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3주간 화요일] 호수를 꾸짖다. (마태8,23-27)

2026. 6. 26. 오전 6:26:41

글자

20260630일 화요일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호수를 꾸짖다. (마태8,23-27)



1독서<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데 누가 예언하지 않을 수 있으랴?>(아모3,1-8; 4,11-12)

1 “이스라엘 자손들아, 주님이 너희를 두고, 이집트 땅에서 내가 데리고 올라온 씨족 전체를 두고 한 이 말을 들어라.

2 나는 이 땅의 모든 씨족 가운데에서 너희만 알았다. 그러나 그 모든 죄를 지은 너희를 나는 벌하리라.”

3 두 사람이 약속하지 않았는데도 같이 갈 수 있겠느냐?

4 먹이가 없는데도 사자가 숲속에서 으르렁거리겠느냐? 잡은 것이 없는데도 힘센 사자가 굴속에서 소리를 지르겠느냐?

5 미끼가 없는데도 새가 땅에 있는 그물로 내려앉겠느냐? 아무것도 걸리지 않았는데 땅에서 그물이 튀어 오르겠느냐?

6 성읍 안에서 뿔 나팔이 울리면 사람들이 떨지 않느냐? 성읍에 재앙이 일어나면 주님께서 내리신 것이 아니냐?

7 정녕 주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종 예언자들에게 당신의 비밀을 밝히지 않으시고는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신다.

8 사자가 포효하는데 누가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으랴?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데 누가 예언하지 않을 수 있으랴?

4,11 “나 하느님이 소돔과 고모라를 뒤엎은 것처럼 너희를 뒤엎어 버리니 너희가 불 속에서 끄집어낸 나무토막처럼 되었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주님의 말씀이다.

12 그러므로 이스라엘아, 내가 너에게 이렇게 하리라. 내가 너에게 이렇게 하리니, 이스라엘아, 너의 하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여라.”

 

<화답송>시편5,5-6ㄱㄴ.6-7.8(9) 주님, 당신의 정의로 저를 이끄소서.

당신은 죄악을 좋아하는 하느님이 아니시기에, 악인은 당신 앞에 머물지 못하고, 거만한 자들은, 당신 눈앞에 나서지 못하나이다.

당신은 나쁜 짓 하는 자 모두 미워하시고, 거짓을 말하는 자를 없애시나이다. 피에 주린 자와 사기 치는 자를, 주님은 역겨워하시나이다.

저는 당신의 넘치는 자애에 힘입어, 당신 집으로 들어가, 경외하는 마음으로, 당신의 거룩한 성전에 경배하나이다.

 

복음<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마태8,23-27)

그 무렵 23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제자들도 그분을 따랐다.

24 그때 호수에 큰 풍랑이 일어 배가 파도에 뒤덮이게 되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주무시고 계셨다.

25 제자들이 다가가 예수님을 깨우며, “주님, 구해 주십시오.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 하였다.

26 그러자 그분은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하고 말씀하셨다. 그런 다음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27 그 사람들은 놀라워하며 말하였다. “이분이 어떤 분이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제1독서(아모3,1~8;4,11~12)

 

"나 하느님이 소돔과 고모라를 뒤엎은 것처럼 너희를 뒤엎어 버리니, 너희가 불 속에서 끄집어낸 나무토막처럼 되었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주님의 말씀이다." (4,11)

 

아모스서 4장 11절은 아모스서 4장 6절 이하에서 10절까지 계속 제시되는 과거 북부 이스라엘에 행하신 하느님의 다섯 가지 재앙 가운데 마지막 재앙을 다루고 있는데, 북부 이스라엘을 포함한 가나안 일대에 내려진 하느님의 심판으로서의 지진을 다루고 있다.

 

본문에서 '뒤엎은 것처럼'에 해당하는 '케마흐페카트'(kemahpekath)와 '뒤엎어 버리니'에 해당하는 '하파크티'(hapakthi)의 원형인 '하파크'(hapak)는 '완전히 뒤집어엎다'는 의미를 지닌 동사인데, 구약 성경에서 여섯 번 사용된다.

