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09월 08일 목요일
[연중 제23주간 목요일] 자비로운 사람 (루카6,27-38)
제1독서<약한 형제들의 양심에 상처를 입히는 것은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1코린8,1ㄷ-7.11-13)
1 지식은 교만하게 하고 사랑은 성장하게 합니다.
2 자기가 무엇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아직 알지 못합니다.
3 그러나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께서도 그를 알아주십니다.
4 그런데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과 관련하여, 우리는 “세상에 우상이란 없다.”는 것과 “하느님은 한 분밖에 계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5 하늘에도 땅에도 이른바 신들이 있다 하지만 ─ 과연 신도 많고 주님도 많습니다만 ─
6 우리에게는 하느님 아버지 한 분이 계실 뿐입니다. 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나왔고 우리는 그분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또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 계실 뿐입니다. 모든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있고 우리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합니다.
7 그렇지만 누구나 다 지식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아직까지도 우상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을 정말로 그렇게 알고 먹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약한 양심이 더럽혀집니다.
11 그래서 약한 그 사람은 그대의 지식 때문에 멸망하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형제를 위해서도 돌아가셨습니다.
12 여러분이 이렇게 형제들에게 죄를 짓고 약한 그들의 양심에 상처를 입히는 것은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13 그러므로 음식이 내 형제를 죄짓게 한다면, 나는 내 형제를 죄짓게 하지 않도록 차라리 고기를 영영 먹지 않겠습니다.
화답송 시편 139(138),1-3.13-14ㄱㄴ.23-24(◎ 24ㄴ 참조) ◎ 주님, 영원한 길로 저를 이끄소서.
○ 주님, 당신은 저를 살펴보시고 잘 아시나이다. 앉으나 서나 당신은 저를 아시고, 멀리서도 제 생각 알아차리시나이다. 길을 가도 누워 있어도 헤아리시니, 당신은 저의 길 모두 아시나이다. ◎
○ 당신은 제 오장육부를 만드시고, 어미 배 속에서 저를 엮으셨나이다. 오묘하게 지어 주신 이 몸, 당신을 찬송하나이다. 당신 작품들은 놀랍기만 하옵니다. ◎
○ 하느님, 저를 샅샅이 보시고 제 마음을 알아주소서. 저를 꿰뚫어 보시고 제 생각을 알아주소서. 저의 길이 굽었는지 살펴보시고, 영원한 길로 저를 이끄소서. ◎
복음<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6,27-38)
27 “내 말을 듣고 있는 너희에게 내가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잘해 주고,
28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에게 축복하며, 너희를 학대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29 네 뺨을 때리는 자에게 다른 뺨을 내밀고, 네 겉옷을 가져가는 자는 속옷도 가져가게 내버려 두어라.
30 달라고 하면 누구에게나 주고, 네 것을 가져가는 이에게서 되찾으려고 하지 마라.
31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32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은 사랑한다.
33 너희가 자기에게 잘해 주는 이들에게만 잘해 준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그것은 한다.
34 너희가 도로 받을 가망이 있는 이들에게만 꾸어 준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고스란히 되받을 요량으로 서로 꾸어 준다.
35 그러나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에게 잘해 주고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어라. 그러면 너희가 받을 상이 클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가 될 것이다. 그분께서는 은혜를 모르는 자들과 악한 자들에게도 인자하시기 때문이다.
36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37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38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연중 제23주간 목요일 제1독서(1코린 8,1ㄷ~7.11~13)
"그런데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과 관련하여, 우리는 "세상에 우상이란 없다"는 것과 "하느님은 한 분 밖에 계시지 않는다" 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4) 우리에게는 하느님 아버지 한 분이 계실 뿐입니다. 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나왔고, 우리는 그분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또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 계실 뿐입니다. 모든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있고, 우리는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합니다." (6)
"그런데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과 관련하여, 우리는 "세상에 우상이란 없다"는 것과 "하느님은 한 분 밖에 계시지 않는다" 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4)
사도 바오로는 코린토1서 8장 1절에서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에 대한 언급을 시작해서 8장 3절까지는 주로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 문제에 관해서는 지식보다 사랑이 중요하다는 일반 원리에 대해 제시하였다.
반면에 8장 4절부터 12절까지는 본격적으로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 취식' 문제와 관련된 제반 문제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특히 8장 4절의 경우,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 취식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기 전에 우상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하여 규정해 주고 있다.
이것은 사도 바오로가 코린토 교인들 중 일부의 주장을 소개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요약하면 '세상에 우상이란 없다'는 것과 '하느님은 한 분 밖에 계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상에 우상이란 없다'로 번역된 '우덴 에이돌론 엔 코스모'(uden eidolon en kosmo)에서 '없다'로 번역된 '우덴'(uden)의 원형 '우데이스'(udeis)는 '없다' 라는 뜻의 '우데'(ude)와 '하나' 라는 뜻의 '헤이스'(heis)의 합성어로서, 문자적으로는 '단 하나도 없다'란 강력한 의미를 지닌다.
즉 우상 그 자체는 신(神)이 아니라 나무 조각이나 쇠조각에 불과한 것으로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완전한 허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도 바오로의 언급은 코린토1서 10장 21절, 22절에 언급되어 있는 것, 우상의 이면에 있는 마귀들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과 상호 모순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우상들의 배후에 마귀들의 존재가 없다는 것을 드러내려는 것이 아니라 우상 그 자체는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여기서 사도 바오로가 세상에 어떤 우상도 없다고 말한 것은 마귀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섬기는 그 어떤 존재도 경배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참된 하느님이 아니라는 것이다(시편115,4~8; 135,15~18).
당시 그리스인들이 섬기던 제우스(Zeus; Ζεύς)나 아테나(Athene; Αθηνά), 포세이돈(Poseidon; Ποσειδών), 이시스(Isis; Ἶσις), 세라피우스(Serapis; Σάραπις), 아스클레피우스(Aesculapius; Ἀσκληπιός) 같은 신들은 사실상 이교적인 미신에 불과하며 살아 계시는 참된 하느님이 아니다.
