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델
제1장(1)
1 아하스에로스 대왕 제2년 니산월 초하룻날 베냐민 지파에 속하는 모르드개가 꿈을 꾸었는데, 그는 야이르의 아들이며 야이르는 시므이의 아들이며 시므이는 키스의 아들이었다.
2 모르드개는 수사에 사는 유다인으로서 왕궁에서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이었다.
3 그는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이 유다의 왕 여고니야를 위시하여 예루살렘에서 잡아온 많은 포로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4 그가 꾼 꿈이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울부짖는 소리와 대소동, 뇌성과 지진으로 지상은 온통 뒤죽박죽이었다.
5 그때 두 마리 커다란 용이 다가서더니 금시라도 서로 싸울 기세를 보이며 크게 으르렁거렸다.
6 그 소리에 자극을 받아서 모든 민족들이 의로운 백성을 치려고 전쟁 준비를 하였다. 어둡고 음산한 날이 왔던 것이다.
7 그 날 온 땅은 고통과 번민과 불안과 대혼란으로 뒤덮였다.
8 의로운 백성은 자기들에게 닥쳐올 재앙을 눈앞에 보고 겁에 질려 최후의 한 사람까지 죽을 각오를 하고 하느님께 부르짖었다.
9 그때에 그 부르짖는 소리에서, 마치 작은 샘에서 물이 흘러나오듯이 큰 강이 생겨나 물이 넘쳐흘렀다.
10 그러자 태양이 뜨고 날이 밝아지더니 그 비천한 백성이 높여져 힘센 자들을 집어삼켰다.
11 모르드개는 꿈에서 깨어나, 자기가 꾼 꿈과 그 속에 나타난 하느님의 계획에 대하여 생각하며 온종일 그 뜻이 무엇인가를 알아내려고 무진 애를 썼다.
12 모르드개는 왕궁을 지키는 어전내시 빅단과 테레스 두 사람과 함께 궁에서 살고 있었다.
13 그때 그 두 내시가 음모를 꾸미고 있었는데 모르드개는 이것을 눈치챘다. 마침내 그들이 아하스에로스 왕을 암살하려고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낸 그는 그 사실을 왕에게 알렸다.
14 왕은 그 두 내시를 심문하게 하여 자백을 받고는 그들을 사형에 처했다.
15 그리고 왕은 이 사건을 그의 연대기에 기록하게 하였고 모르드개도 자기대로 그것을 기록하여 두었다.
16 그 후 왕은 모르드개에게 궁 안의 벼슬을 내리고 많은 선물을 주어 그를 치하하였다.
17 그러나 아각인 함다다의 아들 하만은 왕의 총애를 받던 사람인데 그 두 어전 내시의 사건에 대한 보복으로 모르드개를 해칠 생각을 품었다.
제1장(2)
1 아하스에로스 시대의 일이었다. 아하스에로스는 인도에서 에티오피아에 이르는 127지방을 다스리고 있었다.
2 아하스에로스는 수도 수사(수산) 성에서 왕위에 올라,
3 나라를 다스린 지 3년째 되던 해에, 큰 잔치를 베풀고 고관대작을 비롯하여 페르시아와 메대의 장군과 귀족과 각 지방 수령들을 초대하였다.
4 이리하여 왕은 180일이라는 오랜 시일에 걸쳐 왕실의 거창한 부귀와 눈부신 영화를 자랑하였다.
5 이 기간이 끝나자 왕은 다시 궁궐 안뜰 정원에다 7일 동안 잔치를 베풀고, 모든 수사 성민을 가리지 않고 초대하였다.
6 정원에는 하얀 실과 자줏빛 털실로 짠 휘장이 쳐져 있었다. 그 휘장은 흰 대리석 기둥에 달린 은고리에 모시실과 붉은 털실로 꼰 끈으로 매어져 있었고, 반암석과 흰 대리석과 조개껍질과 갖가지 보석들을 박아 넣은 바닥에는 금은으로 만든 평상들이 마련되어 있었다.
7 갖가지 모양으로 된 금술잔이 나왔고, 왕이 내리는 술은 한이 없었다.
8 그러나 “술을 마셔도 법도를 따라 억지로 마시게 하는 일은 없도록 하라.”는 왕의 분부가 있어 저마다 원하는 대로 마음껏 마시게 하였다.
9 한편 와스디 왕후도 아하스에로스 왕궁에다 잔치를 베풀고 부인들을 초대하였다.
10 7일째 되는 날, 왕은 취흥이 돋아 자기를 모시는 7내시 므후만, 비즈다, 하르보나, 비그다, 아박다, 제달, 가르가스에게
11 “와스디 왕후를 화관으로 단장시켜 모셔오라.”고 분부를 내렸다. 왕은 왕후의 아름다움을 백성과 고관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다.
12 그러나 와스디 왕후는 내시들이 전하는 말을 듣고도 나오지 않았다. 왕은 화가 치밀어 올라 견딜 수가 없었다.
13 왕은 법에 밝은 학자들에게 이 일을 어떻게 다스리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이런 일은 법학자와 법관들에게 문의하는 것이 관례가 되어 있었다.
14 페르시아와 메대 사람으로서 왕을 가까이 모시는 대신 일곱이 있었는데, 그들은 가르스나, 세달, 아드마다, 다르싯, 메레스, 마르스나, 므무간이었다. 그들은 높은 벼슬자리에 앉아 왕을 가까이 모시는 사람들이었다.
15 왕이 그들에게 물었다. “내가 내시들을 시켜 내린 분부를 와스디 왕후가 거역했으니, 법대로 다스린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소?”
16 므무간이 앞으로 나서며 왕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와스디 왕후는 임금님께만 잘못을 저지른 것이 아닙니다. 아하스에로스 왕국 각 지방에 있는 모든 신하들과 백성에게도 못할 일을 한 셈입니다.
17 왕후의 일은 틀림없이 모든 부녀자들에게 알려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부녀자들은 와스디 왕후가 임금님의 부르심을 받고도 어전에 나타나지 않았다더라고 하면서 남편을 업신여기게 될 것입니다.
18 왕후의 일은 오늘 당장 페르시아와 메대의 고관 부인들의 귀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리고 저희들이 무엇이라고 하든지 그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희 사내들 체면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19 그러니 임금님께서만 좋으시다면, 다시는 와스디가 어전에 나타나지 못하도록 명을 내리십시오. 그리고 이 일을 페르시아와 메대의 법령에 써 넣어 결코 뜯어 고치지 못하게 하시고 왕후의 자리는 그보다 나은 분에게 물려주십시오.
20 이 칙령이 이 큰 나라 방방곡곡에 공포되면, 모든 부녀자들은 위아래 없이 남편을 공대할 것입니다.”
