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1일 토요일
[대림 제3주간 토요일] 말씀을 믿으신 분 (루카1,39-45)

제1독서<보셔요, 내 연인이 산을 뛰어넘어 오잖아요.>(아가2,8-14)
8 내 연인의 소리! 보셔요, 그이가 오잖아요. 산을 뛰어오르고 언덕을 뛰어넘어 오잖아요.
9 나의 연인은 노루나 젊은 사슴 같답니다. 보셔요, 그이가 우리 집 담장 앞에 서서 창틈으로 기웃거리고 창살 틈으로 들여다본답니다.
10 내 연인은 나에게 속삭이며 말했지요. “나의 애인이여, 일어나오. 나의 아름다운 여인이여, 이리 와 주오.
11 자, 이제 겨울은 지나고 장마는 걷혔다오.
12 땅에는 꽃이 모습을 드러내고 노래의 계절이 다가왔다오. 우리 땅에서는 멧비둘기 소리가 들려온다오.
13 무화과나무는 이른 열매를 맺어 가고 포도나무 꽃송이들은 향기를 내뿜는다오. 나의 애인이여, 일어나오. 나의 아름다운 여인이여, 이리 와 주오.
14 바위틈에 있는 나의 비둘기, 벼랑 속에 있는 나의 비둘기여! 그대의 모습을 보게 해 주오. 그대의 목소리를 듣게 해 주오. 그대의 목소리는 달콤하고 그대의 모습은 어여쁘다오.”
<화답송>시편33,2-3.11-12.20-21(◎1ㄱ과 3ㄱ) ◎ 의인들아, 주님 안에서 환호하여라. 주님께 새로운 노래를 불러라.
○ 비파 타며 주님을 찬송하고, 열 줄 수금으로 찬미 노래 불러라.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고운 가락을 내며 환성 올려라. ◎
○ 주님의 뜻은 영원히 이어지고, 그 마음속 계획은 대대로 이어진다. 행복하여라, 주님을 하느님으로 모시는 민족, 그분이 당신 소유로 뽑으신 백성! ◎
○ 주님은 우리 도움, 우리 방패. 우리 영혼이 주님을 기다리네. 그분 안에서 우리 마음 기뻐하고, 거룩하신 그 이름 우리가 신뢰하네. ◎
복음<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루카1,39-45)
39 그 무렵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
40 그리고 즈카르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였다.
41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을 때 그의 태 안에서 아기가 뛰놀았다.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42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43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44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45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대림 제3주간 토요일 제1독서 (아가2,8-14)
"자, 이제 겨울은 지나고 장마는 걷혔다오. 땅에는 꽃이 모습을 드러내고, 노래의 계절이 다가왔다오. 우리 땅에서는 멧비둘기 소리가 들려온다오." (12)
솔로몬은 이제 겨울도 지나고 비가 그친 좋은 계절이 왔음을 강조하기 위하여 '키 힌네'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키 힌네'(ki hinne)에서 '키'(ki)는 '정녕'(탈출3,12), '진실로'(여호2,24)라는 강조의 뜻을 지니는 단어이고,'힌네'(hinne)는 '자' 혹은 '보라'(see!)라는 뜻을 지닌 불변사이다.
여기서 '지니고'에 해당하는 '아바르'(abar)는 '건너가다', '통과하다'라는 의미이고, '걷혔다오'에 해당하는 '할라프'(hallap)는 본문에서 '아바르'(abar)와 같이 '건너가다'라는 의미를 갖는 동사이지만, 여기서는 같은 단어의 반복을 피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 단어에 이어지는 '할라크 로'(hallak lo)는 새 성경에서 번역되지 않았다. 이것을 번역하면 '그 자신이 갔다'(he is gone to himself)이다.
여기서 '그'라는 3인칭 단수는 '비'를 의미하는 '학게셈'(haggeshem)을 가리킨다.
따라서 '할라크 로'(hallak lo)는 '장마는 그쳤다오'에 해당하는 '학게셈 할라프' (haggeshem hallap)를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즉 '겨울은 지나고'와 '장마는 그쳤다오'라는 표현에 이어 이제 우기가 완전히 지나갔음을 강조하는 표현을 다시 반복하여 술람미 여인으로 하여금 집 밖으로 나올 것을 거듭 촉구하는 것이다.
