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3주간 금요일] 임마누엘(마태1,18-24)

2020. 12. 18. 오전 4:44:05

글자


20201218일 금요일

[대림 제3주간 금요일] 임마누엘(마태1,18-24)

   


1독서<내가 다윗을 위하여 의로운 싹을 돋아나게 하리라.>(예레23,5-8)

5 보라,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다윗을 위하여 의로운 싹을 돋아나게 하리라. 그 싹은 임금이 되어 다스리고 슬기롭게 일을 처리하며 세상에 공정과 정의를 이루리라.

6 그의 시대에 유다가 구원을 받고 이스라엘이 안전하게 살리라.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주님은 우리의 정의라고 부르리라.

7 그러므로 이제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때에는 사람들이 더 이상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살아 계신 주님을 두고 맹세한다.” 하지 않고,

8 그 대신 이스라엘 집안의 후손들을 북쪽 땅에서, 그리고 당신께서 쫓아 보내셨던 모든 나라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살아 계신 주님을 두고 맹세한다.”할 것이다. 그때에 그들은 자기 고향 땅에서 살게 될 것이다.


화답송 시편 72(71),1-2.12-13.18-19ㄱㄴ(7ㄴㄷ 참조)

주님, 이 시대에 정의와 평화가 꽃피게 하소서.

하느님, 당신의 공정을 임금에게, 당신의 정의를 임금의 아들에게 베푸소서. 그가 당신 백성을 정의로, 가련한 이들을 공정으로 다스리게 하소서.

그는 하소연하는 불쌍한 이를, 도와줄 사람 없는 가련한 이를 구원하나이다. 약한 이, 불쌍한 이에게 동정을 베풀고, 불쌍한 이들의 목숨을 살려 주나이다.

주 하느님,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찬미받으시리라. 그분 홀로 기적들을 일으키신다. 영광스러운 그 이름 영원히 찬미받으시리라. 그 영광 온 누리에 가득하리라.


복음<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마태1,18-24)

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20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22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23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신 말씀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24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아내를 맞아들였다.

 


 

 대림 제3주간 화요일 제1독서(예레 23,5~8)


'내가 다윗을 위하여 의로운 싹을 돋아나게 하리라' (5ㄷ)


본문은 하느님께서 남부 유다에 새로운 왕을 세우실 것이라는 사실을 은유적 표현으로 나타내고 있다.


여기서 사용된 '싹' 에 해당하는 '체마흐'(tsemah) 나무 줄기나 땅에서 새롭게 돋아나는 싹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이사야서에서 두 번 사용되었는데(이사 4,2; 61,11), 특히 이사야 4장 2절의 문맥에서 본문의 예언과 동일하게 장차 하느님의 나라를 이끄실 메시아 지칭하는데 사용되었다.


또한 즈카리야서 3장 8절과 6장 12절에서도 이 용어의 사용을 찾아볼 수 있는데, 이것은 이 표현이 이상적인 왕 메시아를 나타내는 전문 용어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이처림 메시아께서 한 싹으로 나신다는 비유 두 가지 의미 해석할 수 있다.


하나는 이전의 왕들과 전혀 다른 왕이 될 것이라는 사실과, 또 하나는 남부 유다의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느님의 주권적인 능력에 의해 새로운 왕이 나타나실 것을 보여준다고 할 수 이다.


사실 남부 유다 왕조의 역사는 패역부도한 인간의 본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역사로서, 인간 왕에게는 어떤 기대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한 여호야킨이 끝내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바빌론 땅에서 그 삶을 마무리하고, 그나마 왕으로 세워진 치드키야마저 바빌론으로 끌려갔을 때 다윗 왕조는 완전히 끝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다윗의 왕조가 완전히 끊어져 버린 것 같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과거에 있었던 패역부도한 이런 왕들의 흐름을 끊고, 새 역사를 창조해 나갈 진정한 왕을 세워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와 관련해 세례자 요한의 부친 즈카리야는 성령이 충만한 가운데  다윗 집안에 일어날 메시아의 탄생을 예언한다(루카1,69.78.79).



 

 대림 제3주간 금요일 복음(마태1,18-24)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19)

 

마태오 복음 1장 19절 '의로운 사람'으로 번역된 '디카이오스'(dikaios; a righteous man; a just man) '의로운', '정직한, '하느님과 인간의 법률을 준수하는' 등의 뜻을 지닌 형용사이다.


이것은 요셉이 구약에 나타난 하느님의 율법을 쫓아 경건하게 살아가는 사람 이라는 것과 부정한 것은 용납하지 않는, 곧은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을 암시한다.