21 이 말이 왕과 대신들의 마음에 들었다. 왕은 므무간의 의견을 받아들여,
22 가정은 마땅히 남자가 다스려야 한다는 칙서를 각 지방의 문자와 각 민족의 말로 써서 전국에 돌렸다.
제2장
1 이런 일이 있은 지 얼마 뒤, 아하스에로스 왕은 노여움이 가라앉으면서 와스디 생각이 났다. 그리고 와스디에게 내린 처단이 마음에 걸렸다.
2 시종들이 그 낌새를 알아채고 왕에게 말했다.
3 “이 나라 각 지방에 간선관을 두시어 아름다운 처녀들을 모두 수사 성에 모아들이십시오. 궁녀들을 맡아보는 내시 헤개에게 그들을 맡기어 몸치장을 시키신 다음
4 눈에 드시는 처녀를 와스디 대신 왕후로 삼으심이 좋을까 합니다.” 왕은 그 말이 마음에 들어 그대로 하기로 하였다.
5 그때 수사 성에는 모르드개라는 한 유다인이 살고 있었다. 그는 베냐민 지파에 속한 야이르의 아들로서, 할아버지는 시므이, 증조부는 키스였다.
6 모르드개는 유다 왕 여고니야가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사로잡혀 올 때 예루살렘에서 함께 잡혀온 사람이었다.
7 그에게는 부모 없는 사촌 누이가 하나 있었는데 이름은 에스델(에스더)이라고도 하고 하다사라고도 했다. 에스델은 몸매도 아름다웠고 용모도 단정하였다. 그는 양친을 여읜 뒤 모르드개의 양녀로 들어가 있었다.
8 어명이 공포되자 많은 아가씨들이 뽑히어 수사 성에 올라와 궁녀들을 맡아보는 헤개에게 맡겨졌다. 이렇게 궁궐에 불리어 와서 헤개에게 맡겨진 아가씨들 가운데 에스델도 끼여 있었다.
9 이 아가씨는 유난히 헤개의 눈에 들어 그의 굄을 받게 되었다. 헤개는 곧 몸치장에 쓰이는 것들과 음식을 주며 가장 좋은 궁에서 지내게 하고, 궁궐에서 시녀 일곱을 골라 그를 시중들게 하였다.
10 그런데 에스델은 모르드개가 일러준 대로 자기의 혈족과 인척 관계를 아무에게도 밝히지 않았다.
11 한편 모르드개는 에스델의 일이 궁금하여 날마다 후궁 뜰 앞을 서성거렸다.
12 아가씨들은 12달 동안 몸을 다듬고 나서야 차례로 아하스에로스 왕 앞에 나가게 되어 있었다. 6달 동안 몰약으로 몸을 다듬고 나머지 6달은 부인용 향수와 화장수로 몸을 닦아야 했다.
13 아가씨들이 후궁에서 대궐로 들어갈 때면, 몸치장에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지 다 받을 수 있었다.
14 아가씨들은 하나씩 저녁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아침에 후궁들을 돌보는 내시 사아스가즈가 관리하는 다른 궁으로 가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왕이 그를 특별히 좋아하여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면 다시는 그에게 나아가지 못하였다.
15 마침내 아비하일의 딸로서 사촌 오빠 모르드개의 양녀가 된 에스델의 차례가 왔다. 에스델은 궁녀를 맡아보는 내시 헤개가 정해준 것밖에는 아무것도 달라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에스델은 누가 보든지 아리따웠다.
16 에스델이 어전에 불려 들어간 것은 아하스에로스 7년 10월, 곧 데벳월이었다.
17 왕은 다른 어느 여자보다도 에스델에게 마음이 기울었다. 그리하여 에스델은 모든 처녀를 물리치고 왕의 굄과 사랑을 독차지하게 되었다. 왕은 그의 머리에 화관을 씌우고 와스디를 대신하여 왕비로 삼았다.
18 그리고 왕은 고관대작을 모두 초대하여 에스델 왕비 대관식을 크게 베풀고 전국 각 지방에 휴일을 선포하는 한편 후한 선물을 내렸다.
19 처녀들을 또다시 모집한 일이 있었다. 그 때 모르드개는 궁궐의 대문에서 일을 보고 있었다.
20 에스델은 여전히 모르드개가 일러준 대로 자기의 혈족과 인척 관계를 밝히지 않고 있었다. 모르드개의 슬하에 있을 때나 조금도 다름이 없이 그가 시키는 대로 하였다.
21 모르드개가 궁궐 대문에서 일을 보고 있을 때, 마침 수문장이었던 내시 빅단과 테레스 둘이 왕에게 불만을 품고 암살을 꾀하고 있었다.
22 모르드개가 마침 이 낌새를 알아채고 에스델 왕비에게 고해 바쳤다. 왕비는 그 사실을 모르드개의 이름으로 왕에게 고했다.
23 조사한 결과 그것이 사실임이 드러나 두 사람은 교수형을 받았다. 이 일이 궁중실록에 기록되었다.
제3장
1-6 …
7 아하스에로스 왕 12년 정월, 곧 니산월이었다. 사람들이 유다인을 해치울 날을 정하려고 하만 앞에서 주사위를 던지니, 12월 곧 아달월 13일이 나왔다. 주사위를 그곳 말로는 불이라고 하였다.
8 날이 정해지자 하만이 아하스에로스 왕 앞에 나아가 말했다. “이 나라 백성들 가운데는 남과 섞이지 않는 한 민족이 각 지방에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그 민족의 법은 어떤 민족의 법과도 달라서 임금님의 법마저도 지키지 않으니 도저히 그대로 둘 수가 없습니다.
9 임금님께서만 좋으시다면, 그들을 멸하라는 영을 내려주십시오. 그렇게만 하신다면, 신은 은화 일만 달란트를 달아서 재산 관리인에게 넘겨 내탕고에 넣도록 하겠습니다.”
10 왕은 인장반지를 뽑아, 유다인을 박해하려는 아각 사람 함다다의 아들 하만에게 주며
11 일렀다. “돈은 그대가 차지하여라. 그리고 그 민족은 그대 손에 넘길 터이니 좋도록 처리하여라.”
12 정월 13일에 하만은 왕의 비서관들을 불러 왕의 제후들과 각 지방 총독들과 각 민족 수령들에게 보내는 칙서를 받아쓰게 하였다. 그리고 거기에 아하스에로스 왕의 이름으로 서명하고 왕의 인장반지로 인봉한 다음
13(1) 보발꾼을 시켜 전국 각 지방에 발송하였다. 그 내용은 12월, 곧 아달월 13일 하루 동안에 유다인은 젊은이, 늙은이, 어린이, 여자 할 것 없이 다 죽여 버리고 사유재산을 몰수한다는 것이었다.