한편 이스라엘의 겨울은 우기에 해당한다. 우기는 10월에 시작되어 다음 해 4월까지 이어진다. 이 가운데 10월 중순이나 하순에 접어들면 본격적인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데, 구약은 이것을 '이른 비'(요엘2,23; '가을비')로 표현한다.
이때 내리는 비는 밀과 보리 수확의 풍년을 가늠하는 중대한 요인이었기에, 사람들은 이 비를 기다렸고 기뻐하였다(시편65,9-14).
반면 4월에 내리는 마지막 호우는 '늦은 비'('봄비')로 표현된다. 팔레스티나 지역의 농사를 위해서는 비가 이때까지만 내리고 중단되어야 헀다. 왜냐하면 5월과 6월은 보리와 밀을 추수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가서 2장 12절의 '겨울은 지나고 장마는 걷혔다오'가 의미하는 것은 '늦은 비(봄비)가 내리는 4월이 지나고 초목이 자라며 꽃이 필 봄이 왔다'는 것이다.
새로운 계절이 왔다는 이러한 표현은 술람미 여인과 솔로몬과의 관계에 대한 상징으로 볼 수도 있는데, 이 표현은 두 연인이 서로 떨어져 있는 시기가 지나고, 이제 재상봉을 통해 다시금 사랑의 꽃을 피우게 될 것임을 암시한다.
'땅에는 꽃이 모습을 드러내고, 노래의 계절이 다가왔다오'
본문은 땅에 봄기운이 완연히 이르렀다는 것을 보여준다.
'꽃에 해당하는 '한닛차님'(hannitsanim; the flowers)의 원형 '닛찬'(nitsan)은 '빛나다', '번쩍이다'라는 뜻을 지닌 '나차츠'(natsats)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이것은 '꽃'이 눈이 부시듯한 아름다움을 지녔음을 나타낸다.
그리고 '드러내고'에 해당하는 '니르우'(niru)는 '보다', '바라보다'라는 뜻을 갖는 '라아'(raah)의 수동형이다. 여기서 하느님의 계절 순환의 역사에 따라 꽃이 지면에 드러나 보여지는 모습을 시적(詩的) 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노래의 계절'로 번역된 '힛자미르'(hizzamir; the season of singing)는 정관사 '하'(ha)에 '노래'를 의미하는 '자미르'(zamir)가 결합된 형태이다.
또한 '다가왔다오'에 해당하는 '힉기아으'(higgiah)는 '~에 이르다', '~에 닿다'라는 뜻을 지닌 '나가으'(nagah)의 사역 농동형이다. 여기서 사역형을 사용한 것은 하느님의 뜻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자연의 순환을 암시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표현 가운데는 하느님께서 자연을 주관하시어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하는 아름다운 계절이 오게 하신 것처럼, 술람미 여인과 솔로몬 자신의 사랑도 아름답게 꽃을 피우게 하실 것이라는 솔로몬의 희망이 담긴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 땅에서는 멧비둘기 소리가 들려온다오'
본문은 이스라엘 땅에 봄이 왔음을 '멧비둘기 소리'를 통해 나타낸다.
'멧비둘기'에 해당하는 '핫토르'(hathor)의 원형 '토르'(thor)는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비둘기와는 다른 종류의 새로서, '돌아다니다', '살피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투르'(thur)에서 유래하며, 먼 지역을 돌아다니며 여기저기를 잘 살피는 특성을 지닌 야생 비둘기를 가리키는 말이다.
새 성경은 '멧비둘기'라는 단어를 번역했는데, '(얼룩진)무늬가 있는 산비둘기'라는 말이다. 이 비둘기는 4월초 곧 봄이 이를 때에 팔레스티나로 돌아오는 철새이다.
따라서 이런 야생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서 들린다는 표현은 바로 이스라엘 땅에 봄이 왔음을 청각적 이미지를 통해 나타낸 것이다.
솔로몬은 이처럼 봄이 도래했음을 '장마는 걷혔다오','꽃이 모습을 드러내고', '노래의 계절이 다가왔다오', '멧비둘기 소리가 들려온다오'라는 회화적 이미지를 통해 매우 감성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한편 '우리 땅에서는'에 해당하는 '뻬아르체누'(beartsenu; in our land)에서 1인칭 복수 접미어 '누'(nu)는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우리 땅'은 일차적으로 왕이 다스리는 이스라엘 전지역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더 나아가서 지금 두 사람이 만나고 있는 술람미 지역의 평원을 의미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대림제4주간 월요일 복음 (루카1,39-45)
오늘 독서와 복음은 기다림과 기쁨에 관한 것입니다.
