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2주간 토요일] 백인대장의 믿음 (마태8,5-17)

2026. 6. 24. 오전 7: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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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27일 토요일

[연중 제12주간 토요일] 백인대장의 믿음 (마태8,5-17)



1독서<주님께 소리 질러라, 딸 시온의 성벽아.>(애가2.10-14.18-19)

2 야곱의 모든 거처를 주님께서 사정없이 쳐부수시고 딸 유다의 성채들을 당신 격노로 허무시고 나라와 그 지도자들을 땅에 쓰러뜨려 욕되게 하셨다.

10 딸 시온의 원로들은 땅바닥에 말없이 앉아 머리 위에 먼지를 끼얹고 자루옷을 둘렀으며 예루살렘의 처녀들은 머리를 땅에까지 내려뜨렸다.

11 나의 딸 백성이 파멸하고 도시의 광장에서 아이들과 젖먹이들이 죽어 가는 것을 보고 있자니 내 눈은 눈물로 멀어져 가고 내 속은 들끓으며 내 애간장은 땅바닥에 쏟아지는구나.

12 “먹을 게 어디 있어요?” 하고 그들이 제 어미들에게 말한다, 도성의 광장에서 부상병처럼 죽어 가면서, 어미 품에서 마지막 숨을 내쉬면서.

13 딸 예루살렘아, 나 네게 무엇을 말하며 너를 무엇에 비기리오? 처녀 딸 시온아, 너를 무엇에다 견주며 위로하리오? 네 파멸이 바다처럼 큰데 누가 너를 낫게 하리오?

14 너의 예언자들이 네게 환시를 전하였지만 그것은 거짓과 사기였을 뿐. 저들이 네 운명을 돌리려고 너의 죄악을 드러내지는 않으면서 네게 예언한 신탁은 거짓과 오도였을 뿐.

18 주님께 소리 질러라, 딸 시온의 성벽아. 낮에도 밤에도 눈물을 시내처럼 흘려라. 너는 휴식을 하지 말고 네 눈동자도 쉬지 마라.

19 밤에도 야경이 시작될 때마다 일어나 통곡하여라. 주님 면전에 네 마음을 물처럼 쏟아 놓아라. 길목마다 굶주려 죽어 가는 네 어린것들의 목숨을 위하여 그분께 네 손을 들어 올려라.

 

<화답송>시편74,1-2.3-4.5-7.20-21(19) 가련한 이들의 생명을 끝내 잊지 마소서.

하느님, 어찌하여 마냥 버려두시나이까? 당신 목장의 양 떼에 분노를 태우시렵니까? 기억하소서, 애초부터 모으신 백성, 당신 소유로 삼아 구원하신 지파, 당신 거처로 정하신 시온산을!

이 영원한 폐허로 당신 발걸음을 옮기소서! 성전의 모든 것을 원수가 파괴하였나이다. 당신 성소 한가운데서 적들이 소리소리 지르고, 자기네 깃발을 성소의 표지로 세웠나이다.

마치 숲속에서, 도끼를 휘두르는 자 같았사옵니다. 그렇게 그들은 그 모든 장식들을, 도끼와 망치로 때려 부수었나이다. 당신 성전에 불을 지르고, 당신 이름의 거처를 뒤엎고 더럽혔나이다.

당신의 계약을 돌아보소서! 온 나라 구석구석 폭행의 소굴이 되었나이다. 억눌린 이가 수치를 느끼며 돌아가게 하지 마시고, 가련한 이와 불쌍한 이가 당신 이름을 찬양하게 하소서.

 

복음<가거라. 네가 믿은 대로 될 것이다.>(마태8,5-17)

5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에 들어가셨을 때에 한 백인대장이 다가와 도움을 청하였다.