13(2) 그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왕 아하스에로스가 인도에서 에티오피아에 이르는 127개 주의 통치자들과 그 예하 지방장관들에게 이 편지를 보낸다.
13(3) 수많은 국민들을 통치하며 온 세계를 지배하는 나는 결코 오만스럽게 권력을 남용하지 아니하고 절도를 지키며 관대하게 다스리기로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나의 백성들에게 파탄 없는 평온한 생활을 영원히 보전하여 주며, 나의 왕국에 사는 사람 누구에게나 문명의 혜택과 방방곡곡 어디에든 자유로이 통행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며, 모든 백성이 열망하는 평화를 이룩하고자 한다.
13(4) 그런데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을 두고 나의 자문관들과 협의하였다. 자문관들 중에 하만이란 사람이 있는데 그는 총명하기가 우리 중에 뛰어났고 그의 꾸준한 정성과 변함없는 충성심이 증명된 사람이며 그 지위는 나 바로 다음가는 사람이다.
13(5) 그 하만이 다음과 같은 정보를 나에게 알려주었다. 즉 이 땅 위에 사는 모든 부족 가운데 한 못된 민족이 섞여 살고 있는데 그들은 모든 민족을 적대시하는 법률을 가지고 있으며, 언제나 왕명을 거역하여 온 백성의 복리를 보장하려는 나의 통치를 방해하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13(6) 그러므로 유별난 이 민족이 온 인류와 사사건건 충돌하며 괴상한 법제도를 가지고, 우리나라의 이익을 해치며 극악한 범죄를 저질러 마침내 이 왕국의 안전을 위협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을 생각하고,
13(7) 나는 다음과 같이 명령한다. 공직의 제일인자이며 나에게는 제이의 아버지인 하만이 그들에게 보낸 편지 속에 지적한 자들은 금년 아달월 즉 십이월 십사일을 기하여 여자나 어린이를 가리지 말고 인정사정없이 그들의 원수의 칼로 모조리 없애버리라.
13(8) 그리하여 어제도 오늘도 우리에게 반대하는 자들을 단 하루에 힘으로 지옥에 몰아넣고, 앞으로 이 나라가 안정과 평화를 완전히 누리도록 하라.”
14 그리고 각 지방에 법령으로 선포될 이 문서의 사본을 모든 민족에게 공포하여 그날에 대비하게 하였다.
15 보발꾼들은 왕명을 받고 급히 흩어져 갔다. 이 법령은 수사 성에도 나붙어 온 수사 성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한편 왕은 하만과 함께 잔치를 차려 먹고 있었다.
제4장
1 이 모든 일을 알게 되자 모르드개는 옷을 찢고 굵은 베 옷을 걸치고 재를 뒤집어쓴 채 대성통곡하며 거리를 지나
2 대궐문 앞까지 와서 멈추어 섰다. 베옷을 입고는 대궐 문으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었다.
3 어명이 법령으로 공포된 각 지방에서도 유다인들은 모두 초상을 당한 때처럼 가슴을 치고 통곡하며 낮이나 밤이나 잿더미에 베옷을 깔고 지냈다.
4 시녀와 내시들이 이 일을 에스델에게 와서 알려주었다. 이 말을 듣고 왕후는 몹시 걱정이 되어 모르드개에게 옷을 내어보내며 그 베옷을 벗고 옷을 갈아입으라고 했으나, 그는 듣지 않았다.
5 에스델은 왕이 지명해 준 내시 하닥을 불러 모르드개에게 나가 곡절을 알아오라고 하였다.
6 하닥이 대궐문 앞 광장에 서 있는 모르드개를 찾아가자
7 모르드개는 자기 몸에 닥친 일과 하만이 유다인을 학살하고 얼마나 많은 돈을 내탕고에 거둬들이겠다고 장담했는가를 들려주었다.
8(1) 그리고 유다인을 학살하라고 수사 성에 내붙인 포고문 한 장을 주면서, 에스델에게 보이고 왕 앞에 나아가 겨레를 살려달라고 애원해 보도록 말을 전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8(2)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왕후께서 내 손에서 자라던 그 비천했던 지난날을 생각해 보시오. 왕국의 제이의 인물인 하만이 우리를 몰살시키라고 왕에게 탄원하였으니, 주님께 기도드리시고 왕에게 간청하여 우리들을 죽음으로부터 구해 주시오.”
9 하닥이 돌아와 모르드개의 말을 에스델에게 전하였다.
10 그러나 에스델은 하닥을 다시 모르드개에게 보내어 이렇게 말하였다.
11 “왕께서 부르시지도 않는데, 궁궐 앞뜰로 어전에 들어갔다가는 남자든지 여자든지 사형을 받는 법입니다. 왕께서 금지팡이를 내밀어 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살아나지 못합니다. 이것은 왕의 신하들은 물론, 전국 각 지방의 백성도 다 아는 일입니다. 그런데 왕께서 저를 부르지 아니하신 지 이미 달포나 되었습니다.”
12 모르드개는 그가 전하는 에스델의 이 말을 듣고
13 에스델에게 다시 이렇게 이르게 하였다. “궁 안에 있다고 해서 왕후만이 유다인 가운데 홀로 목숨을 부지하리라 생각하지 마시오.
14 이런 때에 왕후께서 끝내 입을 다물고 있으면, 다른 데서라도 구원의 손길이 와서 유다인들 앞에 살 길이 열릴 것이오. 그렇게 되면 왕후는 일가친척들과 함께 망할 줄 아시오. 바로 이런 때에 손을 쓰라고 왕후의 자리에 오른 것이 아니겠소?”
15 그러자 에스델은 모르드개에게 이렇게 전갈을 보냈다.
16 “빨리 수사에 있는 유다인들을 한자리에 모으십시오. 그리고 저를 생각하고 사흘 동안 밤낮으로 먹지도 마시지도 말고 단식기도를 올려주십시오. 저도 시녀들과 함께 단식기도를 올리겠습니다. 그런 뒤에 법을 어겨서라도 어전에 나가 뵙겠습니다. 그러다가 죽게 되면 기꺼이 죽겠습니다.”
17(1) 모르드개는 이 말을 전해 듣고 물러나 에스델의 말대로 하였다.
17(2) 모르드개는 주님께서 하신 모든 놀라운 일을 생각하며 다음과 같이 기도하였다.
17(3) “주님, 주님, 온 누리의 주인이신 임금님, 만물이 당신의 권력에 예속되어 있으며,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는 당신의 뜻을 거역할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17(4) 진정,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은 당신이시며, 창공 아래 모든 놀라운 것들을 만드신 분도 당신이십니다.
