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08월 02일 화요일
[연중 제18주간 화요일] 호수 위를 걸으시는 예수님 (마태14,22-36)

주님께서는 예레미야 예언자에게, 야곱 천막의 운명을 되돌려 주고, 그들 가운데에서 그들의 통치자가 나오게 하겠다고 하신다. (예레 30,1-2.12-15.18-22)
1 주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내리신 말씀.
2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에게 한 말을 모두 책에 적어라.”
12 ─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 너의 상처는 고칠 수 없고 너의 부상은 심하다.
13 네 종기에 치료 약이 없고 너에게 새살이 돋지 않으리라.
14 네 정부들은 모두 너를 잊어버리고 너를 찾지 않으리라. 참으로 나는 네 원수를 시켜 너를 내리쳤으니 그것은 가혹한 훈계였다. 너의 죄악이 많고 허물이 컸기 때문이다.
15 어찌하여 네가 다쳤다고, 네 상처가 아물지 않는다고 소리치느냐? 네 죄악이 많고 허물이 커서 내가 이런 벌을 너에게 내린 것이다.
18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야곱 천막의 운명을 되돌려 주고 그의 거처를 가엾이 여겨 그 언덕에 성읍을 세우고 궁궐도 제자리에 서게 하리라.
19 그들에게서 감사의 노래와 흥겨운 소리가 터져 나오리라. 내가 그들을 번성하게 하리니 그들의 수가 줄지 않고 내가 그들을 영예롭게 하리니 그들이 멸시당하지 않으리라.
20 그들의 자손들은 옛날처럼 되고 그 공동체는 내 앞에서 굳건해지며 그들을 억압하는 자들은 모두 내가 벌하리라.
21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그들의 지도자가 되고 그들 가운데에서 그들의 통치자가 나오리라. 내가 그를 가까이 오도록 하여 나에게 다가오게 하리라. 그러지 않으면 누가 감히 나에게 다가오겠느냐? 주님의 말씀이다.
22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느님이 되리라.”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 제자들은 겁에 질려 유령이라며 소리를 질러 댄다. (마태14,22-36)
군중이 배불리 먹은 다음, 22 예수님께서는 곧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먼저 가게 하시고, 그동안에 당신께서는 군중을 돌려보내셨다.
23 군중을 돌려보내신 뒤, 예수님께서는 따로 기도하시려고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저녁때가 되었는데도 혼자 거기에 계셨다.
24 배는 이미 뭍에서 여러 스타디온 떨어져 있었는데, 마침 맞바람이 불어 파도에 시달리고 있었다.
25 예수님께서는 새벽에 호수 위를 걸으시어 그들 쪽으로 가셨다.
26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려 “유령이다!” 하며 두려워 소리를 질러 댔다.
27 예수님께서는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28 그러자 베드로가 말하였다.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29 예수님께서 “오너라.” 하시자,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걸어 예수님께 갔다.
30 그러나 거센 바람을 보고서는 그만 두려워졌다. 그래서물에빠져들기시작하자, “ 주님, 저를구해주십시오.” 하고소리를질렀다.
31 예수님께서 곧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고,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32 그러고 나서 그들이 배에 오르자 바람이 그쳤다.
33 그러자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이 그분께 엎드려 절하며, “스승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34 그들은 호수를 건너 겐네사렛 땅에 이르렀다.
35 그러자 그곳 사람들이 그분을 알아보고 그 주변 모든 지방으로 사람들을 보내어, 병든 이들을 모두 그분께 데려왔다.
36 그리고 그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과연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연중 제18주간 화요일 제1독서(예레30,1~2.12~15.18~22)
"어찌하여 네가 다쳤다고, 네 상처가 아물지 않는다고 소리치느냐? 네 죄악이 많고 허물이 커서, 내가 이런 벌을 너에게 내린 것이다.(15)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그들의 지도자가 되고, 그들 가운데에서 그들의 통치자가 나오리라. 내가 그를 가까이 오도록 하여 나에게 다가오게 하리라. 그러지 않으면 누가 감히 나에게 다가오겠느냐? 주님의 말씀이다.(21)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느님이 되리라."(22)
'어찌하여 네가 다쳤다고, 네 상처가 아물지 않는다고 소리치느냐? 네 죄악이 많고 허물이 커서, 내가 이런 벌을 너에게 내린 것이다.'(15)
하느님께서 선민의 심각한 죄악 때문에, 그들에게 보내신 재난은 결국 그들의 회개와 회복을 위한 목적으로 주어진 것이다.
따라서 이를 받지 않고 거기서 빠져 나가려고만 하거나, 자신들이 당하는 고난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그로 인해 원망의 소리를 내거나, 무조건적인 구원을 호소하는 것은 결코 합당한 처사가 아니다.
