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4주간 월요일] 마귀와 돼지 떼 (마르5,1-20)

2024. 1. 29. 오전 5: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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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1월 29일 월요일

[연중 제4주간 월요일마귀와 돼지 떼 (마르5,1-20)

 


1독서<주님께서 명령하신 것이니 저주하게 내버려 두시오.>(2사무15,13-14.30; 16,5-13)

13 전령 하나가 다윗에게 와서 말하였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이 압살롬에게 쏠렸습니다.”

14 다윗은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신하에게 일렀다. “어서들 달아납시다잘못하다가는 우리가 압살롬에게서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이오서둘러 떠나시오그러지 않으면 그가 서둘러 우리를 따라잡아 우리에게 재앙을 내리고칼날로 이 도성을 칠 것이오.”

30 다윗은 올리브 고개를 오르며 울었다그는 머리를 가리고 맨발로 걸었다그와 함께 있던 이들도 모두 제 머리를 가리고 울면서 계속 올라갔다.

16,5 다윗 임금이 바후림에 이르렀을 때였다사울 집안의 친척 가운데 한 사람이 그곳에서 나왔는데그의 이름은 게라의 아들 시므이였다그는 나오면서 저주를 퍼부었다.

온 백성과 모든 용사가 임금 좌우에 있는데도그는 다윗과 다윗 임금의 모든 신하에게 돌을 던졌다.

시므이는 이렇게 말하며 저주하였다. “꺼져라꺼져이 살인자야이 무뢰한아!

사울의 왕위를 차지한 너에게 주님께서 그 집안의 모든 피에 대한 책임을 돌리시고그 왕위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겨주셨다너는 살인자다이제 재앙이 너에게 닥쳤구나.”

그때 츠루야의 아들 아비사이가 임금에게 말하였다. “이 죽은 개가 어찌 감히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을 저주합니까가서 그의 머리를 베어 버리게 해 주십시오.”

10 그러나 임금은 츠루야의 아들들이여그대들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소주님께서 다윗을 저주하라고 하시어 저자가 저주하는 것이라면어느 누가 어찌하여 네가 그런 짓을 하느냐?’ 하고 말할 수 있겠소?”

11 그러면서 다윗이 아비사이와 모든 신하에게 일렀다. “내 배 속에서 나온 자식도 내 목숨을 노리는데하물며 이 벤야민 사람이야 오죽하겠소주님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저주하게 내버려 두시오.

12 행여 주님께서 나의 불행을 보시고오늘 내리시는 저주를 선으로 갚아 주실지 누가 알겠소?”

13 다윗과 그 부하들은 길을 걸었다.

 

<화답송>시편3,2-3.4-5.6-8ㄱㄴ(8ㄱㄴ◎ 일어나소서주님저를 구하소서.

○ 주님저를 괴롭히는 자들 어찌 이리 많사옵니까저를 거슬러 일어나는 자들 많기도 하옵니다. “하느님이 저런 자를 구원하실까 보냐?” 저를 빈정대는 자들 많기도 하옵니다

○ 주님당신은 저의 방패저의 영광제 머리를 들어 높이는 분이시옵니다제가 큰 소리로 주님께 부르짖으면당신의 거룩한 산에서 응답하시나이다

○ 주님이 나를 지켜 주시기에누워 잠들어도 나는 깨어나니나를 둘러싼 수많은 무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않으리라일어나소서주님저를 구하소서저의 하느님

 

복음<더러운 영아그 사람에게서 나가라.>(마르5,1-20)

예수님과 제자들은 호수 건너편 게라사인들의 지방으로 갔다.

예수님께서 배에서 내리시자마자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무덤에서 나와 그분께 마주 왔다.

그는 무덤에서 살았는데어느 누구도 더 이상 그를 쇠사슬로 묶어 둘 수가 없었다.

이미 여러 번 족쇄와 쇠사슬로 묶어 두었으나그는 쇠사슬도 끊고 족쇄도 부수어 버려 아무도 그를 휘어잡을 수가 없었다.

그는 밤낮으로 무덤과 산에서 소리를 지르고 돌로 제 몸을 치곤 하였다.

그는 멀리서 예수님을 보고 달려와 그 앞에 엎드려 절하며,

큰 소리로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하느님의 이름으로 당신께 말합니다저를 괴롭히지 말아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더러운 영아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시자그가 제 이름은 군대입니다저희 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0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 자기들을 그 지방 밖으로 쫓아내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청하였다.