17(5) 당신은 온 누리의 주인이십니다. 그리고 주님, 당신을 맞설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17(6) 당신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주님, 내가 그 오만불손한 하만에게, 굴복하기를 거부하는 것이 결코 내가 무례해서나, 오만해서나 혹은 허영에 들떠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당신은 알고 계십니다.
17(7)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한 것이라면 나는 그의 발바닥에라도 기꺼이 입을 맞추었을 것입니다.
17(8) 그러나 내가 한 일은 인간의 영광보다는 하느님의 영광이 더 높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주님, 나는 당신을 제외하고는 아무에게도 굴복하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내가 오만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17(9) 그러니, 주 하느님, 아브라함의 하느님이신 임금님, 당신 백성을 살펴주소서. 원수들은 우리들을 멸망시키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으며 당신께서 옛날 우리에게 주신 유산을 파괴하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17(10) 이집트 땅에서 당신 자신을 위해서 건져내신, 당신의 몫을 저버리지 마소서.
17(11) 나의 기도를 들어 허락하시고 당신 백성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우리의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어주소서. 그리하여 주님, 당신의 이름을 찬양하며 살게 하소서. 당신을 찬양하는 입술을 잠잠케 마소서.”
17(12) 그리고 온 이스라엘 백성들도 힘껏 외쳤다. 죽음이 그들의 눈앞에 다가왔던 것이다.
17(13) 왕후 에스델도 자기에게 닥친 죽음의 위험을 느끼고 주님께 의지하려고 하였다.
17(14) 에스델은 화사한 옷을 벗고 슬픈 상복을 입었다. 값진 향유 대신에 재와 오물을 머리에 뒤집어썼다. 왕후는 자기의 몸을 심하게 다루었다. 그리하여 전에 즐겁고 우아했던 모습이 지금은 헝클어진 머리칼로 어수선하게 되었다.
17(15) 에스델은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신 주님께 다음과 같이 탄원하였다. “오직 한 분이신 나의 주님이시며, 우리의 임금님, 오시어 나를 도와주소서. 나는 홀몸, 당신 외에 아무런 구원자도 나에겐 없습니다.
17(16) 나의 생명은 지금 위태롭게 되었습니다.
17(17) 나는 어려서부터 가정에서 이렇게 배웠습니다. 주님, 당신은 모든 민족 중에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모든 민족의 선조들 중에서 우리 선조들을 뽑으시어, 영원히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약속하신 대로 우리 선조들을 보살펴 주셨습니다.
17(18) 그러나 우리는 당신에게 죄를 지었으므로, 당신께서 우리를 원수들에게 넘기셨습니다.
17(19) 우리는 그들의 우상을 숭배하였던 것입니다. 주님, 당신은 의로우십니다.
17(20) 그러나 그들은 우리를 쓰라린 노예로 삼고서도 만족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우상들의 손을 맞잡고 맹세를 했습니다.
17(21) 당신께서 친히 분부하신 법을 폐기하고 당신의 백성을 없애버리어 당신을 찬미하는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고 당신 제단에서 불을 꺼버리며, 당신 성전의 영광을 짓밟기로 작정하였습니다.
17(22) 그 대신에 이방인들의 입을 열어 헛된 우상들을 찬미하게 하고 한낱 인간에 지나지 않는 왕을 영원히 찬미하게 하려고 합니다.
17(23) 주님, 아무것도 아닌 자들에게 당신의 홀을 넘겨주지 마소서. 우리가 멸망하여 그들의 조롱거리가 되지 않게 하소서. 그들을, 자기들이 꾸민 흉계로 망하게 하시고 앞장서서 우리를 공격하는 자에게 본보기를 보여주소서.
17(24) 주님, 우리를 기억하시고 우리가 고난을 받을 때에 당신을 나타내 보이소서. 모든 신 가운데 왕이시며, 모든 권세의 주권자시여, 나에게 용기를 주소서.
17(25) 내가 사자와 맞설 때에 내 입에서 그 사자를 매혹시킬 말이 나오게 하시어 그의 마음을 돌려서, 우리의 원수를 미워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원수와 그 동조자를 멸망케 하소서.
17(26) 그리고 당신의 손으로 우리를 구원하소서. 주님 나는 홀몸, 당신뿐이오니, 오셔서 나를 도와주소서.
17(27) 당신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내가 악인들의 영예를 미워하고, 할례 받지 않은 자와 모든 이방인들의 잠자리를 증오한다는 것을 당신은 알고 계십니다.
17(28) 나의 어쩔 수 없는 사정을 아시는 당신은 내가 나의 높은 지위의 상징을 혐오한다는 것 또한 알고 계십니다. 내가 공석상에 나타날 때에는 할 수 없이 머리 위에 관을 쓰지만 그것이 더러운 걸레처럼 싫어서, 혼자 있을 때는 벗어버립니다.
17(29) 당신의 여종인 나는 하만과 한 자리에서 먹지 않았으며 왕의 연석이 기쁘지 않았고 그들의 제삿술도 마시지 않았습니다.
17(30) 아브라함의 하느님이신 주여, 당신의 여종인 나는 이 자리에 올라서부터 오늘날까지 당신하고가 아니면 기쁜 날이 단 하루도 없었습니다.
17(31) 만물을 제압하는 힘을 가지신 하느님, 절망에 빠진 자들의 소리를 들으시고 악인들의 손에서 우리를 구하시고 나를 공포에서 구하소서.”
제5장
1 사흘째 되는 날, 에스델은 궁중 예복을 입고 왕의 거처가 바라보이는 대궐 안뜰에 들어섰다. 마침 왕은 궁궐 문이 마주보이는 용상에 앉아 있다가 에스델 왕후가 뜰에 서 있는 것을 보고는 반가워하여 손에 들고 있던 금지팡이를 에스델에게 내밀었다. 에스델이 가까이 다가가서 지팡이 윗머리에 손을 대었다.
2(1) 사흘째 되는 날, 에스델은 기도를 마치고 상복을 벗고, 호화찬란한 옷을 입었다.
2(2) 이렇게 눈부시게 아름다운 옷으로 성장한 에스델은 모든 사람을 지켜주시고 그들을 구원해 주시는 하느님께 호소하였다. 그리고 왕후는 두 시녀를 데리고 나섰다.
2(3) 왕후는 한 시녀가 옷자락을 받쳐 들고 동반하는 가운데, 또 한 시녀에게 우아하게 몸을 기대고 나왔다. 왕후가 한 시녀에게 나른한 자태로 몸을 기대었던 것은 그 몸이 너무나 허약해져서 혼자서는 걸어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2(4) 그리고 또 한 시녀가 땅에 끌리는 왕후의 옷을 받쳐 들고 뒤를 따랐다.