이중에서 이사야서 1장 7절을 제외하고는, 신명기 29장 23절, 이사야서 13장 19절, 예레미야서49장18절, 50장 40절은 모두 지진으로 말미암아 흔적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완전히 파괴된 소돔과 고모라의 멀망을 묘사하는 문맥에서 사용되었다.

 

그러니까 '하파크'(hapak)는 적군의 공격에 의해 무너진 성읍을 묘사하는 단어가 아니고 지진이라는 천재지변에 의해 완전하게 파괴된 성읍을 묘사하는데 사용되었던 것이다.

고대 문헌들을 보면 우찌야 임금이 다스리던 때에 일어났던 지진에 대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데, 티로와 시돈 등 지중해 연안에서부터 가나안 내륙 지방을 지나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엄청난 규모의 지진이 있었다고 보도한다.

 

이로 말미암아 수많은 가옥과 성읍이 땅 속으로 함몰되거나 완전히 무너져 내려 뒤엎어지고 수많은 사람과 가축들이 몰살을 당하는 참변을 치러야 했을 것이다.

즈카르야서 14장 5절에서 종말론적 심판의 때에 당할 환난을 우찌야 임금 때에 지진을 피하여 달아나던 때처럼 될 것이라고 묘사할 정도로, 당시의 지진은 선민 이스라엘과 그 일을 체험한 이들에게 크나큰 충격과 고통과 공포를 안겨준 잊지 못할 사건이었다.

 

아모스서 4장 11절의 상반절이 소돔과 고모라의 완전한 파멸을 상기시킴으로서 이스라엘의 완전한 파멸을 생생하게 경고했다면, 후반절은 소돔과 고모라를 뒤덮었던 유황불로 인한 거대한 불길의 이미지를 가져와서 북부 이스라엘이 아시리아와의 전쟁으로 인해 화염에 뒤덮힐 것이라고 비유한다.

본문에서 북부 이스라엘은 '불 속에서 끄집어낸 나무토막'으로 묘사되었다. 여기서 '나무토막'에 해당하는 '우드'(ud)는 일반적인 나무가 아니고 부지깽이로 사용되는 막대기나 기름을 묻혀 태우는 횃불로 사용되는 몽둥이를 가리킨다.

 

그리고 '끄집어낸'에 해당하는 '뭇찰'(mutsal)은 '구원하다'라는 의미를 갖는 '나찰'(natsal)의 사역 수동형 분사이고, 이 분사의 의미상의 주어는 상반절에서 두 번이나 사용된 주어인 하느님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본문의 내용은 북부 이스라엘이 재앙으로 인해 성읍이 무너지고 불 속에 던져진 나무토막처럼 새까맣게 불에 타 흔적도 없이 완전히 멸망할 수도 있었지만, 하느님에 의해 마지막 구원을 받아 건져지게 됨을 나타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아모스서 4장 6~11절에 기록된 재앙을 보면, 6절은 양식의 고갈, 7절과 8절은 가뭄, 9절은 농작물이 입은 피해, 10절은 염병과 전쟁에서의 패배로 인한 살육의 재앙, 그리고 11절에서는 지진으로 인한 성읍의 붕괴를 각각 묘사했다.

전반부의 세 가지 재앙은 먹을 양식에 대한 피해가 점점 더 극심해져 가는 내용을 다루었다면, 후반부의 두 가지 재앙은 죽음의 자리에 던져지는 일이 군대에 갈만한 청년들에게서 모든 사람에게로 확대되는 내용이다.

 

아모스서 4장 11절은 이런한 점층적 구조를 통해 두 가지 사실을 강조한다.

 

첫째는 북부 이스라엘 사람들이 죄악을 회개하지 않는 뻔뻔함이다. 이러한 뻔뻔함에 대한 강조는 매 단락마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로 돌아오지 않았다.' 라는 표현을 통해 반복 지적되고 있다.

