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1월 07일 토요일
[주님 공현 대축일 전 토요일] 카나에서 첫 표징 (요한2,1-11)
제1독서<우리가 무엇을 청하든지 그분께서 들어 주신다.>(1요한5,14-21)
14 우리가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하여 가지는 확신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그분의 뜻에 따라 청하면 그분께서 우리의 청을 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15 우리가 무엇을 청하든지 그분께서 들어 주신다는 것을 알면, 우리가 그분께 청한 것을 받는다는 것도 압니다.
16 누구든지 자기 형제가 죄를 짓는 것을 볼 때에 그것이 죽을죄가 아니면, 그를 위하여 청하십시오. 하느님께서 그에게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이는 죽을죄가 아닌 죄를 짓는 이들에게 해당됩니다. 죽을죄가 있는데, 그러한 죄 때문에 간구하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17 모든 불의는 죄입니다. 그러나 죽을죄가 아닌 것도 있습니다.
18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느님에게서 태어나신 분께서 그를 지켜 주시어 악마가 그에게 손을 대지 못합니다.
19 우리는 하느님께 속한 사람들이고 온 세상은 악마의 지배 아래 놓여 있다는 것을 압니다.
20 또한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오시어 우리에게 참되신 분을 알도록 이해력을 주신 것도 압니다. 우리는 참되신 분 안에 있고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이분께서 참 하느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21 자녀 여러분, 우상을 조심하십시오.
화답송시편 149,1ㄴㄷ-2.3-4.5-6ㄱ과 9ㄴ(◎ 4ㄱ) ◎ 주님은 당신 백성을 좋아하신다.
○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충실한 이들의 모임에서 찬양 노래 불러라.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으신 분을 모시고 기뻐하고, 시온의 아들들은 임금님을 모시고 즐거워하여라. ◎
○ 춤추며 그분 이름을 찬양하고, 손북 치고 비파 타며 찬미 노래 드려라. 주님은 당신 백성을 좋아하시고, 가난한 이들을 구원하여 높이신다. ◎
○ 충실한 이들은 영광 속에 기뻐 뛰며, 그 자리에서 환호하여라. 그들은 목청껏 하느님을 찬송하리라. 그분께 충실한 모든 이에게 영광이어라. ◎
복음<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갈릴래아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셨다.>(요한2,1-11)
1 갈릴래아 카나에서 혼인 잔치가 있었는데, 예수님의 어머니도 거기에 계셨다.
2 예수님도 제자들과 함께 그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으셨다.
3 그런데 포도주가 떨어지자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구나.” 하였다.
4 예수님께서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5 그분의 어머니는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하고 말하였다.
6 거기에는 유다인들의 정결례에 쓰는 돌로 된 물독 여섯 개가 놓여 있었는데, 모두 두세 동이들이였다.
7 예수님께서 일꾼들에게 “물독에 물을 채워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물독마다 가득 채우자,
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다시, “이제는 그것을 퍼서 과방장에게 날라다 주어라.” 하셨다. 그들은 곧 그것을 날라 갔다.
9 과방장은 포도주가 된 물을 맛보고 그것이 어디에서 났는지 알지 못하였지만, 물을 퍼 간 일꾼들은 알고 있었다.
10 그래서 과방장이 신랑을 불러 그에게 말하였다. “누구든지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놓고, 손님들이 취하면 그보다 못한 것을 내놓는데,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남겨 두셨군요.”
11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갈릴래아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2023년 1월 7일 주님 공현 대축일 전 토요일 제1독서 (1요한5,14-21)
"누구든지 제 형제가 죄를 짓는 것을 볼 때에,그것이 죽을죄가 아니면 그를 위하여
청하십시오. 하느님께서 그에게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죽을죄가 있는데, 그러한 죄
때문에 간구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불의는 죄입니다. 그러나 죽을죄가
아닌 것도 있습니다." (16~17)
요한 1서의 맺음말(5,13~27)도 요한 복음처럼 이 글을 쓰는 목적을 다시 밝힌다.
