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24일 금요일
[연중 제33주간 금요일] 나의 집은 기도의 집(루카19,45-48)
제1독서<그들은 제단 봉헌을 경축하였다.>(1마카4,36-37.52-59)
36 유다와 그 형제들은 “이제 우리 적을 무찔렀으니 올라가서 성소를 정화하고 봉헌합시다.” 하고 말하였다.
37 그래서 온 군대가 모여 시온산으로 올라갔다.
52 그들은 백사십팔년 아홉째 달, 곧 키슬레우 달 스무닷샛날 아침 일찍 일어나,
53 새로 만든 번제 제단 위에서 율법에 따라 희생 제물을 바쳤다.
54 이민족들이 제단을 더럽혔던 바로 그때 그날, 그들은 노래를 하고 수금과 비파와 자바라를 연주하며 그 제단을 다시 봉헌한 것이다.
55 온 백성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자기들을 성공의 길로 이끌어 주신 하늘을 찬양하였다.
56 그들은 여드레 동안 제단 봉헌을 경축하였는데, 기쁜 마음으로 번제물을 바치고 친교 제물과 감사 제물을 드렸다.
57 또 성전 앞면을 금관과 방패로 장식하고 대문을 새로 만들었으며, 방에도 모두 문을 달았다.
58 백성은 크게 기뻐하였다. 이렇게 하여 이민족들이 남긴 치욕의 흔적이 사라졌다.
59 유다와 그의 형제들과 이스라엘 온 회중은 해마다 그때가 돌아오면, 키슬레우 달 스무닷샛날부터 여드레 동안
제단 봉헌 축일로 기쁘고 즐겁게 지내기로 결정하였다.
<화답송>(1역대 29,10ㄴㄷ.11ㄱㄴㄷ.11ㄹ-12ㄱ.12ㄴㄷㄹㅁ(◎13ㄴ) ◎주님, 당신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 주님, 저희 조상 이스라엘의 하느님, 영원에서 영원까지 찬미받으소서. ◎
○ 주님, 위대함과 권능과 영화가, 영예와 위엄이 당신의 것이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이옵니다. ◎
○ 주님, 나라도 당신의 것이옵니다. 당신은 온 세상의 으뜸, 그 위에 드높이 계시나이다. 부귀와 영광이 당신에게서 나오나이다. ◎
○ 당신은 만물을 다스리시나이다. 권능과 권세가 당신께 있으니, 당신 손을 통하여, 모든 이가 힘과 영예를 얻나이다. ◎
<복음환호송>(요한10,27)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복음<너희는 하느님의 집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루카19,45-48)
45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시어 물건을 파는 이들을 쫓아내기 시작하시며,
46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 될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47 예수님께서는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셨다.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없앨 방법을 찾았다.
48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방도를 찾지 못하였다. 온 백성이 그분의 말씀을 듣느라고 곁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중 제33주간 금요일 제1독서 (1마카4,36-37.52-59)
유다와 그 형제들은 "이제 우리 적을 무찔렀으니 올라가서 성소를 정화하고 봉헌합시다." 하고 말하였다. 그래서 온 군대가 모여 시온 산으로 올라갔다. (36-37)
그들은 백사십팔년 아홉째 달, 곧 카슬레우 달 스무닷샛날 아침 일찍 일어나, 새로 만든 번제 제단 위에서 율법에 따라 희생 제물을 바쳤다. 이민족들이 제단을 더럽혔던 바로 그때 그날, 그들은 노래를 하고 수금과 비파와 자바라를 연주하며 그 제단을 다시 봉헌한 것이다. 온 백성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자기들을 성공의 길로 이끌어 주신 하늘을 찬양하였다."(52-55)
마카베오 상권의 제2부인 마카베오 상권 3장 1절~9장 22절은 유다의 공적을 다루고 있는데, 오늘 독서가 들어있는 마카베오 상권 3장 1절~4장 61절은 유다의 초기 승리들을 다룬다.
덕분에 유다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되찾아 새로 봉헌하게 된다.