북부 이스라엘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를 때마다 하느님께서는 이것을 방관치 않고 그들로 하여금 죄를 깨닫도록 예언자를 파견하셨고, 예언자를 통해 죄를 지적하셨다.

따라서 그들은 어떤 재난이 닥치면 그것이 자신들의 죄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에 따른 것임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북부 이스라엘 사람들은 먹을 것이 줄어들어 고난을 당하고, 전쟁과 천재지변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가도 도대체 회개할 줄을 몰랐다. 그들은 정말로 목이 뻣뻣하고 낯이 뻔뻔스러운 교만한 자들이었던 것이다.

 

둘째로 북부 이스라엘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과 오래 참으시는 모습이다. 하느님께서는 북부 이스라엘이 아시리아에 의해 완전히 멸망하기 전까지 회개를 염원하시며 당신께 돌아와 그들에게 이미 약속하신 축복된 삶을 누리도록 무수한 경고와 징계를 거듭 거듭 주셨다.

그러나 북부 이스라엘에 대한 하느님와 인내와 기대는 실망으로 계속 이어졌고, 결국 하느님의 오래참음을 멸시한 북부 이스라엘은 아모스서 4장 12절과 13절에 기록된 것처럼 하느님의 심판으로 멸망을 당하게 된 것이다.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김재덕 베드로 신부)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예수님의 이 말씀에서 믿음이 약한 자들아!”로 옮긴 그리스 말은 믿음이 거의 없는 자들아!” 또는 작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자들아!”로도 옮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도 믿음이 거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산상 설교와 그 뒤에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많은 기적을 체험하고도, 지금 눈앞에 들이닥친 풍랑 앞에서 그들의 믿음은 한없이 무너져 버립니다. “주님, 구해 주십시오.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믿음이 거의 없다고 할 만한 제자들의 울부짖음을 예수님께서는 외면하지 않으셨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죽음의 공포로 내몰던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십니다.

아무리 작은 믿음일지라도, 설령 거의 믿음이 없다 하더라도 예수님께서는 그 믿음 안에서 당신을 찾는 우리의 목소리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죄와 악의 유혹이 우리 삶을 뒤흔들어 놓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를 어둠의 공포로 끌고 가는 순간이 다가올 때도 있습니다.

그런 순간에 예수님께서는 주무시고 계셨다.”라는 오늘 복음의 묘사처럼, 그분께서는 주무시고 계시는 하느님, 고통이나 아픔과는 아무 상관 없으신 하느님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용기를 내십시오. 그분께서 풍랑 속에서 제자들과 함께 계셨던 것처럼, 우리가 겪는 풍랑 속에서도 분명히 함께 계십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 도움을 청하는 선택입니다.

믿음이 거의 없던 제자들도 예수님을 바라보고 도움을 청하였던 것처럼, 그분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기억하고 주님을 찾는 선택을 하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정말로 경계하여야 할 것은 우리의 약한 믿음이 아니라,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기도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신앙생활은 예수님을 찾는 방법을 완전히 잃어버린 신앙생활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기도하는 신앙인인가요?

주님, 구해 주십시오.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 아멘.

 

(김재덕 베드로 신부)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배는 바다에 있기 위한 것이며 바다는 風浪이 이는 우리의 人生이다.

 

복음(마태8,23-27)

23 예수님께서 배(교회)에 오르시자 제자들도 그분을 따랐다.

= 하늘에서 이 땅으로 당신 백성을 찾아오신 구원의 모습이다.

 

24 그때 호수(바다)에 큰 풍랑이 일어 배(교회)가 파도에 뒤덮이게 되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주무시고 계셨다. 25 제자들이 다가가 예수님을 깨우며, “주님, 구해 주십시오.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 하였다. 26 그러자 그분은 왜 겁을 내느냐? *믿음이 약한 자들아!” 하고 말씀하셨다. 그런 다음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27 그 사람들은 놀라워하며 말하였다. “이분이 어떤 분이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 믿음, ‘믿음의 부족은 인간의 나약함을 드러나게 합니다.-사제’ 24절의 ‘주무시고 계셨다’는 것은 ‘죽음’을 뜻하며 26절에 ‘일어 나셔서’는 ‘되살아나심, 부활’을 뜻한다.

