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7일 목요일
[연중 제27주간 목요일] 청하고, 찾고, 문을 두드려라 (루카11,5-13)
제1독서<보라, 화덕처럼 불붙는 날이 온다.>(말라3,13-20ㄴ)
13 너희는 나에게 무엄한 말을 하였다.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그런데도 너희는 “저희가 당신께 무슨 무례한 말을 하였습니까?” 하고 말한다.
14 너희는 이렇게 말하였다. “하느님을 섬기는 것은 헛된 일이다. 만군의 주님의 명령을 지킨다고, 그분 앞에서 슬프게 걷는다고 무슨 이득이 있느냐?
15 오히려 이제 우리는 거만한 자들이 행복하다고 말해야 한다. 악을 저지르는 자들이 번성하고 하느님을 시험하고도 화를 입지 않는다.”
16 그때에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이 서로 말하였다. 주님이 주의를 기울여 들었다. 그리고 주님을 경외하며 그의 이름을 존중하는 이들이 주님 앞에서 비망록에 쓰였다.
17 그들은 나의 것이 되리라.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내가 나서는 날에 그들은 나의 소유가 되리라. 부모가 자기들을 섬기는 자식을 아끼듯 나도 그들을 아끼리라.
18 그러면 너희는 다시 의인과 악인을 가리고 하느님을 섬기는 이와 섬기지 않는 자를 가릴 수 있으리라.
19 보라, 화덕처럼 불붙는 날이 온다. 거만한 자들과 악을 저지르는 자들은 모두 검불이 되리니 다가오는 그날이 그들을 불살라 버리리라.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그날은 그들에게 뿌리도 가지도 남겨 두지 않으리라.
20 그러나 나의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움의 태양이 날개에 치유를 싣고 떠오르리라.
화답송 시편 1,1-2.3.4와 6(◎ 40〔39〕,5ㄱㄴ)
◎ 행복하여라,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
○ 행복하여라! 악인의 뜻에 따라 걷지 않는 사람, 죄인의 길에 들어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밤낮으로 그 가르침을 되새기는 사람. ◎
○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아, 제때에 열매 맺고, 잎이 아니 시들어, 하는 일마다 모두 잘되리라. ◎
○ 악인은 그렇지 않으니, 바람에 흩날리는 검불 같아라. 의인의 길은 주님이 아시고, 악인의 길은 멸망에 이르리라. ◎
복음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루카11,5-1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5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누가 벗이 있는데, 한밤중에 그 벗을 찾아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하자. ‘여보게, 빵 세 개만 꾸어 주게.
6 내 벗이 길을 가다가 나에게 들렀는데 내놓을 것이 없네.’
7 그러면 그 사람이 안에서, ‘나를 괴롭히지 말게. 벌써 문을 닫아걸고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네. 그러니 지금 일어나서 건네줄 수가 없네.’ 하고 대답할 것이다.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이 벗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서 빵을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줄곧 졸라 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그에게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다.
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10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11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겠느냐?
12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연중 제27주간 목요일 제1독서 (말라3,13-20ㄴ)
"그러나 나의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움의 태양이 날개에 치유를 싣고 떠오르리라." (20)
말라기 3장 19절에서는 주님의 심판이 최종적으로 실현될 그 날에 악인이 처할 궁극적 운명이 무엇인지를 다루었다. 그것은 완전한 파멸이었다.
이제 말라기 3장 20절에서는 심판이 최종적으로 실현되는 그 날에 의인이 완전한 복락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 제시된다.
이처럼 악인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의 날은 반대로 의인에 대한 하느님의 축복을 도래케 할 것이다.
이것은 성경에서 제시되는 주요한 예언의 패턴인데, 악인의 멸망과 의인의 구원, 악인의 패망과 의인의 궁극적 승리를 병렬시켜 쌍으로 제시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여기서 거만한 자들과 악을 저지르는 자들에 대조되는 존재를 '의인' 또는 '겸손한 자'로 표현하지 않고, '나의 이름을 경외하는 이들'로 표현하신다. 이것은 말라기 3장 16절과 긴밀한 연관을 가진다.