말하자면, 그것은 단순히 신상이거나 사람들이 만들어낸 가상의 신화적 산물일 뿐, 신(神)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참으로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다'(an idol is nothing). 살아 역사(役事)하시는 신(神)은 오직 한 분, 유일하신 하느님뿐이신 것이다(신명6,14; 이사44,8; 45,5).
즉 사도 바오로는 여기서 이교도들이 흔히 신으로 간주하여 제사드리는 대상들은 참된 의미의 하느님이 아니라는 점을 밝히며,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을 먹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분명히 밝힌다(1코린10,19~22참조).
'우리에게는 하느님 아버지 한 분이 계실 뿐입니다. 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나왔고, 우리는 그분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또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 계실 뿐입니다. 모든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있고, 우리는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합니다.' (6)
코린토1서 8장 5절과 6절을 비교해 볼 때, 6절은 하느님만을 섬기는 그리스도인들과 다신론자(多神論者)들인 우상 숭배자들을 강하게 대조하고 있다.
특히 여기서 '한'으로 번역된 '헤이스'(heis)는 일반적으로 '많다는 것에 대한 대조의 의미'로 사용되며, 다른 것들은 배제하는 강조적 용법으로서 '단일', '유일' 이라는 뜻을 나타낸다.
따라서 본절은 그리스도인들은 한 분 하느님과 한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섬긴다는 데서 결정적으로 우상 숭배자들과 구분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 분이신 하느님께서는 어떤 분이신가? 그분은 '아버지' 이시다. 그리스도교에서는 바로 이 유일신에 대해서 '아버지' 라는 독특한 호칭을 붙이는데, 이는 유일한 아드님이신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시라는 의미를 나타내는 동시에, 그의 아드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의 자녀된 그리스도인들의 아버지이시라는 의미도 나타낸다.
또한 '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나왔고'에서 드러나지만, 그분은 만물의 '창조주'이시다. 여기서 '에게서'로 번역된 '엑스'(eks)는 '~로부터', '~로 말미암아' 라는 뜻을 지닌 전치사로서 만물의 출처를 나타낸다.
특히 '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나왔고' 라는 사도 바오로의 진술은 그리스의 제신(諸神)들이 각각 자신들에게 할당된 영역안에서만 영향력을 미치는 제한된 존재라는 점과 강한 대조를 이룬다. 또한 사도 바오로는 한 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그는 '주님'으로도 호칭되는 분이시다. 여기서 '주님'으로 번역된 '퀴리오스'(kyrios)는 70인역(LXX; 구약 히브리어의 그리스 번역본)의 경우, 하느님의 히브리어 이름 'Jehova'의 역어이다.
물론 이 말이 당시 그리스 세계에서 '선생님'이란 뜻을 지녔다 할지라도, 여기서는 문맥상 '그리스도의 하느님 되심'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특히 Hellenism 세계에서 '주님'(主) 이라는 말이 '메시야' 라는 표현보다 예수님의 신적왕권을 더 잘 표현하는 방식이었다는 사실은 이 견해를 지지한다.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 역시 천주 성자 제2위 하느님으로서 만물의 창조자이시다. 이러한 사실은 '~을 통하여' 라는 뜻을 지닌 전치사 '디아'(dia)의 축약형 '디'(di)가 잘 드러내준다.
이 전치사는 우리 또한 그로 말미암아 새 생명을 지니게 되었음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이렇게 하느님과 그리스도는 한 하느님으로서 인류의 창조와 구원에 개입하셨다. 이것은 성령 하느님께서도 마찬가지이시다.
삼위일체 하느님은 창조사업과 구원사업과 성화(聖化)사업에 함께 다 개입하셨고, 관여하신다.
그러나 구세 경륜적 삼위일체론에서 성삼위의 역할과 기능면에서 구분한다면, 창조사업은 하느님의 전능을 전제로 하니까 창조주 아버지 하느님(성부)께 돌리고, 구원사업은 예수님의 십자가상 죽음과 희생을 전제로 하니까 성자 예수님께 돌리고, 성화사업은 예수님의 구속사업의 공로를 나누어 주는 일이니까, 의화와 성화의 영이신 천주 성령께 돌릴 뿐이다.
연중 제23주간 목요일 복음(루카6,27~38)
"네 뺨을 때리는 자에게 다른 뺨을 내밀고, 네 겉옷을 가져가는 자는 속옷도 가져가게 내버려 두어라." (29)
루카복음 6장 27절과 28절에는 2인칭 복수 인칭 대명사 '휘민'(hymin)을 사용하여 예수님의 명령의 대상을 '너희'라고 하는 데 반해, 루카복음 6장 29절부터 31절까지는 2인칭 단수 인칭 대명사 '세'(se) 즉 '네'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2인칭 복수에서 단수로 전환한 것은 이 말을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개인을 보다 깊게 성찰하도록 하기 위한 의도이다.
그리고 '뺨'에 해당하는 '시아고나'(siagona; cheek)는 정확히 사람 얼굴의 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턱' 또는 '턱뼈'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병행 구절인 마태오 복음 5장 39절에서는 '오른뺨'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고대 근동에서 손으로 뺨을 때리는 것은 매우 모욕적인 일이었다. 특히 히브리인들은 오른손을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오른뺨을 때렸다는 것은 정면에서 손등으로 쳤을 경우나 뒤에서 손바닥으로 쳤을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유대 풍습으로 볼 때 손등으로 때리는 것은 손바닥으로 때리는 것보다 두 배나 모욕을 주는 것이다. 또한 등 뒤에서 때렸다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불의의 공격을 받은 것이 된다.
그러나 본문은 이때에 오히려 '다른 뺨'도 돌려대라고 말한다. 이것은 실제로 왼편 뺨까지 때리도록 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그 어떤 경우에라도 직접적으로 복수하지 말고 고통과 모욕을 견디라는 교훈이다.
원수들의 경멸적인 폭행을 당하더라도, 같이 대적하여 맞서기보다는 사랑의 원리로 무저항, 무보복의 행동을 보이라는 명령이다.