본절은 바로 이 사실을 수사 의문문을 사용하여 강조하고 있다.
본문에서 '소리치느냐' 에 해당하는 '티즈아크'(tizak)의 원형 '자아크'(zaak)는 극심한 고통에 빠져있는 자가 도움을 얻기 위해 애절한 심정으로 부르짖는 것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구약 성경에서 72회 사용되었으며, 대부분 주 하느님의 도움을 원해서 부르짖을 때 사용된다(탈출2,23; 판관3,15; 1사무12,10).
본문에서 이 단어는 미완료 시제로 사용되어 당시 선민들이 자신들이 처한 고통스런 상황에서 헤어나고자 반복적으로 부르짖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주님께 부르짖는 것은 전혀 책망할 일이 아니며 오히려 적극 권장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예루살렘 멸망 당시 정황에서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것은 그들이 쌓여서 넘칠 정도로 무수히 많은 범죄를 저질러 온 데 대한 최종적 심판 선고의 적용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실 그 일을 당하기 전에 주님께로 가서 간곡히 부르짖었어야만 했다.
'내가 이런 벌을 너에게 내린 것이다.'
본문에 앞서 제시된 '네 죄악이 많고 허물이 커서' 에 해당하는 원문 표현은 14절에서의 어구와 동일하다.
주님께서는 여기에서 선민의 윤리적 사악함과 신앙적 타락이 너무나 극심함을 또 다시 언급하신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그것에 대해 도저히 번명할 구실을 찾지 못하게 하며, 주님께서 그들의 죄악에 대해 징계하시는 것이 매우 정당한 일임을 확정하기 위함이다.
이것은 '내가 이런 벌을 너에게 내린 것이다'라는 본문의 선언에서 잘 드러난다.
여기서 '이런 벌'에 해당하는 '엘레'(elle)는 복수 지시 대명사로서 '이것들'(these)이란 의미이다.
즉 이것은 한 가지 특정한 징계가 아닌 여러 가지 다양한 징계를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바빌론을 당신의 진노를 대행하는 막대기로 사용하시어 예루살렘을 파괴하고 성전을 파괴하며, 그곳에서 범죄를 자행하는 자들을 죽음에 던지고, 그들을 또한 포로로 끌려가게 하는 등의 일을 행하실 것이다.
그리고 '내가 ~ 내린 것이다'란 표현을 통해 명시되듯이 이러한 모든 사건들은 하느님께서 주도적으로 하시는 것이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그들의 지도자가 되고, 그들 가운데에서 그들의 통치자가 나오리라. 내가 그를 가까이 오도록 하여 나에게 다가오게 하리라. 그러지 않으면 누가 감히 나에게 다가오겠느냐? 주님의 말씀이다.' (21)
주님께서는 선민들을 위해 친히 세우시는 그 지도자를 당신께 가까이 나아오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
구약적 맥락에서 주님께 가까이 나아간다는 것은 성전에 들어가 주님께 제사드릴 수 있도록 허락을 받는다는 의미의 표현이다.
남부 유다의 임금 우찌야가 오직 주님께 향을 피우도록 성별된 아론의 자손 사제들에게 맡겨진 분향을 허락없이 하려다 그 자리에서 이마에 나병이 생기는 형벌을 당했다(2역대26,16~20).
그런 점에서 주님께 가까이 나아간다는 것은 그 사람이 사제적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종교 지도자인 사제가 동시에 정치 지도자인 통치자가 되는 경우는 없다.
그러므로 본절에서 염두에 두고 있는 인물은 대사제 겸 임금의 신분을 가지고 있었던 예수 그리스도임을 알 수 있다.
시편 110장 1절에서 주님께서는 메시아에게 자신의 오른편에 앉아 있으라고 말씀하시면서 당신 가까이에 있는 것을 허락하셨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금도 하느님 옥좌 오른편에 앉아 계시면서 당신 백성을 위해 대신 간구해 주신다(사제직 중재 기도를 올리고 계신다.)(로마8,34; 히브7,25).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느님이 되리라.' (22)
본절의 예언은 과거 주님께서 히브리 민족을 출애굽시키시는 과정에서 그들을 이집트에서 건지시는 목적을 밝히시면서 주신 약속이었다(탈출6,7).
그 약속을 바빌론 포로 귀환 이후의 선민들에게 다시 주신다는 것은 포로 귀환이 출애굽과 같은 맥락에 있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동시에 이것은 바빌론 포로 유배기 이전에 멸망을 통해 그들이 이미 하느님의 백성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다시 한 번 그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들로부터 참된 예배를 받으실 것을 계획하신다.