그러니까 우리 인생의 풍랑은 우리의 믿음 없음의 그 죄(罪) 때문이며, 우리의 죄로 예수님께서 대속(代贖)으로 죽으셨다 부활(復活)하심으로, 우리 인생의 풍랑(風浪)이 잠잠해져 하늘의 쉼, 안식을 얻게 되는 것임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풍랑이 이는 바다(인생)에서 자신들을 구할 수 있는 배(교회) 안에 구원자(救援者), 주님을 알아보지(호라우-깨닫지) 못해, 곧 말씀을 깨닫지 못해 믿지 못하고 두려워함을 나무라시는 것이다.

 

(1베드3,20) 20 옛날에 노아가 방주()를 만들 때 하느님께서는 참고 기다리셨지만 그들(믿지 못한 이들)은 끝내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몇몇 사람 곧 여덟 명만 방주에 들어가 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 오늘날은 놀라워만 한다. (놀라워하며-에스타시스) 큰 능력의 희열로 보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기한(파라독스- 껍데기만 보는) 일로 보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우상(에이돈)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것이 하느님의 구원에서 떨어뜨리려는 뱀(마귀)의 계략, 유혹이었다. (창세3,5)

그것은 하느님의 숨, 말씀이 빠진 흙의 티끌, 짐승이 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 28절 이하가 ‘마귀 들린 사람과 돼지 이야기’ 가 나오는 것이다.

 

(1베드3,21) 21 이제는 그것이 가리키는 본형인 세례가 여러분을 구원합니다. 세례는 몸의 때를 씻어 내는 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힘입어 하느님께 바른 양심을 청하는 일입니다.

= 배가 풍랑(風浪)이 이는 바다에 있는 이유(理由)는, 배(교회) 안에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그 피의 새 계약으로 더러운 양심이 깨끗해지는(히브10,22), 곧 새 사람으로 새 창조하시기 위한 하느님의 구원 계획, 뜻인 것이다.

 

(갈라6,15) 15 사실 할례(세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새 창조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

= 새 사람으로 새 창조는 옛 사람의 버림, 부인(否認), 죽음으로 시작된다. 곧 인간의 열심, 노력이 아닌 그리스도의 피로 더러운 양심까지 깨끗이 씻겨졌음을 믿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새 창조를 위한 새 계약의 말씀만 선포되어야 한다.

 

(2코린5,17) 17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 교회(敎會)에서는 세상의 생존을 위한, 사람의 지혜의 말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 생존을 위한 것들은 하느님께서 이미 일반 은총(恩寵)으로 주신 것으로, 그러나 그 세상의 생존을 위한 것이 영원한 것이 아님을 깨닫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구원자 그리스도’께 돌아오라고 주신 것이다.

육(肉)의 지혜에서 나온 것에 만족하며 안주(安住)하는 것이 땅, 어둠, 없음의 존재로 짐승, 죄인(罪人)인 것이다. ‘하느님의 종이 되면 자유 하지만 하느님으로부터 자유하면 세상의 노예가 됩니다,-사제’ 그 상태를 성경(聖經)은 비어있는, 쓴 물( 마리아) 이라고 하는 것이다.

 

(탈출15,23-26) 23 마침내 마라에 다다랐지만, 그곳 마라의 물이 *써서 마실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다. 24 백성은 모세에게 우리가 무엇을 마셔야 한단 말이오?” 하고 불평하였다. 25 모세가 주님께 부르짖으니, 주님께서 나무 하나를 보여 주셨다. 모세가 그것을 물에 던지자 그 물(쓴물)이 단 물이 되었다. 그곳에서 주님께서는 백성을 위한 규정과 법규를 세우시고 그곳에서 주님께서는 백성을 시험하셨다. 26 그리고 말씀하셨다. “너희가 주 너희 하느님의 말을 잘 듣고, 주님의 눈에 드는 옳은 일을 하며, 그 계명에 귀를 기울이고 그 모든 규정을 지키면, 이집트(세상)인들에게 내린 어떤 질병도 너희에게는 내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너희를 낫게 하는 주님이다.”

