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 독서 (묵시록 11,19ㄱ;12,1-6ㄱ,10ㄱㄴ) |
요한 묵시록의 집필 연대를 비교적 정확하게 언급한 인물은 성 이레네우스이다.
그는 도미티아누스 황제 치세 말년(ad81-96년), 그러니까 95년경에 이 책이 쓰였다고 밝혔다.(반이단론5,30.3)
요한 묵시록에 나오는 일곱 도시 가운데(소아시아지방:지금의 터어키) 스미르나, 페르가몬, 에페소가 황제 숭배 경쟁을 주도했다.
시민들은 모두 신격화된 황제의 숭배에 열성을 보여야 했고, 이를 거부하면 로마 제국의 적이기 전에, 자기 도시의 적으로 간주되어 박해를 받았다.
묵시 13장에 나오는 바다와 땅에서 올라온 짐승들은 황제나 황제 숭배를 강요하는 지방 행정관들이다. 지방 행정관들은 황제 숭배를 통해 식민지 백성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 이래 소아시아 지역에 만연한 황제 숭배 관습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커다란 위협이었다.
일곱 도시 가운데, 티아디라를 빼고는 모두 황제 숭배 신전을 갖고 있었다.
오로지 한 분이신 하느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로서는 황제 숭배를 도저히 용인할 수 없었다.
더구나 신전에서 황제에게 바치는 제사 자체도 문제였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유일하고 결정적인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희생 제사 뿐이었다.
로마 제국은 황제 숭배를 제국의 안녕과 번영에 연결시켰다.
네로시대부터 제국에 닥친 악과 불행을, 로마 황제와 제국의 신들을 경배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의 탓으로 돌렸다.
따라서 황제 숭배가 성행할수록, 그것을 거부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점점 더 심각한 위협에 직면하기 마련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받고 안받고는 오로지 지방 행정관과 여론의 향방에 달려 있었다.
요한은 당시 로마 제국의 정치 질서를 완전히 부패한 것으로 본다.
그 질서는 사탄의 영역에 속한 것이다.
요한은 그리스도인들을 이 부패한 사탄의 세력에서 떼어 놓고자 하였다.
전체적으로 소아시아의 그리스도인들은 여느 시민들처럼 로마 질서에 순응하며 살았다.
요한의 눈에 이것은 악의 세력과 타협하는 것이었다.
요한은 로마 제국과 교회 사이를 타협하거나 양립할 수 없는 질서의 대립 관계로 보았고,
예언자적 안목으로 로마 제국이 근본적으로 부패한 집단임을 간파했다.
그의 안목은 이원론적이다.
한쪽에는 하느님이 계시고, 다른 쪽에는 악이 도사리고 있다.
로마 제국은 사탄의 도구요, 악 자체이다.
하느님과 그 분이 보내신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은 황제 숭배와 정면으로 충돌하므로, 피할 수 없는 박해가 임박해 있다.
묵시록의 집필 목적은 로마 세계에서 박해받고, 그 세계의 질서에 순응하지 못하여 스스로 소외된 그리스도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권면하기 위한 것이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세가지 메세지를 전한다.
1) 자신의 목숨까지도 바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께 가는 길을 발견하고, 그 분과 그 길의 충실한 증언이 된 그리스도인들은 복된 지위를 얻게 될 것이라고 한다.
2)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자들은 반드시 하느님께 심판을 받을 것이며, 그 심판의 때가 가까이 다가왔다고 선언한다. 로마 제국은 반드시 망한다.
3) 요한은 그리스도인들이 로마 제국의 질서에 순응하는 온갖 형태의 문화의 수용을 단죄하고, 이제 곧 멸망하게 될 악의 세력에 동조하거나 영합하지 말라고 권고한다.
요한 묵시록에서 박해자들의 심판을 알리는 장이 12-22장 이다.
묵시록의 심장부와 같은 12장은 태양을 입은 여인에 관한 환시로 시작된다.