이러한 표현은 말라기서 전반에 제시된 당시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악인들이 죄를 고집하고 악을 자행하는 이유가, 주님을 경외하지 않은 데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심판의 대상인 악인들과 대조되어 하느님의 축복의 대상으로 나오는 자들이 주님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로 표현되는 것은 적절하다.
'의로움의 태양이 날개에 치유를 싣고 떠오르리라'
종말론적 심판의 날에 악인은 하느님의 준엄한 심판을 받지만, 주님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은 그와 반대로 복을 받게 된다.
여기서 '의로움의 태양이 ~떠오르리라'에 해당하는 '웨자레하 ~셰메쉬 체다카'(wezareha ~shemesh tsedakqah; but the sun of righteousness will rise)는 비유적인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좋다.
두 가지 대표적인 견해가 공존하는데, 하나는 의로움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은총을 베푸신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견해이고, 다른 하나는 주님의 공의로운 날이 새롭게 시작된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견해이다.
어떤 번역본은 여기의 '태양'(해)을 의미하는 '셰메쉬'(shemesh)를 대문자 's'를 사용해 'sun'으로 번역했는데, 이것은 이 태양을 그리스도로 본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그런데 문제는 신약에서 그리스도가 '의로움의 태양'으로 표현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그와 동의어로 볼 수 있는 '빛'으로 묘사하는 실례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요한1,4.8.9; 8,12; 12,46).
이 사실을 감안하면, 본문은 빛이신 예수님께서 오시는 것을 예언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강생(육화)과 재림의 양자의 의미를 모두 염두에 둘 수 있지만, 후자에 보다 무게를 둘 수 있을 것이다.
이 구절에서 제시하는 '치유'는 궁극적이고도 완전한 치유, 즉 영육간의 온전함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메시야가 재림하심으로 모든 의인들은 그 동안의 아픔과 괴로움을 모두 치유받고, 영육간에 온전히 회복을 체험하는 축복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의미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는 이러한 견해는 전통적으로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그리고 다른 하나의 견해는, '의로움의 태양'이라는 표현에서 '태양'이 아닌 '의로움'에 초점을 맞춘 표현으로 이해하는 입장이다.
이런 입장을 취한다면, '의로움의 태양이 ~ 떠오르리라'는 표현은 모든 어두움과 슬픔, 부조리와 불법을 물러가게 하는 하느님의 의로운 심판의 날이 밝을 것이라는 의미를 지닌 것으로 볼 수 있다.
거만한 자들과 악을 저지르는 자들과 주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자들에게는 그 날이 어두움의 날, 고통의 날, 슬피울면서 이를 가는 날, 화덕(용광로) 속의 지푸라기처럼 완전히 타버리는 날이 될 것이지만,
의로운 사람들과 주님의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그 날이 정당성을 인정받는 날, 억울함을 벗고 명예를 회복하는 날, 모든 눈물이 씻겨지는 회복의 날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견해도 충분히 고려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그래서 혹자는 이 '의로움'이라는 표현을 '승리'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즉 지금 현재 보고 있는 패배와 굴욕의 날이 끝이 나고, 승리와 영광의 날이 온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보는 것이다.
한편, '날개에 치유를 싣고'에 해당하는 '우마르페 삐케나페하'(umarpe ikenapeha; with healing in its wings)는 '그 날개들 안에 있는 치유'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날개에'에 해당하는 '삐케나페하'(bikenapeha)는 직역하면, '그 날개들 안에'라는 뜻인데, 이것은 태양에 날개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태양에서 퍼져 나오는 광선이라는 의미이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태양을 묘사할 때, 광선을 상징하는 여러 날개달린 원반 물체로 묘사했다.