본문에서 '나는'에 해당하는 단어 '아노키'(anoki)는 주어를 강조하기 위하여 사용된 인칭 대명사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을 바빌론으로 넘기시고 다시 유배에서 귀환케하신 주님 자신이 그들의 하느님이 되신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2022년 08월 02일 화요일
[연중 제18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정용진 요셉 신부)
마태오 복음사가가 전하는 오늘 복음 이야기는 구약 성경의 탈출기에 나오는 모세의 노래(15장)를 배경으로 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 노래에는 오늘 복음처럼 산과 바다(물), 거센 바람과 폭풍, 주님의 팔이 등장합니다.
모세는 거센 파도가 백성들을 집어삼킬 것처럼 덮쳤으나 하느님께서 구원의 팔을 뻗으시어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해 주셨다고 찬미의 노래를 부릅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당신의 백성인 교회를 어떻게 구원하시는지를 생생하게 보여 주려고 구약의 이런 구도를 오늘 이야기의 배경으로 삼았습니다.
바다를 건너가는 배는 교회를 상징합니다.
베드로는 세례를 받아 물속에 잠겼다가 거기서 나와 시련과 유혹이라는 거센 파도를 이겨 내며 “오너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세상 온갖 풍파를 이겨 내며 걸어가는 모든 신앙인을 대표합니다.
복음서는 그리스도께서 새벽에 제자들에게 오셨다고 하였습니다.
새벽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때입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언제나 우리에게 오시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반면에 제자들은 그분을 “유령”, 곧 죽은 자로 여깁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입니다(탈출 3,14 참조).
그분께서는 살아 계시고 언제나 제자들과 함께 계시는 하느님이시라는 뜻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물 위를 걸어 당신께 갈 수 있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
세상에서 주님께 가는 우리의 걸음은 베드로의 기적과도 같은 여정입니다.
우리는 베드로 사도처럼 물 위를 걷는 사람들입니다.
베드로 사도처럼 우리의 시선이 예수님을 향하는 동안 우리는 주님을 향한 기적과도 같은 신앙의 여정을 이어 갑니다.
그러나 세상의 풍파 속에서 주님을 잊는 순간, 거센 바람을 보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물에 빠져 들기 시작한 베드로처럼 금세 깊은 물에 빠져 들고 맙니다.
베드로는 주님께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라고 간절히 청원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곧바로 손을 내미시어 그를 붙들어 주십니다.
믿음은 커다란 도전입니다. 그리고 믿음은 말씀에 대한 항구한 순응입니다.
언제나 우리의 눈길을 주님께 둡시다.
“주 저의 하느님. 죽음의 잠을 자지 않도록 제 눈을 비추소서.”(시편 13[12],4).
“저는 당신께 제 얼굴과 눈을 들어 올립니다.”(토빗 3,12).
(정용진 요셉 신부)
2021년 8월 3일 [연중 제18주간 화요일]
예수님의 옷자락은 십자가의 그리스도의 옷, 하늘의 의로움의 옷, 겉옷, 혼인예복이다,
복음(마태14,22-36)
22 예수님께서는 곧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먼저 가게 하시고, 그동안에 당신께서는 군중을 돌려보내셨다.
= 예수님은 왜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떠나보내셨을까? 그리고 왜 군중을 배(교회)로 모아들이지 않으시고 돌려보내셨을까?
그것은 어제 봤듯이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빵(몸)을 하느님의 사랑(아가페), 자비, 새 계약, 그 생명의 말씀으로 먹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입에 맞는 곧 육(肉)의 뜻을 위한 율법으로 먹었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말씀, 계명을 제사와 도덕과 윤리, 그 율법(律法,5)으로 먹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을 자신들의 뜻을 위한 자리, 그 자리 건너편으로 재촉해 보내셨고 군중들 또한 그 자리에서 돌려보내신 것이다.
23 군중을 돌려보내신 뒤, 예수님께서는 따로 기도하시려고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저녁때가 되었는데도 혼자 거기에 계셨다.
= 자신의 뜻을 위한 그 헛된 양식만 구하는 군중(群衆)과 제자(弟子)인 나, 우리를 위해 기도(祈禱)하신 것이다.
24 배는 이미 뭍에서 여러 스타디온 떨어져 있었는데, 마침 맞바람이 불어 파도에 시달리고 있었다.
= 신앙의 여정에 동반되는 과정이다.
25 예수님께서는 새벽에 호수 위를 걸으시어 그들 쪽으로 가셨다. 26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려 “유령이다!” 하며 두려워 소리를 질러 댔다.
= 예수님을 잘 모르면 유령으로 볼 수 있게 된다.
예(例) 예수님께서 구마하실 때- (루가11,15) 15 그러나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은,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고 말하였다.
27 예수님께서는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 ‘나다’- 모세에게 주신 하느님의 이름이다.
