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리아’를 아세요? 전성훈 2015.02
느긋한 마음으로 차분하게 생각하면서 기사를 읽을 수 있는 것은 인터넷보다는 역시 신문이 어울린다. 특히 주말 특집란은 우리 삶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듬뿍 제공해주는 풍성한 기사거리가 넘쳐난다. 집에서 신문을 보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시절부터이다. 글 읽기가 더딘 아들을 걱정하신 부모님께서 짜내신 묘안이 신문 연재소설을 읽도록 하신 것이었다. 덕분에 책과 자연스럽게 가까이 지내게 되어 책은 내 평생의 친구가 되었다.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나는 것은 1964년경 동아일보에 연재되었던 홍성원의 ‘디데이의 병촌’이라는 소설이다.
최근에 신문을 읽다가 알게 된 ‘아포리아’(Aporia)라는 말, 사전적인 의미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로, 원래는 '막다른 골목'정도의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라고 설명되어 있다.
이와 관련 연세대 김상근 교수는 “아포리아 시대의 인문학” 강의에서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아포리아는 배가 좌초되어서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태를 고대 그리스인들이 ‘아포리아’라고 했다. 아포리아는 위기보다도 더 심각한 단계다. 위기는 도움을 청하거나 노를 저어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아포리아는 그보다 더 심각한 ‘길 없음’의 상태에 접어들었음을 말한다.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태에 접어들었을 때 우리는 상대방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남에게 손가락질을 한다.] (조선일보 토일섹션 2015.1.24자)
‘아포리아’라는 어휘를 대하는 순간 과거 직장생활이 떠올랐다. 오랫동안 나는 우리나라 굴지의 해운회사에서 직장생활을 하였다. 주로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해운회사에 직원들은(전문적인 해기사 제외) 항만시설, 선박, 바다의 생리 그리고 선원들 삶의 애환에 대하여 잘 모른다. 이러한 풋내기 육상 근무자들의 선박에 대한 업무 이해도를 높이고자 회사에서는 승선교육을 실시하였다. 일정한 자격이 되면 직원들에게 화물선을 타고 항구에서 화물을 싣고 내리는 전 과정을 배우게 하는 교육이다. 회사 방침에 따라 인천항에서 화물선을 타고 부산항을 거쳐서 일본 북해도 쓰가루 해협과 베링해를 지나서 태평양을 횡단하였다. 18일 동안의 항해 끝에 아름다운 항구 도시인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LA, 포틀랜드 그리고 캐나다 밴쿠버에 갔었다. 그 덕분에 몸무게가 7kg이나 빠졌던 벌써 30년도 넘는 먼 옛날이야기다.
해운회사에서 선박의 좌초나 침몰 사고는 때때로 발생하며 그 때마다 회사는 비상사태가 된다. 우선 무엇보다도 배를 타고 있는 선원들의 인명 안전이 최우선이다. 다음에는 배에 실려 있는 화물과 화물 운송을 의뢰한 수화주들과의 관계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선박의 보험회사 및 선박을 빌려서 운항을 할 경우 그 선박 소유주 등 수많은 관련자들과의 문제 해결에 커다란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이러한 최악의 상황이 생기면 수습하는 과정에서 아포리아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내가 아닌 다른 이에게 책임을 전가 시키려고 하는 행위, 즉 “아포리아”는 인간의 원초적인 심리적 소인에서 생기는 현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선박에만 국한되는 일은 아니다. 작년에 발생한 비극적인 ‘세월호’ 침몰 사고는 전형적인 아포리아 증후군에 우리사회가 얼마나 취약한지 잘 보여주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에 나에게도 ‘아포리아’ 증세가 있었다. 근무 부서를 이동할 때, 진급이 지연되거나 누락되었을 때, 그리고 명예퇴직이라는 미명하에 타의로 회사를 그만 두었을 때 나 또한 극심한 ‘아포리아’ 역병을 앓았다.
실력부족과 상사들과의 원만하지 못한 인간관계 등을 반성하지 않고 경영진과 인사고과를 담당했던 사람들을 무척 원망하였다. 직장을 그만 두고 나서 다른 곳에서 새로운 일을 하면서도 내 잘못보다는 상대방에 대한 비방과 비난을 앞세웠다.
하지만 그러한 내 행동이 일시적인 분풀이는 될지언정 사건이나 일 처리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세상을 살다보면 혼자서는 도저히 감내하기 어려운 시련은 늘 있기 마련이다. 힘들고 괴롭고 살맛나지 않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드리는 것이 바람직할까? 부정적인 생각에 빠져서 세상을 향하여 치사하고 더럽다고 욕설을 퍼붓고 스스로의 신세를 한탄하면서 지내야하나!
아니면 긍정적인 마음으로 현실을 직시하여 다시 시작할 길을 모색할 것인가!
내 삶의 길은 내 몫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조금씩 바뀌었다.
타인을 원망하며 탓하지 않고 나 자신을 들여다보며 평정심을 서서히 찾아갈 수 있었다. ‘아포리아’를 장애물로 대할지 디딤돌로 만들지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온전히 나 혼자 감당해야할 내 몫인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