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7일 주일
[삼위일체 대축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 (요한3,16-18)
제1독서 <주님은, 주님은 자비하고 너그러운 하느님이다.> (탈출34,4ㄱㄷ-6.8-9)
4 모세는 주님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대로 아침 일찍 일어나 돌판 두 개를 손에 들고 시나이 산으로 올라갔다. 5 그때 주님께서 구름에 싸여 내려오셔서 모세와 함께 그곳에 서시어, ‘야훼’라는 이름을 선포하셨다. 6 주님께서는 모세 앞을 지나가며 선포하셨다. “주님은, 주님은 자비하고 너그러운 하느님이다. 분노에 더디고 자애와 진실이 충만하다.” 8 모세는 얼른 땅에 무릎을 꿇어 경배하며 9 아뢰었다. “주님, 제가 정녕 당신 눈에 든다면, 주님께서 저희와 함께 가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백성이 목이 뻣뻣하기는 하지만, 저희 죄악과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저희를 당신 소유로 삼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화답송 다니 3,52ㄱ.52ㄷ.53.54.55.56(◎ 52ㄴ)
◎ 세세 대대에 찬송과 영광을 받으소서.
○ 주님,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
○ 영광스럽고 거룩하신 당신 이름은 찬미받으소서. ◎
○ 거룩한 영광의 성전에서 당신은 찬미받으소서. ◎
○ 거룩한 어좌에서 당신은 찬미받으소서. ◎
○ 커룹 위에 앉으시어 깊은 곳을 살피시는 당신은 찬미받으소서. ◎
○ 하늘의 궁창에서 당신은 찬미받으소서. ◎
제2독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 (2코린13,11-13)
11 형제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자신을 바로잡으십시오. 서로 격려하십시오. 서로 뜻을 같이하고 평화롭게 사십시오. 그러면 사랑과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 12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인사하십시오. 모든 성도가 여러분에게 안부를 전합니다. 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기를 빕니다.
복음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요한3,16-21)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18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19 그 심판은 이러하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20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21 그러나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삼위일체 대축일 제1독서(탈출34,4ㄱㄷ-6.8-9)
그때 주님께서 구름에 싸여 내려오셔서 모세와 함께 그곳에 서시어, '야훼'라는 이름을 선포하셨다. 주님께서는 모세 앞을 지나가며 선포하셨다. "주님은, 주님은 자비하고 너그러운 하느님이다. 분노에 더디고 자애와 진실이 충만하다." (5~6)
'모세와 함께 그곳에 서시어'에 해당하는 '와이트맛체브 임모 샴'(waithyatseb immo sham)은 직역하면 '그리고 그가 그와 함께 거기에 섰다'이다.
'함께 서다'라는 표현은 주님께서 모세와 한편이 되어 어떤 대상을 대적하여 섰음을 암시하면서, 동시에 함께 선 장면이 주님의 권세와 능력으로 말미암아 형용할 수 없는 지극한 위엄을발산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것은 주님께서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해 달라는 모세의 간구(탈출33,12.13)에 대한 분명한 응답으로서(탈출34,10.11) 주님께서는 모세와 함께 서서 앞으로 맞게 될 가나안 족들(탈출34,11)과 싸우실 것임을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탈출기 34장 5절에서 모세는 백성을 위한 중재 기도를 드리면서 과거에 처음 하느님의 소명을 받았을 때처럼 (탈출3,13~15), 자신과 함께 하실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백성들에게 선포할 하느님의 자기 계시의 필요성을 호소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해방시킬 때와 마찬가지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실 때에도 역시 하느님의 동행하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지금 모세의 간구에 대한 응답으로서 당신이 어떤 분이신지 가장 잘 알 수 있는 '야훼라는 이름으로'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를 직접 선포하고 계신 것이다(탈출34,6).
'주님은, 주님은 자비롭고 너그러운 하느님이다'(6)
주님께서는 처음 모세를 부르실 때 '나는 있는 나다'(탈출3,14)라고 자신을 계시하시며 그 이름을 '야훼'('예흐와'; yehwa)로 알려 주셨다(탈출3,15).
바로 그 '야훼'께서는 이집트에서 기적들을 행하시고, 홍해 바다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해 내시며, 광야에서 인도하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임으로써 그 어느 다른 존재에 전혀 의존하지 않으시는 '(스스로)있는 자'라는 전능하신 주님의 이름 '야훼' 되심을 입증해 주셨다.
이제 주님께서는 자신과 동행하여 달라는 모세의 간구(탈출33,12.13)에 대한 응답으로 다시한번 그 이름을 선포하심으로써, 당신이 바로 과거에 이스라엘을 인도하셨던 그 주님인 사실과 더불어 앞으로도 계속 당신 백성을 인도하여 주실 것을 밝히는 것이다.
또한, 탈출기 34장 6절의 '하느님'에 해당하는 '엘'(EL)은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방의 '신'(신명32,13)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러나 천지(우주)를 만드신 전능하신 '하느님'을 의미할 때에는 그 '하느님'(EL)의 속성을 묘사하는 형용사들이 수반되는 것이 보통이다.