이것은 어떤 문제에 직접 대응하여 복수가 악순환되는 것을 막고, 오히려 상대방에게 관용과 무저항으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라는 말이다.
'네 겉옷을 가져가는 자는 속옷도 가져가게 내버려두라'
병행 구절인 마태오 복음 5장 40절은 루카 복음 6장 29절의 후반절과는 달리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로 되어 있다.
이렇게 마태오 복음사가는 속옷을 먼저 언급하고 있는데, 이것은 이웃의 겉옷을 담보로 잡을 수 없다는 율법의 규정을 잘 알고 있는 유대인을 대상으로 복음을 기록했기 때문이다(탈출22,25~26).
속옷은 겉옷보다 가격이 싸고, 보잘것 없는 가치를 지닌 것이다. 반면에 겉옷은 가격도 비싸고, 일교차가 심한 팔레스티나에서 밤에 덮고 자야 하는 필수품이므로, 전당잡힐 수조차 없는 품목이었다(탈출22,26; 신명24,13).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옷을 달라고 하는 이에게 더 비싸고, 없으면 당장 추위에 떨어야 하는 겉옷까지 아무 저항도 하지 않고 양도하라는 것은 무조건적인 자기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다.
재산상의 분쟁이나 강도를 당한 상황에서 속옷조차 취하려는 상대에 대하여 저항하지 말고, 오히려 사랑을 베풀라는 뜻이다.
반면에 루카복음은 중요한 것을 달라는 이에게 사소한 것까지도 모두 주라는 의미로 겉옷을 먼저 언급했지만, 내용은 동일하다.
2021년 [연중 제23주간 목요일]
말씀이 일하시게 하라.
복음(루카6,27-38)
27 “내 말을 듣고 있는 너희에게 내가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잘해 주고, 28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에게 축복하며, 너희를 학대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 원수를 어떻게 사랑하고, 나를 미워하는 이를 위해 어떻게 기도해야하나. 먼저 하느님께서 선택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하시는 말씀임을 기억하자. 곧 주님께 받은 그 말씀으로 하는 것이다. 나의 원수의 모든 죄를 대속(代贖)하고 죽으신 그 십자가의 복음(福音), 새 계명, 새 계약으로 용서(容恕)하고 하늘의 생명을 받도록 기도(祈禱)하라는 말씀이신 것이다.
(1요한2,2) 2 그분은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 우리 죄만이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
= 그러기 위해서 먼저 내가 ‘주님의 십자가로 용서를 받았음’을 믿어야 한다. 곧 그리스도의 피로 나의 더러운 양심까지 깨끗하게 씻겨 거룩한 사람이 되었음을, 되게하신 그 하느님의 새 계약의 말씀을 진리(眞理)로 믿고 간직했을 때, 내 안에 주님의 용서, 사랑이 자라나 이웃에게 진실(眞實)되게 흘러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진리로 전해주는 것이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고 ‘용서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사도(使徒)는 권(勸)한다~
독서(콜로3,12-17)
12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 거룩한 사람, 사랑받는 사람답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입으십시오. 13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참아 주고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십시오. 사랑은 완전하게 묶어 주는 끈입니다. 15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하십시오.
=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 사랑과 평화이신 예수님을 입으십시오. 믿으십시오.’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그 주님의 말씀, 사랑을 마음에 담고, 기도하여 그 말씀, 사랑이 내 마음을 다스리시도록 해야 한다. 곧 율법(제사와 윤리), 그 사람의 의로움으로 할 수 없는 다른 차원의 용서, 사랑이다.
우리의 보호자(保護者)이신 성령(聖靈)께 의탁한 말씀 묵상과 기도로만 가능한 것이다. 곧 내 힘으로 하지 말고, 높으신 힘, 성령께 의탁해서 하라는 것이다.
29 네 뺨을 때리는 자에게 다른(성령) 뺨을 내밀고, 네 겉옷을 가져가는 자는 속옷도 가져가게 내버려 두어라.
= 내가 전하는 말(새 계약)이 틀렸다고 하면 성령의 법(法)으로 응(應)하라는 말씀이다. ‘속옷(율법- 옛 계약)의 실체가 겉옷(진리- 새 계약)임’을 알려주라는 말씀이다.
30 달라고 하면 누구에게나 주고, 네 것을 가져가는 이에게서 되찾으려고 하지 마라.
= 하느님의 말씀을 진리로, 새 계약으로 깨닫게 해달라고 청(請)하면 주고, 대접받기를 바라지 말라는 말씀이다.
31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 ‘남’은 산상수훈(山上垂訓), 황금율(黃金律)에서 성령으로 여러 번 묵상(黙想)했었다. 곧 성령께서 바라시는 대로 복음을 전하며, 나와 이웃이 함께 하늘의 생명을 얻는 삶을 살라는 말씀이다.
32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은 사랑한다. 33 너희가 자기에게 잘해 주는 이들에게만 잘해 준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그것은 한다.
= 원수(怨讐),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구원에 이르도록 말씀을 전하며 그를 위해 기도(祈禱)하라는 말씀이다.
34 너희가 도로 받을 가망이 있는 이들에게만 꾸어 준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고스란히 되받을 요량으로 서로 꾸어 준다. 35 그러나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에게 잘해 주고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어라. 그러면 너희가 받을 상이 클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가 될 것이다. 그분께서는 은혜를 모르는 자들과 악한 자들에게도 인자하시기 때문이다. 36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 주님의 십자가(十字架)로 용서받아 거저 의롭게 된 나(우리)다. 그렇게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는 말씀이다. 나의 수고(愁苦)에 가치를 두지 말고, 생색내지 말고, 하라는 말씀이다.
37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 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38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말씀, 곧 구원의 진리, 새 계약의 말씀을 믿는다면 용서할 수밖에 없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판단(判斷)이 계속 나온다면 십자가의 대속, 그 진리의 새 계약(말씀)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전히 율법(祭祀와 倫理) 그 옛 계약을 사는 것이다. 그 삶은 도덕(道德)과 윤리(倫理), 그 법의 심판(審判)을 받게 된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말씀을 간직하고 그 말씀의 힘(용서)으로 살라고 하시는 오늘 말씀이다.
