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5월 05일 일요일
[부활 제6주일] 서로 사랑하여라. (요한15,9-17)
제1독서<다른 민족들에게도 성령의 선물이 쏟아져 내렸다.>(사도10,25-26.34-35.44-48)
25 베드로가 들어서자 코르넬리우스는 그에게 마주 나와 그의 발 앞에 엎드려 절하였다.
26 그러자 베드로가 그를 일으키며, “일어나십시오. 나도 사람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였다. “나는 이제 참으로 깨달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35 어떤 민족에서건 당신을 경외하며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은 다 받아 주십니다.”
44 베드로가 이야기하고 있을 때, 말씀을 듣는 모든 이에게 성령께서 내리셨다.
45 베드로와 함께 왔던 할례 받은 신자들은 다른 민족들에게도 성령의 선물이 쏟아져 내리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46 이 다른 민족 사람들이 신령한 언어로 말하면서 하느님을 찬송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에 베드로가 말하였다.
47 “우리처럼 성령을 받은 이 사람들에게 물로 세례를 주는 일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48 그러고 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고 그들에게 지시하였다. 그들은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러 달라고 청하였다.
<화답송>시편98,1.2-3ㄱㄴ.3ㄷㄹ-4(◎2) ◎ 주님은 당신 구원을 민족들의 눈앞에 드러내셨네.
○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그분이 기적들을 일으키셨네. 그분의 오른손이, 거룩한 그 팔이 승리를 가져오셨네. ◎
○ 주님은 당신 구원을 알리셨네. 민족들의 눈앞에 당신 정의를 드러내셨네. 이스라엘 집안을 위하여, 당신 자애와 진실을 기억하셨네. ◎
○ 우리 하느님의 구원을 온 세상 땅끝마다 모두 보았네. 주님께 환성 올려라, 온 세상아. 즐거워하며 환호하여라, 찬미 노래 불러라. ◎
제2독서<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4,7-10)
7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8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9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10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복음<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15,9-17)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10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11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12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13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14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
15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16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
17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부활 제6주일 제1독서(사도10,25~26.34~35.44~48)
"베드로가 이러한 일들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을 때, 말씀을 듣는 모든 이에게 성령께서 내리셨다. 베드로와 함께 왔던 할례 받은 신자들은 다른 민족들에게도 성령의 선물이 쏟아져 내리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다른 민족 사람들이 신령한 언어로 말하면서 하느님을 찬송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에 베드로가 말하였다. "우리처럼 성령을 받은 이 사람들에게 물로 세례를 주는 일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44~47)
사도행전 10장 44절부터 48절까지는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일어난 성령 강림 사건과 이방인으로서 최초로 세례를 받은 사건의 보도로서 코르넬리우스 가정의 선교 과정에 있어서 절정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베드로가 이야기하고 있을 때'에서 원문 맨 앞에 '아직도'를 뜻하는 '에티'(eti) 라는 부사가 있는데, 이것은 행동의 '계속됨'을 나타낸다.
'이야기하고 있을 때'로 번역된 '랄룬토스'(laluntos)도 역시 '말하다', '선언하다'를 의미하는 '랄레오'(laleo)의 현재 분사로서 '에티'(eti)와 함께 베드로의 설교가 계속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즉 성령 강림은 베드로가 말씀 전하는 것을 마치기도 전에, 코리넬리우스와 그의 가족들에게 이루어진 것이다.
과거에 사마리아에서 먼저 믿고 세례만 받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위해 베드로와 요한이 성령 받기를 위해 기도하여 성령을 받은 것(사도8,14~17)과는 대조적으로, 코리넬리우스 집에서는 베드로의 설교가 채 끝나지도 않아서 성령이 임했던 것이다.
이렇게 두 경우는 성령의 역사(役事)가 정해진 방식대로 일어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베드로의 설교가 진행되고 있을 때에 성령이 내리신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베드로는 이미 오순전날 성령 강림을 체험한 적이 있으며(사도2,1~13), 세례받고 믿은 다음에 성령받은 사마리아의 일도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례나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주심은 앞의 두 경우과 비교해 볼 때, 믿음만으로도 이방인이 교회에 받아들여질 수 있음을 강력하게 보여 주시는 하느님의 증거이다.
이 일은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이방인들도 예수님의 은총과 믿음으로 구원받을 뿐, 할례는 불필요하다는 교회의 공식적인 결정(사도15장)을 낳는 배경이 되었다.
한편, 본절이 '이야기하고 있을 때'에서 '이야기하다'(말하다)는 단지 말하는 동작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타 레마타 파우타'(ta remata tauta; these words), 즉 '이 복음의 메세지들'을 전하고 있을 때를 말한다.