“솔로몬의 가장 아름다운 노래”(아가 1,1)인 아가는 일종의 ‘사랑 노래 모음집’입니다.
그 가운데 오늘 독서는 구혼 시절을 회상하는 여인의 노래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두 연인은 만남을 기대하며 서로를 부르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남자를 모르는 처녀로서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을 잉태하신 마리아와, 그에 앞서 아이를 낳을 수 없었지만 같은 분의 힘으로 세례자 요한을 가진 엘리사벳이 인사를 나눕니다.
그 만남의 기쁨은 엘리사벳의 태 안의 아기가 뛰노는 즐거움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간절히 기다리던 만남이 이루어져 얻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큽니다.
그 만남이 주님과의 만남이라면 그 기쁨은 더욱 크다는 것을 화답송의 시편이 잘 보여 줍니다.
“의인들아, 주님 안에서 환호하여라. 주님께 새로운 노래를 불러라. 주님은 우리 도움, 우리 방패. 우리 영혼이 주님을 기다리네. 그분 안에서 우리 마음 기뻐하고, 거룩하신 그 이름 우리가 신뢰하네.”
주님 성탄을 앞둔 대림 시기의 막바지에서 구세주께서 오시기를 간절히 기다립니다.
사랑의 기쁨을 노래한 아가의 표현처럼 구세주께서는 노루나 사슴처럼 산을 뛰어오르고, 언덕을 뛰어넘어 오십니다.
이처럼 사랑은 사람들이 할 수 없다고 생각하던 것을 이루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 아기의 잉태와 두 어머니의 만남이 그렇습니다.
따라서 구세주께서 오시는 것을 그 무엇도 방해할 수 없습니다. 주님 사랑은 행동을 촉진하는 힘입니다.
주님 성탄을 앞둔 우리 또한 어떤 역경 속에서도 오시는 분을 기쁘게 맞이하려면 힘차게 뛰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박기석 사도 요한 신부)
대림 제3주간 토요일 제1독서(아가2,8-14) 2
오늘 날 성서학계에서는 언어학적 관찰에 힘입어 아가서가 바빌론 유배 이후 페르시아 시대에 나왔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그러나 본문에는 옛 히브리어 어법이나 표현도 산재해 있어서 언어학적 관찰만을 시대 측정의 표준으로 삼는 것은 무리이다.
아가는 남녀간의 사랑에 얽힌 감정들과 요소들을 표현한 다양한 시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현대 성서학계에서는 이 책에 드러난 소주제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갈망(1,2-4), 예찬(1,12-14), 회상(2,8-17), 육체적 매력의 묘사(4,1-7)
자랑(8,11-12) 놀림(2,14-15), 자아묘사(1,5-6)등
아가서 2장 8-17절은 여자의 회상이다.
여자는 창가에서 자기 애인이 찾아왔던 때를 회상하며 그가 다시 자기를 방문해 주기를 고대한다.
오늘 독서가 아가서 2,8-14이다.
그리고 복음이 환희의 신비 2단인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 이야기(루카1,39-45)이다.
일찍이 즈카르야가 주님의 성소 분향 제단 오른쪽에 발현한 주님의 천사로부터 세례자 요한의 탄생에 대한 말씀을 듣고(루카1,11-20), 그리고 그의 아내 엘리사벳의 잉태를 통하여 그 말씀의 실현을 체험한 것이 첫번째 주님과의 드러난 만남이었을 것이다.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겪어야 했던 치욕을 없애 주시려고 주님께서 굽어 보시어 나에게 이 일을 해주셨구나." (루카1,25)
이제, 오늘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수태한 동정 성모님의 아인카렘에 있는 사촌 언니 엘리사벳 집 방문은 첫번째 주님과의 만남을 회상하면서, 다시 한번 자신을 찾아오기를 바라고 그토록 고대하던 엘리사벳의 메시아에 대한 기다림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니까, 아가서에서 자기 애인이 다시 방문해 주기를 기다리는 여자가 바로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에 해당하고, 애인은 바로 성모님 배 안의 예수님(메시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었을 때, 그의 태안에서 아기가 뛰놀았다는 것은 배 안에서의 원죄의 사함을 받았다는 것이다.