(로마8,1-3) 1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이들은 단죄를 받을 일이 없습니다. 2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이 그대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3 율법이 육으로 말미암아 나약해져 이룰 수 없던 것을 하느님께서 이루셨습니다. 곧 당신의 친 아드님을 죄 많은 육의 모습을 지닌 속죄 제물로 보내시어 그 육 안에서 죄를 처단하셨습니다.
☨ 그리스도 안에서 받는 무죄(無罪)를 우리의 영(靈)에게 증언(證言)해 주시는 은총(恩寵)이신 천주의 성령님! 감사합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마리아 탄생 축일]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 (마태1,1-16.18-23)
제1독서<해산하는 여인이 아이를 낳을 때까지>(미카5,1-4ㄱ)
1 “너 에프라타의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 부족들 가운데에서 보잘것없지만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 그의 뿌리는 옛날로, 아득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2 그러므로 해산하는 여인이 아이를 낳을 때까지 주님은 그들을 내버려 두리라. 그 뒤에 그의 형제들 가운데 남은 자들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돌아오리라.
3 그는 주님의 능력에 힘입어 주 그의 하느님 이름의 위엄에 힘입어 목자로 나서리라. 그러면 그들은 안전하게 살리니 이제 그가 땅끝까지 위대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4 그리고 그 자신이 평화가 되리라.”
화답송시편 13(12),6ㄱㄴ.6ㄷ(◎ 이사 61,10ㄱ) ◎ 저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리이다.
○ 저는 당신 자애에 의지하며, 제 마음 당신 구원으로 기뻐 뛰리이다. ◎
○ 은혜를 베푸신 주님께 노래하리이다. ◎
복음<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마태1,1-16.18-23)
1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2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낳고 이사악은 야곱을 낳았으며 야곱은 유다와 그 형제들을 낳았다.
3 유다는 타마르에게서 페레츠와 제라를 낳고 페레츠는 헤츠론을 낳았으며 헤츠론은 람을 낳았다.
4 람은 암미나답을 낳고 암미나답은 나흐손을 낳았으며 나흐손은 살몬을 낳았다.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즈를 낳고 보아즈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았다. 오벳은 이사이를 낳고
6 이사이는 다윗 임금을 낳았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7 솔로몬은 르하브암을 낳았으며 르하브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삽을 낳았다.
8 아삽은 여호사팟을 낳고 여호사팟은 여호람을 낳았으며 여호람은 우찌야를 낳았다.
9 우찌야는 요탐을 낳고 요탐은 아하즈를 낳았으며 아하즈는 히즈키야를 낳았다.
10 히즈키야는 므나쎄를 낳고 므나쎄는 아몬을 낳았으며 아몬은 요시야를 낳았다.
11 요시야는 바빌론 유배 때에 여호야킨과 그 동생들을 낳았다.
12 바빌론 유배 뒤에 여호야킨은 스알티엘을 낳고 스알티엘은 즈루빠벨을 낳았다.
13 즈루빠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야킴을 낳았으며 엘야킴은 아조르를 낳았다.
14 아조르는 차독을 낳고 차독은 아킴을 낳았으며 아킴은 엘리웃을 낳았다.
15 엘리웃은 엘아자르를 낳고 엘아자르는 마탄을 낳았으며 마탄은 야곱을 낳았다.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20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22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곧 23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신 말씀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 제1독서(미카5,1~4ㄱ)
'미카'란 '누가 주님과 같으냐?'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미카야'의 단축형이다.
미카의 고향 모레셋은 예루살렘에서 남서쪽으로 40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자리잡은 작은 마을이었다. 아시리아 군대가 예루살렘을 공략할 때 먼저 유다의 평원지대를 침략했으니, 틀림없이 이곳을 거쳐갔을 거라고 본다. 미카는 고향에서 아시리아 침략군의 진군을 보면서 국가적 재난이 예루살렘을 향해서도 다가가고 있음을 확인한다(1,8-16; 3,12).
미카는 소예언서의 예언자들 가운데 호세아와 아모스와 더불어 8세기에 활동했던 마지막 예언자이다. 열두 소 예언서에서 6번째 책인 미카서는 하느님과의 수직 관계를 강조한 호세아서와 이웃과의 수평 관계를 강조한 아모스서의 메세지를 고루 포함한다.
오늘 9월 8일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에 미카서 5장 1-4ㄱ절이 독서로 채택된 것은 새로운 통치자가 베틀레헴에서 탄생하리라는 메시아 신탁 때문이다.
인류를 죄와 죽음과 사탄의 권세에서 해방시켜 주시는 영신적 메시아로 오시기 위해 성모마리아의 살과 피를 취하신, 영원으로부터 살아계신 하느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예고하기 때문이다.
'너 에프라타의 베틀레헴아, 너는 유다 부족들 가운데에서 보잘것없지만,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 그는 주님의 능력에 힘입어, 주 그의 하느님 이름의 위엄에 힘입어 목자로 나서리라. 그러면 그들은 안전하게 살리니, 이제 그가 땅끝까지 위대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평화가 되리라.' (5,1~4ㄱ참조)
이 신탁은 메시아를 다윗 가문과 연결시킨 사무엘서의 전통(1사무16장; 2사무5,2; 7,8)과 동정녀가 아들을 낳으리라는 이사야 예언서의 전통(이사7,10~17)이 합쳐진 형태이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이것을 예수님의 탄생과 연결한다(마태2,6; 참조: 요한7,42).
메시아 시대가 오면, 야곱의 남은 자들이 민족 가운데서 크게 성장하여 수많은 민족을 굴복시킬 것이다(미카5,6~8). 그날이 오면, 주님께서 마술사, 점쟁이, 아세라 목상을 비롯하여 온갖 부정한것들을 없애 버리시고 이스라엘을 완전히 정화하실 것이다(미카5,9~14).