요한 복음에서는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
집필 목적이었는데(요한20,31), 여기서는 하느님 아드님의 이름을 믿는 이들이 이미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하려는 것이 집필 목적이라고 말한다(1요한 5,13).
'처음부터 있어 온 것, 우리가 들은 것 우리 눈으로 본 것 우리가 살펴보고 우리 손으로
만져본 것, 이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말하고자 합니다.'(1요한 1,1)
이렇게 머리말이 생명의 말씀으로 시작된 요한 1서의 가르침이 '이분께서
참 하느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십니다'(1요한5,20)라는 신앙 고백으로 끝을 맺는다.
오늘 말씀에서 특이한 것은 '죽을죄'(1요한 5,16)에 관한 언급이다.
'누구든지 제 형제가 죄를 짓는 것을 볼 때에,그것이 죽을죄가 아니면 그를 위하여
청하십시오. 하느님께서 그에게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죽을죄가 있는데, 그러한 죄
때문에 간구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불의는 죄입니다. 그러나 죽을죄가
아닌 것도 있습니다.'
'죽을죄'와 '죽을죄가 아닌 죄'가 무엇인가?
구약에서는 '살인, 간음, 배교'를 죽을죄<대죄(大罪)=중죄(重罪)=사죄(死罪)>라고
했다.
신약의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교회는 하느님의 천주성(신성)에 참여할 수 있는
초자연적인 은혜인 '생명의 은총'(성화은총=초성은혜=상존성총)을 잃어버리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죽을죄'(대죄)와 '죽을죄가 아닌 죄'(소죄)로 구분된다.
윤리신학에서나 교리에서는 '대죄'와 '소죄'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우리 인간은 생각과 말과 행위로 대죄를 짓는다. 대죄가 성립되려면, 세 가지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계명과 지성의 인식 행위와 자유 의지의 동의이다.
우리가 무슨 생각과 말과 행위를 할 때, 하느님의 계명을 어기는 줄 분명히 지성으로
알면서도 자유 의지로 좋아서 동의할 때 대죄가 성립되고, '생명의 은총'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 '생명의 은총'은 세례성사때 예수님의 십자가상 구속사업의 공로로 주어진 것인데,
대죄를 지음으로 잃게 된다.
그러나 고해성사를 통하여 다시 되찾아지고, 성체성사를 통해 '생명의 은총'은 계속
성장하면서 우리 자신이 그리스도화 혹은 하느님화(神化)되는 것이다.
오늘 독서에서 '죽을죄가 아닌 죄'를 지은 사람을 위해서는 하느님의 생명(은총)을
받을 수 있도록 간구(청)하라고 가르친다.(1요한 5,16)
2023년 01월 07일 토요일
[주님 공현 대축일 전 토요일] 오늘의 묵상 (허규 베네딕토 신부)
요한 복음서는 사용하는 표현이나 신학에서 공관 복음서와 차이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낱말을 뽑자면 ‘표징(標徵)’입니다.
다른 복음서는 ‘기적(奇蹟)’이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요한복음서는 초자연적인 사건을 지시할 때 표징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기적이 사건을 일으키는 예수님의 능력에 초점을 맞춘다면
표징은 사건을 통하여 드러나는 예수님의 신원을, 곧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강조합니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 이 사건이 표징이라는 점을 명시적으로 언급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갈릴래아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라고 말합니다.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꾼 사건은 첫 번째 표징이면서 예수님의 영광을 세상에 드러내는 사건입니다.
요한복음서는 모두 일곱 가지 표징을 전합니다.
①카나의 혼인 잔치(2장), ②왕실 관리의 아들을 살리신 것(4장), ③벳자타 못 가에서 병자를 고치신 것(5장), ④오천 명을 먹이신 것(6장), ⑤물 위를 걸으신 것(6장), ⑥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을 고치신 것(9장), 그리고 ⑦라자로를 다시 살리신 것(11장)입니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표징의 마지막은 이처럼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밝혀 줍니다. 표징은 믿음을 위한 것입니다.
놀라운 사건이라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 사건을 일으키는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 알게 되고 그분을 믿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의 첫 번째 표징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뜻합니다.