그래서 그는 마리아의 잉태 소식을 접하고는 혼외관계로 인해서 잉태한 것으로 인식하고, 그녀와의 정혼 관계를 끊으려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율법대로 마리아를 공개적으로 모욕을 주며 처벌하지 않으려 했던 이유는 아마도 마리아를 향한 그의 사랑이 깊었기 때문이며, 그의 성품 자체가 온유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메'(me; not)는 부정을 나타내는 부정 부사이며, '텔론'(thelon; willing) '자발적으로 ~할 의향을 갖고 있는 것'을 의미하는 동사 '텔로'(thelo) 능동태 현재 분사형이다.


따라서 '싶지 않았으므로'로 번역된 '메 텔론'(me thelon)은 마리아의 요청에 의해서가 아니고, 요셉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서 그녀의 임신 사실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지 않기로 결심한 사실을 보여 준다.


또한 '마리아의 일을'로 번역된 '아우텐'(auten)은 남성 3인칭 단수 대명사 '아우토스'(autos) 여성형 목적격 단수이므로 '그녀를'(her)이라는 뜻이다.


즉 원문으로 볼 때, 요셉은 혼외 임신이라는 잘못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엄청난 일을 범한 것으로 추정되는 마리아에 관심을 두었음 잘 드러나고 있다.

 

한편, '드러내고'라는 의미로 번역된 '데이그마티사이'(deigmatisai; to make a public example) 원형 '데이그마티죠'(deigmatizo) 부정사형인데, '데이그마티조'(deigmatizo) '본보기'(an example), 특히 '경고의 의미에서의 본보기'를 보여 주는 것을 나타내는 동사로서 '본보기를 만들어 앞에 내놓다', 또는 '공적으로 불명예를 주기 위해 폭로하다'는 의미이다.


본문은 요셉이 하느님의 율법대로 경건하게 살아가는 의로운 사람임을 소개하며, 자기가 정혼한 마리아의 임신이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사실을 그가 마리아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할지라도, 그러한 초자연적인 일을 경험한 일이 없음으로 인해 마리아의 임신을 혼외 관계로 여길 수밖에 없었던 그가 얼마나 상심하며 고민했을지를 엿보게 한다.


결국 고민끝에 요셉은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지만, 마리아를 깊이 아끼고 사랑한 까닭에, 당시 그런 죄목이라면 마리아의 부정을 공개적으로 폭로하여 모욕을 주고 돌에 맞아 죽게 하는 것이 관례임에도 불구하고, 결코 그렇게 하지 않으려는 강한 결심을 했던 것이다.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여기서 '마리아와'로 번역된 '아우텐'(auten) '그녀를'이라는 목적격 인칭 대명사이다.

그리고 '남모르게'로 번역된 '라트라'(lathra; privily; quietly) '비밀히' (secretly)라는 의미를 지닌 부사로서, 다른 어떤 사람에게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마리아와의 관계를 처리하기로 한 요셉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한편 '파혼하기로'로 번역된 '에불레테 ~ 아폴뤼사이'(ebulethe ~apolysai; had in mind to divorce)에서 '에불레테'(ebulethe) 소원하고 바라는 것,  의도적으로 어떤 일을 수행하고자 하는 주어의 단호한 의지를 나타내는 동사 '불로마이'(bulomai)의 직설법 부정 과거 수동태이다.


여기서는 '불로마이'(bulomai)가 수동이 아닌 능동의 의미를 취하고 있다.

그리고 '아폴뤼사이'(apolysai) 원형 '아폴뤼오'(apolyo)의 부정사 부정 과거 능동태형인데, '아폴뤼오'(apolyo)의 기본적인 의미는 노예, 죄인 등 구속된 사람을 자유롭게 놓아 보내는 것을 나타낸다. 


이 단어는 신약에서 대부분 이런 의미로 쓰였으며, 그 외 모임을 해산하거나, 선교사를 파견하거나, 사람을 떠나 보내거나, 아내를 버리는 것, 즉 이혼하는 것 등의 의미로 쓰였다.

여기서는 이혼, 즉 정혼 상태를 깨뜨리는 것을 의미하므로, '에불레테 ~ 아폴뤼사이' '파혼하여 떠나 보낼 것을 결심했다'는 뜻이다.



성 요셉의 꿈

20201218[대림 제3주간 금요일]

하느님의 공정과 정의는 십자가이다. 법의 하느님이 아니시라 용서의 하느님이시라는 것이다.

오늘 독서말씀~(예레미야 23,5-8)

5a 보라,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다윗을 위하여 의로운 싹을 돋아나게 하리라.