2(5) 그 여자는 넘쳐흐르는 자신의 아름다움에 붉게 상기되어 있었고 희색이 만면하여 마치 사랑의 꽃이 핀 듯하였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2(6) 여러 개 문을 지나서 왕 앞으로 나갔다. 왕은 금과 보석이 번쩍이는 왕복으로 성장을 하고 옥좌에 앉아 있었는데 그 모양이 어마어마하였다.
2(7) 왕은 위풍당당한 얼굴을 들어 노기 띤 눈으로 왕후를 쳐다보았다. 왕후는 그만 주저앉아 버렸다. 실신하여 창백해진 얼굴로 자기를 따라온 시녀에게 머리를 기댔다.
2(8) 그러나 하느님은 왕의 마음을 변심시키어 그 마음을 부드럽게 만드셨다. 왕은 몹시 걱정스러워져서 옥좌에서 벌떡 일어나 왕후가 정신 차릴 때까지 그를 품안에 껴안고 부드러운 말로 위로하였다.
2(9) “에스델, 이게 웬일이오? 우리는 서로 남매간이오. 안심하시오.
2(10) 그대는 죽지 않을 것이오! 내 명령은 평민들에게만 해당되오.
2(11) 가까이 오시오.”
2(12) 왕은 황금장을 번쩍 들어 에스델의 목에 대고 껴안으며 “나에게 이야기하시오.”하고 말하였다.
2(13) 에스델은 말하였다. “임금님, 저에게는 임금님께서 하느님의 천사처럼 보였고, 제 마음은 임금님의 위풍에 두려움을 품었습니다.
2(14) 임금님, 임금님께서는 정말 훌륭한 분이시고 임금님의 얼굴에는 인자하신 정이 흐릅니다.”
2(15) 에스델은 이렇게 말하다가 실신하여 쓰러졌다.
2(16) 왕은 몹시 근심하였고, 그의 모든 시종들은 에스델을 깨어나게 하려고 최선을 다 기울였다.
3 왕이 물었다. “에스델 왕후, 웬일이오? 무슨 간청이라도 있소? 이 나라 반이라도 주리다.”
4 에스델이 말했다. “소첩이 오늘 임금님을 모시려고 잔치를 차렸습니다. 좋으시다면 하만과 함께 와주셨으면 합니다.” 에스델의 초청을 받고
5 왕은 곧 영을 내렸다. “왕후의 소원이니 하만을 곧 들라고 하라.” 그리하여 왕은 하만과 함께 에스델이 베푼 잔치에 참석하게 되었다.
6 술이 한 순배 돈 다음 왕이 에스델에게 물었다. “그래, 왕후의 청이 무엇이오? 무엇이든 들어줄 터이니 말하시오. 이 나라 반이라도 떼어 주리다.”
7 그러자 에스델은 이렇게 아뢰었다. “소첩의 간절한 소원을 아뢰겠습니다.
8 임금님께서 소첩을 귀엽게 보아주신다면, 또 임금님께서만 좋으시다면, 내일도 잔치를 베풀고 두 분을 모시고 싶습니다. 하만과 함께 다시 한 번 와주십시오. 그 자리에서 말씀대로 청을 드리겠습니다.”
9 그날 하만은 기쁘고 흐뭇한 마음으로 자리를 물러나오다가, 대궐 문간에 이르러 모르드개가 자기 앞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굽실거리지도 않는 것을 보았다. 하만은 속이 뒤집혔지만
10 꾹 참고 집에 돌아가 친구들과 아내 제레스를 불러들였다.
11 그 자리에서 자기는 재산도 많고 지식도 많은데다가, 왕이 자기를 어느 고관대작보다 높은 자리에 앉혀주었음을 자랑하고 나서
12 말을 계속하였다. “그뿐인 줄 아는가? 에스델 왕후께서 손수 베푸신 잔치에 나 혼자만이 왕과 자리를 같이 했다네. 게다가 내일도 왕과 함께 초대받았지.
13 그런데 대궐 문간에서 일보는 모르드개라는 그 유다인 녀석만 눈에 띄면 속이 뒤집힌단 말이야!”
14 아내 제레스와 친구들이 하만에게 의견을 내어놓았다. “높이 쉰 자짜리 기둥을 세우고, 내일 아침 왕께 청을 드려 모르드개를 달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개운한 마음으로 왕과 함께 잔치에 나가십시오.” 하만은 그 말에 귀가 솔깃하여 곧 기둥을 세우게 하였다.
제6장
1 그날 밤, 왕은 잠이 오지 않아서 궁중실록을 가져다 읽게 하였다.
2 그 기록을 읽어 내려가다가 대궐 수문장으로 있던 두 내시 빅단과 테레스가 자기를 암살하려고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을 모르드개가 고발했다는 대목에 이르러,
3 왕은 그 모르드개라는 사람에게 무슨 상을 내려 공을 치하했느냐고 물었다. 왕을 모시는 시종들이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4 왕은 “밖에 누가 없느냐?”하고 불렀다. 때마침 하만이 궁전 바깥뜰에 들어섰다. 하만은 자기가 세워둔 기둥에 모르드개를 달려고 왕의 허락을 받으러 막 들어서던 참이었다.
5 시종들이 밖에 하만이 대령하고 있다고 하자 왕은 어서 들게 하라고 하였다.
6 하만이 들어서자 왕이 이렇게 물었다. “내가 상을 내리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무엇을 해주었으면 좋겠는가?” 하만은 “왕이 상을 내리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나밖에 누가 있으랴.” 싶어,
7 이렇게 진언하였다. “임금님께서 상을 내리고 싶으신 사람이 있으시거든,
8 임금님께서 입으시는 의복과 타시는 말을 내어온 다음 그 머리에 관을 씌우시고,
9 임금님께서 귀하게 여기시는 한 대신에게 그 왕복과 말을 맡기시어, 상을 내리시려는 그 사람에게 왕복을 입히시고 말을 태워 성내 광장을 돌게 하십시오. 그리고 그로 하여금 경마 잡고 가면서 ‘왕께서 상을 내리시려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해주신다.’고 외치게 하십시오.”
10 왕이 하만에게 말했다. “그 말대로 곧 시행하여라. 그대는 내 옷과 말을 내어다가 문간에서 일보는 유다인 모르드개에게 이제 말한 것을 하나도 빠뜨리지 말고 그대로 해주도록 하여라.”
11 하만은 하릴없이 왕복을 가져다가 모르드개에게 입히고 말을 끌어내어 태운 다음 광장으로 데리고 나가 돌아야 했다. 하만은 경마 잡고 가면서 “왕께서 상을 내리시려는 사람은 이같이 해주신다.”하고 외쳤다.