= 쓴 물(마라, 마리아)에 나무 하나, 외아들 예수께서 속죄(贖罪) 제물(祭物)로 달리신 그 십자(十字)나무를 담그면, 곧 비어있는(죄인인) 내 마음에 십자가(十字架)의 복음(福音)을 담으면 단 물(생명)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하느님의 규정과 법규, 새 계약이다.

그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여 마음에 담아, 그 말씀을 되새기며 의탁하는 삶, 그것이 하느님께서 ‘올바르다’하시는 일이며,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계명을 지키는 것이 힘겹지 않다’고 한 것이다.

 

(1요한5,3-5) 3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바로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계명은 힘겹지 않습니다. 4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모두 세상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이긴 그 승리는 바로 우리 믿음의 승리입니다. 5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세상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서 대속 하시고 이기신 그 승리를 구원의 진리(眞理)로 믿는 것, 우리의 승리(勝利)다. 구원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시작하시고 끝 맺는 것이다.(묵시1,8) 곧 하느님의 은총으로 받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믿는 것이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로마10,10)

우리의 구원에 우리는 아무것도 보탤 수 없다. 오직 믿는 것뿐이다,(로마3,28 외)

 

(로마14,23) 23 의심을 하면서 먹는 사람은 이미 단죄를 받았습니다. 그것이 믿음에서 우러나온 행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믿음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행위는 다 죄입니다.

= 그러나 선악과(善惡果)를 먹은 아담(사람)들은 절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거저 얻는 의(義), 구원(救援), 그 하느님의 은총을 믿지 못해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그래서 나는, 말씀을 선악의 도덕과 윤리로 받아 사람의 뜻을 위한 교리, 규정으로 열심히 제사 드리며 나의 수고, 열심히 이루는 것이 참이라며 호들갑을 떨었었다.(마르7,7참조) 그러나 말씀을 알고 나니 그것은 그리스도의 대속, 하늘의 의(義)를 모독하는 죄악(罪惡)이었다. 신앙을 무거운 짐으로 지고 하느님을 헛되이 섬기는 신앙(信仰)을 살았던 것이다.

 

(갈라5,1) 1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니 굳건히 서서 다시는 종살이의 멍에(제사와 윤리의 율법)를 메지 마십시오.

 

(마태23,15) 15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개종자 한 사람을 얻으려고 바다와 뭍을 돌아다니다가 한 사람이 생기면, 너희보다 갑절이나 못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마태7,15) 15 “너희는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양의 옷차림을 하고 너희에게 오지만 속은 게걸 든(약탈하는) 이리들이다.

= 거짓 가르침은 사람의 생명을 약탈하는 것이니 조심하라는 말씀이다. 곧 믿음을 주지 못하는 가르침이다.

‘착하게 사세요, 교리 잘 지키세요, 본당 활동 열심히 하세요’ ‘제사에, 전례에 온갖 기념을 지키는데 충실 하세요 그러면 신앙을 잘사는 것입니다.’ 등등~

 

(이사1,12-14) 12 너희가 나의 얼굴을(, 사랑) 보러 올 때 내 뜰()을 짓밟으라고 누가 너희에게 시키더냐? 13 더 이상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마라. 분향 연기도 나에게는 역겹다. 초하룻날과 안식일과 축제 소집 불의에 찬 축제 모임을 나는 견딜 수가 없다. 14 나의 영은 너희의 초하룻날 행사들과 너희의 축제들을 싫어한다. 그것들은 나에게 짐이 되어 짊어지기에 나는 지쳤다.

= 믿음이 없는 열심한 종교행위(宗敎行爲), 자기 의로움으로는 하늘의 용서(容恕), 의(義), 생명(生命), 구원(救援)을 받지 못한다. (루가18,11-14 로마10,1-3 참조)

 

(로마3,30) 30 정녕 하느님은 한 분이십니다. 그분께서 할례 받은 이들도 믿음으로 의롭게 하시고, 할례 받지 않은 이들도 믿음을 통하여 의롭게 해 주실 것입니다.