11 마침 그곳 산 쪽에는 놓아기르는 많은 돼지 떼가 있었다.

12 그래서 더러운 영들이 예수님께, “저희를 돼지들에게 보내시어 그 속으로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13 예수님께서 허락하시니 더러운 영들이 나와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그러자 이천 마리쯤 되는 돼지 떼가 호수를 향해 비탈을 내리 달려호수에 빠져 죽고 말았다.

14 돼지를 치던 이들이 달아나 그 고을과 여러 촌락에 알렸다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려고 왔다.

15 그들은 예수님께 와서 마귀 들렸던 사람곧 군대라는 마귀가 들렸던 사람이 옷을 입고 제정신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그만 겁이 났다.

16 그 일을 본 사람들이 마귀 들렸던 이와 돼지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17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께 저희 고장에서 떠나 주십사고 청하기 시작하였다.

18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마귀 들렸던 이가 예수님께 같이 있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19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집으로 가족들에게 돌아가주님께서 너에게 해 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을 모두 알려라.”

20 그래서 그는 물러가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해 주신 모든 일을 데카폴리스 지방에 선포하기 시작하였다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연중 제4주간 월요일 제1독서 (2사무15,13-14.30; 16,5-13ㄱ)

 

"다윗은 올리브 고개를 오르며 울었다.  그는 머리를 가리고 맨발로 걸었다.  그와 함께 있더 이들도 모두 제 머리를 가리고 울면서 계속 올라갔다." (2사무15,30)

 

사무엘서 하권 15장 30절부터 37절까지 반란자 압살롬을 피하여 합법적인 통치자 다윗이 비참한 모습으로 요르단으로 도망친 사실과 예전에 다윗의 고문이었던 길로 사람 아히토펠이 정권을 탈취한 압살롬의 편에 가담한 반면(2사무15,12), 에렉사람 후사이(2사무15,32)는 모든 권력을 잃어버린 다윗을 위해 헌신을 결단한 사실이 대조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사무엘서 하권 저자는 다윗이 그의 고문인 아히토펠의 배반 소식을 들은 것과 후사이를 만나 그에게 첩자의 임무를 부여한 사실을 동시에 말하면서 다윗이 모든 것을 잃은 것이 아니며 일말의 희망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극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그는 고문인 아히토펠에게 배반을 당한 대신에 후사이라는 충실한 일꾼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후사이는 그 이전부터 다윗의 좋은 벗이었지만(2사무15,37), 다윗이 위기에 처했을 때 그를 위해 더없이 훌륭한 고문이 되어주었던 것이다.

 

한편 여기 나오는 '올리브'에 해당하는 '핫제팀'(hazethim; the Mount of Olive)는 키드론 시내 동쪽 언덕편에 있는 작은 산으로서, 올리브 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는 곳을 말한다.

또한 '고개를'로 번역된 '베마알레'(bemaalle)의 원형 '마알레'(malle)는 '올라가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알라'(alla)에서 유래한 명사로서 '오르막', '고개', '언덕'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올리브 고개'에 해당하는 원문의 정확한 의미는 '올리브산 언덕'이라는 뜻이다.

 

키드론 시내를 건너자마자 동편으로 오르막이 있고, 그 정상에는 올리브 산이 있기 때문에 원문이 이러한 지형적 특성을 나타내어 묘사한 것이다.

이제 다윗은 그곳을 '오르며 울었고, 머리를 가리고, 맨발로 걸었다'고 묘사된다. 다윗이 예루살렘 동편에 있는 올리브산 언덕을 세 가지 행동을 하면서 오르고 있다.

 

첫째, '머리를 가리고'에 해당하는 '웨로쉬 로 하푸이'(werosh lo hapui; and his head was covered)는 '그리고 그의 머리를 뒤집어 쓴 채'라는 뜻이다.

 

구약에서 이와 비슷한 모습으로 '머리를 감싸는 모습'과 '머리에 재를 뒤집어 쓰는 모습'이 있다.

전자는 몹시 수치스러운 상황에서 번뇌하는 모습을 나타내며(에스테르6,12), 후자는 몹시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슬퍼하는 모습을 나타낸다(2사무13,19; 느헤9,1).

 

여기 본문에서 다윗은 머리에 재를 뒤집어 쓰지는 않았지만, 그가 보인 행동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을 나타내는 것이었음이 분명하다.