특히 구약에서 '날개'를 뜻하는 '카나프'(kanap)는 끝이나 가장자리를 상징하는 표현으로 많이 사용되는 데(시편104,2; 호세4,19), 여기서도 태양의 가장자리에 있는 광선이라는 의미를 나타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연중 제27주간 목요일]
청하여라, 찾아라, 두드려라.
(루카 11,5-13)
어제 우리는 주님의 기도의 중심인 일용할 양식을, 하늘의 진리의 말씀으로 묵상했다. 말씀을 위에 양식, 꼭 필요한 양식으로 또 내일, 다가올 날의 차원이 다른 양식으로, 곧 하늘의 생명을 위한 양식을 구해야 한다.고 묵상했다.
오늘 그 양식을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시기 위해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로 시작하신다.
5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누가 벗이 있는데, 한밤중에 그 벗을 찾아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하자. ‘여보게, 빵 세 개만 꾸어 주게.
= 빵 세 개만(트레스알토스-셋빵) ‘셋 이라는 빵’이다. 셋(3)이라는 성격의 빵인 것.
(1요한5,5-8) 5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6 그분께서 바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 7 그래서 증언하는 것이 셋입니다. 8 성령과 물과 피인데, 이 *셋은 *하나로 모아집니다.
= 죄인들의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일, 곧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 피, 그 말씀이 진리의 생명수, 물인 것이고 그 모든 것을 하느님의 일로 , 일차로 증언하시는 성령, 곧 셋을 하나의 뜻으로 알아듣는 것, 우리의 내일의 꼭 필요한 양식인 것이다.
6 내 벗이 길을 가다가 나에게 들렀는데 내놓을 것이 없네.’ 7 그러면 그 사람이 안에서, ‘나를 괴롭히지 말게. 벌써 문을 닫아걸고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네. 그러니 지금 일어나서 건네줄 수가 없네.’ 하고 대답할 것이다. 8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이 벗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서 빵을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줄곧 졸라 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그에게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다.
= 단식하며 계속 간청하는 기도, 그 의미와 다른 것이다. 줄곧 졸라대면(아나데이아- 수치, 체면을 버리고 받을 것이 있는 것처럼 뻔뻔스럽게 기도하다.), 그러면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라 하시는 것이다.
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 *청하여라(아이테오- 빚 갚으세요) 먼저 주신다고 약속 하셨으니 주실 것이라는 것, 그 약속은 구약에서부터 시작 되었다.
(요한16,23) 23 그날에는 너희가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을 것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 이름(쉠-분석된 말씀), 곧 하늘의 진리의 말씀으로~, 성경에서 이름을 말씀으로 읽어도 된다는 것이다.
*찾아라(제테오-껍데기 속의 것) 성경의 율법과 말씀 그 문자 속에, 그리고 우주 만물 안에 숨겨진 하느님의 뜻을 깨닫게 해 달라는 것이다.
*두드려라(낙하-죽일 목적으로 치다.) 양들의 문이신 예수님, 그분을 표징과 기적의 능력의 예수님이 아닌, 죄인들의 속죄 제물로 매 맞으시고 죽으시는 구원자로 보라는 것, 그러면 하늘이 열릴 것이다. 그러면 하늘에서 생명의 물이 나온다.
(요한19,34) 34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십자가의 예수님)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민수20,11 참조-같은 의미)
10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 *열리다(아노고이고- 위에 것으로 열리다) 하늘의 지혜로 알아듣게 된다는 것.
(1코린2,6-10) 6 성숙한 이들 가운데에서는 우리도 지혜를 말합니다. 그러나 그 지혜는 이 세상의 것도 아니고 파멸하게 되어 있는 이 세상 우두머리들의 것도 아닙니다. 7 우리는 하느님의 신비롭고 또 감추어져 있던 지혜를 말합니다. 그것은 세상이 시작되기 전, 하느님께서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미리 정하신 지혜입니다. 8 이 세상 우두머리들은 아무도 그 지혜를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이 깨달았더라면 영광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입니다. 9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되었습니다. “어떠한 눈도 본 적이 없고 어떠한 귀도 들은 적이 없으며 사람의 마음에도 떠오른 적이 없는 것들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마련해 두셨다.” 10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그것들을 바로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그리고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십니다.