구원을 가져다 주시는 도구 역할을 하시는 성모님으로 말미암아, 성모님 배 안의 구원자이신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의 원죄를 사해 주셨다는 것이다.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큰 소리로 외친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된 일입니까?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루카1,42ㄴ-45)
우리는 엘리사벳처럼 성령으로 충만하여 오시는 주님을 알아보자.
특히 어머니 성모님을 통해서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알아뵙고 구원을 체험하도록, 열심히 성모님의 믿음을 묵상하고 묵주의 기도를 통해 성모님의 중재와 전구를 청하자.
엘리사벳처럼 성령으로 충만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되나?
"~이 둘은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이들로, 주님의 계명과 규정에 따라 흠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루카1,6)
[대림 제3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사제 정천 사도 요한)
늙은 나이에 아들을 잉태한 엘리사벳, 그리고 처녀의 몸으로 아들을 잉태한 마리아.
오늘 복음은 하느님의 기적을 체험한 두 여인의 아름다운 만남을 그리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서둘러’ 엘리사벳을 찾아갑니다.
그도 하느님의 권능으로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하는 친척이 있다는 것이 마리아에게 얼마나 큰 위로였을까요?
한시라도 빨리 엘리사벳을 만나 서로 체험을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싶었을 것입니다.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에서 유다 산악 지방까지 가야 하는 험난한 여정이었지만,
마리아는 주저하지 않고 잉태한 몸으로 여행길에 오릅니다.
그렇게 먼 길을 달려와 준 마리아를 본 엘리사벳은 또 얼마나 기뻤을까요?
그는 임신하고 무려 다섯 달이나 숨어 지냈습니다.
그동안 자신에게 일어난 기적적인 사건을 마음 터놓고 이야기할 상대가 없었는데,
처음으로 그 상대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만남은 비슷한 처지에 놓인 두 여인의 만남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그들이 잉태한 아기들, 곧 예수님과 세례자 요한의 첫 대면이기도 한 것입니다.
메시아와 그의 선구자, 그들은 아주 오래전에 이미 만났고 서로를 알아보았습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엘리사벳은 주님의 어머니를 마주한 사실에 기뻐하고,
태중의 아기 요한도 태중의 아기 예수님의 방문에 기뻐 뛰놉니다.
엘리사벳과 요한처럼, 이제 곧 예수님을 만나게 될 우리도 기뻐합시다.
아가서에서 자기 연인을 애타게 기다리는 여인처럼 말입니다.
“내 연인의 소리! 보셔요, 그이가 오잖아요.
산을 뛰어오르고, 언덕을 뛰어넘어 오잖아요.”
우리를 보고 싶은 마음에 서둘러 뛰어오시는 그 ‘연인’을 기쁘게 맞이할 채비를 서두릅시다.
(정천 사도 요한 신부)
[대림제3주간 목요일]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루카1,39-45)
39 그 무렵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
= 성령과 함께하는 이의 반응이다.
앞35절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38절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 자신이 받은 말씀을 전하는 이웃 사랑의 모습이다. 그러나 두렵고 떨리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천사가 일러준 엘리사벳을 찾은 것이다. 하느님께서 맺어준 이웃 사랑을 할 관계, 인연이다.
40 그리고 즈카르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였다. 41ㄱ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을 때 그의 태 안에서 아기가 뛰놀았다.
= 태(胎) 안에 아기들, 곧 구약의 예언자 세례자 요한이 신약의 진리(예수)를 만나 기쁜 것이다.요한-자신이 태어나 선포할~ 세상의 죄를 없애실 하느님의 어린양, 그분을 만나 기쁜 것이다.자신의 짝을 만난 기쁨이다.
(아가2,8) 8 내 연인의 소리! 보셔요, 그이가 오잖아요. 산을 뛰어오르고 언덕을 뛰어넘어 오잖아요.