정결례(淨潔禮)로 표현되는 구약의 율법을 넘어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요구되는 시간입니다.
제자들이 완전하지는 못하였지만 믿음으로 모범을 보여 줍니다.
(허규 베네딕토 신부)
말씀을 받아 공부(工夫)하는 이들은 피가 물이 되어 영원한 안식(安息)을 누리게 됨을 안다
(이사62,1-7)
1ㄱ 시온 때문에 나는 잠잠히 있을 수가 없고 예루살렘 때문에 나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 땅의 존재들, 그들 신앙(信仰)의 삶을 걱정하시는 하느님의 마음이다.
1ㄴ그의 의로움이 빛처럼 드러나고 그의 구원이 횃불처럼 타오를 때까지.
= 땅의 존재들은 자신들을 위한 하늘의 대속(代贖), 그 하늘의 의로움을 거저 받아 구원(救援)받는다. 그것이 그리스도(基督)교 신앙(信仰)이다. 창조이전 구원자(그리스도)를 예비(豫備)하셨던 그 하느님의 구원의 약속, 계약(契約)이다.(에페1,4)
2 그러면 민족들이 너의 의로움을, 임금들이 너의 영광을 보리라. 너는 주님께서 친히 지어 주실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리라.
= 새 예루살렘, 새로운 피조물, 곧 하늘로 땅이 하늘이 되는 것. 흙인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3 너는 주님의 손에 들려 있는 화려한 면류관이 되고 너의 하느님 손바닥에 놓여 있는 왕관이 되리라.
= 그리스도로 되는 것이다.
4ㄱ 다시는 네가 ‘소박맞은 여인’이라, 다시는 네 땅이 ‘버림받은 여인’이라 일컬어지지 않으리라.
= 여인(땅)이 소박(疏薄, 버림) 받았다는 것은 남자(男子)가 없다는 것이다. 곧 땅의 예루살렘이 율법(律法)에 머물러 남자(씨-말씀), 곧 진리(眞理, 그리스도-남자)를 빼앗겼다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를 주어 회복(回復) 시키시겠다는 구원(救援)의 말씀이다.
4ㄴ오히려 너는 ‘내 마음에 드는 여인’이라, 너의 땅은 ‘혼인한 여인’이라 불리리니 주님께서 너를 마음에 들어 하시고 네 땅을 아내로 맞아들이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로.....)
(갈라3,27) 27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
5 정녕 총각이 처녀와 혼인하듯 너를 지으신 분께서 너와 혼인하고 신랑이 신부로 말미암아 기뻐하듯 너의 하느님께서는 너로 말미암아 기뻐하시리라. 6ㄱ 예루살렘아, 너의 성벽 위에 내가 *파수꾼들을 세웠다. 그들은 낮이고 밤이고 잠시도 잠잠하지 않으리라.
= 파수(把守)꾼? 밤낮으로 쉬지 않고 늘 깨어 지키시며, 기도하시며, 이끄시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약속(約束), 진리(眞理)로 보내주신 보호자(保護者) 성령(聖靈)이시다.
6ㄴ주님의 기억을 일깨우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마라. 7 그분(성령)께서 예루살렘을 일으켜 세우시어 세상에서 칭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너희는 그분(성령)을 쉬시게 하지 마라.
= 땅 예루살렘을 하늘 예루살렘으로~곧 땅(흙)인 피조물(被造物)인 우리가 하늘의 존재가 될 때까지 성령(聖靈)께서 일하시게 하라는 말씀이다.(요한14,26 16,15 로마8,6 에페1,14 참조)
(묵시2,7.11) “7 귀 있는 사람은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승리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하느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게 해 주겠다. 11 귀 있는 사람은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승리하는 사람은 두 번째 죽음의 화를 입지 않을 것이다.” (그 외 묵시2,17.29 3,6.13 참조)
(묵시3,22) 22 “귀 있는 사람은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 우리가 쉬지 말고 성령을 청(請)하고, 구(求)하면, 성령(聖靈)께서 우리의 생명(生命), 구원(救援)을 위해 쉬지 않고 일하신다는 말씀이다. (루가11,9-13참조)
복음(요한2,1-11)
1ㄱ 사흘째 되는 날,
= 요한복음 1장부터 보면 일곱째 날이다. 곧 7(안식)에 관한 말씀을 하시겠다는 것이다.