다윗은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도피해야만 하는 자신의 신세가 너무가 처량하고 수치스러워 그와 같은 행동을 했을 것이다.

 

둘째, 다윗은 '맨발로 걸었는데', '여기에 해당하는 '웨후 홀레크 야헤프'(wehu hollek yahep; and he went barefoot)는 '그리고 그가 맨발로 걷고 있었다'는 뜻이다.

고대 근동에서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걷는 행위는 노예들만 하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 하느님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면거룩하신 하느님 대전에서 자신의 수치스러운 죄를 회개하며 스스로를 겸허하게 낮추는 상징적인 행동이 된다.

모세가 호렙산에서 하느님을 만났을 때 발에서 신을 벗었는데(탈출3,5), 그것은 그가 선 곳이 거룩한 땅이었던 반면에 자신은 거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윗은 예루살렘성에서 요르단으로 도망치면서 자신의 현 상황이 범죄한 자신에 대한 거룩하신 하느님의 심판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따라서 다윗은 거룩하신 분 앞에서 자신을 의롭다고 할 만한 어떤 명분도 찾지 못하여 발에서 신을 벗은 채 자신의 죄를 참회하는 모습을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은 자신을 더없이 비참한 상황에까지 이끌고 가신 하느님 대전에 다윗이 어떤 항의도 하지 않고, 다만 참회하는 심정으로 섰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원문에서 ''를 뜻하는 인칭 대명사 '후'(hu)가 사용된 것은 다윗이 임금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맨발로 걸었다는 사실을 다른 두 행동과 구별해서 강조하고 있다.

 

세째, 다윗은 울었다. 이러한 상황을 묘사하는 '우보케'(uboke; and wept)의 원형 '빠카'(baka) 소리내어 크게 우는 모습을 나타내는 동사이다.

이것은 다윗이 비참한 형편에 처한 자신의 모습에 대해 한탄했다는 일반적인 사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본절 후반부에는 다윗을 함께 따랐던 백성들도 다윗과 같은 행동을 취했음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것은 다윗 임금의 추종자들이 자신들을 임금과 운명을 같이하는 존재로 여겼음을 가시적으로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다.

 하느님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신정(神政) 왕국의 합법적 통치자 다윗이 반역자 압살롬을 피하여 왕궁을 버리고 도망가는 국가적 재난에 대해 다윗의 추종자들은 크게 슬퍼했던 것이다.

 


 

 연중 제4주간 월요일 [오늘의 묵상]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홍보국)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비유로 가르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거센 돌풍이 이는 호수를 건너 “게라사인들의 지방”에 도착하십니다.

이곳은 이방인들이 거주하며, 곳곳에 무덤이 있고, 유다인들에게는 부정한 돼지 떼가 방목되는 지역입니다(이사 65,4 참조).

 

‘군대’라고 불리는 더러운 영은 아무도 휘어잡을 수 없을 만큼 강하고 위험한 존재입니다.

그러한 더러운 영도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앞에서는 엎드려 절하며 복종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 간곡히 청하여 돼지들에게 들어가서라도 목숨을 부지하려던 더러운 영 ‘군대’는,

돼지들이 호수로 달려가 빠져 죽음으로써 결국 파멸하고 맙니다.

그렇게 이 부정한 지역에서 마귀의 세력이 사라지고, 이제 하느님의 다스림이 펼쳐집니다.

 

돼지를 치던 이들에게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몰려와 “마귀가 들렸던 사람이 옷을 입고 제정신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두려워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자신들의 고장을 떠나 달라고 청합니다.

반면에 치유받은 이는 예수님과 함께 있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음’은 열두 제자의 특징이고 사명입니다(마르 3,14 참조).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주님께서 해 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을 가족에게 알리라는 사명을 주십니다.

치유받은 이는 물러가서,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자기의 가족들뿐만 아니라, 요르단강의 동쪽에 자리 잡은 열 개의 도시, 데카폴리스 지역에 선포하기 시작합니다.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의 치유가 복음 선포로 이어집니다.

마르코 복음이 전하는 이민족을 향한 복음 선포의 시작으로 볼 수 있는 이 사건은, 하느님 나라의 선포에는 어떠한 경계나 제한이 없음을 드러냅니다.