(탈출3,14) 14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나는 '있는 나'다.” 하고 대답하시고, 이어서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있는 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그 “있는 나” 하느님은 ~
(시편29,10) 10 주님(야훼)께서 큰 물 위에 좌정하셨네. 주님께서 영원하신 임금님으로 좌정하셨네.
= 큰 물위에 좌정하셨네- 하느님께서 풍랑(風浪), 그 큰 힘의 물을 밟으셨다는 것이다.
28 그러자 베드로가 말하였다.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29 예수님께서 “오너라.” 하시자,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걸어 예수님께 갔다. 30 그러나 거센 바람을 보고서는 그만 두려워졌다. 그래서 물에 빠져들기 시작하자, “주님, 저를 구해주십시오.” 하고 소리를 질렀다. 31 예수님께서 곧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고,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 베드로가 믿음이 없어서 빠졌다는 말씀이 아니다. 호수(바다), 물 위를 걸으실 수 있는 분은 예수님뿐이신데, 베드로는 그 풍랑의 바닷물을 밟으시는 예수님을 구원자로 의지하고 의탁해야 하는 그 믿음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풍랑, 시련(試鍊)을 주는 그 바다 같은 세상의 물(말, 가르침)로 힘든 삶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곧 예수님의 말씀으로 이겨내는 그 믿음이 있어야 함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풍랑이 이는 세상 물을 믿음으로 밟아 그 풍랑(風浪)의 힘을 이기는, 죽이는 것이다.
(묵시15,2-3) 2 나는 또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 유리 바다 위에는 짐승과 그 상과 그 이름을 뜻하는 숫자를 무찌르고 승리한 이들이 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수금을 들고, 3 하느님의 종 모세와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 주님께서 하신 일은 크고도 놀랍습니다. 민족들의 임금님 주님의 길은 의롭고 참되십니다.
32 그러고 나서 그들이 배에 오르자 바람이 그쳤다. 33 그러자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이 그분께 엎드려 절하며, “스승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 우리의 죄를 대속(代贖)하시기 위해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성자 하느님의 신성을 내려놓으시고 육(肉)을 입고 오셨다는 믿음의 고백(告白)이다.
(2요한1,7) 7 속이는 자들이 세상으로 많이 나왔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으로 오셨다고 고백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런 자는 속이는 자며 ‘그리스도의 적’입니다.
34 그들은 호수를 건너 겐네사렛 땅에 이르렀다. 35 그러자 그곳 사람들이 그분을 알아보고 그 주변 모든 지방으로 사람들을 보내어, 병든 이들을 모두 그분께 데려왔다. 36 그리고 그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과연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 성경(聖經)에서 병(病)은 죄를 뜻한다. 그래서 병든 이들이 ‘구원(救援)받았다’ 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의 옷자락 술로 받는 구원이다. 곧 하느님의 전지(全知) 전능(全能)하신 구원의 힘이다.
(민수15,38) 38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일러라. 그들에게 말하여, 대대로 옷자락에 술을 만들고 그 옷자락 술에 자주색 끈을 달게 하여라.
= 옷자락 술에 자주색 끈이 달렸다. 자주색은 죽은피의 색깔이다. 곧 하늘의 대속, 죽음으로 구원하시겠다는 그 하느님의 뜻이 옷자락 술인 것이다. 그래서 그 옷자락으로 죄가 덮여 용서(容恕), 구원 받는다.
(룻기3,9) 9 “너는 누구냐?” 하고 묻자, 그 여자가 “저는 주인님의 종인 룻입니다. 어르신의 *옷자락을 이 여종 위에 펼쳐 주십시오. 어르신은 구원자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 흠 투성인 과부(寡婦) 이방인인 룻이 구원자(보아즈)의 옷자락이 덮여져 구원받는다. 그것도 구원자의 짝(아내)이 되어, 다윗의 할아버지 오벳을 낳아 아들(남자)만 오르는 그리스도의 족보(族譜)에 오른다.
(마태1,5)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즈를 낳고 보아즈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았다. 오벳은 이사이를 낳고..
= 우리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그 죽음의 옷이 덮여져 그분의 짝으로 생명(성경)책에 올라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묵시19,7-8) 7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자. 어린양의 혼인날이 되어 그분의 신부는 몸단장을 끝냈다. 8 그 신부는 빛나고 깨끗한 고운 아마포 옷을 입는 특권을 받았다.” 고운 아마포 옷은 성도들의 의로운 행위입니다.
= 아마포 옷,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입으신 대 사제이신 그리스도의 속죄(贖罪)의 옷이다. 그 옷을 구원의 겉옷, 혼인예복(婚姻禮服)으로 믿어 입는 것, 그리스도인의 의로운 행위이다.
