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9일 주일
[부활 제6주일] 더 큰 사랑은 (요한15,9-17)

제1독서<성령의 선물이 쏟아져 내렸다.>(사도10,25-26.34-35.44-48)
25 베드로가 들어서자 코르넬리우스는 그에게 마주 나와 그의 발 앞에 엎드려 절하였다. 26 그러자 베드로가 그를 일으키며, “일어나십시오. 나도 사람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였다. “나는 이제 참으로 깨달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35 어떤 민족에서건 당신을 경외하며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은 다 받아 주십니다.”
44 베드로가 이야기하고 있을 때, 말씀을 듣는 모든 이에게 성령께서 내리셨다.
45 베드로와 함께 왔던 할례 받은 신자들은 다른 민족들에게도 성령의 선물이 쏟아져 내리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46 이 다른 민족 사람들이 신령한 언어로 말하면서 하느님을 찬송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에 베드로가 말하였다.
47 “우리처럼 성령을 받은 이 사람들에게 물로 세례를 주는 일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48 그러고 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고 그들에게 지시하였다. 그들은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러 달라고 청하였다.
화답송 시편 98(97),1.2-3ㄱㄴ.3ㄷㄹ-4(◎ 2 참조)
◎ 주님은 당신 구원을 민족들의 눈앞에 드러내셨네. ◎ 알렐루야.
○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그분이 기적들을 일으키셨네. 그분의 오른손이, 거룩한 그 팔이 승리를 가져오셨네. ◎
○ 주님은 당신 구원을 알리셨네. 민족들의 눈앞에 당신 정의를 드러내셨네. 이스라엘 집안을 위하여, 당신 자애와 진실을 기억하셨네. ◎
○ 우리 하느님의 구원을 온 세상 땅끝마다 모두 보았네. 주님께 환성 올려라, 온 세상아. 즐거워하며 환호하여라, 찬미 노래 불러라. ◎
제2독서<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4,7-10)
7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8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9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10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복음<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15,9-17)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10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11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12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13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14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
15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16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
17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부활 제6주일 제1독서(사도10,25~26.34~35.44~48)
"베드로가 이러한 일들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을 때, 말씀을 듣는 모든 이에게 성령께서 내리셨다. 베드로와 함께 왔던 할례 받은 신자들은 다른 민족들에게도 성령의 선물이 쏟아져 내리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다른 민족 사람들이 신령한 언어로 말하면서 하느님을 찬송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에 베드로가 말하였다. "우리처럼 성령을 받은 이 사람들에게 물로 세례를 주는 일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44~47)
사도행전 10장 44절부터 48절까지는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일어난 성령 강림 사건과 이방인으로서 최초로 세례를 받은 사건의 보도로서 코르넬리우스 가정의 선교 과정에 있어서 절정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베드로가 이야기하고 있을 때'에서 원문 맨 앞에 '아직도'를 뜻하는 '에티'(eti) 라는 부사가 있는데, 이것은 행동의 '계속됨'을 나타낸다.
'이야기하고 있을 때'로 번역된 '랄룬토스'(laluntos)도 역시 '말하다', '선언하다'를 의미하는 '랄레오'(laleo)의 현재 분사로서 '에티'(eti)와 함께 베드로의 설교가 계속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즉 성령 강림은 베드로가 말씀 전하는 것을 마치기도 전에, 코리넬리우스와 그의 가족들에게 이루어진 것이다.
과거에 사마리아에서 먼저 믿고 세례만 받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위해 베드로와 요한이 성령 받기를 위해 기도하여 성령을 받은 것(사도8,14~17)과는 대조적으로, 코리넬리우스 집에서는 베드로의 설교가 채 끝나지도 않아서 성령이 임했던 것이다.