이는 우리의 복음 선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홍보국)

 

 

 

 

 

연중 제4주간 월요일 복음(마르5,1-20)

병행구절인 (마태8,28~34) 중에서 묵상글을 올립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느님의 아드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때가 되기도 전에 저희를 괴롭히시려고 여기에 오셨습니까?" 하고 외쳤다. (29) 예수님께서 "가라."하고 말씀하시자, 마귀들이 나와서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돼지 떼가 모두 호수를 향해 비탈을 내리 달려 물속에 빠져 죽고 말았다. (32)

 

영적 존재로서 영적 지각력이 뛰어난 존재인 마귀들은 예수님을 알아보고 예수님을 향해 '하느님의 아드님'에 해당하는 '휘에 투 테우'(hye tou theu; the son of God)라고 불렀다.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사람들에 의해 고백된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는 명칭은 아주 중요한 신앙고백적 명칭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 주는데, 이러한 사람들의 고백 이전에 더 먼저 마귀들이 예수님의 정체성을 인지하였고, 예수님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자신들의 존재가 근본적으로 위협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에 해당하는 '티 헤민 카이 소이' (Ti hemin kai soi; what do you want with us)에서 '당신'으로 번역된 '소이'(soi)와 '저희'로 번역된 '헤민'(hemin)은 여격의 형태인데, 직역하면 '저희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무엇입니까?'이다.

 

이것은 '당신께서 저희에게 무엇을 원하십니까?' 또는 '저희가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라는 뜻으로서 자신들의 주장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수사적 질문이다.

 

그리고 '때가 되기도 전에'로 번역된 '프로 카이루'(pro kairou; before the time; before the appointed time)라는 표현은 먼저 마귀도 종말론적 심판과 그로 말미암아 자신들의 권세의 종말이 올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또한 하느님 나라가 임했지만 그 나라의 최종적인 완성과 마지막 도래는 아직 이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한편, 구약에서 돼지는 굽이 갈라지고 그 틈이 벌어져 있지만 새기짐을 하지 않으므로 부정한 짐승으로 분류되어(레위11,7; 신명14,8) 그것을 먹는 일이 가증스런 일로 여겨졌다(이사65,4).

하지만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주변 국가들에 있어서 돼지는 주요 음식이었고, 돼지 사육은 주요 수입원이었다.

 

본 사건의 배경이 되는 가다라인들의 지방은 이방인들이 살던 지역이었으므로 돼지를 사육할 수 있었다. 

병행구절인 마르코 복음 5장 11절에는 2천 마리라는 구체적인 수가 제시된 반면에, 마태오 복음사가는 능력을 행하시는 그리스도께만 초점을 맞추기 위해 구체적인 보도를 단순화시켜 '많은'에 해당하는 '폴론'(pollon; many)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마태오 복음 8장 22절에서 호수로 빠져들어간 주체인 '돼지 떼' 단수형으로 취급했지만, 물에 빠져 죽은 존재에 대해서는 복수형으로 취급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여기에서 '돼지 떼'로 하여금 내리 달려 호수로 들어가게 만든 내면적 동인은 '마귀'가 제공했지만, 실제 죽은 것은 '돼지 떼'였음을 나타내는 문학적 기법을 썼다.

 

그렇다면, 왜 마귀는 돼지 떼 속으로 들여보내 달라고 예수님께 청하였을까?

이것은 그곳 사람들의 재산에 손실을 입히게 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 원인을 예수님께로 돌려 예수님을 경계하게 하고, 그 지방에서 떠나게 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마태8,34).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사실을 아셨지만, 사람의 영혼 생명이 물질적인 재산과는 비교할 수 없이 소중한 것임을 보여 주기 위해서 마귀가 돼지 떼에 들어가는 것을 허용하셨다고 본다.

 

 

 

2022년 1월 31일 [연중 제4주간 월요일]

 

試鍊은 救援의 通路

 

독서(2사무15,13-14.30; 16,5-13)

13 전령 하나가 다윗에게 와서 말하였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이 압살롬에게 쏠렸습니다.” 14 다윗은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신하에게 일렀다. “어서들 달아납시다잘못하다가는 우리가 압살롬에게서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이오서둘러 떠나시오그러지 않으면 그가 서둘러 우리를 따라잡아 우리에게 재앙을 내리고칼날로 이 도성을 칠 것이오.”

= 아들 압살롬이 아버지를 배반(背叛)한 것이다. 백성들 또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압살롬을 따른 것이다. 아들과 백성들의 배신을 당한 다윗의 마음이 어땠을까? 그런데 그것이 힘의 원리인 세상이다.