1ㄴ갈릴래아 카나에서 혼인 잔치가 있었는데, 예수님의 어머니도 거기에 계셨다.
= 말씀을 잉태하여 아들을 낳은 마리아다. 곧 아기가 짐승(죄인)들의 집에, 짐승의 구유(먹이통)에 뉘여졌고, 그것이 죄인들, 쓴물들의 양식(생명)으로 오신 구원자의 표징이었다.(루가2,11-12)
오늘 마리아(쓴물), 곧 마리아들의 안식(安息)을 위한 혼인(婚姻)잔치라는 것을 말씀하고 싶으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어머니도 거기에 계셨다’고 강조(强調)한 것이다.
2 예수님(표징)도 제자들과 함께 그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으셨다.
= 독서(牘書)에서도 확인(確認)했듯이 ‘여자(땅)가 남자(하늘)와 한 몸’일 때 안식(安息)을 누린다. 그것이 하늘나라의 혼인(婚姻)잔치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그 피의 값으로 죄인(罪人)들을 구(求)하신 뒤 이루어지는 혼인잔치다.
3 그런데 포도주가 떨어지자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구나.” 하였다. 4 예수님께서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 포도주(葡萄酒)는 그리스도의 피(血)를 뜻한다. 그래서 아직 피를 흘리실 때가 아니라고 하신 것이다.
*십자가(十字架)의 대속(代贖), 그 죽음의 때에~
(요한19,34) 34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5 그분의 어머니는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하고 말하였다. 6 거기에는 유다인들의 정결례에 쓰는 돌로 된 물독 여섯 개가 놓여 있었는데, 모두 두세 동이들이였다.
= 돌로 된 물독(항아리) 여섯 개- 율법(律法)의 돌이다. 곧 죽음의 법인 율법(제사와 윤리)으로 깨끗해 졌다고 고집(古集)하는 유대 신앙의 거짓됨, 헛됨을 보여주는 모습이다.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이기도하다)
7 예수님께서 일꾼들에게 “물독에 물을 채워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물독마다 가득 채우자,
= 율법의 돌 항아리 6에 예수님의 말씀인 물(1)이 들어가 6+1=7 안식(安息)이 되는 것임을 보여주신다.
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다시, “이제는 그것을 퍼서 과방장에게 날라다 주어라.” 하셨다. 그들은 곧 그것을 날라 갔다. 9ㄱ 과방장은 포도주가 된 *물을 맛보고 그것이 어디에서 났는지 알지 못하였지만, 물을 퍼 간 일꾼들은 알고 있었다.
= 포도주가 된 물을 맛보고? 포도주(葡萄酒)는 물이라는 것이다. 곧 피는 물이라는 것이다. 피가 물이 되어 생명수(生命水)가 된다는 것이다.
피에 머무르면, 곧 피를 마시면 죽는다. 사람은 물을 마셔야 산다. 그래서 이집트(세상)의 첫 재앙(災殃)으로 물이 피로변해, 그 피로 많은 피조물들이 죽었던 것이다.(탈출7,20 - 필히 보시라) 곧 세상과 함께하는 율법신앙(律法信仰)은 죽음이라는 것이다.
피의 제사가 물의 잔치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시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피와 물이 함께 내렸는데 피를 먼저, 물을 나중에 소개한 것이다.
9ㄴ그래서 과방장이 신랑을 불 10 그에게 말하였다. “누구든지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놓고, 손님들이 취하면 그보다 못한 것을 내놓는데,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남겨 두셨군요.”
= 과방장(果房長)은 포도주가 된 물을 맛보고도 몰랐지만, 물을 퍼간 일꾼들, 곧 말씀을 받아 공부(工夫)하는 이들은 피가 물이 되어 영원한 안식(安息)을 누리게 됨을 안다는 것이다.