6 그가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제 종이 중풍으로 집에 드러누워 있는데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7 예수님께서 내가 가서 그를 고쳐 주마.” 하시자,

8 백인대장이 대답하였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9 사실 저는 상관 밑에 있는 사람입니다만 제 밑으로도 군사들이 있어서,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 또 제 노예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10 이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감탄하시며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11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동쪽과 서쪽에서 모여 와, 하늘 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12 그러나 하느님 나라의 상속자들은 바깥 어둠 속으로 쫓겨나,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13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백인대장에게 말씀하셨다. “가거라. 네가 믿은 대로 될 것이다.”바로 그 시간에 종이 나았다.

14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집으로 가셨을 때,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드러누워 있는 것을 보셨다.

15 예수님께서 당신 손을 그 부인의 손에 대시니 열이 가셨다. 그래서 부인은 일어나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16 저녁이 되자 사람들이 마귀 들린 이들을 예수님께 많이 데리고 왔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악령들을 쫓아내시고, 앓는 사람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17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그는 우리의 병고를 떠맡고 우리의 질병을 짊어졌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연중 제12주간 토요일독서 (애가2,2.10-14.18-19)


애가는 히브리어 성경에서 성문서로 분류된 축제오경(아가, 룻기, 코헬렛, 애가, 에스테르기) 가운데 넷째 책이다.

애가는 본디 기원전 587년 바빌론 침공과 예루살렘의 함락을 애도하는 성전 방화일(음력7)에 낭독하였다. 애가의 저작 연대는 바빌론 유배시절이다. 1, 2, 4장은 폐허가 된 예루살렘 도성을 애도하고, 3장과 5장도 바빌론의 통치 아래에서 겪는 유다 주민들의 고통을 아주 생생하게 증언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예루살렘이 함락된 직후에 쓰인 노래들은 520년 바빌론에서 돌아온 유배자들이 성전을 다시 짓기 시작할 때 하나로 모아졌을 법이다. 저작 장소는 바빌론이 아니라 예루살렘이다. 저자(저자들)는 예루살렘 폐허를 바라보면서 이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히브리어로 성전 방화일을 '티스아 베압'(thishah beab ;압 달 아홉째 날=음력 79일경)이라고 하는데, 1성전(솔로몬이 지은 성전)과 제2성전(B.C.515년에 복구한 성전)의 파괴를 비롯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어난 주요 재앙들을 모두 기억하는 날로 정했다.

유다교에서는 이 날은 속죄일(욤 키푸르)과 더불어 공식적으로 단식하는 유일한 날이다. 오늘날에도 많은 유다교 회당에서는 이 날 유다교 신자들이 바닥이나 낮은 의자에 앉아, 저녁 기도와 다음날 아침 기도때에 애가를 봉독한다.

로마 가톨릭에서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기념하는 성주간 전례에 애가를 낭송한다. 애가를 내용으로 분류해 보면, 1, 2, 4장은 시인 개인의 인격화된 도성 시온의 애가이고, 3장은 개인과 공동체의 탄원 기도이며, 마지막 5장은 공동체의 애가이다.


오늘 독서는 애가서 2장의 내용 중 일부인데, 2장은 시인의 애가(1-19)와 시온의 애가(20-22)가 같이 나온다. 그런데 시인의 애가가 더 많은 지면을 자치하는 것이 1장과 다른 점이다. 또한 애가의 강조점도 다른데, 1장에서는 예루살렘의 절망과 비탄에 초점을 맞추지만, 2장에서는 하느님의 분노를 부각시킨다.


하느님은 딸 시온과 예루살렘을 난폭하게 파괴하는 성난 원수처럼 묘사된다. 그분은 진노의 날에 딸 시온을, 야곱의 모든 거처를, 딸 유다의 성채들을 사정없이 쳐부수히고 허무신다. 주님은 그들이 당신을 기리고 예배하는 축제의 날과 안식일을 진노의 날로 바꾸시고 전례의 중심인 제단과 성소까지도 버리셨다.

