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제4주간 월요일]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루카1,39-45)

2020. 12. 21. 오전 4: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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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21일 월요일

[대림제4주간 월요일]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루카1,39-45)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루카 1,39-45


1독서<내 연인이 산을 뛰어넘어 오잖아요.>(아가2,8-14)

8 내 연인의 소리! 보셔요, 그이가 오잖아요. 산을 뛰어오르고 언덕을 뛰어넘어 오잖아요.

9 나의 연인은 노루나 젊은 사슴 같답니다. 보셔요, 그이가 우리 집 담장 앞에 서서 창틈으로 기웃거리고 창살 틈으로 들여다본답니다.

10 내 연인은 나에게 속삭이며 말했지요. “나의 애인이여, 일어나오. 나의 아름다운 여인이여, 이리 와 주오.

11 , 이제 겨울은 지나고 장마는 걷혔다오.

12 땅에는 꽃이 모습을 드러내고 노래의 계절이 다가왔다오. 우리 땅에서는 멧비둘기 소리가 들려온다오.

13 무화과나무는 이른 열매를 맺어 가고 포도나무 꽃송이들은 향기를 내뿜는다오. 나의 애인이여, 일어나오. 나의 아름다운 여인이여, 이리 와 주오.

14 바위틈에 있는 나의 비둘기, 벼랑 속에 있는 나의 비둘기여! 그대의 모습을 보게 해 주오. 그대의 목소리를 듣게 해 주오. 그대의 목소리는 달콤하고 그대의 모습은 어여쁘다오.”


화답송 시편 33(32),2-3.11-12.20-21(13참조)

의인들아, 주님 안에서 환호하여라. 주님께 새로운 노래를 불러라.

비파 타며 주님을 찬송하고, 열 줄 수금으로 찬미 노래 불러라.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고운 가락을 내며 환성 올려라.

주님의 뜻은 영원히 이어지고, 그 마음속 계획은 대대로 이어진다. 행복하여라, 주님을 하느님으로 모시는 민족, 그분이 당신 소유로 뽑으신 백성!

주님은 우리 도움, 우리 방패. 우리 영혼이 주님을 기다리네. 그분 안에서 우리 마음 기뻐하고, 거룩하신 그 이름 우리가 신뢰하네.


복음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루카1,39-45)

39 그 무렵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

40 그리고 즈카르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였다.

41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을 때 그의 태 안에서 아기가 뛰놀았다.

42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43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44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45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대림 제4주간 월요일 제1독서 (아가 2,8-14)


", 이제 겨울은 지나고 장마는 걷혔다오. 땅에는 꽃이 모습을 드러내고, 노래의 계절이 다가왔다오. 우리 땅에서는 멧비둘기 소리가 들려온다오." (12)


솔로몬은 이제 겨울도 지나고 비가 그친 좋은 계절이 왔음을 강조하기 위하여 '키 힌네'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키 힌네'(ki hinne)에서 ''(ki)'정녕'(탈출3,12), '진실로'(여호2,24)라는 강조의 뜻을 지니는 단어이고,'힌네'(hinne)'' 혹은 '보라'(see!)라는 뜻을 지닌 불변사이다.

 

여기서 '지니고'에 해당하는 '아바르'(abar)'건너가다', '통과하다'라는 의미이고, '걷혔다오'에 해당하는 '할라프'(hallap)는 본문에서 '아바르'(abar)와 같이 '건너가다'라는 의미를 갖는 동사이지만, 여기서는 같은 단어의 반복을 피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 단어에 이어지는 '할라크 로'(hallak lo)는 새 성경에서 번역되지 않았다.

이것을 번역하면 '그 자신이 갔다'(he is gone to himself)이다. 여기서 ''라는 3인칭 단수는 ''를 의미하는 '학게셈'(haggeshem)을 가리킨다.


따라서 '할라크 로'(hallak lo)'장마는 그쳤다오'에 해당하는 '학게셈 할라프' (haggeshem hallap)를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겨울은 지나고''장마는 그쳤다오'라는 표현에 이어 이제 우기가 완전히 지나갔음을 강조하는 표현을 다시 반복하여 술람미 여인으로 하여금 집 밖으로 나올 것을 거듭 촉구하는 것이다.