우리는 보통 구세주 예수님을 동쪽 하늘에 떠오르는 정의(의덕)의 태양, 구원의 태양이라고 비유한다. 그러면 성모마리아는 무엇으로 비유할까?
영원으로부터 성부 하느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한 여인을 통해 구원자이신 성자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시기로 계획하셨기에 초자연과 자연의 만남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성부 하느님께서는 수많은 여인 중에 간택된 여인이신 성모 마리아를 통해서만,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성자 예수님을 이 세상의 구원자로 보내시길 원하셨기에 성모마리아의 탄생은 구세사에서 참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니까 우리 그리스도인에겐 마리아의 어머니이신 안나에게서의 수태, 그리고 마리아의 탄생 자체가 구원의 기쁜 소식이다. 왜냐하면, 성모마리아를 통해 구원자이신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기 때문이다.
2022년 09월 08일 목요일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 오늘의 묵상 (강수원 베드로 신부)
예수님의 족보는 “다윗의 자손”이라는 호칭으로 시작합니다.
다윗의 히브리 말 이름이 가리키는 숫자 ‘14(4+6+4: דוד[代])×3’의 도식은,
다윗의 자손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완전한 구원 섭리로 오신
온 세상의 임금이시요 구약 시대부터 예언되신 메시아이심을 드러냅니다.
족보에는 특히 요셉이 “마리아의 남편”으로 소개되면서, 독자의 주의가 온전히 마리아에게로 쏠리게 합니다.
메시아가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에서 나신다는 미카의 예언과(제1독서 참조),
하느님의 다스림과 영원한 평화를 가져올 임마누엘 아기의 탄생에 관한 이사야의 예언(마태 1,23; 이사 7,10-17; 8,23ㄴ─9,6 참조) 모두에 등장하는 그 ‘여인’은 바로 주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입니다.
성경에는 마리아의 탄생 이야기가 없지만,
외경(外經)인 야고보 원복음서에 부유하고 경건하였던 요아킴과 안나 부부가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하며 자식을 청하였을 때
천사에게서 아기를 가지게 될 것이라는 계시를 받고,
아이를 낳지 못하는 안나가 기적적으로 마리아를 얻게 된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비록 이 외경의 내용 때문만은 아니지만,
교회는 구세주의 탄생을 오래전부터 섭리하신 하느님께서 아기의 어머니 또한 신중히 마련하셨음을 믿어 고백하며,
오늘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을 경축합니다.작고 연약한 아기 마리아의 탄생으로 이어진 하느님의 구원 섭리를 기억합니다.
때로는 의식조차 하지 못하는,
아주 작고 당연하게 여겨지는 일들 가운데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현존과 섭리를 우리가 발견하고,
그 뜻이 이루어지도록 협력하는 이 시대의 ‘마리아’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강수원 베드로 신부)
하느님의 계획(計劃)안에 있는 나
(로마8,28-30)
28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 우리에게 일어나는 희로애락(喜怒哀樂), 그 모든 것을 통해 선(善), 곧 구원을 이루신다. 미리 뽑으신 우리다.
29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이들을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아드님께서 많은 형제 가운데 맏이가 되게 하셨습니다.
= *뽑으신(티모스코), *알다- 상대와 깊은 관계의 사랑을 알다. ‘미리 뽑으신 이들’ 곧 ‘미리 사랑하신 이들’을 뽑으셨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도록 정하셨다는 것이다.
(에페1,4-7) 4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으로 5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좋으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6 그리하여 사랑하시는 아드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은총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습니다. 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았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풍성한 은총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30 그렇게 미리 정하신 이들을 또한 부르셨고, 부르신 이들을 또한 의롭게 하셨으며, 의롭게 하신 이들을 또한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
= 모두 과거(過去) 완료형이다.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로 의롭게 되었고, 영광스럽게 되었다. 그러나 믿어지지가 않는다. 그래서 살지도, 누리지도 못한다. 내 생각, 그 육적자아(肉的自我)가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씀을 통해서 그 육적자아를 한 꺼풀씩 벗어야(깨트려야)한다.
하느님께서 심어주신 의로움과 영광이 드러나도록 나를 버리고 죽이는 그 자기부인(自己否認)을 위한 전 인생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씀이 그 우리의 전 인생을 통해 이루신다는 말씀이다.
* 아브라함을 통(通)해 배워보자.
하느님께서 칼데아의 우르에서 다른 신(神)을 섬기며 육적(肉的)삶에 만족하며 살던 아브람을 찾아가시어 그 우상(偶像)의 삶에서 구하시려 ‘약속의 땅으로 가라’ 하신다.
아브람은 말씀대로 가다가, 풍요(豊饒)로웠던 우르의 삶에 미련(未練)이 남아 근처 하란에서 머뭇거리자 하느님은 또 그를 찾아가셔서 복(福)을 약속하시며 떠날 것을 재촉하신다. 자식이 없던 아브람은 그 복(福)이라는 말에 베텔을 지나 네겝쪽으로 옮겨 가전 중, 기근(饑饉)이라는 시련이 닥치자 이집트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자신의 목숨에 위협(威脅)을 느껴 아내 사라이를 누이라고 속여 파라오에게 내어 주는 잘못을 저지른다. 그런데 하느님은 아브람을 야단치시는 것이 아니라 파라오에게 재앙(災殃)을 내리신다. 이럴 수가, 아브람은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그리고 함께했던 조카 롯이 분가(分家)한 후, 주변 나라들의 전쟁(戰爭)으로 모든 재물(財物)을 빼앗기도 롯 자신도 잡혀간다. 그때, 아브람은 집안에서 키운 318명으로 큰 군대를 무찌르고 롯과 재물을 다시 찾아오는 큰 승리(勝利)를 거둔다. 하느님의 도우심이 있었기에 가능(可能)했음이다.