(요한4,14)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
11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갈릴래아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 죄인(짐승)들의 먹이, 곧 죄인들의 생명수, 양식으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흘리실 피. 그 구원의 말씀, 물의 표징(標徵)으로 대속(代贖), 그 사랑의 빛인 영광 드러내셨음을 믿는가? 혹 거꾸로 물이 포도주로 변한 그 죽음의 기적으로 믿는 것은 아닌지.....
또한 성모님께 청(請)하면 때가 되지도 않았는데 기도(祈禱)를 들어 주신다는, 그 헛된 망상(妄想)의 믿음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파수꾼이신 보호자 성령님!
오늘도 성경을 공부하면 할수록 저희들의 부족함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다만 예수님을 우리 마리아(쓴물)들의 속죄제물로 내 주신 하느님께, 파수꾼으로 모든 말씀을 깨닫고 믿도록 늘 일하시는 성령님께 감사, 찬미, 영광을 드리옵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주님 공현 대축일 전 토요일 복음(요한12,1~11)
"그런데 마리아가 비싼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았다. 그러자 온 집 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하였다. (3) 이 여자를 그냥 놔 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7)
요한 복음 12장 3절에 예수님을 위한 잔치의 식탁에서 라자로의 동생 마리아가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다가 예수님 발에 붓고, 자기 머리 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린다.
요한 복음 12장 5절에는 그 값어치가 300 데나리온어치라고 말한다. 건강한 노동자가 안식일을 제외하곤, 거의 1년 동안 일해서 얻을 수 있는 총수입에 해당한다.
'리트란'(litran)은 '한 근'을 말하는 중량의 단위로 대략 340g(12온스)정도이다. 마르코 복음 14장 3절에는 '한 근'이 들어가는 '옥합'으로 나온다.
그런데 마태오나 마르코 복음은 향유를 머리에 부은 것처럼 묘사하고 (마태26,7; 마르코14,3), 요한 복음은 향유를 발에 부은 것으로 묘사한다. 왜 그럴까?
마리아는 당시 귀한 손님에게 존경을 표하는 관습따라 기름을 머리에 부었다.그런데 이 기름은 양이 적지 않아 몸을 타고 내려와 두 발까지 적셨다. 이것은 아마도 마태오나 마르코 복음에서 맨 처음의 기름을 머리에 부은 동작이 시작되는 상황을 묘사하고, 요한 복음에서는 기름을 부어 발에 떨어진 결과를 묘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요한 복음사가가 언급한 발은 당시 사람들에게 신체 부위 가운데 발이 가장 천시된 것과도 관련된다.
요한 복음사가는 값비싼 향유와 발을 대비시킴으로 마리아의 헌신을 높이 평가한다.
유대 사회에서 여자가 머리를 풀어 헤치는 것이 수치로 여겨졌던 당시에, 마리아는 이에 전혀 개의치 않고 자기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기 시작했다. 희랍어의 'ekmasso'(엑맛소)는 '씻다'(wash)의 의미가 아니라 '닦아내거나 문지르는 것'(wipe)을 나타낸다.
마치 미용사나 우리 자신이 화장품을 얼굴에 골고루 성의를 다해 문질러 주듯이, 자신의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에 부은 향유를 골고루 문질러 드린 것이다. 예수님을 향한 그녀의 뜨거운 마음과 넘치는 사랑을 주체하지 못하고 취한 아름다운 행동이었다.
열 두 사도의 당가를 맡고 있었으나 돈도둑이었던 유다 이스카리옷은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요한 12,6),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 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요한12,5)하고 가증스런 발언을 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의 사랑으로 한 행위에 쓰여진 기름이 당신 자신의 장례(죽음)날을 위하여 준비되어 온 기름임을 밝히신다(요한12,7). 주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 그 사랑을 체험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가장 값진 것을 주님께 드린다. 그래서 향유의 냄새가 집안 가득 퍼지게 된다.