12 하만은 모르드개를 대궐 수위실로 돌려보내고 고개를 떨어뜨린 채 울상이 되어 급히 집으로 돌아가,
13 아내 제레스와 측근을 모두 불러놓고 방금 당한 일을 들려주었다. 그의 참모들과 아내 제레스가 이렇게 말하였다. “대감은 이제 유다 종자 모르드개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다시는 그 앞에서 머리를 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아예 그 사람에게 손을 댈 생각을 마십시오.”
14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왕을 모시는 내시들이 와서 에스델이 베푼 잔치에 하만을 급히 데리고 갔다.
제7장
1 그리하여 하만은 왕과 함께 에스델 왕후가 베푼 잔치에 참석하게 되었다.
2 이날에도 왕은 술을 마시면서 에스델에게 물었다. “에스델, 어서 소청을 말해 보오. 무엇이든지 들어주겠소. 진정 소원이라면, 나라 절반이라도 떼어 주리다.”
3 왕후 에스델의 대답은 이러하였다. “만일 임금님께서 소첩을 귀엽게 보아주신다면, 또 임금님께서 좋으시다면 이 목숨을 살려주십시오. 제 소원은 이것입니다. 제 겨레도 살려주십시오. 제발 부탁합니다.
4 지금 저와 저의 겨레는 다 죽어 멸종될 처지에 이르렀습니다. 종으로 팔려간다고만 해도 아무 말씀 안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그 일로 임금님께서 입으실 손해는 무엇으로 메우시겠습니까?”
5 “도대체 그 놈이 누구요? 그런 음모를 꾸민 놈이 지금 어디 있소?”하고 아하스에로스 왕이 캐어묻자,
6 왕후 에스델은 그제야 사실을 털어놓았다. “우리를 박해하는 우리의 원수, 그 사람은 바로 이 교활한 하만입니다.” 에스델의 입에서 이 말이 떨어지자, 하만은 왕과 왕후 앞에서 부들부들 떨었다.
7 왕은 너무 화가 나서 자리를 차고 일어나 안뜰로 나갔다. 틀림없이 왕에게서 벼락이 내릴 것을 알고 하만은 왕후 에스델에게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애원하였다.
8 왕이 안뜰에서 다시 술자리로 돌아와 보니, 에스델이 몸을 누이고 있는 평상에 하만이 엎드려 있는 것이었다. 이것을 보고 왕은 “네놈이 내 거처에서, 더구나 내 앞에서 왕후를 겁탈하려느냐?”하고 호통을 쳤다. 왕의 입에서 이 호령이 떨어지자마자 하만의 얼굴은 수건으로 가려졌다.
9 왕을 모시던 내시 가운데 하르보나가 나서서 말하였다. “마침 하만의 집에 높이가 쉰 자나 되는 기둥이 하나 서 있습니다. 임금님을 살려 드린 모르드개를 매달려고 하만이 세워둔 것입니다.” 왕이 말했다. “그 기둥에 이놈을 달아라.” 어명을 따라,
10 하만은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세웠던 기둥에 자기가 매달려 죽게 되었다. 그제야 왕의 노여움이 풀렸다.
제8장
1 그날로 아하스에로스 왕은 유다인들을 박해하려던 하만의 집을 에스델 왕후에게 주었다. 에스델은 그제야 자기와 모르드개가 어떤 사이인지를 밝혔다. 그리하여 모르드개는 어전에 나오게 되었고,
2 왕은 하만에게서 찾은 인장반지를 빼어 모르드개에게 맡겼다. 에스델은 하만의 집을 모르드개에게 맡겨 관리하게 하였다.
3 에스델은 다시 어전에 나가 아각 사람 하만이 유다인을 처치하려고 꾸며놓은 음모를 거두어달라고, 왕의 발아래 엎드려 울면서 애원하였다.
4 왕은 에스델에게 금지팡이를 내어 밀었다. 그제야 에스델은 어전에서 몸을 일으켜 세우고
5 “만일 임금님께서 좋으시다면, 만일 소첩을 귀엽게 보시어 제 말씀을 옳게 보시고 소첩을 애중히 여겨주신다면, 아각 사람 함다다의 아들 하만이 전국 각 지방에 있는 유다인을 몰살하려고 써서 돌린 칙령을 거두어주십시오.
6 제 겨레에게 닥쳐온 이 재난을 어떻게 그냥 보고만 있겠습니까? 제 친척이 망하는 것을 어찌 바라보고만 있겠습니까?”
7 아하스에로스 왕은 드디어 에스델 왕후와 유다인 모르드개에게 윤허를 내렸다. “나는 유다인을 멸망시키려고 한 죗값으로 하만을 이미 기둥에 매달아 죽였고, 그의 집을 에스델에게 주었다.
8 이제 어떻게 하는 것이 유다인에게 좋을지 그대들 소견에 맡길 터이니, 내 이름으로 문서를 만들고 내 인장반지로 인을 쳐서 돌려라. 내 이름으로 만들고 내 인을 친 칙서는 아무도 취소할 수 없다.”
9 왕의 비서관들이 곧 소집되었다. 때는 시완월 곧 3월 23일이었다. 비서관들은 인도에서 에티오피아에 이르는 127지방에 널려 있는 유다인과 제후들과 총독과 각 지방 수령들 앞으로 보내는 칙서를 모르드개가 불러주는 대로 쓰고 각 지방의 문자와 각 민족의 언어로 옮겨 문서로 작성하였다.
10 이렇게 아하스에로스 왕의 이름으로 만들고 왕의 인장반지로 인을 친 이 칙서를 보발꾼들이 왕실 역마를 타고 전달하였다.
11 왕은 그 칙서에서 각 도시에 널려 사는 유다인들은 정당방위로 한데 뭉쳐서 자기들을 박해하려는 모든 민족과 각 지방 무장대를 처자까지 몰살하고 재산을 약탈해도 좋다고 하였다.
12(1) 그리고 이 일은 아하스에로스 왕국 안의 모든 지방에서 아달월 곧 12월 13일, 하루 안에 끝내도록 되어 있었다. 그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2(2) “나 아하스에로스 대왕이 인도에서 에티오피아에 이르는 127개 주의 통치자들과 그 예하 지방장관들과 나의 충성스러운 신하들에게 인사를 보낸다. 사람들은 흔히 그들의 은인으로부터 큰 은혜를 입어 많은 영예를 얻으면 점점 더 오만해진다.
12(3) 그들은 나의 백성들을 해치려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자기들이 받은 은혜를 제대로 간직하지 못하여 그들의 은인들을 해치는 음모를 꾸미기에 이른다.