유다를 소개하고 그의 공적을 기리는 시를 인용한 뒤에(1마카3,1~9), 저자는 아폴로니우스(사마리아 통치자)와 벳 호론에서 세론과 싸워 이긴 놀라운 승리를 기술한다(1마카3,10~26).
유다는 자기가 승리하는 것을 하느님의 능력으로 돌린다.
"전쟁의 승리는 군대의 크기가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오는 힘에 달려 있다."(1마카3,19)
안티오쿠스 4세는 돈을 모아 오기 위해 페르시아로 가면서(1마카3,27~31) 리시아스에게 예루살렘에 군대를 보내어 거기에 남아 있는 자들을 없애버리라는 임무를 맡긴다(1마카3,32-27).
그러나 유다는 엠마오에서 리시아스의 장수들인 고르기아스와 니카노르를 무찌르고 (1마카3,38-4,25), 이어서 벳 추르에서 리시아스 마저 퇴각하게 만든다(1마카4,26-35).
이 전투에서 유다의 군인들에게 표어가 된 것은 예루살렘 성전의 상태이다.
"성소는 짓밟히고 성채는 외국인들에게 점령되어 이민족들의 거처가 되었다"(1마카3,45; 3,50ㄴ-53).
게다가 유다는 율법에 따라 행동하며 성서의 인물들의 본보기를 따른다.
마카베오 상권 3장 56절을 보면 유다는 신명기 20장 5~8절에서 명하는 대로 전투를 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들을 집으로 돌려보낸다.
마카베오 상권 4장 9절에서 유다는 얼마 되지 않는 자기 군사들에게 "파라오가 군대를 이끌고 뒤쫓아 왔을 때, 우리 조상들이 홍해에서 어떻게 구원받았는지 상기하여라." 라고 말한다.
그들은 엠마오 전투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면서 하늘을 향하여 찬미가를 부르며 하느님을 찬양한다.
"그분은 선하시며 그분의 자애는 영원하시다" (1마카4,24).
유다는 리시아스와 싸우기 전에 하느님을 찬미하며 하느님께서 다윗의 손으로 거인 골리앗의 공격을 물리치시고 요나탄의 손에 필리스티아인들의 진영을 넘기셨던 사실을 상기한다(1마카4,30; 1사무14장,17장참조).
유다는 전형적으로 성서적인 전사이다.
그는 승리를 위해 이스라엘의 하느님의 능력에 기댄 사람이다.
유다의 초기 경력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예루살렘 성전을 정화하고 새로 봉헌한 일이다(1마카4,36~61).
유다와 그의 병사들은 시온 산으로 올라가면서 성전이 형편없이 황폐해진 것을 발견한다(1마카4,36~40).
유다는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려 성채 안에 있는 자들을 공격하게 한 뒤에 흠이 없는 사제들을 뽑아 성전 예배를 복구하고, 더러워진 번제 제단의 돌들을 제거하고 제단을 다시 쌓으며 거룩한 기물들을 새로 만들게 한다(1마카4,41~51).
그런 다음 기원전 164년 키스레우 달 스무닷샛날(12월 14일), 아침 일찍 일어나 새로 만든 번제 제단 위에서 율법에 따라 희생 제물을 바친다(1마카4,52~53).
곧 이민족들이 성전을 더렵혔던 바로 그날, 유다와 그의 형제들은 회중과 함께 여드레 동안 제단 봉헌을 경축하는 새 하누카('봉헌'을 뜻함) 축일을 지낸다.
그 결과 "백성은 크게 기뻐하였다. 이렇게 하여 이민족들이 남긴 치욕의 흔적이 사라졌다"(1마카4,58).
유다의 지도력의 첫 단계는 예루살렘 성전과 주변 지역을 통제하고 성채 벳 추르(예루살렘 남쪽 약 29km지점에 있음)의 수비를 강화한 것이다.
연중 제33주간 금요일 복음 (루카19,45-48)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시어 물건을 파는 이들을 쫓아내기 시작하시며' (45)
성전 안에서 자행되던 불법 행위들은 너무나 쉽게 목격되는 일반적인 현상이며, 예수님께서는 파스카 축제를 지키고자 예루살렘에 와서 성전에 들어가셨다가 우연히 이러한 현상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한편, '성전'에 해당하는 '히에론'(hieron)은 '성소'(sanctuary), '성전'(temple) 이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정관사 '토'(to)와 같이 쓰여서 예루살렘 성전을 지칭한다.
