게 하느님 안에서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 그분이 멀리 계신다고 누가 그랬습니까? 당신이 그분을 멀리하지 않는다면 그분은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주님을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가까이 오시어 당신 안에 거처하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가까이 계시니 아무 걱정도 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하느님을 사랑한다면 그분이 가까이 계신다는 확인을 받고 싶습니까?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요한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당신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사랑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사랑이란 그를 통해서 우리가 사랑하게 되는 덕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사랑합니까? 우리는 표현할 수 없는 선, 선을 베푸는 선, 그리고 온갖 선을 지어내신 선을 사랑합니다. 당신은 그분에게서 당신을 즐겁게 할 모든 것을 받았기 때문에 그분을 두고 즐거워하기 바랍니다. 당신이 그분에게서 즐거워 할 모든 것을 다 받는다고 할 때 죄까지도 받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죄만 그분에게서 받지 않은 것입니다. 죄 외에는 당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그분에게서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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