20-22절의 애가는 의인화된 시온이 주님께 하소연하는 기도이다. 여기서 언급된 인육을 먹는 비극은 포위된 예루살렘 도성의 극한 상황을 가리킨다.(2열왕6,28-29 ;예레19,9 ;예레5,10참조) 유다 역사가 요세푸스는 기원 후 70년 예루살렘이 로마군에 포위되었을 때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고 전한다. (유다 전쟁사 634) 신명기 저자는 이스라엘이 계약을 위반할 때, 이런 상황을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신명28,53-54)


'야곱의 모든 거처를 주님께서 사정없이 쳐부수시고, 딸 유다의 성채들을 당신 격노로 허무시고,나라와 그 지도자들을 땅에 쓰려뜨려 욕되게 하셨다.' (2)


애가서 21-8절은 진노하시는 주님의 격정적 심판 행동에 대한 경악과 비판의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여기서는 주님과 이스라엘의 계약적 관계가 심판의 배후에 중요한 모티브로 작용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하느님의 선택된 민족이요 거룩한 나라였다.(탈출19,5.6) 하느님께서는 초자연적 능력으로 구원의 역사를 진행시키셨고(탈출14,21-31), 모든 삶의 과정을 세심하게 책임져 주셨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은혜로 만방 중에서 선택을 받은 계약의 백성이므로, 하느님께 특별히 헌신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자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들은 하느님께 범죄하였고 이 때문에 하느님의 불같은 진노가 그들에게 임하여 그들을 심판하신다. 21-8절은 바로 이러한 주님의 격정적 심판에 대한 예레미야의 경악과 비탄이 생생하게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2절의 서두에 나오며, '사정없이 쳐부수시고' 로 번역된 '삘라으'(bilah)의 원형 '빨라으'(balah)는 사람(이사28,4), 물고기(요나2,4), (탈출7,12)등이 어떤 것을 집어 삼키는 모습을 나타낼 때, 빈번하게 사용되는 단어이다.

하지만 본문에서처럼 강조형으로 사용될 때에는, '멸망'의 의미로 사용된다. 주님께서 심판을 내리시어 살아 있는 무리의 사람들을 삼키게 하심을 나타낼 때 사용되는데, 홍해에서 이집트 군대가 바다에 수장되는 장면(탈출15, 12)과 민수기 16장에 코라와 다탄과 아비람의 반역시에 땅이 그들과 그들에게 속한 모든 것을 산채로 삼키는 것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다.

특히 예레미야는 이 동사를 본절에서 4번이나 사용함으로써(5, 16), 이스라엘의 처절한 상황을 현저하게 부각시켜 표현하고 있다.


한편, 주님께서 삼키신 것은 야곱의 모든 거처들이다. 여기서 '거처들'로 번역된 '나오트'(naoth)'나아'(naah)의 복수형이다. 이 명사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성읍들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초장'(푸른 풀밭)(시편23,2 ;아모1,2), '목장'(시편83,13)을 뜻하는 표현으로, 사람은 물론 특히 짐승이 먹고 휴식을 즐길 수 있는 들판이나 개방된 장소를 의미한다. 이 말은 본절 중반부에 나오는 '성채들'과 비교되는 표현으로서, 유다의 견고한 성읍들 뿐만 아니라 광야와 들판의 초장들까지도 완전히 폐허가 되었음을 말하는 것으로, 유다의 철저한 멸망을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본절의 첫째 행은 유다 주요 산업의 근거지인 푸른 풀밭들을 초토화시켜 더 이상 생산적인 일을 하지 못하게 하셨음을 나타내며, 둘째 행은 국방의 초석인 견고한 성채를 파괴하여 적들의 공격을 무력하게 하셨음을 나타내고, 세째 행은 이로 인하여 나라와 나라를 다스리던 지도자들이 모두 수치를 당하게 된 상황을 나타낸다. 이러한 모든 표현은 유다 멸망의 처참한 상황을 자 보여 주고 있다.