= 좋은 가르침은 예수님처럼(마태12,34 마르8,33) 우리 안에 더러운 속셈, 죄악들을 보게 하는 것이다.

 

(2티모3,16) 16 성경은 전부 하느님의 영감으로 쓰인 것으로, 가르치고 꾸짖고 바로잡고 의롭게(믿음으로) 살도록 교육하는 데에 유익합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로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은혜, 자비, 새 생명의 계약인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가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로마5,10) 10 우리가 하느님의 원수였을 때에 그분 아드님의 죽음으로 그분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화해가 이루어진 지금 그 아드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

 

(골로2,14) 14 우리에게 불리한 조항들을 담은 우리의 빚 문서를 지워 버리시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아 우리 가운데에서 없애 버리셨습니다.

 

(로마6,5-6) 5 사실 우리가 그분처럼 죽어(자기버림, 부인) 그분과 결합되었다면, 부활 때에도 분명히 그리될 것입니다. 6 우리는 압니다. 우리의 옛 인간이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죄의 지배를 받는 몸이 소멸하여, 우리가 더 이상 죄의 종노릇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 하느님의 구원의 말씀을 사람의 지혜의 말로 ‘하지도, 듣지도’ 말아야한다.

 

(1테살2,13) 13 우리는 또한 끊임없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때, 여러분이 그것을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이 신자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아멘)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받아 들여야 할 것과, 받아들이지 말아야 할 것을 분별하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복음(마태8,23-29)

 

그 사람들은 놀라워하며 말하였다. "이분이 어떤 분이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27)

 

마르코 복음 4장 36절을 보면,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이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탄 배를 뒤따랐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여기서 '그 사람들은'에 해당하는 '호이 안트로포이'(hoi anthropoi; the men)란 예수님의 제자들이 아니고, 예수님과 그 제자들이 탄 배를 뒤따랐던 무리들을 가리킨다.

 

이것을 통해 볼 때, 마태오 복음 8장 26절에서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시는 장면은 풍랑이 몰아치는 호수 위의 다른 배에서도 볼 수 있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놀라워하며'에 해당하는 '에타우마산'(ethaumasan; marvelled)의 원형 '타우마조'(thaumazo)는 성경에서 하느님의 계시적 행위에 대한 인간의 놀람을 나타낼 때 사용되지만, 존경이나 의아해하는 감정을 나타낼 때도 사용된다.

 

그 사람들이 놀라워하며 기이하게 여긴 까닭은 예수님께서 바람과 호수와 같은 자연 현상까지도 지배하신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느님이시므로 이런 일을 쉽게 행하실 수 있지만, 이에 대한 이해가 없었던 무리들은 놀랍게만 생각되었던 것이다.

 

당시, '호수' 또는 '바다'가 종종 악(惡; evil)의 상징이며, 악(惡)이 거주하는 장소로 묘사되었다(시편65,8; 107,29-30).

따라서 예수님께서 호수를 복종케하신 사건은 제자들의 약한 믿음을 단련시키기 위한 시도인 동시에, 사탄의 세력을 몰아내시는 구마와 치유의 의미까지 암시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것은 사탄의 세력이 쫓겨나고 하느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하느님 나라의 전주곡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추정은 이 기사 다음에 나오는 기사(마태8,28-34)가 가다라인들의 지방의 마귀들린 자를 치유하는 내용이라는 사실과 연결되는 것이다.

 

 

 

 

20260630일 화요일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마태오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먼저 배에 오르시고, 제자들이 그 뒤를 따랐다고 기록합니다.

단순한 움직임의 묘사 같지만, 이 장면은 제자 됨의 길을 암시하는듯 합니다. 호수가 거세게 흔들립니다.