이 여인은 일반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나타낼 수도 있고,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인 교회를 상징하기도 하고, 구세주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의 표상으로 보기도 한다.
그리고 용은 사탄을 가리키는데, 사탄의 힘이 비록 거세지만 결국 정복 당하고야 말 하찮은 적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데 환시의 의도가 있다.
사탄의 하수인인 바다와 땅에서 올라온 두 마리 짐승은 로마 황제와 황제숭배를 강요하며 교회를 박해하는 지방 행정관들이다.(13장)
666이란 숫자를 놓고 어떤 구체적인 인물을 찾아 내려 해서는 안되고, 666이 상징하는 인물은 네로와 같이 교회를 박해하는 역사상의 모든 박해자들로 보면 된다.(13,18)
두 짐승이 사탄의 편이라면, 교회는 살해된 어린양을 자기 편으로 모시고 있다.
희생 제물이며 믿는 이의 우두머리이신 어린양은 최후의 승리를 거둔다.
이 어린양에게 바쳐진 144,000명(12x12x1,000)은 순수하게 신앙을 보존한 모든 사람들을 상징한다.
여기서 앞의 12는 구약의 이스라엘의 기초인 12지파를, 뒤에 12는신약의 교회의 기초인 12사도를,
1,000은 많은 수를 의미한다.(14,1)
성경의 첫 기쁜 소식이라 할 수 있는 창세기 3장 15절의 뱀으로 상징되는 사탄에 대한 하느님의 저주의 말씀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겐 축복의 말씀이 되는데, 바로 하와의 후손인 성모 마리아를 통해 구원자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가 예고되었다.
이제 성경의 마지막 장인 묵시록 12장에도 여인인 성모 마리아를 통한, 용으로 상징되는 사탄에 대한 승리로 마무리된다.
우주를 몸에 두른(태양과 달의 표상) 성모님 머리의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쓰신 것은, 성모님이 구약의 이스라엘 12지파와 신약의 교회의 구성의 기초인 12사도를 의미하는 교회의 어머니임을 드러내고 있다.
이 세상과 우주는 교회를 통해 구원받는데, 교회의 어머니로 성모님이 부각되고, 12개 별은 성모님이 받으신 성령의 은사 즉 특은을 말한다. 이 특은은 성모 호칭 기도에 잘 나타나 있다.
성모님안에 아기(예수 그리스도)가 있다.
한편 크고 붉은 용은 사탄인데, 일곱 머리는 소아시아의 일곱 도시를, 신격화된 황제숭배로 지배하고자 하는 것을 의미하고, 열 뿔과 일곱 머리의 일곱 작은 관들과 용 꼬리의 표상은 나름대로의 무시못할 권세와 힘을 갖고, 영향력을 교회와 세상에 미친다는 뜻이다.
특히 12장 4절의 용의 꼬리가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휩쓸어 땅으로 내던져지는 것은 실제로 사탄의 공격으로 교회 구성원의 삼분의 일이 신앙을 잃고 구원받지 못함을 의미한다.
사탄은 성모님과 그안의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기 위해 서 있고, 사탄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 모든 민족들을 쇠지팡이, 강력한 통치력으로 다스리는 권세를 가지고, 모든 비뚤어진 질서를 바로 잡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오늘 독서의 11장 19절에 하늘의 하느님 성전안에 있는 하느님의 계약 궤와 12장의 태양을 입은 여인이 바로 연결된다.