'히에론'(hieron)은 성전 건물 그 자체를 가리키는 '나오스'(naos)보다는 더 넓은 의미를 가지는데, 성전의 건물은 물론이고 마당(뜰)까지도 모두 포함된다.
예수님께서는 매매와 환전이 이루어지던 성전 마당의 이방인 뜰을 유심히 보셨다.
하느님께서 성별하신 이런 성전 영역 안에서 불법이 행해진다는 것은 당시 유대인들의 영적 타락의 심각성을 보여 준다.
성전에서 공공연히 자행 되던 범죄는 제물로 바쳐진 짐승들을 팔며 돈을 바꾸는 일과 관련 되어 있다.
멀리서 성전을 방문하는 순례자들은 희생 제물을 가져올 수 없어서 예루살렘에서 구해야 했다.
이 제물은 흠 없는 것이어야 했고, 사제가 적격 여부를 심사했다.
비록 흠 없는 제물이라 할지라도 멀리서 가져온 경우, 사제들은 쉽게 트집을 잡아 불합격 판정을 내렸다.
사제들은 가져갈 수 없는 제물들을 헐값에 사들여서 성전에서 비싼 값에 되팔았다.
결국 성전에서 파는 제물들은 불합격을 받을 우려가 없어서 선호되었고, 대사제 무리들은 이것을 이용해서 막대한 이득을 올리고 있었다.
또한 환전 행위는 많은 순례자들이 성전을 찾는 기회를 이용해서 매년 바쳐야 하는 성전세 반 세켈을 바치는 것과 관련된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20세 이상의 유대인 남자는 성전세를 바쳐야 하는데, 이것은 이방의 군주나 우상의 얼굴이나 각명이 들어 있지 않으면서 순도가 높은 은으로 만들어진 세겔 주화여야 한다.
유대인들은 보통 두 사람이 한 조가 되어 이 주화를 바쳤다(마태17,27).
파스카 축제 약 20일 전부터 환전소가 예루살렘 성전에 설치되었고, 이때 환전 수수료는 12.5% 정도였다.
대사제 무리들은 자신들의 직권을 이용해서 이러한 일에 관여하여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따라서 당시 대사제 무리들은 큰 부(富)를 누렸고, 이렇게 모은 돈으로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데 사용하였다.
2023년 11월 24일 금요일
[연중 제33주간 금요일] 오늘의 묵상 (사제 김상우 바오로)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화하시는 장면을 소개합니다.
루카 복음서에 따르면, 이 일화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바로 그날에 이루어집니다.
그만큼 성전 정화 사건은 예수님의 메시아 왕권을 재확인하는 중요한 기능을 담당합니다.
그런데 메시아 예수님의 왕권은 세속적 의미에서 가리키는 지배와 통치를 위한 ‘권력 쟁취’와는 거리가 멉니다.
그분의 왕권은 오직 하느님 아버지를 올바르고 합당하게 섬기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물건을 파는 이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 될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이 구절에서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은 이사야서 56장 7절의 인용입니다.
곧 성전의 본래 기능이 기도하기 위함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강도들의 소굴’은 예레미야서 7장 11절에 나오는 표현입니다.
예레미야 예언자 시대나 예수님 시대나 사람들이 성전의 본래 기능을 왜곡하여 잘못 사용하고 있다는 비판입니다.
마침내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없앨 방법을 찾았다.”라고 복음은 전합니다.