= 연인의 소리~ 구약의 산, 언덕을 뛰어 넘어 오시는, 곧 율법을 당신의 죽음으로 다 완성하시고 넘어오시는, 나를 위한 사랑, 그 기쁜 소식을 가지고 뛰어 오시는 내 주님! 그 예수님의 소식, 말씀을 구원의 진리로 만났을 때 어떻게 기쁘지 않겠는가~~
본 기도에서 주님께서, ‘사람이 되어 오시는 외아드님’의 탄생을 기뻐하오니~라고 하신 것은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이 되어 오신다는 것이다.(요한1,14)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율법을 대속으로 다 이루신 그 구원의 계명으로 오셨다는 것이다. 곧 에덴의 생명나무, 마라의 나무 하나로, 그리고 노아 홍수 후 주신 무지개 계약으로 오셨다는 것이다.
모두 대속으로 받는 구원을 뜻한다. 그것이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사람으로 오신 목적이기에 기쁜 소식이다. 신앙을 살면서도 제사와 윤리로 자신의 죄와 싸우며 하늘의 안식을 모르고 살던 우리는 그 자신의 실체를 안다면, 그 모든 것에서 해방을 주신다는 내 님의 소리, 그 하느님의 진리를 만났을 때, 기뻐할 수밖에 없다. 하느님의 말씀을, 성경을 그 기쁜 소식으로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르10,45) 45 “사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마태11,28) 28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41ㄴ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42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 두렵고 떨렸던 마리아에게 엘리사벳의 입을 통하여 성령께서 다시 한번 믿음의 확신을 주신다. 그 ‘마리아’가 ‘내’가 되어야 한다.
성경말씀, 곧 하느님의 말씀을 내 주님(연인)의 대속, 그분의 목숨으로 받는 구원, 그 진리로 받는다면~ 성령께서 나에게도 “은총이 가득한 로마노야 기뻐 하여라 주님께서 함께 하시니 모든 이 중에 복되며 네 안(태중)에 말씀이 또한 복되도다.“ 말씀으로 복된 것이다.~하신다.
43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44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 앞 41절에서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을 때, 지금 44절은 인사말 *소리가 들리자, 그 소리 하느님의 평화를 비는 인사말 소리다.(마태10,12참조)
‘소리-콜’은 ‘파괴하고 다시 세우기 위해 교훈하고 가르친다’는 의미라 했다. 그러니까 마리아의 인사말 소리는- 세상의 평화를 위해 사는 이들의 생각과 삶을 부수시고 다시 가르치시어 하늘의 평화를 주시는 그 하느님의 뜻으로 인사했던 것이다.
성령을 받은 胎안에 요한이 그 하느님의 뜻을 기뻐한 것이다. (정말 그랬을까?-그런데 관심을 두면 안된다. 성경에서 전하고 싶은 요점을 알아듣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듯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늘의 평화, 그 소리를 들었을 때 기뻐 할 줄 아는 것이 신앙이다. 그래서 성령과 함께하는 그리스도인만이 기뻐할 줄 아는 소리, 콜이다. 또한 그 기쁨은 말씀의 힘이다. 말씀 자체가 기쁜 소식이기 때문이다. 기쁨은 찾아 얻는 것이다.
(요한8,31-32) 31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는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32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 진리의 영, 성령이시다.
45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 믿음이 福이다. 믿음은 세상을 이긴다. 믿음은 자신을 이긴다. 세상을, 나 자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믿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세상을 이기지 못한다. 나는 자신을 이기지 못한다. 그러나 내 주님 예수께서 나와 세상을 이기시고 그 승리를 나에게 전가 시켜 주시기 때문이다.
(1요한5,3-5) 3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바로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계명은 힘겹지 않습니다. = 내 주님께서 대속하셨기에 내 연인의 그 사랑을 믿기 때문이다. 4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모두 세상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이긴 그 승리는 바로 우리 믿음의 승리입니다. 5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1코린15,57)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립시다.
= 믿음이 복이다. 행위의 신앙으로는 생길 수 없는 믿음이다. 본당 활동 등, 행위 신앙을 할 수 없는 요즘이 성경을 진지하게 공부할 때라는 것이다. 내 주님, 연인의 사랑을 받고 믿을 수 있는 때라는 것이다.
(스바3,15) 15 *주님께서 너에게 내리신 판결을 거두시고 너의 원수들을 쫓아내셨다. 이스라엘 임금 주님께서 네 한가운데에 계시니 다시는 네가 불행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율법의 산과 언덕을 뛰어넘어 기쁜 소식으로 오시는 내 주님과의 만남은 우연이 아닌 하늘의 필연이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내 연인의 기쁨의 소리를 잃지 않게 저희 모두를 의탁하오니 보호 하소서~아멘!!!