베드로가 코르넬리우스 집안에서 설교하는 것은 사적인 말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맡기신 사명으로 '복음'을 힘있게 증거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리고 '내리셨다'로 번역된 '에피핍또'(epipipto)는 부정(不定) 과거 3인칭 단수이다.
여기에서 부정 과거가 사용된 사실은 성령 강림이 지속적이었다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그리고 '예측하지 못한 가운데' 전적으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순식간에 이루어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른 민족들에게도 성령의 선물이 쏟아져 내리는 것을 보고' (45)
'헤 도레아 투 하기우 프뉴마토스'(he dorea tu hagyu pneumatos; the gift of the Holy Spirit)는 '거룩한 영(성령)의 선물'로 번역되었다.
신약성경 저자들은 종종 성령의 부어주심이 하느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선물(요한4,10; 사도8,20)임을 나타내기 위해 이 '도레아'(dorea)를 사용한다.
이처럼 하느님께서 성령이라는 은총의 선물을 할례없는 이방인들에게도 부어주심은 그들도 유대인들과 동일하게 하느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대상임을 확실하게 증거해 준다.
한편 '쏟아져 내리는 것'으로 번역된 '엑케퀴타이'(ekkechytai)는 '붓다', '흘리다', '쏟다'를 의미하는 '엑케오'(ekcheo)의 수동태 완료 3인칭 단수이다.
이 '엑케오'(ekcheo)가 본절에서는 위로부터 선물이 '넘치도록' 주어졌다는 것을 표현한다. 특히 이 동사가 수동태로 쓰여진 것은 이 일을 행하시는 주체가 바로 하느님이심을 보여준다.
성령이 쏟아져 내림은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아낌없이 거저 주시는 선물인 것이다. 그리고 이 동사의 시제가 완료로 표현된 것은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놀란 것보다 성령 강림이 먼저 이루어졌음을 보여 준다.
그렇다면, 그들은 성령께서 강림하실 때는 왜 느끼지 못하다가 왜 성령 강림 후에 인식하고 놀랐는가?
이것은 성령에서 강림한 순간은 아무런 소리도, 표적도 없었기 떄문이며, 강림한 직후에 성령받은 사람들이 신령한 언어를 말하며<'랄룰톤 글롯사이스'(lalunton glossais); speaking with (in) tongues> 하느님을 찬송하는<"메갈뤼논톤 톤 데온'(megalynonton ton theon); praising(magnifying) God> 등 외적 표시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것은 과거 오순절날 성령 강림이 모든 사람들이 알 수 있게 이루어진 것과는 대조되는 일이다(사도2,1~3).
성령께서 임하는 양식도 여러 가지이며, 많은 경우 이와같이 성령은 받은 당사자가 아닌 제3자의 경우에는, 받은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표적을 보고 들은 이후에야 알 수 있음을 암시한다.
신령한 언어(방언)는 코르넬리우스 집안 사람들이 성령을 받았음을 보여 주는 하나의 구체적인 표징이었다.
베드로 역시 이 성령의 부어 주심과 그것에 따른 신령한 언어를 말함을 보고, 그것은 이방인인 코르넬리우스의 사람들이 하느님의 계약(언약)에 포함되었음을 보여 주는 명백한 증거로 인식하고 그들에게 세례를 주었다(47절).
한편, 신령한 언어를 '말하면서' 와 '찬송하는 것'에 해당하는 원어가 모두 현재 분사형으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성령받은 사람들이 신령한 언어(방언)를 말하고 하느님을 찬송하는 (높이는) 행위가 얼마 동안 지속되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한동안 지속되는 이러한 행동을 보고, 베드로와 그 일행은 이방인 코르넬리우스의 집에 하느님의 은총이 확실히 내리고 있음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이처럼 구원의 증표인 성령이 이제껏 하느님의 구원의 은총 밖에 있다고 여겨졌던 이방인들에게 확실히 부어지고 있음을 본 베드로 일행은 그들에게 세례주는 것을 주저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부활 제6주일 복음(요한15,9~17)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13)
요한 복음 15장 13절은 인간의 사랑 가운데 최고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가르쳐 주시는 말씀이다.
그것은 자신의 친구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까지도 기꺼이 내놓는 희생의 실천이 뒤따르는 사랑이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자신의 친구들은 어떤 사람들을 말하는가?
'친구들을'로 번역된 '톤 필론'(ton philon; his friends)은 사랑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필론'(philon)은 '필로스'(philos)의 복수 소유격인데, '필로스'(philos)가 형용사로 쓰일 때에는 '사랑받는', '사랑하는'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친구들'이란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임을 말한다.