= 미래에 하느님의 지혜와 슬기로 오실 메시아시다.(이사11,1~)


5b그 싹은 임금이 되어 다스리고 슬기롭게 일을 처리하며 세상에 공정과 정의를 이루리라.

= 하느님의 공정과 정의는 죄인은 반드시 죽는다는 것이다.


(창세기2,17) 17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 이 하느님의 말씀을 거역한 아담과 하와는 반드시 죽어야 했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들을 사랑 하셔서 죽어야 할 그들 대신 어린양을 죽이셨다.(창세3,21) 그것이 하느님의 공정과 정의인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인간들이 아담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제멋대로 자신의 생각으로 받아들여~ 그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는 죄인의 길에서 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시편53,3-4) 3 하느님께서는 하늘에서 사람들을 굽어 살피신다, 그 누가 *깨달음 있어 하느님을 *찾는지 보시려고. 4 모두 빗나가 온통 썩어 버려 착한 일 하는 이가 없구나. *하나도 없구나.

= 또 착한 일을 우리의 기준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하느님의 뜻을 깨닫고 찾는 것이 착한 일이다. 모든 인간의 착한일 만 찾으며 하느님의 구원의 착한일은 찾지 않으니 자신의 구원의 길에서 빗나가 죽어야만 했다.(로마10,1-3참조) <(하마트리아)-과녁을 벗어나다.>

그래서 다윗(세상 임금과 그의 백성)의 죄를 씻어줄 하늘의 의로운 싹이신 어린양 예수께서 모든 죄인들의 죄를 다 지시고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신 것이다. 그렇게 하느님의 공정과 정의를 십자가에서 슬기롭게 처리하신 것이다.


(에페1,7-10) 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았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풍성한 은총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8 하느님께서는 이 은총을 우리에게 넘치도록 베푸셨습니다. 당신의 지혜(슬기)와 통찰력을 다하시어, 9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세우신 당신 선의에 따라 우리에게 당신 뜻의 신비를 알려 주셨습니다. 10 그것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한데 모으는 계획입니다.


6 그의 시대에 유다가 구원을 받고 이스라엘이 안전하게 살리라.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주님은 우리의 정의라고 부르리라.

= 공동번역으로 보면 - '야훼 우리를 되살려 주시는 이' 라는 이름으로 그를 부르리라.


7 그러므로 이제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때에는 사람들이 더 이상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살아 계신 주님을 두고 맹세한다.” 하지 않고,

= 이집트에서 탈출시킨, 구해내신 주님이 아니라~


8 그 대신 이스라엘 집안의 후손들을 북쪽 땅에서, 그리고 당신께서 쫓아 보내셨던 모든 나라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살아 계신 주님을 두고 맹세한다.”할 것이다. 그때에 그들은 자기 고향 땅에서 살게 될 것이다.

=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이집트(세상)의 종살이에서 구해내시고 그들에게 당신의 계명을 주셨다.(복음 환호송-탈출20장 참조)땅의 종의 신분에서 하늘의 자녀로 세워주실 계명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구원을 위한 그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지도 따르지도 않고, 화려했던 이집트- 그 세상의 것을 추구하며 따랐기에 하느님의 진노를 샀다. 그래서 그들을 북쪽 다른 나라 땅으로 쫓아 내셨다.

그런데 그 죄인들을 다시 데리고 올라 오신단다. 곧 용서하시겠다는 것이다. 이제 그 용서의 하느님으로 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냥 용서하실 수는 없으시다. 공정과 정의의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죄를 대속할 속죄 제물로 당신 아드님(독생자)을 내어주신 것이다.(요한3,16) 그 예수님의 죽음, 그 피의 새 계약으로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공정과 정의의 심판인 것이다.


(루가22,20) 20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방식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히브9,15) 15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새 계약의 중개자이십니다. 첫째 계약 아래에서 저지른 범죄로부터 사람들을 속량하시려고 그분께서 돌아가시어,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 약속된 영원한 상속 재산을 받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 그것이 십자나무 하나의 희생인, 죄인들을 위한 하느님의 규정과 법규였다. (탈출15,25)


구약에서 예언 되었던 새 계약~

(예레미야31,31-36) 31 보라,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때에 나는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과 새 계약을 맺겠다.

=그날, 그때 십자가에서 대속으로 용서, 구원을 받는 피의 새 계약이 다 이루어졌다하신 그날, 그때이다. 우리에게는 진리로 깨닫고 믿는 그때이다.