행복하십시오
행복은 무엇인가? 만족한 삶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합니다.
추구하는 방법과 구체적으로 느끼는 형태가 다양하지만 행복한 삶을 살고자 하는 마음만은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소유하는 것에서, 어떤 이는 지배하는 것에서, 어떤 사람은 베푸는 사랑에서 만족합니다.
우리가 진정한 행복을 어디에서 찾고 있는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참된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 가르쳐 줍니다.
엘리사벳은 마리아에게 말하였습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1,45).
참으로 행복한 사람은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고 믿고 그대로 하는 사람입니다.
루카 복음11장 27-2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계실 때에 군중 속에서 어떤 여자가 목소리를 높여,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결국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은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고 믿고 그대로 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 세상에서 행복을 찾지만 하느님 곁에 있는 것이 행복이요, 그분이 원하시는 것을 실행하는 순간이 행복입니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알되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불행하며, 이 모든 것을 모르나 하느님을 아는 사람들은 참으로 행복합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사업에 성공하고 재물도 명예도 얻었고 좋은 집에 좋은 차를 가지고 있으며 귀한 자녀를 얻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일시적인 것입니다.
그것이 행복을 보장해 주지는 못합니다.
학생이 좋은 학교에 들어가는 것이 곧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공부를 해도 거기에서 행복이 완성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대통령이 되어도, 대통령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한다고 할지라도 때가되면 내려 놓아야 합니다.
인생 여정에 있어서 예기치 않는 많은 일들을 접하게 되고 그 안에서 이유도 모르는 가운데 포기하고 버려야 할 것이 얼마나 많은지요?
그래서 또 실망하고 좌절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을 믿는 사람은 성공과 실패 안에서도 그분이 역사하시고 섭리해 주심을 알기에 행복합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알맞은 종류의 행복을 주십니다.
시련과 고난을 겪기 전이나 겪는 중이나 혹은 겪고 난 뒤에 반드시 주십니다”(성 알로이시오 슈월츠).
믿는 이들에게 있어서 실패는 늦추어진 성공일 따름입니다.
그러므로 천상의 것을 추구하고, 주님의 말씀을 행하는 가운데 행복한 날 되시기 바랍니다.
소유와 지배를 하는 욕구에서 벗어나 천상을 갈망하며 베푸는 삶 안에서 행복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베푸는 삶, 사랑의 삶에서 만족하는 삶은 ‘약속에 충실한 주님을 믿는 믿음’을 바탕으로 합니다.
주님을 믿고 주님 안에서 행복에 행복을 더하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사제 반영억라파엘
2024년 12월 21일 [대림 제3주간 토요일]
말씀으로 내가 복이 되는 것,
복음(루카1,39-45.56)
39 그 무렵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 40 그리고 즈카르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였다. 41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을 때 그의 태 안에서 아기가 뛰놀았다.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42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 말씀을 받아들인(잉태) 것이 가장 큰 복이며 그 큰 복인 말씀으로 내가 복이 되는 것, 말씀을 간직(잉태)한 이의 방문은 사람을 성령으로 가득 차게 한다. 말씀과 하나 됨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하느님의 말씀, 계명인 이웃 사랑이다.
43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44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45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 말씀이 찾아 오셔서 “은총이 가득한 이(우리, 나)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쓴물)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이 모든 말씀을 믿어 복이 되셨다. (그 큰 일이 자신에게 이루어짐을 믿어) 말씀을 잉태한 주님의 어머니가 되셨다. 그리고 주님께서 말씀, 곧 하느님의 뜻을 십자가에서 다 이루시고 교회(나)의 어머니(신심)로 돌려주셨음이다.(요한19,26)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마니피캇이다~
(루카46-55) 46 그러자 마리아가 말하였다.“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47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48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49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50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51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52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53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 끌어 내리시고 높이심, 모든 이를 구원하시려는 자비다. 주님의 은혜의 평등한 길, 평지에 맞춘 것.
54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55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
= 사람의 구원을 위해,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는 자비다. 그래서 세상의 반대를 받기도 하는 자비다.(루가2,34) 곧 하느님을 경외하는, 믿는, 선택을 받은 이들에게 베푸시는 자비다.