이렇게 두 경우는 성령의 역사(役事)가 정해진 방식대로 일어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베드로의 설교가 진행되고 있을 때에 성령이 내리신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베드로는 이미 오순전날 성령 강림을 체험한 적이 있으며(사도2,1~13), 세례받고 믿은 다음에 성령받은 사마리아의 일도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례나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주심은 앞의 두 경우과 비교해 볼 때, 믿음만으로도 이방인이 교회에 받아들여질 수 있음을 강력하게 보여 주시는 하느님의 증거이다.
이 일은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이방인들도 예수님의 은총과 믿음으로 구원받을 뿐, 할례는 불필요하다는 교회의 공식적인 결정(사도15장)을 낳는 배경이 되었다.
한편, 본절이 '이야기하고 있을 때'에서 '이야기하다'(말하다)는 단지 말하는 동작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타 레마타 파우타'(ta remata tauta; these words), 즉 '이 복음의 메세지들'을 전하고 있을 때를 말한다.
베드로가 코르넬리우스 집안에서 설교하는 것은 사적인 말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맡기신 사명으로 '복음'을 힘있게 증거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리고 '내리셨다'로 번역된 '에피핍또'(epipipto)는 부정(不定) 과거 3인칭 단수이다.
여기에서 부정 과거가 사용된 사실은 성령 강림이 지속적이었다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그리고 '예측하지 못한 가운데' 전적으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순식간에 이루어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른 민족들에게도 성령의 선물이 쏟아져 내리는 것을 보고' (45)
'헤 도레아 투 하기우 프뉴마토스'(he dorea tu hagyu pneumatos; the gift of the holy spirit)는 '거룩한 영(성령)의 선물'로 번역되었다.
신약성경 저자들은 종종 성령의 부어주심이 하느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선물(요한4,10; 사도8,20)임을 나타내기 위해 이 '도레아'(dorea)를 사용한다.
이처럼 하느님께서 성령이라는 은총의 선물을 할례없는 이방인들에게도 부어주심은 그들도 유대인들과 동일하게 하느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대상임을 확실하게 증거해 준다.
한편 '쏟아져 내리는 것'으로 번역된 '엑케퀴타이'(ekkechytai)는 '붓다', '흘리다', '쏟다'를 의미하는 '엑케오'(ekcheo)의 수동태 완료 3인칭 단수이다.
이 '엑케오'(ekcheo)가 본절에서는 위로부터 선물이 '넘치도록' 주어졌다는 것을 표현한다. 특히 이 동사가 수동태로 쓰여진 것은 이 일을 행하시는 주체가 바로 하느님이심을 보여준다.
성령이 쏟아져 내림은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아낌없이 거저 주시는 선물인 것이다. 그리고 이 동사의 시제가 완료로 표현된 것은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놀란 것보다 성령 강림이 먼저 이루어졌음을 보여 준다.
그렇다면, 그들은 성령께서 강림하실 때는 왜 느끼지 못하다가 왜 성령 강림 후에 인식하고 놀랐는가?
이것은 성령에서 강림한 순간은 아무런 소리도, 표적도 없었기 떄문이며, 강림한 직후에 성령받은 사람들이 신령한 언어를 말하며<'랄룰톤 글롯사이스'(lalunton glossais); speaking with (in) tongues> 하느님을 찬송하는<"메갈뤼논톤 톤 데온'(megalynonton ton theon); praising(magnifying) god> 등 외적 표시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것은 과거 오순절날 성령 강림이 모든 사람들이 알 수 있게 이루어진 것과는 대조되는 일이다(사도2,1~3).
성령께서 임하는 양식도 여러 가지이며, 많은 경우 이와같이 성령은 받은 당사자가 아닌 제3자의 경우에는, 받은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표적을 보고 들은 이후에야 알 수 있음을 암시한다.
신령한 언어(방언)는 코르넬리우스 집안 사람들이 성령을 받았음을 보여 주는 하나의 구체적인 표징이었다.