=그래서 성령의 이끄심을 받으면, 생명의 말씀을 죽음의 거짓된 법으로 받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11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참 양식)을 청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거짓 양식)을 주겠느냐? 12 달걀(생명)을 청하는데 전갈(죽음)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 기도의 목적은 하느님의 말씀이시며 그리스도의 영, 진리의 성령을 받는 것이다. 성령의 이끄심을 받아야 위에 모든 말씀이 이해되어 믿을 수 있다. 그래서 그 성령으로 아래의 모든 것에서 자유하게 된다.
(요한8,31-32) 31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는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32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로마8,1-3)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이들은 단죄를 받을 일이 없습니다. 2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이 그대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3 율법이 육으로 말미암아 나약해져 이룰 수 없던 것을 하느님께서 이루셨습니다. 곧 당신의 친 아드님을 죄 많은 육의 모습을 지닌 속죄 제물로 보내시어 그 육 안에서 죄를 처단하셨습니다. 아멘.
2021년 10월 7일 [연중 제27주간 목요일]
청하고, 찾고, 문을 두드려라
복음(루카11,5-13)
5ㄱ 예수님께서 *다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 다시- 주님의 기도를 다시 가르치시려 하신다. 그중 핵심인 ‘일용할 양식’을 말씀하시려는 것이다.
5ㄴ“너희 가운데 누가 벗이 있는데, 한밤중에 그 벗을 찾아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하자. ‘여보게, 빵 세 개만 꾸어 주게. 6 내 벗이 길을 가다가 나에게 들렀는데 내놓을 것이 없네.’
= 빵 세 개(트레스 알토스-셋 빵) ‘셋 이라는 빵’ 곧 셋(3)이라는 성격의 빵이라는 것이다.
(1요한5,5-8) 5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6 그분께서 바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 7 그래서 증언하는 것이 *셋입니다. 8 성령과 물과 피인데, 이 *셋은 *하나로 모아집니다.
= 물은 갈증(죄인)으로 목이 타는 이들을 살리는 생명수로 하느님의 말씀을, 피m 하느님의 뜻인 죽을 죄인들을 살리시는 곧 그들의 죄를 씻는 그리스도의 피, 그 새 계약을, 성령은 그 생명수와 새 계약의 말씀, 그 복음을 진리로 죄인들에게 무죄를 증언하시며 구원의 완성을 이루신다. (로마58,1~ 히브10,15~) 하느님나라는 그 셋을 하나로 쉼, 안식이 완성된다. 그것이 하느님 나라의 원리인 양식이다.
7 그러면 그 사람이 안에서, ‘나를 괴롭히지 말게. 벌써 문을 닫아걸고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네. 그러니 지금 일어나서 건네줄 수가 없네.’ 하고 대답할 것이다.
= 온 가족이 쉼, 곧 안식에 들어갔으니 일어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이 벗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서 빵을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줄곧 졸라 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그에게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다.
= 줄곧 졸라대면(아나데이아- 수치, 체면을 버리고 받을 것이 있는 것처럼 뻔뻔스럽게), 기도하면, 그러면 ‘쉼, 안식에 필요한 모든 것의 전부(다)’인 그 셋(3을 줄 것이라는 말씀이다.)
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 청하여라(아이테오- 빚 갚으세요)- 먼저 주신다고 약속하셨으니 청하면 반드시 주실 것이라는 것이다. 하느님의 약속, 맹세는 구약에서부터 주어졌다.(탈출6,1-8)
* 찾아라(제테오- 껍데기, 겉의 속) - 율법과 말씀 그 문자 속에, 그리고 우주만물 안에 숨겨진 하느님의 뜻, 사랑을 깨닫게 해달라는 것이다.