예수님께서 성전 상인들을 꾸짖으신 일과 성
전에서 가르치신 일이 유다교 지도자들에게는 ‘눈엣가시’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 내용은 구약과 신약 시대의 이야기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신앙인들도 ‘기도의 집’인 성전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거나,
왜곡된 목적으로 사용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김상우 바오로 신부)
[연중 제33주간 금요일]
기도(프로쉬콤마이), 흘려 받은 것을 흘려주는 것
복음(루카19,45-48)
45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시어 물건을 파는 이들을 쫓아내기 시작하시며, 46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 될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 예루살렘 도성에 있는 성전이다. 곧 율법(제사와 윤리)으로는 평화를 얻을 수 없어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주시는 평화, 그 하느님의 뜻(말씀)을 따르지 않았기에 참 평화의 길인 예수님을 배척했고 또한 하느님의 사랑, 의로움이신 죄인들의 영혼의 구원을 위한 말씀, 계명을 자신의 뜻(욕망)을 위한 인간의 명예, 의(義)를 위한 법(도덕과 윤리)으로 지키며 세상의 힘(명예, 금, 은)을 추구했기에,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있지 않도록 부서질 도성에 있는 성전이다.
(갈라2,16) 16 그러나 사람은 율법에 따른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율법에 따른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의롭게 되려고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어떠한 인간도 율법에 따른 행위로 의롭게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 그러나 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고 하느님의 말씀을 인간들의 명예, 의로움을 위한 사람의 규정, 교리, 계명 으로 만들어버린 곧 하느님의 말씀, 계명을 거짓 되게 한 그 강도의 소굴이 된 성전인 것이다.
(요한10,8) 8 나보다 먼저 온 자들은 모두 도둑이며 강도다. 그래서 양들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 예수님보다 먼저 온 율법학자들이 도둑이며 강도라 하셨는데,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율법(제사, 윤리)을 지키라 하니 강도인 것이다. 구원의 길인 예수님의 대속, 그 의로움을 헛되게 하니 도둑인 것이다. (로마3,20-25 10,1-4참조)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하고 가르쳐주신(흘려주신) 기도를 ‘우리의 뜻(소원)을 이루어지게 하소서’ 로 흘려 받아 이웃에게 흘려주면 성전이라 하신 우리가 부서져야 할, 파괴되어야 할 성전이 되는 것이다.
(1코린6,19-20) 19 여러분의 몸이 여러분 안에 계시는 성령의 성전임을 모릅니까? 그 성령을 여러분이 하느님에게서 받았고, 또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님을 모릅니까? 20 하느님께서 값을 치르고 여러분을 속량해 주셨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몸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
= 예수님의 대속, 그분의 목숨 값으로 죄인이었던 우리가 성령의 성전이 된 것이다. 그런데 그 성전인 우리가 하느님의 영광이 아닌 내 뜻, 내 욕망, 영광을 위해 제사와 윤리(율법)를 사람의 규정과 교리의 진리로 지키며 살아간다면, 도둑이며 강도인 것이다.(마르7,1 티토1,14참조)
그러니 말씀 안에 하느님의 뜻인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십자가의 길, 그 구원의 새 계약(복음)을 성령께 의탁하여 구원의 진리로 올바로 깨달아 믿고, 기억(기도)하며 의탁하는 삶을 사는 것이 성령의 성전이며 강도의 소굴이 아닌 것이다.
47ㄱ 예수님께서는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셨다.
= 날마다 성전(우리, 나)에서 일용 할 양식인 생명의 말씀을 주신 것이다. 말씀을 생명의 양식으로 날마다 먹어야 성전이 된다. 말씀을 도덕과 윤리의 법으로 먹고 전한다면 강도의 소굴이 되게 하는, 곧 사람을 죽이는 파괴자가 되는 것이다.
(1코린3,17) 17 누구든지 하느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느님께서도 그자를 파멸시키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성전은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47ㄴ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없앨 방법을 찾았다.
= 자기 의로움에 만족하는 이들이 모인, 곧 율법에 열심한 그곳을 강도의 소굴이라 하셨기 때문이다. 성전은 자기 의로움을 고백하는 곳이 아니라 죄를 용서하신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것이다.(루가18,9-14참조)
48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방도를 찾지 못하였다. 온 백성이 그분의 말씀을 듣느라고 곁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 말씀(빛)이 있는 곳에는 어둠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예수님은 그들에 의해 죽으셨다. 그러나 그것은 하느님의 뜻이었기 때문이다.