요한 복음 15장 13절을 통해 이러한 사랑 가운데서도 최고의 사랑은 바로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사람의 목숨은 온 우주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지만(마태16,26),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목숨을 친구를 위해 내어준다면, 예수님 말씀처럼 이것은 친구에 대한 사랑이 최고의 사랑임을 분명하게 입증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다음날 당신 자신이 지실 십자가의 사랑이 최고의 사랑임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동시에 앞으로 제자들도 이러한 당신의 삶을 본받아 희생적인 사랑을 실천하라고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당신 목숨까지 내놓으실 정도로 열절히 사랑하시는 이들은 누구일까?
일차적으로는 제자들을 생각할 수 있겠고, 당신 친히 감당하실 대속적인 죽음과 관련이 있기에 '많은 이들'이 포함된다(마르10,45).
여기서 '톤 필론'(ton philon; his friends) 속에는 예수님을 믿어 의롭게 된 모든 믿는 이들과 앞으로 같은 은총에 참여하게 될 모든 이들이 포함된다.
사도 바오로는 이들을 '불경한 자들'이라고 증거했다(로마5,6). 이것은 예수님께서 믿는 이들이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믿는 이들을 위해 당신 목숨을 내놓으심으로써 이미 믿는 이들을 친구로 생각하셨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믿는 이들이 힘써 실천해야 할 사랑이 친구를 위해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의로운 이나 착안 사람을 위해서 간혹 용감하게 죽는 이들이 있을지 모르지만(로마5,7), 예수님께서는 믿는 이들이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믿는 이들을 위해 돌아가심으로써 사랑의 진수를 보여 주셨고(로마5,8), 이것이 바로 믿는 이들인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사랑의 기준인 것이다.
실제 역사 속에서도, 예수님의 12사도 가운데 사도 요한을 제외한 열 명의 사도가 예수님께 대한 사랑과 형제들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여 모두 복음을 위해 순교하였고, 그리스도교 역사 가운데 수많은 순교자들과 복음의 증거자들이 예수님과 인류를 자신의 목숨보다 더 사랑하여 예수님의 이 말씀을 실천했던 것이다.
2024년 05월 05일 일요일
[부활 제6주일] 오늘의 묵상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사랑은 너무나 막연하고 다양하며 개별적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바라시는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한 것처럼’이라는 예를 들어 알려 주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내가 ……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사랑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곧 우리가 배워야 할 사랑은 ‘아버지께서 하신 사랑’이고,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사랑’입니다.
제2독서는 그 사랑이 ‘이렇게 나타났다.’고 하며 하느님의 사랑을 소개합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곧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를 ‘살게 하는 사랑’이고, 이를 위하여 당신의 소중한 존재를 ‘내주는 사랑’이었습니다.
더구나 이 사랑은 ‘무상성’이라는 특징을 가지는데, 이를 오늘 독서와 복음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고,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그래서 이 사랑의 수혜자인 우리는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친구’라고 불리게 됩니다.
친구라고 해서 언제나 우리를 외롭지 않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목숨을 내주는 사랑이 아니면 사랑은 늘 의심스럽거나 불충분하고, 타인을 통하여 만들어지는 사랑은 언제나 외롭고 두렵습니다. 사회 곳곳에서 ‘묻지 마 범죄’가 일어나고, 사회적 고립과 소외에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요즘의 현실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오늘 복음이 보여 주는 사랑입니다.
내가 사랑받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데에 급급하기보다, 거저 내주고 상대를 살리려는 진심에 충실할 것,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상대의 사랑이 가식이나 위선이 아닐까 하는 의심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입니다.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부활 제6주일]
믿는 이들에게 주신 말씀이 영원한 생명이다.
복음(요한15,9-17)-공동번역성서 사용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해 왔다. 그러니 너희는 언제나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라.
= 하느님께서 아드님을 사랑하셔서 죄인(罪人)들의 구원자가 되셨다.(십자가에서 죽이셨다) 하느님은 사랑하는 아들을 부르셔서 당신 나라 완성에 동참시킨다는 것이다. 사랑하시기에..., 각자의 십자가(十字架)를 통해서 하늘의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함인 것이다.
(히브12,5-6.10) 5 하느님께서 마치 자녀들에게 하시듯이 여러분에게 격려하신 말씀을 잊었읍니까? "아들아, 너는 주님의 견책을 가볍게 여기지 말며 꾸짖으실 때에 낙심하지도 말아라. 6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자를 견책하시고 아들로 여기시는 자에게 매를 드신다." 10 우리를 낳아 준 아버지는 잠시 동안 자기 판단대로 우리를 견책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이익을 주며 우리를 당신처럼 거룩하게 만드시려고 견책(훈육)하시는 것입니다.(~아멘)
= 믿는 것, 주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이다.