12(4) 또한 그들은 사람에게서 감사하는 마음을 없애버리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오히려 선이 무엇인가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들의 칭찬하는 말에 우쭐하여, 하느님이 모든 것을 내려다보고 계시는데도, 그 악인들을 미워하시는 하느님의 정의를 피할 수 있다고 스스로 장담한다.
12(5) 그래서 권좌에 있는 사람들이 친구에게 국사를 맡기고 그들의 말을 듣다가 죄 없는 사람들의 피를 흘리게 하고 구제할 길 없는 불행의 대가를 치르게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12(6) 그리고 통치자들의 탓할 것 없는 올바른 의도가 악의를 품은 자들의 거짓 이론 때문에 잘못되는 수가 많았다.
12(7) 내가 언급한 옛일을 되새길 필요도 없이 눈을 똑바로 뜨고 네 앞을 보기만 하면, 가당치 않은 관리들의 해악으로 인하여 갖가지 죄악이 저질러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2(8) 그래서 앞으로 나는 모든 힘을 기울여 나라의 만백성이 안전과 평화를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12(9) 그러기 위해서 나는 정책을 적절하게 개혁하고 내가 처리해야 할 사항들을 언제나 공정한 정신으로 판단해 나가겠다.
12(10) 그런데 마케도니아 사람 함다다의 아들 하만이 좋은 예이다. 그는 페르시아의 피가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이국인일 뿐 아니라 온정이 없어 나와는 거리가 먼 자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그를 손님으로 우대하였고
12(11) 모든 국민에게 베푸는 우정으로 그를 대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그를 ‘나의 아버지’라고 불렀고 왕 다음가는 자리를 주어서, 모든 사람이 그 앞에 엎드려 배례하게까지 하였다.
12(12) 그런데도 그는 자기의 높은 지위에 만족하지 않고 나에게서 나라와 생명까지 빼앗으려고 음모하였다.
12(13) 나아가서 부당한 잔꾀와 이론을 펴, 나의 구원자이며 변함없는 은인인 모르드개와 탓할 바 없는 나의 왕후 에스델을 그들의 동족과 함께 없애버리라고 나에게 종용하였다.
12(14) 그는 이렇게 하여 나를 고립무의의 상태에 빠뜨리고 페르시아 제국을 마케도니아인들에게 넘겨주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12(15) 이 가장 가증스러운 악인이 멸망시키려고 하던 유다인들은 죄인들이 아니며 오히려 법을 가장 올바르게 지키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12(16) 그들은 위대하시고 살아 계신 하느님이신 지극히 높은 분의 자녀들이다. 나와 나의 선조들은 바로 이 하느님 덕분에 나라의 끊임없는 번영을 누려왔다.
12(17) 그러므로 그대들은 함다다의 아들 하만이 보낸 편지에 적혀 있는 지시를 따르지 않는 것이 좋겠다.
12(18) 그 편지를 쓴 자는 만물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지체 없이 내리신 합당한 벌을 받아, 이미 그 일가권속과 함께 수사 성의 성문에서 교수형을 당했다.
12(19) 나의 이 편지의 사본을 방방곡곡에 게시하여 유다인들로 하여금 그들의 법을 공공연히 지킬 수 있게 하라.
12(20) 악인들은 아달월 즉 12월 13일을 공격일로 정하여 유다인을 몰살시키려고 하고 있는데, 그대들은 그날에 유다인들을 도와주라.
12(21) 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멸망의 이 날을 당신의 선민들을 위하여 기쁨의 날로 바꾸어놓으셨다.
12(22) 한편, 그대들 유다인들은 성대하게 지내는 축제일 가운데서도 이 날을 특별한 축일로 정하여 갖가지 잔치로써 축하하라.
12(23) 그리하여 오늘 이후로는 이 날이 그대들과 선량한 페르시아인들에게는 구원의 기념일이 되고 그대들의 원수들에게는 멸망의 기념일이 되게 하라.
12(24) 어떤 도시든지, 나아가 어떤 주든지 이 지시를 지키지 않으면 칼과 불의 무자비한 응징을 받아 폐허가 될 것이며, 그 곳은 사람이 살 수 없게 될 것은 물론이요, 심지어는 야수나 새들의 영원한 저주까지 받게 될 것이다.”
13 이 칙서를 모든 지방에 다 보내어 모든 민족에게 공포하게 하였다. 유다인들로 하여금 그 날을 맞아 원수를 갚을 준비를 시키려는 것이었다.
14 보발꾼들은 왕실 역마를 타고 어명을 전하러 급히 떠났다. 이 칙서는 수사 성에도 나붙었다.
15 모르드개는 자줏빛 옷감과 흰 옷감으로 만든 궁중 예복에 큰 금관을 쓰고, 흰 모시와 붉은 옷감으로 만든 도포를 입고 어전에서 물러나왔다. 그를 맞아 온 수사 성은 환성을 올렸다.
16 마침내 유다인들에게는 빛나는 영광과 벅찬 기쁨이 찾아온 것이다.
17 이 어명이 법령으로 선포된 지방이나 도시 어디서나 유다인들은 이 날을 축일로 삼고 잔치를 벌이며 기뻐 뛰었다. 다른 민족들로서 유다인으로 귀화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만큼 그들은 유다인들의 위력에 눌렸던 것이다.
제9장
1 마침내 아달월 곧 12월 13일이 되었다. 포고된 칙령이 실시되는 날, 유다인들을 결딴내려고 벼르던 원수들이 도리어 유다인에게 변을 당할 날이 온 것이다.
2 유다인들은 저희를 해치려는 원수들을 치려고 아하스에로스 왕국 각 지방에서 도시로, 도시로 모여들었다. 모든 민족이 다 유다인들을 두려워하고 있는 터였으므로, 아무도 대적하지 못하였다.
3 각 지방 수령과 제후와 총독을 비롯하여 어명을 따라 일을 보는 관리들은 모두 모르드개가 무서워서 유다인 편을 들게 되었다.
4 그리하여 모르드개는 대궐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우러르게 되어 그 명성이 각 지방에서 자자했다. 그만큼 모르드개의 세력은 날로 커져갔던 것이다.
5 유다인들은 원수를 모조리 칼로 쳐 죽이며 닥치는 대로 박살내었다.
6 유다인들은 수사 성에서만도 500명을 죽였다.
7 그 가운데는 바르산다다, 달본, 아스바다,
8 보라다, 아달리야, 아리다다,
9 바르마스다, 아리새, 아리대, 와이자다도 끼여 있었는데,
10 이 10명은 유다인을 박해하려던 함다다의 아들 하만의 아들들이었다. 이렇게 죽이면서도 유다인들은 노략질만은 하지 않았다.
11 수사 성에서 살해된 사망자의 수는 그날로 왕에게 보고되었다.