한편 이스라엘의 겨울은 우기에 해당한다. 우기는 10월에 시작되어 다음 해 4월까지 이어진다. 이 가운데 10월 중순이나 하순에 접어들면 본격적인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데, 구약은 이것을 '이른 비'(요엘2,23; '가을비')로 표현한다.

이때 내리는 비는 밀과 보리 수확의 풍년을 가늠하는 중대한 요인이었기에, 사람들은 이 비를 기다렸고 기뻐하였다(시편65,9-14).

반면 4월에 내리는 마지막 호우는 '늦은 비'('봄비')로 표현된다. 팔레스티나 지역의 농사를 위해서는 비가 이때까지만 내리고 중단되어야 헀다. 왜냐하면 5월과 6월은 보리와 밀을 추수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가서 212절의 '겨울은 지나고 장마는 걷혔다오'가 의미하는 것은 '늦은 비(봄비)가 내리는 4월이 지나고 초목이 자라며 꽃이 필 봄이 왔다'는 것이다.

새로운 계절이 왔다는 이러한 표현은 술람미 여인과 솔로몬과의 관계에 대한 상징으로 볼 수도 있는데, 이 표현은 두 연인이 서로 떨어져 있는 시기가 지나고, 이제 재상봉을 통해 다시금 사랑의 꽃을 피우게 될 것임을 암시한다.


'땅에는 꽃이 모습을 드러내고, 노래의 계절이 다가왔다오'


본문은 땅에 봄기운이 완연히 이르렀다는 것을 보여준다. '꽃에 해당하는 '한닛차님'(hannitsanim; the flowers)의 원형 '닛찬'(nitsan)'빛나다', '번쩍이다'라는 뜻을 지닌 '나차츠'(natsats)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이것은 ''이 눈이 부시듯한 아름다움을 지녔음을 나타낸다.


그리고 '드러내고'에 해당하는 '니르우'(niru)'보다', '바라보다'라는 뜻을 갖는 '라아'(raah)의 수동형이다.

여기서 하느님의 계절 순환의 역사에 따라 꽃이 지면에 드러나 보여지는 모습을 시적(詩的) 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노래의 계절'로 번역된 '힛자미르'(hizzamir; the season of singing)는 정관사 ''(ha)'노래'를 의미하는 '자미르'(zamir)가 결합된 형태이다.

또한 '다가왔다오'에 해당하는 '힉기아으'(higgiah)'~에 이르다', '~에 닿다'라는 뜻을 지닌 '나가으'(nagah)의 사역 농동형이다.


여기서 사역형을 사용한 것은 하느님의 뜻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자연의 순환을 암시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표현 가운데는 하느님께서 자연을 주관하시어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하는 아름다운 계절이 오게 하신 것처럼, 술람미 여인과 솔로몬 자신의 사랑도 아름답게 꽃을 피우게 하실 것이라는 솔로몬의 희망이 담긴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 땅에서는 멧비둘기 소리가 들려온다오'


본문은 이스라엘 땅에 봄이 왔음을 '멧비둘기 소리'를 통해 나타낸다.

'멧비둘기'에 해당하는 '핫토르'(hathor)의 원형 '토르'(thor)는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비둘기와는 다른 종류의 새로서, '돌아다니다', '살피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투르'(thur)에서 유래하며, 먼 지역을 돌아다니며 여기저기를 잘 살피는 특성을 지닌 야생 비둘기를 가리키는 말이다.


새 성경은 '멧비둘기'라는 단어를 번역했는데, '(얼룩진)무늬가 있는 산비둘기'라는 말이다. 이 비둘기는 4월초 곧 봄이 이를 때에 팔레스티나로 돌아오는 철새이다.

따라서 이런 야생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서 들린다는 표현은 바로 이스라엘 땅에 봄이 왔음을 청각적 이미지를 통해 나타낸 것이다.