그 후에 하늘의 별처럼 후손(後孫)이 많아질 것이라는 하느님의 약속(約束)을 받는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그의 나이 65살이 되도록 후손이 없자, 자신의 힘으로 아들을 낳는다. 곧 아내 사라이 대신 그의 여종(女從) 하가르에게서 이스마엘을 낳은 것이다. 하느님을 믿지 못한 그의 행동이었다.
그리고 아브람의 나이 99에 아브라함이라는 새 이름을 받고 할례(割禮)를 행하라는 하느님의 명을 받는다. 할례란- 남자의 생식기, 곧 남자의 힘을 잘라 냄을 뜻한다. 하느님의 힘만 의지(依支)하라는 뜻이다. 아브라함은 마음이 어땠을까?
그리고 하느님께서 곧 사라이가 잉태(孕胎)하여 약속된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말씀을 하시자~
(창세17,17) 17 아브라함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웃으면서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나이 백 살 된 자에게서 아이가 태어난다고? 그리고 아흔 살이 된 사라가 아이를 낳을 수 있단 말인가?’
= 그런 그에게 하느님은 친구(親舊)에게 의논하듯, 소돔의 멸망(滅亡)을 알리신다. 두렵고 황당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후(後)에 이집트에서처럼 그라르 임금 아비멜렉에게 아내 사라이를 누이라 속이는 잘못을 또 저지른다.
(창세20,3.10-11.14.16-17) 3 그날 밤 꿈에, 하느님께서 아비멜렉에게 나타나 말씀하셨다. “네가 데려온 여자 때문에 너는 죽을 것이다. 그 여자는 임자가 있는 몸이다.” 10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다시 물었다. “그대는 도대체 어쩌자고 이런 일을 저질렀소?” 11 아브라함이 대답하였다. “‘이곳에는 하느님에 대한 경외심이라고는 도무지 없어서, 사람들이 내 아내 때문에 나를 죽일 것이다.’ 하고 내가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14 그러자 아비멜렉은 양과 소, 남종과 여종들을 데려다 아브라함에게 주고, 그의 아내 사라도 돌려주었다. 16 그리고 사라에게 말하였다. “나는 그대의 오라버니에게 은전 천 닢을 주었소. 보시오, 그것은 그대와 함께 있는 모든 이들 앞에서 그대의 명예를 회복시켜 줄 것이오. 이로써 그대는 모든 면에서 결백하다는 것이 입증되었소.” 17 이에 아브라함이 하느님께 기도하자, 하느님께서는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그의 여종들의 병을 고쳐 주셨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아이를 낳을 수 있게 되었다.
= 잘못은 자신이 했는데 재앙(災殃)은 아비멜렉이 받고, 거기다 재물까지 생기에 되니 아브라함은 어안이 벙벙했을 것이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나이 100살에 아들 이사악이 태어난다. 그때야 아브라함은 깨달았던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반드시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아니 약속하신 복을 받도록 자신의 전(全) 삶을 이끄셨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힘으로 낳은 아들이 아니라 하느님의 힘으로 낳은 아들, 곧 자신이 바라던 후손, 아들을 통해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내 주셨음을, 그 복의 계약을 깨닫고, 믿게 되었다는 것이다.
(창세21,30-31) 30 아브라함이 대답하였다. “이 어린 암양 일곱 마리를 내 손에서 받으시고, 내가 이 우물을 팠다는 사실에 대하여 증인이 되어 달라는 것입니다.” 31 이렇게 그 두 사람이 거기에서 맹세를 했다고 하여, 그곳을 브에르 세바라 하였다.
= 브에르 세바(일곱 샘), 어린양 예수의 대속으로 얻는 일곱(안식)이다. 하느님의 뜻이다.
(요한4,14) 14 예수님께서-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아들 이사악을 바칠 수 있었다.
(히브11,19) 19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 죽은 사람까지 일으키실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사악을 하나의 상징으로 돌려받은 것입니다.
= 그렇게 하느님은 아브라함의 전 인생을 통해 선(善, 구원)을 이루신 것이다. 야곱, 다윗, 사도바오로, 성모마리아도, 그리고 우리 또한 우리의 삶 전체를 통해 구원을 이루신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선을 행할 때나 악을 범할 때나, 건강할 때나 아플 때나, 늘 함께 하시며 가르치시고 생각하게(깨닫게)하시며 이끄신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事件)은 하느님의 사랑의 손짓이다’
(1티모4,4) 4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것은 다 좋은 것으로, 감사히 받기만 하면 거부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코헬3,10-11) 10 나는 인간의 아들들이 고생하도록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일을 보았다. 11 그분께서는 모든 것을 제때에 아름답도록 만드셨다. 또한 그들 마음속에 시간 의식도 심어 주셨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시작에서 종말까지 하시는 일을 인간은 깨닫지 못한다.
☨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하느님의 뜻, 비밀까지 통찰하시며 가르치시고 기도와 간구로 이끄시니 감사합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 복음(마태1,1~16.18~23)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16)
예수님의 족보 이야기가 복음에는 두 군데 나온다. 루카복음에는 3장 23~38절에 예수님으로부터 아담에 이르기까지 77(=7x11)대를 거슬러 올라가고, 마태오복음에는 1장 1~17절까지 아브라함에서부터 예수님까지 42(=14x3)대를 내려가며 기록한다.
두 족보 모두 객관적으로 조상들의 계보를 밝히기보다는, 주관적으로 예수님의 정체를 밝힌다.
루카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아담의 후예요, 하느님의 후예임을 강조하며(3,38), 마태오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아브라함의 후예요, 다윗의 후예인 메시아이심을 강조한다(1,1).
B.C.1750 년경,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세상의 모든 족속들이 너로 말미암아 축복을 받으리라.'(창세12,3; 22,18)고 말씀하셨는데, 예수님께서 바로 저 축복받은 아브라함의 후손이시다.
또한 예수님 시대의 유다인들은 B.C.1010~970년경 통일 국가 이스라엘의 2대 임금으로 재위한 다윗의 후손 가운데서 위대한 성군 메시아(희랍어; 'Christus')가 탄생하리라고 기대했었는데, 예수님께서 바로 '다윗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다.