 

30 다윗은 올리브 고개를 오르며 울었다그는 머리를 가리고 맨발로 걸었다그와 함께 있던 이들도 모두 제 머리를 가리고 울면서 계속 올라갔다. 16,5 다윗 임금이 바후림에 이르렀을 때였다사울 집안의 친척 가운데 한 사람이 그곳에서 나왔는데그의 이름은 게라의 아들 시므이였다그는 나오면서 저주를 퍼부었다. 6 온 백성과 모든 용사가 임금 좌우에 있는데도그는 다윗과 다윗 임금의 모든 신하에게 돌을 던졌다.

= 참으로 우리 인생에는 좋지 않은 일들이 겹쳐서 따라온다. 그리고 그 좋지 않은 일, 곧 힘이 빠진, ‘약(弱)해져 있는 이들을 대하는 사람들의 악(惡)한 힘이 얼마나 큰지를 보라’하신다.

 

시므이는 이렇게 말하며 저주하였다. “꺼져라꺼져이 살인자야이 무뢰한아! 8 사울의 왕위를 차지한 너에게 주님께서 그 집안의 모든 피에 대한 책임을 돌리시고그 왕위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겨주셨다너는 살인자다이제 재앙이 너에게 닥쳤구나.” 9 그때 츠루야의 아들 아비사이가 임금에게 말하였다. “이 죽은 개가 어찌 감히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을 저주합니까가서 그의 머리를 베어 버리게 해 주십시오.” 10 그러나 임금은 츠루야의 아들들이여그대들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소주님께서 다윗을 저주하라고 하시어 저자가 저주하는 것이라면어느 누가 어찌하여 네가 그런 짓을 하느냐?’ 하고 말할 수 있겠소?” 11 그러면서 다윗이 아비사이와 모든 신하에게 일렀다. “내 배 속에서 나온 자식도 내 목숨을 노리는데하물며 이 벤야민 사람이야 오죽하겠소주님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저주하게 내버려 두시오.

= 다윗은 자신의 잘못 때문임을 알고 있었다.

 

(2사무12,9-10) 9 그런데 어찌하여 너는 주님의 말씀을 *무시하고주님이 보기에 악한 짓을 저질렀느냐너는 히타이트 사람 우리야를 칼로 쳐 죽이고 그의 아내를 네 아내로 삼았다너는 그를 암몬 자손들의 칼로 죽였다. 10 그러므로 이제 네 집안에서는 *칼부림이 영원히 그치지 않을 것이다네가 나를 무시하고히타이트 사람 우리야의 아내를 데려다가 네 아내로 삼았기 때문이다.’

= 그러나 다윗은 하느님의 뜻을 무시(無視)한 그 자신의 잘못, 그 죄를 용서하신 하느님의 말씀을 기억(記憶)하고 있었다.(2사무12,13참조)

 

12 행여 주님께서 나의 불행을 보시고오늘 내리시는 저주를 선으로 갚아 주실지 누가 알겠소?” 13 다윗과 그 부하들은 길을 걸었다.

= 모든 시련(試鍊), 고난(苦難)을 통해서 선(善), 구원(救援)을 이루시는 하느님의 뜻을 다윗은 알고 있었다.

나단을 통해 주신 구원의 약속이다.~

(2사무7,10) 10 나는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고그곳에 그들을 심어 그들이 제자리에서 살게 하겠다그러면 이스라엘은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고다시는 전처럼불의한 자들이 그들을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 한 곳, 하늘의 대속(代贖)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十字架)다. 곧 새 계약의 약속이다.

시련(試鍊)은 그 하느님의 약속, 계약을 믿고 용서받은 자가 인내(忍耐)로 겪어내야 할 몫이라는 것이다. 곧 힘들게 하는 사건들, 사람들, 그 모두가 자신의 죄성을 깨닫고, 또 용서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알아 당신의 자녀로 살게 하시려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라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히브12,10-13) 10 육신의 아버지들은 자기들의 생각대로 우리를 잠깐 훈육하였지만그분(야훼)께서는 우리에게 유익하도록 훈육하시어 우리가 당신의 거룩함에 동참할 수 있게 해 주십니다. 11 모든 훈육이 당장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으로 여겨집니다그러나 나중에는 그것으로 훈련된 이들에게 평화와 의로움의 열매를 가져다줍니다. 12 그러므로 맥 풀린 손과 힘 빠진 무릎을 바로 세워 13 바른(진리)길을 달려가십시오그리하여 절름거리는 다리가 접질리지 않고 오히려 낫게 하십시오.