솔로몬은 이처럼 봄이 도래했음을 '장마는 걷혔다오','꽃이 모습을 드러내고', '노래의 계절이 다가왔다오', '멧비둘기 소리가 들려온다오'라는 회화적 이미지를 통해 매우 감성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한편 '우리 땅에서는'에 해당하는 '뻬아르체누'(beartsenu; in our land)에서 1인칭 복수 접미어 ''(nu)'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우리 땅'은 일차적으로 왕이 다스리는 이스라엘 전지역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더 나아가서 지금 두 사람이 만나고 있는 술람미 지역의 평원을 의미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대림제4주간 월요일 복음 (루카1,39-45)


오늘 독서와 복음은 기다림과 기쁨에 관한 것입니다. “솔로몬의 가장 아름다운 노래”(아가 1,1)인 아가는 일종의 ‘사랑 노래 모음집’입니다.  그 가운데 오늘 독서는 구혼 시절을 회상하는 여인의 노래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두 연인은 만남을 기대하며 서로를 부르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남자를 모르는 처녀로서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을 잉태하신 마리아와, 그에 앞서 아이를 낳을 수 없었지만 같은 분의 힘으로 세례자 요한을 가진 엘리사벳이 인사를 나눕니다. 그 만남의 기쁨은 엘리사벳의 태 안의 아기가 뛰노는 즐거움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간절히 기다리던 만남이 이루어져 얻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큽니다. 그 만남이 주님과의 만남이라면 그 기쁨은 더욱 크다는 것을 화답송의 시편이 잘 보여 줍니다. 

의인들아, 주님 안에서 환호하여라. 주님께 새로운 노래를 불러라. 주님은 우리 도움, 우리 방패. 우리 영혼이 주님을 기다리네. 그분 안에서 우리 마음 기뻐하고, 거룩하신 그 이름 우리가 신뢰하네.”
주님 성탄을 앞둔 대림 시기의 막바지에서 구세주께서 오시기를 간절히 기다립니다. 사랑의 기쁨을 노래한 아가의 표현처럼 구세주께서는 노루나 사슴처럼 산을 뛰어오르고, 언덕을 뛰어넘어 오십니다. 

이처럼 사랑은 사람들이 할 수 없다고 생각하던 것을 이루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 아기의 잉태와 두 어머니의 만남이 그렇습니다. 

따라서 구세주께서 오시는 것을 그 무엇도 방해할 수 없습니다. 주님 사랑은 행동을 촉진하는 힘입니다. 주님 성탄을 앞둔 우리 또한 어떤 역경 속에서도 오시는 분을 기쁘게 맞이하려면 힘차게 뛰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박기석 사도 요한 신부)



20201221[대림제4주간 월요일]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주님의 바램이였어~

(루카1,39-45)

39 그 무렵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

= 성령과 함께하는 이의 반응이다.

35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38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 자신이 받은 말씀을 전하는 이웃 사랑의 모습이다. 그러나 두렵고 떨리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천사가 일러준 엘리사벳을 찾은 것이다. 하느님께서 맺어준 이웃 사랑을 할 관계, 인연이다.


40 그리고 즈카르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였다. 41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을 때 그의 태 안에서 아기가 뛰놀았다.

= () 안에 아기들, 곧 구약의 예언자 세례자 요한이 신약의 진리(예수)를 만나 기쁜 것이다. 요한-자신이 태어나 선포할~ 세상의 죄를 없애실 하느님의 어린양, 그분을 만나 기쁜 것이다.자신의 짝을 만난 기쁨이다.


우리도 오늘 독서 아가서에서

(아가2,8-14) 8 내 연인의 소리! 보셔요, 그이가 오잖아요. 산을 뛰어오르고 언덕을 뛰어넘어 오잖아요.

= 연인의 소리~ 구약의 산, 언덕을 뛰어 넘어 오시는, 곧 율법을 당신의 죽음으로 다 완성하시고 넘어오시는, 나를 위한 사랑, 그 기쁜 소식을 가지고 뛰어 오시는 내 주님! 그 예수님의 소식, 말씀을 구원의 진리로 만났을 때 어떻게 기쁘지 않겠는가~~

본 기도에서 주님께서, 사람이 되어 오시는 외아드님의 탄생을 기뻐하오니~라고 하신 것은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이 되어 오신다는 것이다.(요한1,14)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율법을 대속으로 다 이루신 그 구원의 계명으로 오셨다는 것이다. 곧 에덴의 생명나무, 마라의 나무 하나, 그리고 노아 홍수 후 주신 무지개 계약으로 오셨다는 것이다.