베드로 역시 이 성령의 부어 주심과 그것에 따른 신령한 언어를 말함을 보고, 그것은 이방인인 코르넬리우스의 사람들이 하느님의 계약(언약)에 포함되었음을 보여 주는 명백한 증거로 인식하고 그들에게 세례를 주었다(47절).
한편, 신령한 언어를 '말하면서' 와 '찬송하는 것'에 해당하는 원어가 모두 현재 분사형으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성령받은 사람들이 신령한 언어(방언)를 말하고 하느님을 찬송하는 (높이는) 행위가 얼마 동안 지속되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한동안 지속되는 이러한 행동을 보고, 베드로와 그 일행은 이방인 코르넬리우스의 집에 하느님의 은총이 확실히 내리고 있음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이처럼 구원의 증표인 성령이 이제껏 하느님의 구원의 은총 밖에 있다고 여겨졌던 이방인들에게 확실히 부어지고 있음을 본 베드로 일행은 그들에게 세례주는 것을 주저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부활 제6주일 복음(요한15,9~17)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13)
요한 복음 15장 13절은 인간의 사랑 가운데 최고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가르쳐 주시는 말씀이다.
그것은 자신의 친구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까지도 기꺼이 내놓는 희생의 실천이 뒤따르는 사랑이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자신의 친구들은 어떤 사람들을 말하는가?
'친구들을'로 번역된 '톤 필론'(ton philon; his friends)은 사랑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필론'(philon)은 '필로스'(philos)의 복수 소유격인데, '필로스'(philos)가 형용사로 쓰일 때에는 '사랑받는', '사랑하는'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친구들'이란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임을 말한다.
요한 복음 15장 13절을 통해 이러한 사랑 가운데서도 최고의 사랑은 바로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사람의 목숨은 온 우주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지만(마태16,26),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목숨을 친구를 위해 내어준다면, 예수님 말씀처럼 이것은 친구에 대한 사랑이 최고의 사랑임을 분명하게 입증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다음날 당신 자신이 지실 십자가의 사랑이 최고의 사랑임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동시에 앞으로 제자들도 이러한 당신의 삶을 본받아 희생적인 사랑을 실천하라고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당신 목숨까지 내놓으실 정도로 열절히 사랑하시는 이들은 누구일까?
일차적으로는 제자들을 생각할 수 있겠고, 당신 친히 감당하실 대속적인 죽음과 관련이 있기에 '많은 이들'이 포함된다(마르10,45).
여기서 '톤 필론'(ton philon; his friends) 속에는 예수님을 믿어 의롭게 된 모든 믿는 이들과 앞으로 같은 은총에 참여하게 될 모든 이들이 포함된다.
사도 바오로는 이들을 '불경한 자들'이라고 증거했다(로마5,6). 이것은 예수님께서 믿는 이들이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믿는 이들을 위해 당신 목숨을 내놓으심으로써 이미 믿는 이들을 친구로 생각하셨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믿는 이들이 힘써 실천해야 할 사랑이 친구를 위해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의로운 이나 착안 사람을 위해서 간혹 용감하게 죽는 이들이 있을지 모르지만(로마5,7), 예수님께서는 믿는 이들이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믿는 이들을 위해 돌아가심으로써 사랑의 진수를 보여 주셨고(로마5,8), 이것이 바로 믿는 이들인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사랑의 기준인 것이다.
실제 역사 속에서도, 예수님의 12사도 가운데 사도 요한을 제외한 열 명의 사도가 예수님께 대한 사랑과 형제들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여 모두 복음을 위해 순교하였고, 그리스도교 역사 가운데 수많은 순교자들과 복음의 증거자들이 예수님과 인류를 자신의 목숨보다 더 사랑하여 예수님의 이 말씀을 실천했던 것이다.
2021년 5월 9일 [부활 제6주일]
우리는 받아야 할 수 있고 살 수 있는 존재다.