 

(로마8,28-30) 28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29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이들을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그리하여 그 아드님께서 많은 형제 가운데 맏이가 되게 하셨습니다. 30 그렇게 미리 정하신 이들을 또한 부르셨고부르신 이들을 또한 의롭게 하셨으며의롭게 하신 이들을 또한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

=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당신의 자녀가 되게 하시기 위해, 곧 의롭게, 영광스럽게 해 주시기를 위해 나를 미리 정하셨고, 부르셔서 주신 시련 이라면, 그것이 믿어진다면, 그 믿음이 인내할 수 있는 지혜, 능력, 힘이다.

그러나 우리는 망각(妄覺)의 동물이기에 순간일 뿐이다. 그래서 자주자주 하느님의 뜻, 말씀을 되새기고 기억해야 한다. 그렇게 하느님의 사랑을, 약속을 확인해야한다. 자주, 매일, 순간마다.........

그랬을 때마다 힘을 얻는다. 그렇게 쉬게 된다. 그러다가 또 넘어진다. 그랬을 때 내 안에 매일 지킨(킵) 그 하느님의 약속, 말씀이 힘이되어 다시 일어나 살게 된다. 그렇게 넘어졌다, 일어났다, 기뻤다, 슬펐다. 그것이 우리의 인생(人生)이다.

그 모든 것을 통해 선(善, 의, 구원)으로 이끄시는 아버지 하느님이시다.

오늘 복음에서 그 하느님의 뜻, 영(靈)의 구원이 아닌 사람의 뜻을 위한 가르침으로 받아 자신의 뜻, 욕망을 위해 살아가는 이들이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다. 그 자신을 위한 삶은 죽음(무덤)의 삶이며 대단한 힘을 지녔으며(시므이처럼), 그러나 그 힘은 제몸을 해치는 독(毒)이라고,

그리고 더러운 영(靈)이 들린 사람에게서 그 더러운 영을 쫓아내신 자비의 예수님께 자신들의 재물을 지키기 위해 자신들을 떠나 달라고 청한 그 고장 사람들이 진짜 더러운 영이들린 사람들임을 성경(聖經)은 말씀하시는 것이다. 우리의 모습을 보라고..........

 

보호자 천주의 성령님!

우리의 험난한 인생 길에 하느님의 약속그 은혜의 말씀으로 힘을 얻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냉혹한 이 세상에서 외롭지 않게두렵지 않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2024년 01월 29일 월요일

[연중 제4주간 월요일오늘의 묵상 (사제 김재덕 베드로)

 

돼지는 굽은 갈라졌지만 새김질을 하지 않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한 것이다.

너희는 이런 짐승의 고기를 먹어서도 안 되고그 주검에 몸이 닿아서도 안 된다”(신명 14,8).

이 말씀처럼 율법은 돼지를 부정한 동물로 규정합니다.

특히 마카베오기 하권은 돼지고기 때문에 순교를 선택하는 사람들을 보여 줍니다(6,18-7,42 참조).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돼지가 얼마나 불결하게 인식되었는지 잘 보여 주는 본보기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을 만난 군대라는 더러운 영은 예수님 앞에서 돼지 떼 속으로 들어가기를 청합니다.

저희를 돼지들에게 보내시어 그 속으로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마귀 들린 돼지들은 비탈을 내리 달려호수에 빠져 죽습니다.

악은 이처럼 예수님 앞에서 더 더러운 것을 선택하게 만듭니다.

더 악하고더 부정하며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는 어둠을 더 선택하는 것이 바로 악의 방식입니다.

돼지들이 죽게 된 것처럼악이 이끄는 종착지는 바로 죽음입니다.

더러운 영이 예수님께 한 말을 눈여겨봅시다.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느님의 이름으로 당신께 말합니다저를 괴롭히지 말아 주십시오.”

악은 예수님과 아무 상관없이 살고 싶은 마음을 우리 안에 심어 놓습니다.

한번 우리 안에서 허락된 이 마음은 우리의 생각을 점점 지배하기 시작하고우리를 더욱 악한 곳으로 이끕니다.

예수님과 함께하는 순간이 가장 괴로운 순간이 되게 합니다.

그래서 기도도 사라져 버리게 만들고우리의 믿음도 힘을 잃어버리게 합니다.