이 계약 궤는 예수님을 모신 성모 마리아를 의미하고, 교회의 영혼인 성령께서 활동하시는 이 시대의 교회의 시간안에, 성령의 정배이신 성모님,사탄과 적대 관계이신 성모님도 강력하게 활동하셔서,
온갖 유물론적 무신론적 사고 방식,극도의 인본주의와 세속주의,향락주의,배금주의,소비주의로 사람들의 영혼들을 주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악의 세력들을 몰아내고, 잃어버린 예수님의 실질적인 권위를, 강력한 통치력의 쇠지팡이 권위를 찾아 드리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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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 승천, 구원의 영광 보여주는 희망의 표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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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 승천 대축일 유래와 의미성모 승천 대축일 유래와 의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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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 승천 교리 성모 승천은 성경에 기록된 사실은 아니다. 성모 승천에 관해 처음으로 언급한 이는 4세기 살라미스의 주교 에피파니오다. 당시 많은 교회 문헌이 승천을 비롯한 성모 마리아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에피파니오 주교는 성모 승천의 가능성을 말하면서도 하느님 흠숭과 성모 공경을 구별했다. 지나친 성모 공경을 우려한 까닭이다. 성모 승천 교의가 공식적으로 거론된 것은 6세기 투르의 그레고리오에 의해서다. 성모 승천 교의는 8세기 들어 신학적 근거를 갖고 대두되기 시작했으며, 이후 대 알베르토(1206~1280),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 보나벤투라(1217~1274) 등 신학자와 베네딕토 14세 교황(재위 1740~1758)이 이를 확인했다. 1870년께부터 교황들은 성모 승천 교의를 공식화하자는 요청을 지속적으로 받게 된다. 마침내 비오 12세 교황(재위 1939~1958)은 1950년 11월 1일 회칙 '지극히 관대하신 하느님'을 통해 성모 승천을 가톨릭교회의 믿을 교리로 공식 선포했다. 1950년이면 우리나라에서 6ㆍ25 전쟁이 한창이던 때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는 "티없이 깨끗하신 동정녀께서 조금도 원죄에 물들지 않으셨으며 지상 생활을 마치신 후에, 영혼과 육신이 천상 영광으로 부르심을 받으시어, 주님으로부터 천지의 모후로 추대받으셨다. 이로써 마리아는 다스리는 자들의 주님이시며 죄와 죽음에 대한 승리자이신 당신 아드님을 더욱 완전히 닮게 되셨다"(「교회헌장」 59항)며 성모 승천을 정통 교리로 재천명했다. 성모 마리아의 승천은 마리아가 자신의 힘으로 하늘에 오른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 의해 하늘로 들어 올려진 것이다. 따라서 마리아의 승천은 수동적이라는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과 구별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신적 권능에 의한 능동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리아의 승천을 몽소승천(蒙召昇天)이라고도 부른다. 성모 승천은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과 마찬가지로 '하늘'이라는 공간으로 올라갔다는 것이 아니라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누리시는 충만한 영광에 들게 됐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성모 승천 대축일 유래 교회가 언제부터 성모 승천을 성대하게 기념했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한 기록이 없다. 다만 성모 승천을 기념하는 축일은 4세기께 안티오키아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교회가 성모 승천을 공적으로 기념한 것은 5세기 초 예루살렘에서 8월 15일을 '하느님의 어머니'를 공경하는 축일로 지내면서부터다. 교회는 6세기께 이 축일을 '성모 안식 축일'로 이름을 바꿨다. 당시 교회는 순교자와 성인들을 그들의 선종일에 맞춰 기념하는 관습을 갖고 있었고, 따라서 성모 마리아가 하늘나라로 올림을 받아 영원한 안식을 누리고 있음을 기념하기 위해서는 '성모 안식 축일'이 적합하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동로마 제국 황제 마우리치우스(582~602)는 제국 전체가 이 축일을 지내도록 했다. 이 축일이 로마교회에 전해진 것은 페르시아의 침략으로 피난 온 동로마 제국 내 수도원들 영향으로 추측된다. 세르지오 교황(재위 683~701)은 다른 성모 축일에서처럼 이날 행렬을 하도록 권함으로써 축일을 더욱 성대하게 지내는 데 기여했고, 레오 4세 교황(재위 847~855)은 팔부 축일로 지정했다. 