모두 대속으로 받는 구원을 뜻한다. 그것이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사람으로 오신 목적이기에 기쁜 소식이다. 신앙을 살면서도 제사와 윤리로 자신의 죄와 싸우며 하늘의 안식을 모르고 살던 우리는 그 자신의 실체를 안다면, 그 모든 것에서 해방을 주신다는 내 님의 소리, 그 하느님의 진리를 만났을 때, 기뻐할 수밖에 없다. 하느님의 말씀을, 성경을 그 기쁜 소식으로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르10,45) 45 “사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마태11,28) 28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41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42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 두렵고 떨렸던 마리아에게 엘리사벳의 입을 통하여 성령께서 다시 한번 믿음의 확신을 주신다. 마리아가 되어야 한다.

성경말씀, 곧 하느님의 말씀을 내 주님(연인)의 대속, 그분의 목숨으로 받는 구원, 그 진리로 받는다면~ 성령께서 나에게도  은총이 가득한 로마노야 기뻐 하여라 주님께서 함께 하시니 모든 이 중에 복되며 네 안(태중)에 말씀이 또한 복되도다.“ 말씀으로 복된 것이다.~하신다.


43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44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 41절에서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을 때, 지금 44절은 인사말 *소리가 들리자, 그 소리 하느님의 평화를 비는 인사말 소리다.(마태10,12참조)

소리-파괴하고 다시 세우기 위해 교훈하고 가르친다는 의미라 했다. 그러니까 마리아의 인사말 소리는- 세상의 평화를 위해 사는 이들의 생각과 삶을 부수시고 다시 가르치시어 하늘의 평화를 주시는 그 하느님의 뜻으로 인사했던 것이다.

성령을 받은 안에 요한이 그 하느님의 뜻을 기뻐한 것이다. (정말 그랬을까?-그런데 관심을 두면 안된다. 성경에서 전하고 싶은 요점을 알아듣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듯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늘의 평화, 그 소리를 들었을 때 기뻐 할 줄 아는 것이 신앙이다. 그래서 성령과 함께하는 그리스도인만이 기뻐할 줄 아는 소리, 이다. 또한 그 기쁨은 말씀의 힘이다. 말씀 자체가 기쁜 소식이기 때문이다. 기쁨은 찾아 얻는 것이다.


(요한8,31-32) 31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는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32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 진리의 영, 성령이시다.


45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 믿음이 이다. 믿음은 세상을 이긴다. 믿음은 자신을 이긴다. 세상을, 나 자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믿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세상을 이기지 못한다. 나는 자신을 이기지 못한다. 그러나 내 주님 예수께서 나와 세상을 이기시고 그 승리를 나에게 전가 시켜 주시기 때문이다.


(1요한5,3-5) 3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바로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계명은 힘겹지 않습니다. = 내 주님께서 대속하셨기에 내 연인의 그 사랑을 믿기 때문이다. 4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모두 세상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이긴 그 승리는 바로 우리 믿음의 승리입니다. 5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1코린15,57)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립시다.

= 믿음이 복이다. 행위의 신앙으로는 생길 수 없는 믿음이다. 본당 활동 등, 행위 신앙을 할 수 없는 요즘이 성경을 진지하게 공부할 때라는 것이다. 내 주님, 연인의 사랑을 받고 믿을 수 있는 때라는 것이다.


독서~(스바3,15) 15 *주님께서 너에게 내리신 판결을 거두시고 너의 원수들을 쫓아내셨다. 이스라엘 임금 주님께서 네 한가운데에 계시니 다시는 네가 불행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율법의 산과 언덕을 뛰어넘어 기쁜 소식으로 오시는 내 주님과의 만남은 우연이 아닌 하늘의 필연이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내 연인의 기쁨의 소리를 잃지 않게 저희 모두를 의탁하오니 보호 하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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