고해성사는 오늘 복음이 고백하는 예수님을 만나게 하여 주는 은총의 성사입니다.

마귀 들렸던 사람이 예수님을 선포하는 이로 새롭게 변화되었듯,

고해성사는 우리가 다시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고우리를 빛으로 나아가는 삶으로 이끌어 주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 영혼이 하느님과 함께하는 기쁨을 잃어버렸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가야 할 곳은 바로 고해소입니다.

 

(김재덕 베드로 신부)

 

 



2024년 1월 29일 [연중 제4주간 월요일]

 

더러운 영(퓨뉴마다이몬)에 들렸다는 것은 더럽게, 거짓되게 하는 영의 말을 듣고 그 거짓말에 매여 사는 것을 말한다. 

곧 하느님의 말씀(뜻)을 인간의 말(뜻), 욕망을 위해 살게하는 뱀이 속였던 그 거짓말, 가르침을 먹은 것이다.

 

(마르5,1-20)

1 예수님과 제자들은 호수 건너편 게라사인들의 지방으로 갔다.

= 앞 절에서 돌풍 같은 호수(세상)의 물이 배(교회)에 들이쳐 사람을 두려움에 빠트렸고, 그 물은 뱀의 거짓말에 의한 우리 삶의 풍랑, 바람이었음을 묵상했다. 곧 하늘의 대속, 그 진리의 말씀을 인간들의 계명으로 받아 하늘의 용서(생명)도 모르고 사람을 힘들게, 죽이려는 거짓 영의 말이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 호수의 거짓 풍랑을 말씀으로 복종 시키고 제자들과 함께 로마의 속국(屬國)인 게리사인들의 지방으로, 또 다른 뱀의 거짓말을 듣고 힘들어 하는 그 더러운 영(말)이 들린 사람을 구하시러 들어가신다.

 

2 예수님께서 배에서 내리시자마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무덤에서 나와 그분께 마주 왔다.

= 빛이 켜지면 더러운 것이 드러나는 법이다. 그리고 빛을 피해 도망가는 법인데, 이 사람은 빛이신 예수님께 적개심은 품었지만 다가온다. 주님께서 자비(慈悲)의 마음으로 그를 이끄신 것이다.

 

3 그는 무덤에서 살았는데, 어느 누구도 더 이상 그를 쇠사슬로 묶어 둘 수가 없었다.

= 무덤 - 그의 靈이 거짓에 묶여 죽어 있다는 것이다.

 

4 이미 여러 번 족쇄와 쇠사슬로 묶어 두었으나, 그는 쇠사슬도 끊고 족쇄도 부수어 버려 아무도 그를 휘어잡을 수가 없었다. 5 그는 밤낮으로 무덤과 산에서 소리를 지르고 돌로 제 몸을 치곤 하였다.

= 하느님의 말씀을 진리로 받으면 밤으로 낮을 만나 곧 어둠에서 빛을 배워 쉼, 기쁨을 살게 되지만, 인간들의 말(계명, 법) 로 받으면 밤과 낮 모두가 고통 뿐이다. 그래서 돌로 제 몸을 친다. 법의 죄 의식으로 자신을 해친다는 것이다.

 

6 그는 멀리서 예수님을 보고 달려와 그 앞에 엎드려 절하며, 7 큰 소리로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느님의 이름으로 당신께 말합니다. 저를 괴롭히지 말아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8 예수님께서 그에게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 인간의 말로, 사람의 규정과 교리로 하는 신앙은 오히려 사람을 힘들게 하는 무거운 짐이 되어 하늘의 쉼(安息)을 주지 못해 죄 의식으로 괴롭다. 그래서 예수님이 원망스러워 안식을 살지 못한다.

 

9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시자, 그가 “제 이름은 *軍隊입니다. 저희 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 군대 - 하는 나라 백성도 군대로 말씀하신다. 곧 신앙생활이 전쟁이라는 것이다. 거짓과 진실의 싸움, 그 전쟁을 말한다. (에페6,11참조)

 

10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 자기들을 그 지방 밖으로 쫓아내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청하였다. 11 마침 그곳 산 쪽에는 놓아기르는 많은 돼지 떼가 있었다.

= 로마의 속국 이였기에 그들이 먹었던 돼지를 키웠다. 

돼지는 부정한 짐승으로 이스라엘은 키우지도 만지지도 않았다. 율법 때문이다.