니콜라오 1세 교황(재위 858~867)은 이 축일을 부활 대축일, 성탄 대축일, 성령강림 대축일과 같이 대축일로 기념하도록 했다. 교회는 16세기 '로마 성무일도'에 성모 승천 팔부 축일을 삽입했다. 1970년 미사 경본 개정에서 성모 승천 대축일은 전야 미사가 인정되는 유일한 마리아 축일이 됐다. 현재 성모 승천 대축일은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1월 1일)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3월 25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대축일(12월 8일)과 함께 교회 전례력에서 성모 마리아를 특별히 기념하는 대축일 가운데 하나로, 동시에 가장 중요한 마리아 축일로 기념되고 있다. 한국교회는 성모 승천 대축일을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과 함께 신자들이 반드시 미사에 참례해야 하는 의무축일로 지낸다. ▨성모 승천 의미 교회가 성모 승천을 '믿을 교리'로 선포하면서 성모 마리아에게 각별한 영예와 공경을 드리는 것은 성모 마리아가 구세사에서 수행한 역할 때문이다. 마리아는 처녀임에도 아들을 낳으리라는 하느님 말씀을 순명으로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하느님 뜻을 헤아리고 실천하는 데 일생을 바침으로써 구원사업의 뛰어난 협조자가 됐고, 모든 신앙인의 모범이 됐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성모 마리아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지상생활을 마친 후에도 육신이 부패되지 않고 영혼과 함께 하느님의 영광 속에 들게 됐다고 선포하는 것이다. 성모 승천은 우리에게 희망의 표지가 된다. 바오로 6세 교황은 1974년 발표한 교황 권고 「마리아 공경」에서 "성모 승천 대축일은 마리아의 완전하심과 복되심, 동정의 몸과 흠없는 영혼이 누리시는 영광 그리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완전히 닮으심을 기념하는 축제일"이라며 "따라서 이날은 교회와 전 인류가 바라던 종국적 희망이 실현됨을 보여주는 축일"이라고 밝혔다. 성모 승천은 구원의 역사가 완성됐을 때 그리스도를 따랐던 모든 사람이 누리게 될 구원의 영광을 앞서 보여주는 위로와 희망의 표지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에게는 일생을 하느님 뜻에 순명한 성모 마리아의 모범을 따라 일상생활에서 하느님 뜻이 무엇인지 깊이 헤아리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성모 신심과 한국교회
사실 한국교회 성모신심은 초창기부터 활발했다. 한국교회 성모신심은 1831년 조선대목구 설정 이후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입국하면서 꽃을 활짝 피운다. 선교사들은 당시 프랑스에서 널리 퍼지던 성모신심, 특히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께 대한 신심과 전통을 한국에 그대로 전수했다. 제2대 조선교구장 앵베르 주교는 1838년 교황청에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를 조선교회 수호성인으로 요청했고, 교황 그레고리오 16세는 1841년 8월 22일 이를 승인했다.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서울 명동성당은 1898년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께 봉헌됐다. 또 국내 첫 본토인 수녀회인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도 영원한 도움의 성모를 수호성인으로 1932년 설립됐다. 한국전쟁 직후 레지오 마리애,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 성모기사회 등 성모신심 단체들이 대거 한국교회에 진출했다.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 교리 선포 100주년이던 1954년 한국 주교단은 성모 성년 대회를 열어 다시 한 번 한국교회를 성모 마리아께 공식적으로 봉헌했다. 또 1984년 한국을 찾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명동성당에서 우리 민족과 한국교회를 마리아께 봉헌했고, 한국 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는 2000년 대희년에 우리 민족의 복음화와 일치를 위해 묵주기도 3억 단을 봉헌하기도 했다. 둘째가라면 서러운 한국교회 성모신심은 이처럼 면면히 이어져 오는 전통을 배경으로 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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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신문 2013.08.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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