교만의 높은 자리에서 구원의 낮은 자리로 내려오는 과정, 곧 육과 마음의 아픔, 고난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 고난의 삶 안에 하느님께서 늘 함께 하셔서 우리 구원의 일을 친히 이루신다는 것이다.
(이사43,11-13) 11 내가, 바로 내가 주님이다. 나 말고는 구원해 주는 이가 없다. 12 미리 알려서 구원하고 이를 들려준 것은 나지 너희 가운데에 있는 어떤 낯선 신이 아니다. 주님의 말씀이다. 너희는 나의 증인이고 나는 하느님이다. 13 앞으로도 나는 그러하리니 내 손에 든 것을 빼내 갈 자 없으리라. 내가 하는 일을 누가 돌이킬 수 있겠느냐?
(요한10,27-30) 27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28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그리하여 그들은 영원토록 멸망하지 않을 것이고, 또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29 그들을 나에게 주신 내 아버지께서는 누구보다도 위대하시어, 아무도 그들을 내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다. 30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요한14,1) 1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독서(아가2,13-14) 13 무화과나무는 이른 열매를 맺어 가고 포도나무 꽃송이들은 향기를 내뿜는다오. 나의 애인이여, 일어나오. 나의 아름다운 여인이여, 이리 와 주오. 14 바위 틈에 있는 나의 비둘기, 벼랑 속에 있는 나의 비둘기여! 그대의 모습을 보게 해 주오. 그대의 목소리를 듣게 해 주오. 그대의 목소리는 달콤하고 그대의 모습은 어여쁘다오.”
= 두려움으로 숨어 위험에 처해있는 우리에 대한 사랑이시다.
(스바3,17-18ㄱ) 17 주 너의 하느님, 승리의 용사께서 네 한가운데에 계시다. 그분께서 너를 두고 기뻐하며 즐거워하신다. 당신 사랑으로 너를 새롭게 해 주시고 너 때문에 환성을 올리며 기뻐하시리라. 18 축제의 날인 양 그렇게 하시리라.
= 자비는 여자의 자궁을 뜻하는 것으로, 곧 자신의 모든 것(목숨, 고난, 입덧)을 바쳐 새 생명을 길러내는 애 끓는 사랑을 뜻한다. 하느님 아버지의 마음, 사랑이 그렇다.
56 마리아는 석 달가량 (3으로) 엘리사벳과 함께 지내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 우리는 시련이 없는 하느님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바위틈에 숨을 필요가 없는, 벼량같은 위험(눈물, 고통)이 없는 곳이다.
☧ 아버지!
성령으로 충만하여 믿음을 더해 주시어 아버지 사랑 안에 있음을 깨닫게 하시어 이웃과 함께 감사, 찬미, 영광드리는 삶을 살게 하소서. 그리스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니다.~아멘!!!
2024년 12월 21일 토요일
[대림 제3주간 토요일] (김재덕 베드로 신부)
성모님께서는 다섯 달 동안 숨어 지내던 엘리사벳에게 ‘서둘러’ 찾아가십니다.
그러자 놀라운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태중에 계시는 예수님과 세례자 요한의 만남입니다.
이 만남에 ‘성령’께서도 함께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엘리사벳의 입을 통하여 성모님께 ‘행복 선언’을 하십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45)
성모님께서는 우리를 예수님과 만나게 해 주십니다.
그리고 성부 하느님께서는 성모님과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에 성령을 가득히 부어 주시며,
우리도 엘리사벳이 체험하였던 것처럼 성모님을 통하여 예수님을 바라보며,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1,43)라는 고백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몽포르의 루도비코 성인의 말씀을 들어 봅시다.
“우리가 하느님께 올라가기 위해서는 세 계단이 있다.
그 첫 계단은 우리에게 가장 가깝고 우리의 능력에 알맞은 마리아이시다.
둘째 계단은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셋째 계단은 하느님 아버지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리 기도의 중개자이신 마리아를 거쳐야 하고
영원하신 하느님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리 구원의 중개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야 한다”(『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 86항).
성모님께 도움을 청하고, 성모님을 삶 가운데로 초대하십시오.
여러분도 엘리사벳처럼 성령으로 가득 차 성모님을 통하여 살아 계신 예수님을 만나는 기쁨을 반드시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아멘.
(김재덕 베드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