(요한17,11-12)
11 예수님께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기도하셨다.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키시어,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 죄인인 우리들이 예수님, 하느님과 하나가 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그리스도의 피, 십자가의 대속이다. 예수님은 지금 그 죄인들, 친구들을 위해 당신의 죽음을 위한 기도하시는 것이다.
(요한15,13) 13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요한15,9)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12 저는 이들과 함께 있는 동안,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켰습니다. 제가 그렇게 이들을 보호하여,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멸망하도록 정해진 자 말고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 창조 이전 선택받은 우리의 구원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구원은 우리가 이루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창조주 성부께서 계획하시고 아드님이신 성자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시고 보호자 성령께서 그 십자가를 진리로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시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사랑, 은혜(은총)가 하시는 것이다.
(에페1,4) 4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으로(십자가로)
(2티모1,9) 9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행실이 아니라 당신의 목적과 은총에 따라 우리를 구원하시고 거룩히 살게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이 은총(은혜)은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미 우리에게 주신 것인데,~ (외 히브4,3 1베드1,20 로마8,29 참조)
= 그런데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멸망하도록 정해진 자도 있다고 하신다.
(시편41,10) 10 제가 믿어 온 친한 벗마저, 제 빵을 먹던 그마저 발꿈치를 치켜들며 저에게 대듭니다.
(요한6,70) 70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 열둘을 뽑지 않았느냐? 그러나 너희 가운데 하나는 악마다.”
= 주님은 열두명을 사도로 뽑으시고 그중 한명(유다)은 마귀의 역할을 하도록 주님 자신이 택하시어 삼년반 동안 당신 곁에 두셨다는 말씀이다. 그것은 *첫째 주님의 완전성을 드러내시기 위함이다. 주님은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이루시기 위해(요한6,38-39 히브10,7), 그리고 성경에 이미 기록되어 있는 주님에 관한 일(대속, 배반)을 이루시기 위해 ~
(루가24,44.46) 44 그리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말한 것처럼, 나에 관하여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기록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야 한다.” 46 이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 ①첫째 주님은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시기 위해 유다를 선택하시어 당신 곁에 두신 것이다.
②둘째 그리스도의 도덕적인 완전성에 대한 편견 없는 증거를 제공하시기 위해 마귀의 편인 유다를 곁에 두셨다. 주님의 다른 사도들과 구원 받은 많은 이들이 주님의 완전성을 증거 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주님의 편이었기에 그들의 증거가 편향된 증거로 폄하 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주님은 원수를 곁에 두시고 그 원수에게도 도덕적 완전성을 인정받으셨던 것이다. 마귀의 편이었던 유다는 주님곁에 꼭 붙어서 어떻게든 주님의 뜻을 거부하며 흠을 잡으려 했던 자였다. 그러나 결국 그는 주님의 결점이나 흠을 발견하지 못하고 자신은 “죄 없는 분을 팔아 넘겨 죽게 만들었으니 나는 죄를 지었소.” 라는 고백을 하고 죽었다.(마태27,4) 그 고백으로 주님의 완전성이 입증된 것이다.
③셋째 죄의 흉악함을 드러내고, 그러한 죄에 빠져있는 이들에게 경고하시기 위함이다. 유다는 구원자와의 교제가 허용되었던 최고의 특권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시고, 자고 했던 자도 하느님이 함께 하셔서 그를 돌이키시지 않으면 그는 하느님마저도 자신의 유익을 위해 팔아먹을 수 있는 흉악한 죄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엄청난 표징과 기적을 목격하고, 영적인 가르침을 듣고, 지극히 경건한 사람들과 교제를 한다 할지라도 하느님의 이끄심이 없이는 결코 거듭날 수 없다는 것을 유다의 선택을 통하여 보여주신 것이다.