(마태22,2.11-13) 2 “하늘 나라는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11 임금이 손님들을 둘러보려고 들어왔다가,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 하나를 보고, 12 ‘친구여, 그대는 혼인 예복도 갖추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나?’ 하고 물으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13 그러자 임금이 하인들에게 말하였다. ‘이자의 손과 발을 묶어서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 구원의 옷, 혼인예복은 하느님께서 친히 준비하셔서 입혀주신다.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입은 옷(행위)을 벗고 하느님께서 준비하신 옷을 입으면 되는 것이다.
(창세3,6-7) 6 여자가 쳐다보니 그 나무 열매(선악과)는 먹음직하고 소담스러워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은 슬기롭게 해 줄 것처럼 탐스러웠다. 그래서 여자가 열매 하나를 따서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자, 그도 그것을 먹었다. 7 그러자 그 둘은 눈이 열려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두렁이를 만들어 입었다.
= 사람이 스스로 판단하여 만들어 입은 옷은 알몸, 곧 부끄러움(죄)을 갈릴 수 없다.
(창세3,21) 21 그래서-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과 그의 아내에게 가죽 옷을 만들어 입혀 주셨다.
= 어린양을 죽이신 그 가죽으로 알몸, 부끄러운 죄를 덮으신 것이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그 십자가(十字架)의 의로움의 겉옷으로....
(이사46,4) 4 너희가 늙어 가도 나는 한결같다. 너희가 백발이 되어도 나는 너희를 지고 간다. 내가 만들었으니 내가 안고 간다. 내가 지고 가고 내가 구해 낸다.
☨ 아버지, 감사합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연중 제18주간 화요일 복음 (마태14,22-36)
예수님께서는 새벽에 호수 위를 걸으시어 그들 쯕으로 가셨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려 "유령이다!" 하며 두려워 소리를 질러댔다. 예수님께서는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그러자 베드로가 말하였다.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오너라." 하시자,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걸어 예수님께 갔다. 그러나 거센 바람을 보고서는 그만 두려워졌다. 그래서 물에 빠져들기 시작하자,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 하고 소리를 질렀다. 예수님께서 곧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고,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고 나서 그들이 배에 오르자 바람이 그쳤다.(25~32)
마태오 복음 14장 24절에는 배가 이미 뭍에서 여러 스타디온 떨어져 있었는데, 마침 맞바람이 불어 파도에 시달리고 있었다고 나온다.
한 '스타디온'(stadion)이란 측정 단위는 약 185m 정도의 거리인데, 본문에는 이것을 수식하는 '여러'(많은)이라는 뜻의 '폴루스'(pollus; many)가 있다.
이것의 병행구절인 요한 복음 6장 19절에는 당시 상황을 비교적 자세하게 기록하여 '그들이 배를 스물다섯이나 서른 스타디온쯤 저어 갔을 때'라고 나온다.
그래서 이 거리는 4.6~5.6 km정도의 거리이며, '십여리쯤'되는 거리이다.
그리고 14장 24절의 '파도'에 해당하는 '퀴마톤'(kymaton; waves)는 '부풀다'를 뜻하는 '퀴오'(kyo)에서 유래한 '퀴마'(kyma)의 복수형인데, 이것은 쉴새없이 계속적으로 밀려오는 큰 물결들을 연상시킨다.
또한 '시달라고 있었다'에 해당하는 '바사니조메논'(basanizomenon; tossed)는 해산의 고통을 나타낼 때도 사용되는(묵시12,2) '바사니조'(basanizo)의 수동태 현재 분사형이다.
이것을 볼 때 제자들이 겪은 고난은 고통을 참지 못하고 소리지르는 산모의 고통에 비견될 만큼 극심한 고난이었다.
갈릴래아 호수는 급격한 기류 변화로 인해 돌풍이 불며, 이때 예상치 못한 큰 파도가 일어나는 경우가 있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바로 이러한 상황을 맞아 파도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새벽에 호수 위를 걸으시어 그들쪽으로 가셨다' (25)
여기서 '새벽'으로 번역된 '테타르테 데 퓔라케 테스 뉘크토스'(tetarte de phylake tes nyktos; during the fourth watch of the night)에서 '경'(更)으로 번역되는 '퓔라케'(phylake)는 '지키다', '파수하다'는 뜻이 있는 '퓔랏소'(phylasso)에서 유래하여 본래는 '보초', '당직', '망보기'라는 뜻을 지닌다.
그런데 로마에서 야간에 4교대로 보초를 섰으므로,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밤시간을 4부분으로 나누었고, 각각을 '퓔라케'(phylake)로 불렀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새벽'은 '밤 4경'으로서 새벽 3시부터 6시까지의 세시간을 말한다.