족보에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말고 다른 부인 4명이 등장한다.
ㄱ) 타마르(3절) ㄴ) 라합(5절) 위 두 사람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가나안 원주민이다. ㄷ) 룻(5절)~모압 출신 여자 ㄹ) 바쎄바(6절)~우리야의 아내; 솔로몬의 어머니 바쎄바는 다윗의 아내가 되기 전에 본디 이방인 동네 히티트 출신 군인 우리야의 아내였다.
그러니까 네 부인은 자신이 이방인이거나 남편이 이방인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 뿐 아니라 이방인들의 메시아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강조하려고, 마태오 복음사가가 일부러 이런 부인만 골라서 올렸는지도 모른다.
네 부인들의 또 한가지 공통점은 정상적인 부부관계가 아닌, 매우 기이한 인연으로 아들들을 낳았다는 사실이다.
타마르는 자식없이 남편과 사별한 다음에 기상천외하게도 시아버지 유다와 동침한다. 라합은 예리고의 소문난 창녀로서 살몬과 관계하고, 룻은 보릿가리 옆에서 잠든 보아즈를 유혹하여 결혼하고, 바쎄바는 자신을 범하고 자기 남편을 전사케 한 다윗과 결혼한다. 이렇게 네 여인들은 제각기 기이한 인연으로 아들들을 낳았던 것이다.
오늘날의 독자들은 윤리적, 도덕적 관점에서 이 여인들의 불륜을 나무랄 것이다. 그러나 유다교 율사들은 그런 일들을 달리 풀이 했다.
곧 다윗의 가계, 메시아의 가계가 바야흐로 끊어지려는 순간 순간에 하느님께서는 불가사의한 방법으로 가계를 이어 가셨다고 풀이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 여인들은 하느님께서 극적으로 개입하신 순간 순간의 유용한 도구들인 셈이다.
마침내 불가사의의 극치로, 마리아가 처녀의 몸으로 에수님을 잉태하고 낳는다(마태1,18~25).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다윗 가문의 부도덕을 정당화, 합리화, 미화하시고 계시는 것인가?
그건 아니고, 하느님께서는 불완전하고 나약한 인간들이 저지르는 죄악과 실수, 허물로 가득찬 인간사(세속사)를 통해서도 구원의 역사를 만들어 가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보여 주신다. 말하자면, 악(惡)에서도 선(善)을 끌어내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드러내시는 것이다.
인간이 되어 오시기 위해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예수님 조상들의 혈통, 족보, 계보도 그리 개끗하지도, 산뜻하지도, 거룩하지도 못한 구석들이 있다. 그렇다고 예수님의 피가 더러우냐? 하면, 그렇지 않다.
그러한 부족하고 모자라기 짝이 없는 인간의 역사도 내치지 않으시고 구원의 역사로, 하느님의 역사로 만들어 나가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보여준다. 아브라함 과 다윗에게 한번 하신 약속을 그대로 이어가시고, 신실하게 지켜 나가시는 분이 바로 하느님이시라는 것이다.
마태오 복음 1장 16절에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요셉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가 아니고,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부부의 자연 생산력이 아닌, 출산전(前)도 출산시(時)도 출산후(後)도 동정녀(평생)이신 마리아에게서 성령으로 말미암은 수태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계시하고 있는 것이다.
성모의 무염시태(원죄없으신 잉태) 신덕 도리의 성경적 근거가 된 '은총이 가득한 이여'(루카1,28)에 해당하는 '케카리토메네'(kecharitomene; you who are highly favored)는 '거저주다', '은총을 베풀다'를 뜻하는 동사 '카리토오'(charitoo)가 여기서 현재 완료 수동태 분사로 쓰여서, 하느님께서 거저 주시는 은총과 호의를 입은 상태가 이미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계속하여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성모께서 평생 동정 마리아로서 성령으로 말미암은 수태가 가능하도록 믿음을 고백했다는 사실은 성모님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다윗 가문의 후예라는 말이다.
무한히 선하시고 완전하시고 지엄하시고 거룩하신 성삼위의 내적 영광은 부족함이 없이 완벽하다. 그러나 성삼위 하느님께서 지니고 계신 지극히 존귀하심, 엄위하심, 거룩하심과 진실하심, 권능과 권세 등등을 하느님의 자녀들과 천사들이 자꾸 밖으로 드러내어 기릴 때에 하느님의 외적 영광이 드러나는 것이다.
어떤 처지에서도 나부터 주님 대전에, 주님 뜻대로 잘 살고 거룩하게 걸으면 된다. 그러면 나를 통해 나의 주변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축복이 전해진다. 창세기의 이집트의 재상이 된 요셉처럼 말이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여기서 '남편'으로 번역된 '안드라'(andra)는 원형 '아네르'(aner)의 목적격 단수로서 정관사 '톤'(ton)과 함께 '톤 이오세프'(ton Ioseph)와 동격으로 쓰였다.
'아네르'(aner)는 여성과 구별된 '남성', 아내와 구별된 '남편', 그리고 미성년자와 구별된 '어른'이라는 명사인데, 여기서는 '남편'이라는 의미로 쓰였다.
그리고 '요셉'에 해당하는 '이오세프'(Ioseph)는 '더하다'(to add)는 의미를 지닌 히브리어 인명 '요쎄프'(yoseph)에 대한 희랍어 음역이며, 족보상 예수님의 아버지지만, 혈통적으로나 육체적으로는 예수님의 아버지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으로 잉태한 마리아(마태1,18)에게서 출생했기 때문이다(마태1,18~25).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마태오 복음 1장 2절부터 16절 상반절까지는 모두 남자가 그 아들을 낳는 것으로 기록되었지만, 본문에 이르러서는 예수님께서 여자에게서 출생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족보상으로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시지만, 육체적으로는 그들과 관계없이 성령으로 잉태한 마리아의 후손이라는 사실과, 하느님께서 하와에게 하신 예언('여자의 후손'; 창세3,15)과 이사야가 한 예언('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이사7,14)이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것은 지금까지 '낳다'라는 표현인 '에겐네센'(egennesen)이 능동형이었는데, 본문에서는 '태어나셨다'에 해당하는 '에겐네테'(egennethe)가 수동형이라는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즉 마리아는 자의적으로 예수님을 낳은 것이 아니라 성령에 의해 잉태된 메시야를 육체적으로 낳는 역할을 한 것이다.