(요한10,18) 18 아무도 나에게서 목숨을 빼앗지 못한다. 내가 스스로 그것을 내놓는 것이다. 나는 목숨을 내놓을 권한도 있고 그것을 다시 얻을 권한도 있다. 이것이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받은 명령이다.”
= 날마다 말씀을 일용할 양식으로 먹으면 내 안에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있음이다. *일용 할 양식(에피시오스)- 에피(위)+ 시오스(양식), 하느님의 말씀을 먹는 것, 일용 할 양식이다. 왜? 일용 할 양식을 육의 양식으로 오해된 묵상글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제의 묵상> “우리의 일 용할 양식에 대한 관심은 너무 지나쳐도 안 되고 무시해서도 안 됩니다. 영혼과 육신이 마땅히 일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양식은 취해야만 합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마련해 주십니다.”
= 육의 일용 할 양식은 청하지 않아도 주신다.
(마태6,31-33) 31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32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십자가의 복음, 그 하느님의 뜻(말씀)을 진리로 먹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아드님 예수께 흘려 주셨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흘려주신 그 구원의 말씀을 이웃에게 흘려주는 것, 또한 기도다.
일용 할 양식으로 주신 말씀으로 원수를 용서할 수 있고, 말씀으로 세상이 주는 명예, 영광, 그 유혹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우리의 힘으로는 될 수 없기 때문이다.
☨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오늘도 말씀을 되새기는 기도로 당신의 거룩한 성전이 되게 하소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와 같이 땅(흙인 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연중 제33주간 금요일]<2>
기도의집이냐? 강도의 소굴이냐?
<입당송>(1코린1,18 갈라6,14) 멸망할 자들에게는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을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힘입니다. 그러나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십자가에 못 박혔고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복음(루카19,45-48)
45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시어 물건을 파는 이들을 쫓아내기 시작하시며, 46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 될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 성전이 기도(祈禱)의 집이 될 수도, 강도(强盜)의 소굴이 될 수도 있음이다.
<기도의 집> 우리는 전능하신 창조주 하느님이 나의 모든 것을 책임져줄 친아버지임을(마태23,9 요한1,12-13 이사49,15-16), 그리고 그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하심이 무엇인지, 곧 아버지만이 거룩하심을(거룩-세상과 분리) 그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말씀)이 땅인 우리(나)에게서도 이루어지기를,
날마다 주시는 일용할 양식, 곧 하느님의 말씀이 생명, 구원의 양식임을 깨닫고 먹을 수 있도록(신명8,3 마태4,4), 그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 그 피의 새 계약으로 나의 모든 죄를 용서 받았으니 나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할 수 있는 나, 또한 아버지께 그 십자가로 죄의 용서받았음을,
그리하여 그리스도 예수님으로 평화를 누릴수 있음을, 그리고 모든 유혹에 빠지지않게 모든 악에서 구하여 주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두드리고, 청하고, 구하는 것이다.
사제☞ 예수님, 저는 혼자가 아닙니다. 하느님은 아니계신 곳 없이 어디나 계십니다. 제가 죄(罪)를 지을 때도 거기 계셨습니다. 세상은 속일 수 있어도 주님을 피해 달아나 숨을 곳은 없습니다. 그것은 벌(罰) 주시려는게 아니라 돌아와 용서받고 더 자유롭게 해 주시려는 것입니다. 하루에 일곱 번씩 일흔 일곱 번이라도 용서(容恕)하라 하셨으니 저는 주님께 언제나 모든 죄를 용서받은 줄 압니다.