예수님께서 이때에 제자들에게 오셨다는 것은 그들이 예수님과 헤어져 육지에서 4.6~5.6 km 떨어진 그 시간부터 그때까지 계속 파도와 힘겹게 싸우고 있었음을 드러낸다.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어'에 해당하는 '페리파톤'(peripaton; walking)이란 현재분사형을 사용하여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오신 방법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호수 위를 육지처럼 걷는 이러한 모습을 통해 자연의 법칙을 초월하시는 예수님의 신성(神性)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유령이다'
'유령'에 해당하는 '판타스마'(phantasma; a ghost; a spirit)는 '보이다'는 뜻의 동사 '판타조'(phantazo)에서 유래하여 '눈에 보이지만 실체가 없는 것', 즉 '허깨비'를 의미한다.
제자들은 사람의 형체를 한 존재가 풍랑이 이는 호수 위를 걸어오는 기상천외한 사건을 목격하고, 몹시 큰 두려움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그러나 그 존재는 보이기만 하고 실체가 없는 유령이 아니고, 바로 제2위 하느님이신 예수님이셨다.
영적 분별력이 부족했던 제자들은 미신적 사고에 빠져 신적 능력을 행하시는 예수님을 유령으로 알고 두려워했던 것이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용기를 내어라'에 해당하는 '타르세이테'(tharseite; take courage)는 '기쁘다', '즐겁다'는 뜻을 가진 '헤데오스'(hedeos)에서 유래하여 '용기를 갖다', '담대하다', '위로하다'는 뜻을 가진 '타르세오'(tharseo)의 복수 2인칭 현재 명령형이다.
희랍어에서 현재 명령형은 계속 반복되는 동작을 명령하는 경우에 사용된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지금부터 계속하여 용기를 갖고 즐거워하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처럼 환난 가운데서도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그때부터는 계속적으로 영육간에 즐거움을 누리고 담대함을 가지게 된다.
또한 '나다'에 해당하는 '에고 에이미'(ego eimi; It's me)는 '나는 나이다'이다.
이것은 제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유령이 아니라 바로 그들의 스승 예수님임을 명백하게 밝히고, 동시에 제자들이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안심해야 할 근거이기도 하다.
이것은 과거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자신을 소개한 '나는 있는 나다'라는 말씀과 의미가 통한다(탈출3,14).
당신 자신을 소개하심으로서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힘과 용기를 주신 것과 같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동일한 말로 당신 자신을 소개하심으로써 고난 가운데서 어쩔줄 몰라하는 제자들에게 힘을 주신 것이다.
그리고 '두려워하지 마라'에 해당하는 '메 포베이스테'(me phobeisthe; don't be afraid)에 있어서 '두려워'에 해당하는 '포베이스테'는 복수 2인칭 현재 명령형이다.
희랍어에서 금지 명령을 표현할 때 부정어 '메'(me)가 사용되는데, 여기서 '메'(me)와 현재 명령형이 함께 사용된 때는 '지금 바로 그 행위를 금하라'는 의미이다.
즉 현재 비록 풍랑이 일고 있지만 두려워하는 것을 즉각 멈추라는 뜻이다.
이 말의 이면에는 모든 문제의 해결자되시며 보호자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촉구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의 뒤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풍랑이 이는 바다와 같은 세상을 바라볼 때는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는 그 두려움에서 즉각 벗어날 수 있음을 확신시켜 주고 계시는 것이다.
'주님, 주님이시거든'
여기에 해당하는 '퀴리에 에이 쉬 에이'(kyrie, ei sy ei; Lord, if it's you)에서 '만일'에 해당하는 '에이'(ei)는 조건을 나타내는 불변사이다.
그러나 여기서 이 단어는 호수 위로 걸어오는 존재가 예수님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에서 사용된 단어는 아니다.
이것은 베드로가 먼저 상대를 '주님'(kyrie)이라고 부르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즉 베드로는 이미 상대가 예수님임을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건 불변사 '에이'(ei)를 사용한 것은 예상치도 못했던 너무나 놀라운 일을 목격한 감격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으며, 이 감격은 예수님께서 명령하시면 자신도 물 위를 걸을 수 있다는 확신으로까지 발전한다.
'물위를 걸어오라고' (29)
예수님께 대해서는 '호수 위를'에 해당하는 '에피 테스 탈랏세스'(epi tes halasses; on the lake)를 걸은 것으로 묘사하고 있지만(25절), 베드로에 대해서는 '물위로'에 해당하는 '에피 타 휘다타'(epi ta hydata; on the water)를 걸은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호수나 물은 모두 같은 대상을 가리킨다.
마태오 복음 14장 29절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라는 표현에는 당신 자신 스스로의 능력으로 물위를 걸으신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신적능력과 예수님께 대한 요청에 의해 일시적으로 물위를 걸은 베드로의 기적 체험 현상을 차별화시키려는 마태오 복음사가의 의도가 포함되어 있다.