④넷째 교회(하느님백성)라 자처하는 이들 중에 양의 옷을 입은 늑대가 있음을 암시해 주신 것이다. 유다는 신자로 자처한 사람이다. 그는 세상(자신)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재산과 가족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다.(나라와 민족을 위한 유다의 사랑이다) 그는 선교도 했고(마태10,4) 기적도, 귀신도 쫓아냈다. 주님은 그에게도 그런 권세(權勢)도 허락하셨던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어떤 반대도 드러내지 않았고, 최후의 날까지 주님 곁에 남아 있었다. 심지어 그는 마지막 파스카 만찬에 참여하여 예수님께서 겉옷을 벗고 발을 씻겨 주실 때, 태연하게 자신의 발을 예수님께 맡겼던 사람이다. 얼마나 철저하게 자신을 감추었는지, 다른 제자들이 끝까지 그가 가짜인 줄 몰랐다.
그것은 인간의 생각과 하느님의 생각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하느님에 의해 새롭게 재 창조되기 전에 우리 인간들의 판단력은 신뢰할만한 것이 못 된다. 영적인 것과 전혀 상관없는 죄인들은 눈에 보이는 피상적인 것들만 판단의 근거로 삼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 영적인 분별력이 없었던 제자들이 마귀인 유다를 식별해 내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 또한 올바른 판단력을 발휘하여 사람과 사건, 상황들을 잘 해석하고 있는가를 오늘 살펴봐야 할(하는) 것이다.
(2코린5,16) 16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부터 아무도 속된 기준으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속된(세상적, 육적) 기준으로 이해하였을지라도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이해하지 않습니다.
= 하느님은 죄인들을 가리켜 소경이라 하셨다. 죄인들은 이 세상의 가치, 기준으로 판단하며 정해 버리는 우(憂)를 범하기 때문이다. 인간 유다가 그랬다.
독서(1요한4,7-8) 7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8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 하느님에게서 오는 사랑을 받은 사람이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이며, 그 받은 사랑을 이웃에게 전해주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먼저 기도로 사랑을 깨달아야(받아야)한다. 혹자는 기도는 열심히 하면서 정작 실천이 없다면, 그 사람의 사랑은 탁상공론(卓上空論)일 따름이라고 하는데 아니다.
기도로 하느님의 사랑(아가페)을 받았다(안다)면 반드시 그에게서는 사랑이 나올 수밖에 없다. 기도(祈禱)하면서 남을 돕는데 인색하고, 더 가지려고 만 하는 사람은 기도를 잘못하고 있는 것이다. 즉 하느님의 뜻이 아닌 자신의 뜻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기에 그 자신의 것을 이웃과 나눌 때, 인색(吝嗇)할 수밖에 없다.
그 나눔은 자신의 의(義)를 위해 형식적으로 할 뿐이다. 그보다 유다가 더 잘한 것이 아닌가? 그래서 먼저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먼저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의 것을 나누는 그 실천 그 사랑이 먼저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당신 외아들을 속죄 제물로 내주신 그 사랑을 받는 것’이 먼저다.
그 하늘의 용서, 사랑을 모르고 자신의 사랑을 실천한 것이 ‘유다’이다. 나라를, 민족을, 가난한 사람, 그들을 위해 가족까지 버리며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이다. 그 유다보다 육적 사랑을 한 사람이 어디 있는가(보편적) 그러나 그를 마귀라 하신 것을 잊지 말자.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것이 마귀(사탄)이다.
(마르8,33) 33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을 보신 다음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며 꾸짖으셨다.
= 하느님의 사랑은 인간의 지각(知覺)으로는 알 수 없는 사랑이기에 기도가 먼저인 것이다. 그래서 보호자 성령을 보내주신 것이고, 그 성령께서 이끌어 주셔야 깨달을 수 있고, 알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것이다.
(에페3,18-19) 18 그리하여 여러분이 모든 성도와 함께 (하느님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 깨닫는 능력을 지니고, 19 인간의 지각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이렇게 하여 여러분이 하느님의 온갖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빕니다.
☨보호자 성령님! 하느님의 사랑을 먼저 담고 그 사랑을 전하는 사랑을 하게 해 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