12 “수사 성에서만도 유다인들은 적 500명에다가 하만의 아들 10명을 죽여 없앴으니, 이 나라 다른 지방에서야 어떠했겠소?”하며 왕은 에스델 왕후에게 말하였다. “또 무슨 소청이 있거든 말해 보오. 다 들어주리다. 무슨 소원이든지 다 이루어 주리다."
13 에스델은 이렇게 청을 올렸다. “임금님께서만 좋으시다면, 수사에 사는 유다인들에게 오늘 실시한 칙령을 내일도 실시할 수 있게 해주시고 하만의 열 아들의 시체를 기둥에 매달아 주십시오.”
14 그대로 실시하라는 어명이 내리자, 수사 성에는 다시 포고문이 나붙고 하만의 열 아들은 기둥에 매달리게 되었다.
15 수사에 사는 유다인들은 아달월 14일에 다시 모여 수사에 있는 적을 300명이나 더 죽였다. 그러면서도 노략질만은 하지 않았다.
16 그 나라 각 지방에 사는 다른 유다인들도 정당방위로 한데 뭉쳐 원수를 갚았다. 그들의 손에 죽은 원수는 모두 7만 5천 명이나 되었다. 그렇게 죽이면서도 노략질만은 하지 않았다.
17 이 일은 아달월 13일에 일어난 일이었다. 14일에는 쉬면서 그날을 축일로 삼고 기뻐하였다.
18 수사에 사는 유다인들은 13일과 14일에 모였었기 때문에 15일에야 쉬면서 그날을 축일로 삼고 기뻐하였다.
19(1) 성이 없는 마을에 살던 시골 유다인들도 아달월 14일을 축일로 삼고 즐거운 잔치를 벌이며 선물을 주고받았다.
19(2) 한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잔치를 즐기며 이웃들과 선물을 교환하는 날은 아달월 십오일이다.
20 모르드개는 이 일을 기록하여 두었다. 그리고 아하스에로스 왕국 각 지방에 사는 유다인들에게 원근을 가리지 않고 전갈을 보내어
21 해마다 아달월 십사일과 십오일을 축일로 지키라고 지시하였다.
22 이 달은 쓰라림이 기쁨으로 바뀌고 초상날이 축제일로 바뀐 달이요, 이 날은 유다인들이 원수에게서 풀려난 날이라, 이 날을 기쁜 잔칫날로 지내며 선물을 주고받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뻗는 날로 삼으라고 하였다.
23 유다인들은 모르드개의 지시를 따라 시작한 이 행사를 계속 지키게 되었다.
24 유다인을 박해하려던 아각 사람 함다다의 아들 하만은 유다인들을 없애버릴 음모를 꾸미고 불이라는 주사위를 던져 택일까지 했었다.
25 그러나 이 일은 왕 앞에 드러나고야 말았다. 왕은 영을 내려 유다인들을 잡으려고 꾸민 음모를 하만에게 되씌워 하만을 아들들과 함께 기둥에 매달게 하였다.
26 그리하여 이 이틀을 불이라는 말을 따서 부림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것은 모르드개가 편지로 지시해 둔 일이기도 하지만, 저희가 직접 보고 경험한 일이었다.
27 그래서 유다인들은 대대손손 기록되어 있는 대로 해마다 정한 때에 어김없이 이 이틀을 축제일로 지키기로 하였다. 귀화하는 사람들도 그렇게 하기로 하였다.
28 이 명절은 지방이나, 도시나 할 것 없이 어느 가문에서나 다 지키게 되었다. 이리하여 부림절은 유다인에게는 거를 수 없는 날이요, 대대로 잊지 못할 날이 되었다.
29 아비하일의 딸 에스델은 왕후로서 부림절에 관한 이 편지를 뒷받침하는 글을 써서
30 아하스에로스 왕국 127지방에 널려 사는 모든 유다인에게 발송하였다. 걱정 없이 마음 놓고 살면서
31 정한 때에 부림절을 지키라는 것이었다. 유다인 모르드개가 제정해 주었을 뿐 아니라 대대로 지키기로 스스로 제정한 대로 슬피 울고 단식하며 이 절기를 지켰다.
32 이렇게 에스델이 부림절 행사로 제정한 내용은 책에 기록되어 있다.
제10장
1 아하스에로스 왕은 육지와 바다와 섬들에서 조공을 받는 왕이었다.
2 모르드개는 이런 왕에게 등용되어 권력과 세력을 잡고 위대한 업적을 많이 남겼다. 다 아는 대로 그 자세한 기록은 메대와 페르시아 역대 왕 실록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3(1) “유다인 모르드개 위에는 아하스에로스 왕밖에 없다. 그는 제 겨레가 잘되도록 애썼고, 모든 후손의 복지를 주장한 사람으로서 유다인들에게 기림을 받았고 많은 동포에게 사랑을 받았다.”
3(2) 모르드개는 이렇게 말하였다. “이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하신 일이다. 나는 이러한 일들에 관하여 꿈을 꾸었는데 그 꿈 내용이 하나도 빠짐없이 실현되었다.
3(3) 조그마한 샘물이 큰 강이 되었던 일과 빛이 비치던 일, 태양과 넘쳐흐르는 물, 이것들이 모두 실현되었다. 에스델이 바로 그 강인데, 에스델은 그 왕과 결혼하여 왕후가 되었다.
3(4) 두 마리 용은 하만과 나다.
3(5) 이교국 백성들은 서로 결탁하여 유다인들의 이름을 말살하려고 한 자들이다.
3(6) 나의 백성은 이스라엘인데 하느님께 부르짖어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다. 과연 주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구하셨고 모든 악으로부터 우리를 건져주셨으며, 하느님께서는 일찍이 어떤 백성에게도 보여주지 않으셨던 놀라운 일과 기적들을 행하셨다.
3(7)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들의 운명과 이방인들의 운명을 따로 갈라놓으셨다.
3(8) 이 두 가지 운명은 하느님께서 정하신 그 날, 그 시간, 그때에 모든 백성들에게 다 이루어졌다.
3(9)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기억하시고 당신의 유산을 의롭게 지켜주셨다.
3(10) 하느님의 백성들에게는 아달월 14일과 15일은 하느님 앞에 모두 모여서 서로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날이며, 하느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자손만대에 영원히 기념하는 날이 될 것이다.”
3(11) 프톨레마이오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치세 4년에, 도시데우스라는 사람이 스스로 레위족에 속하는 사제라고 하면서 부림 축일에 관한 이 편지를 가져왔다. 그들은 그 편지가 틀림없는 것이며, 예루살렘에 사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아들 리시마쿠스가 번역한 것이라고 하며 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