'바람을 보고서는 그만 두려워졌다' (30)
베드로가 바람을 보자마자 두려움에 사로잡혔다는 사실은 '보고서는'에 해당하는 '블레폰' (blepon; when he saw)이 현재 분사로서 주동사 '두려워했다'에 해당하는 '에포베테' (epobethe; he was afraid)와 동일 시점에 일어난 일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물에 빠져들기 '시작하자'에 해당하는 '아륵사메노스'(arksamenos; eginning)은 부정 과거 분사형으로서 주동사 '소리를 질렀다'에 해당하는 '에크락센'(ekraksen)보다 앞선 동작임을 보여준다.
말하자면 거센 바람쪽으로 시선을 돌린 베드로는 그와 동시에 두려운 마음에 사로 잡혔고, 그 순간 물속으로 빠져들어 주님께 절박한 목소리로 구조 요청을 했던 것이다.
이러한 베드로의 체험을 통해서 우리는 아무리 위험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주님만을 바라보며 나아갈 때는 안전하지만, 반대로 주님이 아닌 세상을 바라볼 때는 두려운 마음과 함께 위험과 혼란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예수님께서 곧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고' (31)
호수 위를 걸으시며 베드로로 하여금 물 위를 걷게 하셨던 예수님께서는 말씀 한마디만 하시면 베드로를 물에서 건져내실 수 있었다.
그러나 굳이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는' 행동을 하신 것은 믿음이 약해 세파에 휩쓸려 고난받는 자에게 다가오셔 친히 손을 내밀어 붙들어 주시는 예수님의 관심과 깊은 사랑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 이 믿음이 약한 자야'에 해당하는 '올리고피스테'(oligopiste; O You of little faith)의 원형 '올리고피스토스'(oligopistos)는 '(크기가)작다', '(양이)적다' 등의 의미가 있는 '올리고스'(oligos)와 '믿음'이란 뜻이 있는 '피스티스'(pistis)의 합성어로서 양과 질에 있어서 보잘것 없는 믿음을 의미한다.
이 말은 모든 성경에서 제자들에 대해서 사용되었는데, 큰 믿음을 가져야 할 자들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믿음을 가진데 대한 책망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또한 '의심하였느냐?'에 해당하는 '에디스타사스'(edistasas; did you doubt)의 원형 '디스타조'(distazo)는 '두 번'이란 뜻이 있는 '디스'(dis)에서 유래하여 마음을 한결같이 가지지 못한 상태를 가리킨다.
즉 이것은 처음 생각이나 각오를 버리고 중간에 방향을 선회한 경우를 말한다.
예수님을 향한 시선을 거센 바람에 빼앗긴 상태를 부각시키기 위해 이 단어가 사용되었다.
2022년 08월 02일[연중 제18주간 화요일]
하느님의 창조, 구원의 일을 완성하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
복음(마태14,22-36)
군중이 배불리 먹은 다음, 22 예수님께서는 곧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먼저 가게 하시고, 그동안에 당신께서는 군중을 돌려보내셨다. 23 군중을 돌려보내신 뒤, 예수님께서는 따로 기도하시려고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저녁때가 되었는데도 혼자 거기에 계셨다.
= 건너가다- 파스카. 어둠속 풍랑에 시달릴 제자들에게 가지 않으시고 저녁때까지 왜 기도만 하신 것일까? 기도(祈禱)는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청(請)하셨다.
24 배는 이미 뭍에서 여러 스타디온 떨어져 있었는데, 마침 맞바람이 불어 파도에 시달리고 있었다. 25 예수님께서는 *새벽에 호수 위를 걸으시어 그들 쪽으로 가셨다.
= 새벽, 곧 어둠을 물리칠 빛으로 오심이다.
(호세6,3) 3 주님(야훼)을 알자. 주님을 알도록 힘쓰자. 그분의 오심은 새벽처럼 *어김없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비처럼, 땅을 적시는 봄비처럼 오시리라.
= 어김없이- 땅(흙)의 그 없음들인 우리의 생명의 빛, 물(생명수, 말씀)로 오심이다. 곧 ‘오병이어’ 그 육의 약식을 영의 양식인 생명의 말씀으로 주시어 죽음에서 생명으로 ‘파스카’ 시키신, 곧 남자만도 오천명이나 살리셨던 , 그 구원의 주님께서 풍랑, 저주의 물을 밟으시는 구원자로 오심이다.