'누가 너를 낫게 하리오?' (13)


본문에서 사용된 '고치다', '치료하다', '낫게하다' 란 뜻의 동사 '라파'(rapha)는 일차적으로 병으로부터의 치료를 의미하는 단어이지만, 때로는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도 있는 다 특별한 동사로서 때로는 '완전하게 만들다', '수리하다' 란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1열왕18,30 ;2열왕2,21 ;예레19,11)

특히 예레미야는 이 어근을 주님께서 행하시는 치료나 회복을 나타낼 때 자주 사용하였다.(예레3,22 ;8,22 ;17,44 ;30.17) 그런 점에서 본문은 인간적인 방편으로는 그 누구도, 그리고 무엇으로도 예루살렘의 멸망과 고통을 회복시키거나 완전히 치료할 수 없음을 밝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슬픔과 고통, 파괴와 멸망은 오직 이러한 심판을 주관하시는 주 하느님만이 고쳐주실 수 있음을 암시한다.

 


 연중 제12주간 토요일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은 성경엔 없다.>

(마태8,5- 17)

5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에 들어가셨을 때에 한 백인대장이 다가와 도움을 청하였다. 6 그가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제 종이 중풍으로 집에 드러누워 있는데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 카파르나움 - 나를 위한 고을, 성전이라는 뜻입니다. 카파르나움의 집은 머리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곧 우리의 머리이신 주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중풍병인 것입니다.

*그 모습을 오늘 독서에서~

(애가2,10-14) 10 딸 시온의 원로들은 땅바닥에 말없이 앉아 머리 위에 먼지를 끼얹고 자루옷을 둘렀으며 예루살렘의 처녀들은 머리를 땅에까지 내려뜨렸다. 11 나의 딸 백성이 파멸하고 도시의 광장에서 아이들과 젖먹이들이 죽어 가는 것을 보고 있자니 내 눈은 눈물로 멀어져 가고 내 속은 들끓으며 내 *애간장은 땅바닥에 쏟아지는구나.

= 하느님의 慈悲(스폴앙코나조마임)- 애간장이 끊어지는 그 마음이신 것.


12 “먹을 게 어디 있어요?” 하고 그들이 제 어미들에게 말한다, 도성의 광장에서 부상병처럼 죽어 가면서, 어미 품에서 마지막 숨을 내쉬면서.

= 하느님의 뜻이 아닌 인간의 뜻을 위한 신앙으로 말씀을 거짓과 사기의 가르침으로 주어, 하늘의 참 양식이 없어 먹지 못해 죽어 가는 겁니다.


13 딸 예루살렘아, 나 네게 무엇을 말하며 너를 무엇에 비기리오? 처녀 딸 시온아, 너를 무엇에다 견주며 위로하리오? 네 파멸이 바다처럼 큰데 누가 너를 낫게 하리오? 14 너의 예언자들이 네게 환시를 전하였지만 그것은 거짓과 사기였을 뿐. 저들이 네 *운명을 돌리려고 너의* 죄악을 드러내지는 않으면서 네게* 예언한 신탁은 거짓과 오도였을 뿐.

= 말씀은 인간의 마음을 만족시키지 못합니다. 말씀은 우리의 죄악을 드러내지요.(히브4,12참조) ? 운명을 돌려 고쳐 살리시려고, 그러나 하느님의 그 뜻을 모르고~


(2티모4,3) 사람들이 건전한 가르침을 더 이상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을 때가 올 것입니다. 호기심에 가득 찬 그들은 자기들의 욕망에 따라 교사들을 모아들일 것입니다.

= 사람들이 스스로 거짓 가르침을 찾아다니니~ 하느님의 말씀을 먹지 못해 모두 영적 중풍에 걸려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 인간들의 입맛에 맞게 만들어낸 사람의 규정과 교리 계명의 가르침을 단식하고, 죄인들의 운명을 되돌려 주시는 십자가의 대속, 그 진리의 복음을 믿고 받아먹어야 합니다.