10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 사랑 안에 머물러 있듯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게 될 것이다."
= 하느님 아버지의 뜻으로 십자나무에서 대속으로 죽으신 것이 계명이다.(탈출15,25-26 참조) 믿는 것,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도덕(道德)과 윤리(倫理), 그 인간들의 계명이 아니다.(티토1,14)
<노파심> 도덕과 윤리는 인간이면 반드시 지켜야 할 땅의 질서(秩序), 규칙(規則), 법(法)이다. 구원(救援)의 근거(根據)가 되지 않을 뿐이다.
11 "내가 이 말을 한 것은 내 기쁨을 같이 나누어 너희 마음에 기쁨이 넘치게(충만) 하려는 것이다.
=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계명(새 계약)에 순종(順從)하심으로 우리 죄(罪)값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셨기에, 더러웠던 우리가 그 ‘피의 새 계약’으로 ‘의로운 자, 거룩한 자’가 되어 하늘의 생명을 얻었으니 우리의 기쁨이다.
(시편119,137-138.142-143) 137 야훼여, 당신은 공정하시며 당신의 결정은 언제나 옳사옵니다. 138 당신의 언약은 공정하여 조금도 틀림이 없사옵니다. 142 당신의 정의는 영원한 정의, 당신의 법은 언제나 진실(피스티스-믿음)됩니다. 143 우민과 억압에 짓눌려도 당신의 계명이 나를 기쁘게 하옵니다.
(집회6,31) 31 네가 지혜(예수)를 영광의 예복처럼 입을 것이요 빛나는 왕관처럼 머리에 쓸 것이다.
(잠언8,12) 12 나 지혜는 예지와 한 집에서 살고 있으니, 지식을 얻어 뜻을 세우려면 나에게 오라.
12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13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 친구(벗)를 위해 목숨을 내놓는 그 ‘큰 사랑’은 그리스도 예수님 뿐이시다.
(로마5,7-8) 7 옳은 사람을 위해서 죽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혹 착한 사람을 위해서는 죽겠다고 나설 사람이 더러 있을지 모릅니다. 8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죄 많은 인간을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당신의 사랑을 확실히 보여(증명) 주셨습니다.
14 내가 명하는 것을 지키면 너희는 나의 벗이 된다.
= 죄인(罪人)인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친구로 여기시며 내 죄로 죽으신 그 사랑, 그 예수님을 믿고 이 고난의 삶속에서 예수님을 의지하여 살며 이웃과 그 예수님(사랑)을 나누는 것, 실천이다.
15 이제 나는 너희를 종이라고 부르지 않고 벗이라고 부르겠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모두 다 알려 주었다.
= 하느님의 말씀을 주셨다는 것, 하느님 나라에 백성(자녀)으로 인정하심 이다. 말씀은 영원한 생명이니 이보다 더 큰 복(福)은 없다.(요한1,1-4)
(야고1,18) 18 하느님께서는 뜻을 정하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읍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피조물의 첫 열매가 된 것입니다.
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내세운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세상에 나가 *언제까지나 썩지 않을 열매를 맺어라. 그러면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을 다 들어 주실 것이다.
= 열매는 예수님께서 손수 뽑은 이들에게 당신이 맺게 하신다.
(요한15,5)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누구든지 나에게서 떠나지 않고 내가 그와 함께 있으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 받은 열매를 지키고 간직하라는 말씀이다. 곧 생활 속에서 그 열매를 먹고, 살고, 나누라는 말씀이다. 열매- 그리스도 예수님의 이름이다.
예수님의 이름을 다시 정리해 보자~ 하느님의 지혜, 힘(1코린1,24) 진리(요한14,6) 희망(1티모1,1) 안식(루가6,5) 평화(2테살3,16) 생명의 빛(요한1,4) 생명의 물(요한4,14) 등등....
곧 하늘의 쉼, 안식, 자유를 열매로 맺게 하는 하느님의 말씀(예수-요한1,14)이다. 그 ‘예수님의 이름을 누리려면 말씀 안에 늘 머물러야 한다.’는 것이다.
(요한8,31-32) 31 예수께서는 당신을 믿는 유다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말을 마음에 새기고 산다면 너희는 참으로 나의 제자이다. 32 그러면 너희는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17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너희에게 주는 나의 계명이다."말씀하셨다.
= 말씀을, 구원의 진리로 서로 주고 나누라는 명령이시다. 그랬을 때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받은 진실된 용서(容恕)와 사랑을 서로 줄 수 있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마리아에게서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라는 고백을 받아 내셨듯이 저희들도 말씀이 이루어지기를 고백하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내버려두지 마소서.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