오늘 복음에서 풍랑으로 옮긴 그리스 말 세이스모스는 흔들림이나 지진을 뜻하는 낱말로 단순한 폭풍이 아니라 삶 전체를 뒤흔드는 큰 불안을 암시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제자들의 불안에도 주무십니다.

제자들은 다급히 외칩니다. “주님, 구해 주십시오.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마태 8,25).

여기서 처음으로 구원하다라는 말이 다급한 현실 속에서 울려 퍼집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그들의 두려움을 짚으십니다.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8,26)

그들의 두려움은 믿음이 없어서라기보다, 작은 믿음이 흔들린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십니다.

구약 성경에서 하느님께서만 바다를 통제하실 수 있으셨지만, 이제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로 통제가 이루어집니다.

신화적 언어로 묘사한 장면이지만 오늘 복음은 분명히 말합니다, 주님의 권위 앞에 맞서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과 두려움을 떨치고 주님께 온전히 맡겨야 함을.

오늘 복음에 나타나는 배를 두고 교회는 자기 이해의 상징으로 읽어 왔습니다.

풍랑에 흔들리는 배는 온갖 어려움으로 흔들리는 우리 삶과 교회와 닮았습니다.

믿음은 흔들리는 배 안에서도, 거기서 겪게 되는 두려움 속에서도 주님께서 함께 계심을 기억하는 일입니다.

바다가 완전히 잔잔해진 뒤에야 비로소 깨닫습니다.

우리가 버틴 것은 배가 튼튼해서가 아니라 우리 가운데 그분께서 현존하시기 때문이었다는 것을요. 예수님께서 계십니다. 어렵고 힘겨운 삶의 어느 날, 눈물조차 흐르지 않을 만큼 그저 막막한 날, 바로 그런 날에도 예수님께서 우리 곁에 계십니다.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

여러분도 함께 믿기를 간절히 바라고 기도합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마태8,23-27)

23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제자들도 그분을 따랐다.

= 하늘께서 인간의 세상으로 찾아, 들어오시는 예언의 모습을 다시 보여 주시는 것(루가1,78~), 교회는 예수님의 말씀 위에 세워지고 그 말씀을 따르겠다고 약속한 제자들입니다.

 

(사도20,28) 여러분 자신과 모든 양 떼를 잘 보살피십시오. 성령께서 여러분을 양 떼의 감독으로 세우시어, 하느님의 교회 곧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피로 얻으신 교회를 돌보게 하셨습니다.

 

24 그때 호수에 큰 풍랑이 일어 배가 파도에 뒤덮이게 되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주무시고 계셨다.

= 예수님의 길을 진리로 따라야 할 교회가 풍랑의 바다, 곧 세상의 길을 진리로 따르기에~ 말씀이 주무시고 계시는, 곧 말씀이 활동을 하지 않으시는 것, 그 자체가 풍랑인 것입니다.(로마7,5참조)

 

(1테살2,13) 우리는 또한 끊임없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때, 여러분이 그것을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이 신자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아모3,2-7) 2 나는 이 땅의 모든 씨족 가운데에서 너희만 알았다. 그러나 그 모든 죄를 지은 너희를 나는 벌하리라.” 3 두 사람이 약속하지 않았는데도 같이 갈 수 있겠느냐? 4 먹이가 없는데도 사자가 숲 속에서 으르렁거리겠느냐? 잡은 것이 없는데도 힘센 사자가 굴속에서 소리를 지르겠느냐?

= 하느님의 사랑, 그 진리의 말씀을 세상의 법으로 만들어 그 세상의 법을 따르며 세상의 칭찬을 다 좋아한다면 지옥의 힘이 그를 잡으러 으르렁대고~~ 그 유혹, 악에 빠질까 하느님께서도 으르렁 대신다.

어린양이 죽어 남긴 뿔, 나팔소리로 하늘의 덮으심, 대속의 복음을 선포로~~

6 성읍 안에서 뿔 나팔이 울리면 사람들이 떨지 않느냐? 성읍에 재앙이 일어나면 주님께서 내리신 것이 아니냐? 7 정녕 주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종 예언자들에게 당신의 비밀을 밝히지 않으시고는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신다.