그때 죄인이 의인으로 운명이 되돌려 지지요.(로마3,24참조)


7 예수님께서 내가 가서 그를 고쳐 주마.” 하시자, 8 백인대장이 대답하였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 카파르나움- 자신을 위한, 자신의 열심히 지은 그 집(성전)은 자격이 없음을 알고 주님의 한 말씀이 병()을 치유(용서)하는 능력, 권한 있음을 아는 백인대장입니다.


9 사실 저는 상관 밑에 있는 사람입니다만 제 밑으로도 군사들이 있어서,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 또 제 노예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10 이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감탄하시며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 예수님께서 감동하시는 고백은~ 자신의 의로움, 정성은 자격없음을 깨닫고(이사1,11-17 64,5 로마3,24참조) 주님의 한 말씀만이 전능하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11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동쪽과 서쪽에서 모여 와, 하늘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 동쪽(에덴의 동쪽. 동쪽과 서쪽은 온 사방을 줄임)으로 쫓겨났던 죄인들이 돌아와 (하마뜨리아-회개) 하늘나라 잔치에 참여하는 것이지요.


12 그러나 하느님 나라의 상속자들은 바깥 어둠 속으로 쫓겨나,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 그러나 회개하지 않는 자들(유대인을 지칭함-자칭 선민들)은 하늘의 양식- 씹을 것이 없어서 이빨만 가는, 곧 카파르나움의 자기열성, 그 헛 양식으로 이빨끼리 부딧치는, 그 이를 간다는 말씀입니다.


13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백인대장에게 말씀하셨다. “가거라. 네가 믿은 대로 될 것이다.”바로 그 시간에 종이 나았다.


14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집으로 가셨을 때,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드러누워 있는 것을 보셨다.

= 진리의 말씀()이 없어 온갖 자기 열성, 법의 행위로 신앙이 짐이 되어 오히려 열병(, 두려움, 근심)이 난 것입니다.


(아모8,11) 보라, 그날이 온다. 주 하느님의 말씀이다. 내가 이 땅에 굶주림을 보내리라. 양식이 없어 굶주리는 것이 아니고 물이 없어 목마른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여 굶주리는 것이다.


15 예수님께서 당신 손을 그 부인의 손에 대시니 열이 가셨다. 그래서 부인은 일어나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 그래서 예수님의 진리의 손()으로 열이 내리고 시중(디아오코스-말씀으로 섬기다)을 들었던 겁니다.


16 저녁이 되자 사람들이 마귀 들린 이들을 예수님께 많이 데리고 왔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악령들을 쫓아내시고, 앓는 사람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 말씀이 이루시는 것입니다. 헛된 신앙의 카파르나움은 마귀()의 유혹 때문인 것이지요.


(창세2,17)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 말씀을 선악으로 먹지 말라 하시는 것입니다.


(창세3,4-5) 그런데 4 뱀이 여자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결코 죽지 않는다.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께서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 선과 악을 인간의 관점으로 보는 것이 죄입니다. 선과 악은 하느님만이 이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뱀, 마귀의 유혹으로 말씀을 선악의 도덕과 윤리로 말하고 들어 모두 그 뱀의 말을 먹어 악이 들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선악의 윤리와 제사의 열성에서 돌아서서 선이 악을 대속하는 그 제사가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져 용서로 생명을 주는 그 하늘의 진리를 깨닫게 되면 악령은 쫓겨납니다.

빛이 켜지면 어둠이 사라지는 것처럼~ 빛 앞에서 어둠은 없는 것입니다.


17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그는 우리의 병고를 떠맡고 우리의 질병을 짊어졌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 악을 먹어 죽을 수밖에 없는 모두를 살리시기 위해 그들의 악, ()를 예수님께서 다 짊어지시고 저주의 뱀으로 죽으러 오신 것입니다.(요한3,14참조)


(에페1,4)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으로~ 아멘.

 



연중 제12주간 토요일 복음 (마태8,5-17)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8)


'저는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에 해당하는 '우크 에이미 히카노스'(ouk eimi hikanos; I am not worthy; I do not deserve to)에서 '히카노스'(hikanos)'가치 있는', '적합한', '알맞은'으로 번역할 수 있다.