그러나 그 주님을 깨닫지 못했기에, 믿지 못했기에~
26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려 “유령이다!” 하며 두려워 소리를 질러 댔다. 27 예수님께서는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 ‘나다’ 하느님의 이름이다.(탈출3,14) 곧 당신이 창조의 하느님(남성)이심을 알리심이다.(히브1,2참조)
28 그러자 베드로가 말하였다.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 감히 피조물이 창조주 하느님의 능력을 흉내 내겠다는 것이다. 배(교회의 주인 그리스도) 안에서가 아닌 풍랑의 물을 직접 밟을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다. 이 얼마나 무지(無知)한 교만(驕慢)인가? 그런데 그 베드로의 열성만음 본받지는 이들이 있다. 교만(驕慢)을 본받자는 것이다.
29 예수님께서 “오너라.” 하시자,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걸어 예수님께 갔다.
= 배에서 내라면 죽음이다.
30 그러나 거센 바람을 보고서는 그만 두려워졌다. 그래서 물에 빠져들기 시작하자, “주님, 저를 구해주십시오.” 하고 소리를 질렀다. 31 예수님께서 곧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고,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 믿음이 없어서, 의심해서 물에 빠졌다는 말씀이 아니다. 하늘의 양식으로 당신의 생명을 내주신, 그리고 풍랑의 물을 밟으신, 또 새벽빛으로 오신, 그 하느님의 창조, 구원의 일을 완성하실 구원자 주님을 믿고 의탁하지 못하고 왜 나서느냐? 하신 것이다. 그런데 왜 ‘오너라’ 하셨을까? 자신의 피조물 됨, 그 없음의 존재임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다.
32 그러고 나서 그들이 배에 오르자 바람이 그쳤다. 33 그러자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이 그분께 엎드려 절하며, “스승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 아직, 새벽빛이신 성자 하느님을 깨닫지 못했다. 아직 저녁, 어둠, 곧 영이 병든 상태다.
34 그들은 호수를 건너 겐네사렛 땅에 이르렀다. 35 그러자 그곳 사람들이 그분을 알아보고 그 주변 모든 지방으로 사람들을 보내어, 병든 이들을 모두 그분께 데려왔다. 36 그리고 그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과연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 병자가 구원을 받는 옷자락 술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옷자락 술’이라 하지 않고 ‘그 옷자락 술’이다. 곧 하느님께서 구약에서 말씀하신 ‘그 옷자락의 술’이다.
(민수15,37-40) 37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38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일러라. 그들에게 말하여, 대대로 옷자락에 술을 만들고 그 옷자락 술에 자주색 끈을 달게 하여라.
= 자주색- 죽은피의 색이다. 끈- 연결, 묶음을 뜻한다. 곧 하늘의 대속, 그 피의 새 계약이 들어있음이다.
39 그리하여 너희가 그것을 볼 때마다, 주님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실천하고, 너희 마음이나 눈이 쏠리는 것, 곧 너희를 배신으로 이끄는 것에 끌리지 않도록 하는 술이 되게 하여라.
= 하느님의 계명(뜻)을 거슬러 자신들의 뜻(소원)을 위해 지키는, 곧 사람의 마음, 눈의 욕망(慾望)에 묶이지 않도록 자유하게 하는 술이 되라는 말씀인데~
40 그래서 너희는 나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고 실천하여, 너희 하느님에게 거룩한 사람들이 되어라.
= 하느님의 모든 계명(誡命)을 다 지켜내야 거룩하게 된다. 그러나 그 하느님의 모든 계명을 온전히 다 지켜낼 수 있는, 인간은 하나도 없다. 곧 모든 인간은 하느님 앞에 죄인(罪人), 범법자(犯法者)일 수밖에 없다.(야고2,10-11) 그래서 성자(聖子)하느님, 그리스도께서 그 계명의 죗값으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의 새 계약으로 모든 죄가 씻겨 깨끗하게, 거룩하게 된 것이다.(히브10,14)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모든 계명이 다 지킨 것이 된다.(로마6,6~참조) 그래서 새 계약의 피, 그 ‘자주색 끈이 달린 옷자락 술’에 손을 대면(묶여 하나가 되면) 자유, 구원이다. 구원의 하느님의 옷자락이다.
(에제16,8) 8 그때에 내가 다시 네 곁을 지나가다가 보니, 너는 사랑의 때에 이르러 있었다. 그래서 내가 옷자락을 펼쳐 네 알몸을 덮어 주었다. 나는 너에게 맹세하고 너와 계약을 맺었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그리하여 너는 나의 사람이 되었다. (~아멘)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저희가 지금 시련, 풍랑에 시달리고 있다면 구원의 섭리 안에 들어있는 최고의 상태임을 깨달아(야고1,12) ‘그 옷자락의 술’을 붙잡고 그리스도(피의 새 계약) 안에서 자유하게 하소서. 하느님의 사람임을 놓치지 않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내버려두지 마소서.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