'이 여자를 그냥 놔 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7)
요한 복음 12장 7절의 앞에 나오는 동사 '그냥 놔 두어라'에 해당하는 '아페스' (aphes; let alone)는 그 원형 '아피에미'(aphiemi; 용납하다, 허락하다)의 명령형이다. 그러나 뒤에 나오는 동사인 '간직하게 하여라'에 해당하는 '테레세'(terese; she has kept)는 그 원형이 '테레오'(tereo; 지키다, 간직하다)인데, 여기서는 가정법의 구조로서 '~하도록'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러니까 명령형이 아니고 가정법 문장으로서 '그녀를 버려 두어라, 나의 장례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할 수 있도록'으로 번역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번역은 이미 향유가 든 옥합을 깨트려 그것을 예수님께 부음으로써 다 소비해 버렸다는 문맥과는 맞지 않기 때문에 다소 의역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그래서 알렉산드리아 사본에서는 이 구절의 '간직하게 하여라'에 해당하는 '테레세'(terese)동사에 대해서, 가정법을 인도하는 접속사 '히나'(hina; ~하도록)을 생략하고, 이 '테레세'동사 대신에 3인칭 단수 직설법 완료형인'테테레켄'(tetereken)으로 썼다.
이 완료형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간직하여 왔다는 의미를 선명하게 전달하기 때문이다. 영어로 하면, 'Leave her alone; for the day of my burial she has kept this'이고, 번역하면, '그녀를 내버려 두어라. 그녀는 나의 장례 날을 대비하여 이것을 간직하여 왔다.'이다.
당시 마리아는 존경하는 분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지금까지 간직하여 온 값비싼 향유를 아낌없이 예수님께 부었다. 하지만 천주성(神性)을 가지신 예수님께서는 이런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마리아로 하여금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당신의 장례를 예비하는 큰 일을 하게 하신 것이다. 그런데 평소 돈 도둑이었던 유다가 '가난한 자' 운운하며 그것이 아깝다고 이야기 한다.
예수님께서는 이에 대해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지만,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요한 12,8)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가난한 자'에 해당하는 희랍어 단어는 '톤 프토콘'(ton ptochon)인데, 상대적으로 가난한 자들이 아니라 끼니조차 해결하기 어려운 극빈자들을 가리킨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곧 이 세상을 떠나실 것을 말씀하시면서 항상 그들과 함께 있는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것 보다 당신 자신의 죽음을 예비하는 일이 더 시급하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평소 강조하신 가난한 자에 대한 우선적 관심에 반(反)하는 말씀이 아니다.
그 시기에 무엇이 더 본질적으로 우선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시는 말씀이며, 열두 사도단의 당가(살림, 재정)를 맡아 돈을 빼 돌리기 위해 가난한 자의 구제를 명분으로 내세우는 유다의 사악한 마음의 심중을 찌르는 말씀인 것이다.
지금 이 시대 빈부의 양극화를 보면서 특히 재벌들의 회개가 많이 필요한 시기임을 모두가 알고 있다. 그리고 각계 각층의 지도자들이 자신은 조금도 불편함이 없는 하이 클래스로 살고 있으면서도 입으로는 '서민 운운, 비정규직 운운, 절대 빈곤 퇴치 운운'하는 것을 본다.
사랑도, 나눔도, 자선도 자기 밥통 안에서 말보다 행함으로 먼저 나와야 된다.
예수님께서 가장 보잘 것 없는 자와 당신을 동일시하시며, 애덕 실천의 여부가 최후 심판의 척도가 된다는 것을 마태오 복음 25장에서 계시하신다.
그러나 알아야 한다. 가난한 자도, 부자도 이 땅의 삶이 전부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우리 인간들이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면서, 우리 존재와 생명의 근본이며 목적이신 주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서 제외되어 있으면 안된다.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상의 죽음을 통한 구속의 효력이 그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쳐야 한다. 예수님의 보배롭고 거룩한 피가 가난한 자도 부자도 영혼의 때를 씻어내지 못한다면, 현세적 재화의 나눔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화폐로 환산될 수 있는 외적, 물질적 재화가 그 사람의 영혼을 구하는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소위 우리의 나눔이라는 것도 언제가는 없어지고 말 이 세상과 현세만을 위한 울리는 꽹과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