마태오 복음 87절에서 '유다인인 내가'라는 표현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이방인들의 집에 들어가거나 합석하지 않고 거리를 두어야 하는 유다인임을 밝히셨는데, 이것은 이방인인 백인대장의 믿음을 시험하신 거라고 볼 수 있다.


'유다인인 내가 굳이 너에게 가서 그를 고쳐야 하느냐?'의 질문에 대해, 이방인인 백인대장은 '저는 주님께서 저희 집에 들어오실 만한 가치조차도 없는 사람입니다'라고 자신을 낮추어 겸손하게 표현했다.

이것은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거나 그들과 식사를 함께 하는 등의 교제를 금지하는 유다인의 관습을 잘 알고 있었던 이방인 백인대장의 사려깊은 배려이기도 하며, 또한 마태오 복음 1525절과 27절에서 가나안 여자가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먹게 해 달라는 겸손과 믿음의 모습과도 비슷한 것이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이렇게 이방인 백인대장의 겸손하고 믿음있는 모습을 강조하여 마태오 복음의 독자인 유다계 크리스챤들에게 큰 믿음을 가질 것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그저'로 번역된 '모논'(monon; only)는 수식하는 문장의 의미를 제한하거나 분리하는 역할을 하는 부사로서 '단순히', '오직'이라는 뜻을 갖는다.

그리고 '말씀'에 해당하는 '로고'(logo; the word)'말씀'이라는 뜻의 '로고스'(logos)의 수단을 나타내는 여격 단수형이다. 따라서 이 구절을 직역하면 '다만 한 말씀으로 하옵소서'이다.


백인대장은 구약의 나아만 장군과 같은 이방인이면서도 주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고 병든 곳 위에 손을 흔들어 병을 고쳐 주기를 바라는(2열왕5,11) 주술적 요구를 하지 않았다.

이방인 백인대장이 바라는 것은 이방의 우상 숭배자들처럼 주문을 외거나 주술적 기원을 하는 행위가 아니었고, 스스로의 이름과 신적 권세를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오는 '고침(치유; 나음)을 입으라'는 단 한마디의 말씀이었던 것이다.

이방인 백인대장은 주님의 한 '말씀'(logos) 자체에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믿은 참된 믿음의 소유자였던 것이다(루카4,26; 히브1,3).




 

20260627일 토요일

[연중 제12주간 토요일]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카파르나움은 호숫가의 작은 도시였지만, 그 안에는 보이지 않는 경계가 있었습니다. 유다인과 이방인, 정결한 이와 부정한 이, 자유인과 노예로 나뉜 경계입니다.

그 한가운데 한 백인대장이 있습니다. 그는 제국의 질서를 따라 명령과 복종에 익숙한 사람이지요. 그러나 그가 예수님께 건네는 말은 명령이 아니라 부탁입니다. “주님, 제 종이 집에 드러누워 있는데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마태 8,6).

이라고 옮긴 그리스 말 파이스는 노예 또는 아이를 가리킵니다. 이름 없이 불리는 존재, 그러나 누군가를 간절하게 만드는 인물.

백인대장은 그를 위하여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낮춥니다. 백인대장의 고백은 체면을 버리는 대신 한 사람의 고통을 멈추게 하려는 애원처럼 들립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믿음에 놀라워하십니다.

동쪽과 서쪽에서 많은 이가 와서 아브라함과 함께 잔칫상에 앉게 될 것이라는 말씀은, 세상의 신분과 권력과 명예가 갈라놓는 경계가 영원하지 않다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아울러 예수님께서는 바깥 어둠에 대한 경고도 잊지 않으십니다. 인간의 경계에서 안타깝게도 서로를 잊어버리는 이들, 그들의 어둠을 경고하십니다.

복음은 누구를 배제하기보다 우리가 우리로 서 있는지 조용히 묻습니다.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부인의 손에 당신 손을 대셨고 그 부인은 일어났습니다.