여기서는 특별히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보여주신 그 '선하심'의 속성들이(탈출33,19; '나는 나의 모든 선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즉 하느님의 속성들 가운데 본절의 '자비하고 너그럽고 분노에 더디고 자애와 진실이 충만한' 그 속성이야말로 다시 이스라엘을 당신의 백성들로 회복시키시며,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까지 동행하시겠다고 하신 하느님 당신의 마음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삼위일체 대축일 복음(요한3,16~21)
"그 심판은 이러하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19)
요한복음 3장 19절은 요한 음 3장 18절 후반부에서 나온데로,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는 자가 심판을 받는 이유를 다시한번 더 밝혀 강조한다.
'그 심판은 이러하다'에서 '심판'에 해당하는 '크리시스'(krisis; condemnation; verdict)는 실질적 의미에 있어서 18절에 나오는 '심판하다'에 해당하는 '크리노'(krino)와 거의 동일하다.
불신자들이 심판받는 보다 구체적인 이유는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자신의 행위가 악하여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에서 동사 '엔'(en; were)은 미완료형 이므로, 이 사람들의 과거 전력을 드러낸다.
즉 희랍어에서 미완료형은 과거에 계속 혹은 반복되는 동작을 나타내기 때문에 이 사람들의 행위가 변함없이 항상 악할 뿐이었다고 규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또한 형용사 '악한'에 해당하는 '포네라'(ponera; evil)가 서술적인 위치에 있어서 이 사람들의 행위의 성격을 나타내고 있는데, 이 단어가 마귀의 속성과 관계가 있다.
이 형용사는 '악한'뿐만 아니라 '못쓰게 된', '나쁜', '가치없는', '타락한' 등 전혀 바람직하지 못한 것을 나타내는 복합적 의미로 쓰였다.
즉 이 단어는 그들이 마귀의 속성과 관련된 악행을 계속하여 저질러 왔으므로,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거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에서 '빛'에 해당하는 '포스'(phos; light)는 태양과 같은 발광체를 나타내며, '어둠'에 해당하는 '스코토스'(skotos; darkness)는 이 빛이 차단된 상태를 나타낸다.
그러나 여기서는 상징적인 의미로 쓰였는데, 성경은 메시야에 의해 선포된 복음이나 구원을 '빛'으로 표현하고(마태4,16; 사도26,18; 에페5,13), 죄와 불신앙의 상태를 '어둠'으로 표현하게 된 것이다(마태4,19; 로마2,19; 1티모5,4; 1베드5,13).
요한복음 3장 19절에서는 예수님께서는 원조 아담이 범죄한 이후 타락한 본성의 소유자인 인간이 죄와 불신앙을 더 사랑함을 보여 주기 위해 이러한 표현을 사용했다.
그리고 '더'로 번역된 '말론'(mallon; rather)은 '더'라는 뜻의 비교급 부사로도 쓰이지만(필리1,12; 마태10,48; 루카18,39), '~대신에 도리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마태10,6; 마르5,26; 로마14,13).
그렇다면 요한복음 3장 19절은 인간이 마땅히 빛을 사랑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대신에 도리어 어둠을 사랑하는 것에 대한 지적이다.
이것은 인간이 그 행위가 악하므로 빛에 대해서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이 없으며, 어둠만을 수용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당시 유대인들이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거부한 근본 이유이다.
제 부모님을 잘 알고 있는 교우분들 가운데 어느 분이 말씀하십니다. “신부님은 아버지를 참 많이 닮으셨네요.” 옆에 있는 분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신부님은 어머니를 쏙 빼닮으셨어요.” 저는 이 두 분께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였습니다. “제 어머니와 아버지가 서로 닮으셨어요.”
사실 생각해 보면 제 어머니와 아버지가 태생적으로 닮았을 리는 없습니다. 그러나 두 분이 서로 사랑하고 한 가정을 함께 책임지며 살아가는 동안 습관, 식성, 생활 방식, 가치관 등을 공유하게 되었을 것이고, 그러다 보니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까지도 비슷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비단 제 부모님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본당 주임 신부 시절, 수많은 부부를 바라보며 ‘사랑하면 서로 닮는다.’라는 말이 떠오를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삼위일체 하느님께서는 닮은 정도가 아니라 온전히 하나를 이루시지 않겠습니까? 유한한 사랑을 하는 이들이 서로 닮는데, 삼위일체 하느님께서는 영원무궁토록 무한한 사랑을 하고 계시니 말입니다. 그러면서도 세 위격은 서로의 존재를 침해하지 않습니다.
에리히 프롬이 말하였듯이 사랑은 본디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진정으로 사랑하는 이는 상대방을 자기 방식대로 끌어들이지 않고, 상대방의 존재 방식을 있는 그대로 잘 간직하도록 애써 줍니다. 그리하여 성부, 성자, 성령께서는 서로 일치하시는 가운데서도 성부의 위격이 다르고 성자의 위격이 다르고 성령의 위격이 다릅니다.
그렇습니다. 삼위일체는 사랑의 신비입니다. 그리고 외아드님께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써 이 사랑의 신비 안에 우리를 초대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매 순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모든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재호 루카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