* 두드려라(낙하- 죽일 목적으로 치다) - 구원의 길, 문이신 예수님, 그분을 표징과 기적, 능력의 주님이 아닌 죄인들의 속죄 제물로 매 맞으시고 죽으시는 주님, 구원자로 보라는 것이다. 그러면 열릴 것이다. 하늘의 찢어지고, 열리고 생명의 물, 피가 나온다는 말씀이다.
(마르15,37-38) 37 예수님께서는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을 거두셨다. 38 그때에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갈래로 찢어졌다.
(요한19,34) 34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민수20,11) 11 그러고 나서 모세가 손을 들어 지팡이로 그 바위를 두 번 치자(때리자-죽이자), 많은 물이 터져 나왔다. 공동체와 그들의 가축이 물을 마셨다.
= 바위- 예수 그리스도다(1코린10,4참조)
10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 청하고(아이테오), 찾고(제테오), 두드리면(낙하) 하늘의 지혜로 알아듣게 된다는 말씀이다.
(1코린2,6-10) 6 성숙한 이들 가운데에서는 우리도 지혜를 말합니다. 그러나 그 지혜는 이 세상의 것도 아니고 파멸하게 되어 있는 이 세상 우두머리들의 것도 아닙니다. 7 우리는 하느님의 신비롭고 또 감추어져 있던 지혜를 말합니다. 그것은 세상이 시작되기 전, 하느님께서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미리 정하신 지혜입니다. 8 이 세상 우두머리들은 아무도 그 지혜를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이 깨달았더라면 영광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입니다. 9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되었습니다. “어떠한 눈도 본 적이 없고 어떠한 귀도 들은 적이 없으며 사람의 마음에도 떠오른 적이 없는 것들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마련해 두셨다.” 10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그것들을 바로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그리고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십니다.
= 성령의 이끄심을 받으면 생명의 말씀을 인간, 세상의 지혜로 받지 않게 된다. 죽음의 법, 심판의 계명으로 받지 않게 된다.
11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 생선(참) 대신에 뱀(거짓)을 주겠느냐? 12 달걀(생명)을 청하는데 전갈(죽음)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 기도의 목적은 하느님의 말씀이시며 그리스도의 영, 진리의 성령을 받는 것이다. 성령의 이끄심을 받아야 위의 모든 말씀이 이해되어 믿을 수 있다. 그래서 그 성령으로 땅(세상)의 모든 것에서 자유하게 된다.
(요한8,31-32) 31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는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32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로마8,9-10.16) 9 그러나 하느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사시기만 하면, 여러분은 육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게 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있지 않으면, 그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10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 몸은 비록 죄 때문에 죽은 것이 되지만, 의로움 때문에 성령께서 여러분의 생명이 되어 주십니다. 16 그리고 이 성령께서 몸소,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우리의 영에게 증언해 주십니다.
매일미사 (박형순 바오로) 사제의 묵상글 중 일부로 마무리 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기도의 참된 의미는 무엇일까요? 먼저, 하느님에 대한 신뢰입니다.
기도할 때, 우리는 하느님을 향하여 온전한 믿음을 지녀야 합니다. 이는 하느님만이 모든 일을 온전히 하실 수 있는 분이시며,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무엇이든 가장 좋은 것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청하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느님께 청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혹시 ‘뱀’이나 ‘전갈’은 아닌지요? ‘좋은 것’이 아니라, ‘나쁜 것’을 청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우리 눈에 좋게 보이는 것이 하느님의 눈에는 뱀과 전갈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늘 기억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바라는 것’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시는 분이심을 말입니다.
☨주님께 청하여라, 찾아라, 두드려라 하시며 약속하신 성령님! 오늘도 청하고, 찾고, 두드리니 충만하시어 진리, 구원의 길을 걷도록 이끌어 주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