마태오 복음서는 이 모든 장면을 이사야 예언자가 한 말로 감쌉니다.

그는 우리의 병고를 떠맡고, 우리의 질병을 짊어졌다”(8,17).

예수님께서는 고통을 멀리 밀어내시기보다 사랑으로 당신께서 기꺼이 짊어지십니다.

병의 무게가 누군가에게 홀로 남겨지는 상처가 되지 않도록 상처 곁에 머무는 법을 배우는 일, 그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길입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연중 제12주간 토요일]

외아들 예수(모노게네스-하나로 갖는 이)

(마태8,5-17)

5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에 들어가셨을 때에 한 백인대장이 다가와 도움을 청하였다.

= 지옥으로 떨어져야 할 카파르나움(나를 위한 고을, 성전)이다. 곧 자신의 뜻, 욕망을 위한 신앙을 사는 사람들이다. 백인 대장은 로마의 군인이다. 돈과 명예(義), 그 세상 힘의 원리로 사는 세상의 대장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그들을 구하시러 그 저주의 카파르나움에 들어가시는 것이다. 그런데 이방인인 로마군인이 먼저 다가온다.

 

6 그가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제 종이 *중풍으로 집에 드러누워 있는데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 중풍 또한 카파르나움이다. 중풍은 머리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病으로, 우리의 머리, 주인이신 그 주님의 뜻,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모든 죄인들을 의미한다.

 

7 예수님께서 내가 가서 그를 고쳐 주마.” 하시자,

= 원문을 직역하면 ‘내가 가서 고쳐줄까?’란다. 주님은 하늘에서 땅으로 죄인들을 찾아 오셨듯이, 오늘도 찾아 가시어 그 잘못된 생각(중풍- 카파르나움)을 고쳐 주신다는 말씀이시다.

 

8 그러자 백인대장이 대답하였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 자신의 욕망, 뜻(명예, 의)을 위하여 자기 스스로 지은 카파르나움의 자붕은 자격이 없음을 아는 자기부인(自己否認)이 된 사람의 말이다. 그 자기부인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청할 수 있는 주님의 말씀이다. 주님의 한 말씀으로 고쳐질 수 있음을 아는 사람이다. 곧 주님의 말씀이 생명수, 양식임을 아는 사람이다.

 

(아모8,11) 11 보라, 그날이 온다. 주 하느님의 말씀이다. 내가 이 땅에 굶주림을 보내리라. 양식이 없어 굶주리는 것이 아니고 물이 없어 목마른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여 굶주리는 것이다.

 

(요한4,13-14) 13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물을 마시는 자는 누구나 다시 목마를 것이다. 14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

= 세상의 물, 곧 사람의 말이다. 인간들의 욕망(慾望), 명예(名譽), 의(義)를 위한 물(말)은 헛된말, 생각으로 하늘의 생명을 얻지 못한다는 말씀이다. 그러나 주님의 물(한 말씀)은 살아계셔 사람의 마음 안에서 일 하시며, 영원한 하늘의 생명으로 이끌어 가신다. 곧 말씀을 하느님의 뜻으로 아는 것, 깨닫는 것이 영원한 생명인 것이다.,(요한7,3참조)

 

9 사실 저는 상관 밑에 있는 사람입니다만 제 밑으로도 군사들이 있어서,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 또 제 노예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10 이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감탄하시며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 많은 종교인들이 세상 사람들과 함께 머리이신 주님의 말씀이 아닌, 그 머리의 지체, 꼬리인 자신의 뜻을 위한 말(물) 로 중풍의 삶을 살아가고 있기에, 그들 중에, 그것도 이방인이 그 자신의 삶이 헛된 것임을 아는 자기부인이 된 사람이 請하는 한 말씀이기에 예수님께서 감동을 하신 것이다.