= 말씀 안에 숨겨진 비밀을 찾아야 하는 것, 재앙 안에 들어있는 하느님의 뜻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지요.  곧 그것은 하느님과 우리의 약혼, 그 약속이 지속적이며 유효하다는 것입니다.

 

25 제자들이 다가가 예수님을 깨우며, “주님, 구해 주십시오.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 하였다.

= 인간은 시련이라는 사건이 있을 때 애원한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사랑의 손짓이신 것이지요.

 

26 그러자 그분은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하고 말씀하셨다. 그런 다음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 말씀은 살아 계십니다. 말씀은 갇혀있지 않으십니다.

 

(히브1,3) 아드님은 하느님 영광의 광채이시며 하느님 본질의 모상으로서, 만물을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지탱하십니다. 그분께서 죄를 깨끗이 없애신 다음, 하늘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27 그 사람들은 *놀라워하며 말하였다. “이분이 어떤 분이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 놀라워하며(엑스타시스-육적쾌감)- 겉으로 나타난 현상만을 보며 놀라워 말고 하느님을 그분의 뜻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지혜13,1. 7-9) 1 하느님에 대한 무지가 그 안에 들어찬 사람들은 본디 모두 아둔하여 눈에 보이는 좋은 것들을 보면서도 존재하시는 분을 보지 못하고 작품에 주의를 기울이면서도 그것을 만든 장인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7 그들은 그분의 업적을 줄곧 주의 깊게 탐구하다가 눈에 보이는 것들이 하도 아름다워 그 겉모양에 정신을 빼앗기고 마는 것이다. 8 그러나 그들이라고 용서받을 수는 없다. 9 세상을 연구할 수 있을 만큼 많은 것을 아는 힘이 있으면서 그들은 어찌하여 그것들의 주님을 더 일찍 찾아내지 못하였는가?

= 말씀을 보이는 그대로, 문자 그대로 사람의 말로 가르쳐 놀라워만 한다면~ 그것은 뱀(마귀)의 유혹을 먹은 것입니다.

 

(창세3,6) 여자가 쳐다보니 그 나무 열매는 먹음직하고 소담스러워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은 슬기롭게 해 줄 것처럼 탐스러웠다. 그래서 여자가 열매 하나를 따서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자, 그도 그것을 먹었다.

= 인간을 위한 말씀으로 먹는 것, 그것이 뱀(마귀)의 말을 먹은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 구절이 마귀들린 사람의 이야기로(마태8,28이하~~) 이어집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매일말씀묵상

목록 전체보기 →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호수를 꾸짖다. (마태8,23-27)26.06.26조회 24[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하늘나라의 열쇠 (마태16,13-19)26.06.24조회 20[연중 제12주간 토요일] 백인대장의 믿음 (마태8,5-17)26.06.24조회 22[연중 제12주간 금요일] 나병(癩病) 치유 (마태8,1-4)26.06.23조회 19[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날] 내 이름으로 모인 곳 (마태18,19ㄴ-22)26.06.22조회 22[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그의 이름은 요한 (루카1,57-66.80)26.06.22조회 18[연중 제12주간 화요일]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 (마태7,6.12-14)26.06.20조회 18[연중 제12주간 월요일] 남을 심판하지 마라. (마태7,1-5)26.06.20조회 15[연중 제11주간 토요일] 두 주인 (마태6,24-34)26.06.16조회 14[연중 제11주간 금요일]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 (마태6,19-23)26.06.16조회 16[연중 제11주간 목요일] 주님의 기도 (마태6,7-15)26.06.16조회 17[연중 제11주간 수요일]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 (마태6,1-6.16-18)26.06.15조회 19[연중 제11주간 화요일] 원수를 사랑하여라 (마태5,43-48)26.06.14조회 15[연중 제11주간 월요일]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마태5,38-42)26.06.13조회 14[성모 성심 기념일] 제 아버지의 집 (루카2,41-51)26.06.11조회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