32 그것은 내가 그 조상들의 손을 잡고 이집트 땅에서 이끌고 나올 때에 그들과 맺었던 계약과는 다르다. 그들은 내가 저희 남편인데도 내 계약을 깨뜨렸다. 주님의 말씀이다. 33 *그 시대가 지난 뒤에 내가 이스라엘 집안과 맺어 줄 계약은 이러하다. 주님의 말씀이다. 나는 그들의 가슴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 그 법을 새겨 주겠다. 그리하여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 새 계약의 그 하느님의 법을 우리의 마음에 집어넣어 주신다는 것이다. 어떻게?- 성령을 통해 그분의 증언을 깨닫게 하신다는 것이다.(히브10,15~)


34 *그때에는 더 이상 아무도 자기 이웃에게, 아무도 자기 형제에게 주님을 알아라.” 하고 가르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모두 나를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나는 그들의 허물을 용서하고, 그들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겠다. 35 낮을 밝히라고 해를 주시고 밤을 밝히라고 달과 별들에 질서를 정하신 분, 파도 소리 요란하게 바다를 뒤흔드시는 분, 그 이름 만군의 주님이시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36 “정해진 이 질서가 내 앞에서 사라지지 않는 한 - 주님의 말씀이다. - 이스라엘의 후손도 내 앞에서 *영원히 한 민족으로 남아 있으리라.

= 후손- 단수로 그리스도를 뜻한다(갈라3,16) 하느님의 뜻인 예수그리스도의 대속, 그분의 십자가로 받는 구원, 그 하느님의 법 새 계약의 효과는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영원하다’.(묵시1,8참조)


(히브리10,10-15) 10 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11 *모든 사제는 날마다 서서 같은 제물을 거듭 바치며 직무를 수행하지만, 그러한 것들은 결코 죄를 없애지 못합니다. 12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없애시려고 한 번 제물을 바치시고 나서, *영구히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13 이제 그분께서는 당신의 원수들이 당신의 발판이 될 때까지 기다리고 계십니다. 14 *한 번의 예물로, 거룩해지는 이들을 *영구히 완전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15 성령께서도 우리에게 증언해 주시니, 먼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그리고 16절 이하, 오늘 예레미야의 새 계약을 말씀하셨다. 내 삶의 십자가가 주는 절망과 미움 등을 지고 예수님의 십자가로 가서, 그분의 대속이 주시는 용서, 구원을 받는 것, 하느님의 공정과 정의의 새 계약이다.

우리의 소원(문제)을 해결 하는 공정과 정의가 아닌, 오늘 요셉이 받아들인 죄에서 구원하시는 공정과 정의의 그리스도시라는 것이다.

오늘 영성체후 묵상 주님, 저희가 이 성전에서 주님의 자비를 입었으니 다가오는 구원의 대축제를 정성껏 준비하게 하소서. ‘에서 이 성전이라 함은 새 계약으로 죽으실 예수 그리스도 이시다.(요한2,21~)


* 보호자 성령이시여! 거부하기로 작정한 요셉의 마음을 이끄셨듯이 고집스런 모두의 마음을 의탁합니다. ~아멘!!!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매일말씀묵상

목록 전체보기 →
[대림제4주간 월요일]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루카1,39-45)20.12.21조회 44[대림제3주간 토요일]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알리다. (루카1,5-25)20.12.19조회 44[대림 제3주간 금요일] 임마누엘(마태1,18-24)20.12.18조회 51[대림 제3주간 목요일]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마태1,1-17)20.12.17조회 60[대림 제3주간 수요일]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루카7,18ㄴ-23)20.12.16조회 52[대림 제3주간 화요일] 두 아들의 비유 (마태21,28-32)20.12.15조회 47[대림 제3주간 월요일] 권한(權限) (마태21,23-27)20.12.13조회 53[대림 제2주간 토요일] 사람의 아들 (마태17,10-13)20.12.12조회 57[대림 제2주간 금요일] 먹보요 술꾼.’ (마태11,16-19)20.12.11조회 110[대림 제2주간 목요일] 예언과 율법의 시대 (마태11,11-15)20.12.10조회 51[대림 제2주간 수요일]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마태11,28-30)20.12.09조회 89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루카1,26-38)20.12.08조회 93[대림 제2주간 월요일] 사람아,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루카5,17- 26)20.12.07조회 64[대림 제1주간 토요일] 하늘나라 복음선포 (마태 9,35─10,1.6-8)20.12.05조회 41[대림 제1주간 금요일] 눈먼 사람 둘 (마태9,27-31)20.12.04조회 41[대림 제1주간 목요일]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 (마태7,21. 24-27)20.12.03조회 41[대림 제1주간 수요일] 빵 일곱 개 (마태15,29-37)20.12.02조회 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