박사학위 다섯 개를 다 버리고 아프리카에서 그들을 위해 희생을 한, 슈바이쳐 처럼, 그래서 세상에 칭찬과 명예를 받는 사람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삶이 헛된 것임을 청하는 그것이, 예수님을 감동시킨다는 것이다.

 

11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동쪽과 서쪽에서 모여 와, 하늘 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12 그러나 하느님 나라의 상속자들은 바깥 어둠 속으로 쫓겨나,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주님의 한 말씀을 갖는 이들만이 하느님나라에 들어간다는 말씀이다. 말씀은 샘명수(물)와 함께 씨를 뜻한다. 곧 주님의 말씀, 씨를 갖고 가지 못하면 씹을 것이 없어 이빨끼리만 갈리는 ‘그 이를 갈 것’이라는 말씀인데 곧 말씀을 가지고 가지 못하면(깨닫지 못하면) 천국에 들어간다 해도 그곳이 바로 ‘이를 가는 곳이 된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천국과 지옥은 스스로 만든다는 말이 있는 것이다.

 

13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백인대장에게 말씀하셨다. “가거라. 네가 믿은 대로 될 것이다.”바로 그 시간에 종이 나았다. 14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집으로 가셨을 때,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드러누워 있는 것을 보셨다. 15 예수님께서 당신 손을 그 부인의 손에 대시니 열이 가셨다. 그래서 부인은 일어나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 *열병- 주님의 말씀으로 하늘의 용서, 생명, 의로움을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의 열심, 열성, 의로움으로 스스로용서, 구원을 위한 삶을 살려하니 신앙이 무거운 짐이 되어, 열이 나는 열병(熱病)이다. 그 헛된 열성(열병)의 손에 참된 열성이신 주님을, 말씀(물) 대시니(부으시니), 열이 가신 것이다. 그리고 일어나, 드러누워 있던(죽었던) 여자가 하늘로, 주님의 뜻으로 살아났다는 것이다.

*시중을 들었다- (디아노코스-말씀으로 섬기다) 곧 말씀이 하늘의 용서, 생명임을 깨달아 그 용서, 생명의 주님으로 섬겼다는 것, 믿었다는 것이다. 그 열병의 다른 모습이 저녁의 상태이며 마귀 들림이다.

 

16 *저녁이 되자 사람들이 마귀 들린 이들을 예수님께 많이 데리고 왔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악령들을 쫓아내시고, 앓는 사람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 *저녁- 구약, 곧 율법(제사오하 윤리)에 멈춘 신앙이 마귀 들림이다. 그래서 아침-신약으로, 곧 그 율법을 당신의 목숨으로 대속하시고 완성하신 그 예수님의 십자가로, 그 구언의 생명, 새 계약으로 반드시 건너와야(파스카)한다.

율법으로는 죄만을 알뿐이다. 율법의 그 사람의 의로움으로는 하느님나라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십자가 의 대속, 그 예수님을 진리로 믿어, 그분의 의로움을 전가 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 하느님나라다.(요한14,6 로마3,20-25참조)

그런데 하느님의 말슴을 사람의 뜻을 위한 선악의 말씀, 그 둘로 먹고 가르치며 사람의 의로움을 위한 신앙을 살자는 것이 뱀(악령*-마귀)의 유혹을 먹은, 곧 선이 악을 대속해 생명을 주시는 한 말씀을 선악의 그 둘로 준 거짓말, 그 거짓가르침으로 중풍, 열병에 걸리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생명을 주시는 말씀이, 심판을 주는 그 선악의 둘, 그 거짓을 쫓아내고 선악의 둘의 말로 힘들고 지친 그 앓는 사람들을 모두 고쳐주신 것이다.

 

17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그는 우리의 병고를 떠맡고 우리의 질병을 짊어졌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우리의 병, 질병, 온갖 죄들을 예수님께서 다 떠맡으시고, 대속으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고, 그 피로 온갖 더러움을 다 씻어 깨끗하게, 거룩하게 하신(히브10,1-22) 성령께서도 증언하신 그 새 계약의 구원, 생명의 한 말씀이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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