이처럼 마태오 복음사가는 단어 하나의 선택에 있어서도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심이 인간의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느님의 역사임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리고 '마리아에게서'로 번역된 '엑스 헤스'(eks hes; of whom)에서 '엑스'(eks; of)는 '(공간적으로)안에서 밖으로'라는 의미로서 분리와 이탈을 나타내는 전치사이며, '헤스'(hes; whom)는 관계대명사 '호스'(hos)의 여성 소유격 단수로서 본절 상반절의 '마리아스'(Marias)를 받고 있다.
따라서 '엑스 헤스'(eks hes)는 문자적으로 '그녀로부터'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불리는'으로 번역된 '레고메노스'(legomenos; is called)는 '말하다' (to say)는 의미를 지닌 동사 '레고'(lego)의 현재 수동태 분사 남성 단수 주격으로서 앞에 있는 정관사 '호'(ho)와 함께 형용사적 용법으로 쓰였다.
즉 '호 레고메노스 크리스토스'(ho legomenos Christos)는 '(일반적인 사람들에 의해서) 그리스도라고 말해지는(일컬어지는)'이라는 뜻이다. 이 시점은 예수님께서 출생하던 당시가 아닌, 마태오 복음사가가 복음을 기록하던 초대 교회 시대인 것이다.
초대 교회 때부터 사도들과 선교사들은 나자렛 예수님이 바로 유다인들이 그토록 대망해 오던 메시야, 즉 그리스도라고 가르치며 선교했으며(사도 5,42; 17,3; 18,5.28), 자연히 사람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식했던 것이다.
2022년 09월 08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
오직 어린양의 생명의 책에 기록된 사람만 구원을 받는다.
생명(生命)의 책(冊)은 성경(聖經)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의 이름이 성경에 기록될 수 있나? 그것은 성경속 인물들이 우리(나)가 되는 것이다. 곧 예수님을 배반했던 유다와, 베드로 외, 그분 말씀을 떠나 살아 말씀에 눈멀고, 귀 먹어 중풍병(中風病), 나병(癩病)환자로, 그리고 죄인 세리 뿐만 아니라 스스로 의(義)롭다 한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까지,
그들처럼 하느님의 말씀이 아닌 내 뜻(욕망)을 위한 인간들의 말, 헛된 거짓 가르침을 따라 살아, 하느님의 뜻, 진리의 길이신 예수님을 대적(對敵)하며 배반해 ‘온갖 질병(疾病)에 걸린 부정한자’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랬을 때 내(우리)가 하느님께서 창조이전 계획하신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으로 창조 이래 모든 죄인들 안에서 하느님의 용서(容恕), 생명(生命), 구원(救援)을 받는 예수님과 한 몸으로 완성됨을 믿는 것이다. 그것이 믿음의 승리(勝利)며, 그렇게 성경(聖經)에 내 이름이 기록(記錄)된다.
3,5 “승리하는 사람은 이처럼 흰옷을 입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생명의 책에서 그의 이름을 지우지 않을 것이고, 내 아버지와 그분의 천사들 앞에서 그의 이름을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21,27 그러나 부정한 것은 그 무엇도, 역겨운 짓과 거짓을 일삼는 자는 그 누구도 도성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오직 어린양의 생명의 책에 기록된 이들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묵시3,5. 21,27)
성경 속에 들어가지 못하고 분리(分離)가 되면 성경(聖經)이 ‘분리하는 책(케리투투)으로 이혼증서(離婚證書)’가 된다. 요점(要點)은 오늘 복음의 동정녀(처녀) 마리아의 이름에 우리(나)의 이름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질그릇이다. 말씀(씨)을 담지 못한 빈 그릇이 처녀(處女)이며, ‘마리아’ 그 이름의 뜻이 ‘쓴물’로 나무 하나, 곧 십자나무를 받아야(담아야) ‘단물’, 구원(救援)을 받을 수 있는 우리의 모형(模型)이다.(탈출1,22-2참조)
‘모세가 주님께 부르짖으니, 주님께서 나무 하나를 보여 주셨다. 모세가 그것을 물(쓴물)에 던지자 그 물이 단 물이 되었다. 그곳에서 주님께서는 백성을 위한 규정과 법규를 세우시고 그곳에서 주님께서는 백성을 시험하셨다. ’(탈출15,25)
그래서 성경은 십자가 밑에, ‘십자나무를 받을(담을) 마리아’, 그 이름만 소개한다. 그것은 마리아(쓴물)들이 단물, 곧 생명수(生命水)인 예수님의 잉태를 다시 보여 주심이다. 예수님은 빈 그릇들, 쓴물들에게 담기심으로, 곧 잉태(孕胎) 되심으로 하느님의 구원의 일을 시작하신다.
오늘 마리아 이름에 내 이름을 넣어 받는 것, ‘말씀을 받는 잉태로 성경에 기록됨’ 이다. 성경에 기록되지 않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성모님 축일을 지내는 것은 의미(意味)가 없다.’ 우리 쓴물들이 성경 말씀을 받아(잉태), 깨닫고(낳고), 믿는데(승리), 단물이 되는데 방해(妨害)가 될 뿐이다.
복음(마태1,18-23) 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20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22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곧 23 “보아라, 동정녀(처녀인 나, 우리)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신 말씀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 성모님은 예수님을 낳으셨고,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님과 한 몸’으로 기록(記錄)된다.
(묵시20,15) 15 생명의 책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불 못에 던져졌습니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저희 모두 말씀을 받아 잉태하여 깨닫고, 믿는, 그 승리로 저희의 이름이 ‘생명의 책, 성경’에 기록 되도록 항상 저희들 안에 충만(充滿)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