(레위11,7) 7 돼지는 굽이 갈라지고 그 틈이 벌어져 있지만 새김질을 하지 않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한 것이다.

= 갈라지고(파라스 - 구별되어 갈라지다), 하느님의 뜻을 적대하는 것에서 갈라져 구별되어 지는 것, 그리고 양식을 새김질하는 것이 깨끗한 것이다. 그러니까 하느님의 말씀을 그분의 뜻으로, 구원, 말씀의 양식으로 묵상하고 되새기는 것, 그것이 깨끗한 것이다. 그 의미로 돼지를 부정하다. 먹지마라. 하신 것인데, 그 율법을 잘 키는 자시 열성, 열심, 의로움이 참 이라고 거짓 영의 말을 들었기에 오늘날까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이들은 큰 착각, 잘못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부정한 것, 더러운 말에 매어 사는 것이다.

 

12 그래서 더러운 영들이 예수님께, “저희를 돼지들에게 보내시어 그 속으로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13 예수님께서 허락하시니 더러운 영들이 나와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이천 마리쯤 되는 돼지 떼가 호수를 향해 비탈을 내리 달려, 호수에 빠져 죽고 말았다.

= 더러운 것은 부정한 것, 더러운 곳을 찾는다. 빛이 있는 곳은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히브11,28) 28 믿음으로써, 모세는 파스카 축제를 지내고 *피를 뿌려, 맏아들과 맏배의 파괴자가 그들을 *건드리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 새 계약의 피 가 있는 곳, 믿는 그 사람에게는 파괴하는 더러운 말(靈)이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14 돼지를 치던 이들이 달아나 그 고을과 여러 촌락에 알렸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려고 왔다. 15 그들은 예수님께 와서 마귀 들렸던 사람, 곧 군대라는 마귀가 들렸던 사람이 *옷을 입고 *제정신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그만 겁이 났다.

= 예수님의 고치심을 보고 겁이 났다는 것은 그들 안에도 더러운 영(말)이 있다는 것이다. 곧 게리사인들이 다 그렇다는 것이다.

 

16 그 일을 본 사람들이 마귀 들렸던 이와 돼지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17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께 저희 고장에서 떠나 주십사고 청하기 시작하였다.

= 성당에 잘 다니다가 재산, 건강 등을 잃으면 떠나는 경우와 같다. 다른 말로- 돈, 명예, 건강을 위해 성당을 다녔다는 것이다. 더러운 영의 말로 신앙을 살았기 때문이다. 떠나지는 않더라도 실망으로~ 말씀으로 용서,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18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마귀 들렸던 이가 예수님께 같이 있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19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집으로 가족들에게 돌아가, 주님께서 너에게 해 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을 모두 *알려라.”

= 다른 이들에게는 “나를 따르라” 하시고는 왜? - 그 사람이 더러운 영이 들렸던 것은 그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 전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가족들이 더러운 말(영)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가족들의 구원을 위해 가정(교회, 성당)으로 파견하신 것이다.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을 알려라’ 하신다.

주님의 자비- 어둠(죄)을 드러내시고 그 어둠에서 갈라(구별)내시어 빛을 주시는 것, 주님의 자비다. 자비(慈悲), 여자의 자궁(子宮)을 뜻하니, 자신의 생명으로 키우는 그 모성애, 그 사랑으로 생명을 키워내시는 그 자비다.

 

20 그래서 그는 물러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해 주신 모든 일을 *데카폴리스 지방에 선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데카폴리스 - 열(10)개의 도시라는 뜻, 로마의 속국들을 말한다. 로마의 힘, 곧 세상의 힘, 그 말로 세상의 재물, 명예를 위해 모두가 산다. 더러운 말(영)을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이웃, 가족이 모두(전부, 다) 그 세상 것을 위해 일치를 이루고 있기에 분열 시키려 하신다. 우리 주님께서~ 가르시고 구별하시어 구원하려 하신다.

 

거룩(쎄퍼렛-다르다, 구별하다).

(루가12,51-52) 51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52 이제부터는 한 집안의 다섯 식구가 서로 *갈라져, 세 사람이 두 사람에게 맞서고 두 사람이 세 사람에게 맞설 것이다.

 

☨천주의 성령님! 부족한 저희를 충만하게 하시어, 주님의 분열, 구별하심이 더러운 나를 거룩하게 하시기 위한 자비임을 깨닫고 감사할 수 있는 믿음을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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