<강도의 소굴> 하느님의 뜻이 아닌 나의 뜻, 육의 만족, 평안함을 위해 율법의 제사를 열심히 행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거룩하심, 영광이 아닌 나의 의(義), 영광을 위해 열심을 행하는 것이다.(로마10,1-4 요한5,44. 10,8)
*참 성전은 우리 자신이다. ~
(1코린6,19-20) 19 여러분의 몸이 여러분 안에 계시는 성령의 성전임을 모릅니까? 그 성령을 여러분이 하느님에게서 받았고, 또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님을 모릅니까? 20 하느님께서 값을 치르고 여러분을 속량해 주셨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몸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
= 우리(나)는 그리스도의 대속, 그 피로 죗값을 치루고 주님의 생명을 살고 있는 하는미의 것이다. 그러니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함은 마땅하다. 곧 내가 기도의 집이 될 수도 있고, 강도의 소굴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율법(제사와 도덕과 윤리)으로 착하고 의롭게 사는 것이 기도의 집이 되는 것이 아니다.(로마3,19-21) 말씀을 진리로 깨달아 하느님의 거룩, 의(義),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 기도의 집, 성전이다. (로마3,23-26 이사43,7)
사제☞ 우리 몸 역시 주님의 성전입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어떻게 보존해야 할지를 오늘 복음서는 우리에게 잘 알려 줍니다. 본질을 회복하는 삶, 창조의 질서를 회복 시키는 삶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우리 존재의 이유입니다.
= 우리(나)가 피조물위 자리에 앉아 창조주 하느님의 뜻, 목적을 위해 살며, 그분만이 만물의 주인이심을 믿고, 감사와 찬양, 영광을 드리는 것이다.
47 예수님께서는 날마다 성전(나)에서 가르치셨다.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없앨 방법을 찾았다.
= 구원자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도 그분을 죽이려 하니 놀랍다. 자신의 뜻, 육의 만족을 위한 가르침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필리3,18-19) 18 내가 이미 여러분에게 자주 말하였고 지금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는데,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19 그들의 끝은 멸망입니다. 그들은 자기네 배를 하느님으로, 자기네 수치를 영광으로 삼으며 이 세상 것만 생각합니다.
= 그래서 구원을 받아야 믿을 수 있고, 말씀을 따를 수 있다는 말이 있는 것이다. (에페1,4-5)
48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주님을 죽일) 방도를 찾지 못하였다. 온 백성이 그분의 말씀을 듣느라고 곁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 말씀을 듣느라고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율법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지배하던 당시에는 쉽지않는 일이다. 요즈음에는 세상의 의로움, 명예, 재물이 지배하기에 말씀을 듣느라고 떠나지 않는 것이 쉽지 않다.
우리는 내 뜻, 육신의 만족을 버리고(否認) 하느님의 뜻이 나에게 이루어지기를 얼마나 간절하고 절실된 마음으로 말씀(성경)을 보고 묵상하고 기도하는가. 쉽지 않다는 말이다. 많은 이들이 강도의 소굴에 있다는 말이다.
하느님의 듯이며 구원의 힘, 지혜, 진리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는 말이다. 율법(제사와 윤리)을 열심히 행하며 사는 자신을 더 믿는다.
(루가18,8)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 없이 올바른(진리)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재림)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 현세적인 사람에게는 십자가의 예수님, 곧 십자가의 복음이 어리석음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영적(靈的)으로만 판단할 수 있기에 그러한 사람은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1코린2,14)
오늘도 눈으로 볼 수 없는 찬란한 태양이 떠올라 어둠을 몰아내고 빛의 날을 살게 하십니다. (빛이 어둠을 몰아 내는 것이지 어둠이 빛을 몰아낼 수는 없는 법이다. 곧 빛 앞에 어둠은 존재할 수 없다.) 그렇듯 생명의 빛이신 말씀을 주시니 제안에 통증(어둠)이 사라지고 안식을 살게 될 것이다.
(이시49,15-16) 15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16 보라, 나는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은 늘 내 앞에 서 있다.
(이사43,11-13) 11 내가, 바로 내가 주님이다. 나 말고는 구원해 주는 이가 없다. 12 미리 알려서 구원하고 이를 들려준 것은 나지 너희 가운데에 있는 어떤 낯선 신이 아니다. 주님의 말씀이다. 너희는 나의 증인이고 나는 하느님이다. 13 앞으로도 나는 그러하리니 내 손에 든 것을 빼내 갈 자 없으리라. 내가 하는 일을 누가 돌이킬 수 있겠느냐? ~아멘.
☧ 아버지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주신다 하셨으니(에제36,26) 간절히 바랍니다. 보호자 성령님과 그리스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