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활이란 무엇인가?
형제 여러분,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렇습니다. 살과 피는 하느님의 나라를 물려받지 못하고, 썩는 것은 썩지 않는 것을 물려받지 못합니다. 자, 내가 여러분에게 신비 하나를 말해 주겠습니다. 우리 모두 죽지 않고 다 변화할 것입니다. 순식간에, 눈 깜박할 사이에, 마지막 나팔 소리에 그리될 것입니다. 나팔이 울리면 죽은 이들이 썩지 않는 몸으로 되살아나고 우리는 변화할 것입니다. 이 썩는 몸은 썩지 않는 것을 입고 이 죽는 몸은 죽지 않는 것을 입어야 합니다. 이 썩는 몸이 썩지 않는 것을 입고 이 죽는 몸이 죽지 않는 것을 입으면, 그때에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승리가 죽음을 삼켜 버렸다.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 있느냐?” 죽음의 독침은 죄이며 죄의 힘은 율법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립시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언제나 주님의 일을 더욱 많이 하십시오. 여러분의 노고가 헛되지 않음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고전15:50-58)
부활!!
부활하면 생각나는 것은 반드시 육체의 죽음입니다.
많은 분들이 부활 신앙을 목적하고 살려고 하지만 그 부활의 의미는 믿는 사람들은 죽으면 무조건 천국을 가니까 그 천국에서의 삶을 생각하고 하느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애를 쓰면서 사람 앞에 착하게 살라고 하는 말들 뿐 입니다. 그러나 부활에 대해 확실하게 설명하고 있는 본 장은 그렇게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부활의 진정한 의미는, 하느님께 자신의 마음을 찢어 그 마음이라는 영의 옷 속에 숨겨진 자기의 성품이 변한 자기완성이 이루어진 신앙인의 모습에서 인간의 행동이 아닌 전혀 다른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단적인 증거들이 21절과 29절, 31절과 연결된 9-11절, 또 51절과 연결된 14장 8-11절이 있고, 전체를 설명하면서 확실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15장 전체입니다.
21절의 원문은 사람의 타락 때문에 죽음(사망)이 왔고, 사람에 타락 때문에 부활이 왔다고 합니다. 이는 사람이 행한 어떤 행동 때문에 사망도 오고 또 부활도 오게 됐다는 뜻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는 육체가 단지 시체가 될 때 부활이 있다는 개념을 틀렸다고 하는 말이 됩니다.
29절은 죽은 자들을 살리기 위해 먼저 세례를 받은 자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영적 부활 상태에 대해 <나의 나 된 것은>이라는 표현을 한 것입니다.
죽은 자가 완전히 살아나는 것이 부활입니다.
하느님은 하느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면서 자기의 성품의 변화를 목적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받는 상태를 사람의 마음에 처음 넣은 영의 상태인 네페쉬 하야(프쉬케 :생혼 - 살아있는 생명체: living soul)라고 합니다.
" 야훼 하느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네풰쉬 하야 :생혼)이 된지라 " (창 2:7)
그러나 자신의 마음에 있는 죄성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하나님께 보이면서생명나무 열매 먹기를 거부하고 마귀의 유혹을 따라 사람의 죄를 말하면서 자기의 죄를 사람에게 보이는 것이 부끄러워 참 신앙의 사람이라고 참람된 말로 가리는 즉 무화과 잎을 치마 삼아 자신은 의인이라고 강변하게 됩니다.
이 상태를 하느님은 영이 죽고 육(고깃덩어리)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육이 자기의 욕심대로 산다는 뜻으로 자기만을 위하는 베싸르 (싸릌스, 짐승의 육체: 죄의 본성) 즉 사람과의 관계만을 생각하는 육 중심의 사람이된 것이라고 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네페쉬가 자기의 성품을 하느님의 성품으로 변화 받기 위한 생명 과일을 먹어 루아흐(프뉴마: 살리는 영)로 변화 받아 하느님과 같이 온전해진 영으로 자라나야 하는 것입니다.
"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네풰쉬 하야)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르아흐)이 되었나니 " (고전 15:45)
그래서 예수님께서 생명의 양식으로 사역하신 것을 역사로 기록한 복음서에서는 죽은 자를 죽은 자가 아닌 자는 자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잔다는 뜻은 생명의 씨를 얻기 위한 상태 즉, 자기의 마음의 성품을 위한 하나님의 말씀을 늘 묵상하는 상태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세상에서 잘살고 잘 먹기 위해 육으로 사는 것은 죽은 것이고 자기 성품을 하나님의 성품으로 변화 받기 위해 애쓰는 것이 잠자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잠자는 상태에서 깨어나 루아흐의 상태로 변화 받는 것이 완전하게 사는 것 즉 부활이라고 성경은 설명하고 있으며 그 말씀의 뜻을 본 장 39절에서 41절에 증거하고 있습니다.
한편 51절에 있는 마지막에 불어지는 나팔에 대한 보조 설명이 14장 8-11절입니다.
나팔이 있다. 전쟁이다 - 그런데 그 전쟁의 나팔이 알아듣기 쉬운 말, 허공에 하는 말, 뜻 없는 소리와 비교함으로 해서 전쟁의 나팔은 사람의 소리였습니다. 부활의 상태를 말하는 신령한 몸이 프뉴마티였고, 이 신령이 참 제사의 조건입니다 (요 4:23-24).
"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느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
그러므로 첫째는 부활이며, 생활에서의 부활 조건인 신령의 상태를 육체가 죽어 영원한 천국에서의 부활만 강조한다면 우리의 온전한 예배는 이 땅에 사는 그 누구도 하나님께 드릴 수 없다는 아무도 이해 할 수 없는 이상한논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시대가 또 다시 생각하고 고민해 봐야 하는 문제는 예수님의 부활 이후의 그 행적입니다.
만일 부활이 천국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 만이라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천국에서 우리에게 내가 여기 있다고 하셨어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제자들에게 본인의 부활을 증명하시고 사람이 하느님의 모습으로 변화 받는 과정의 수인 4에 완전의 수인 10을 더하여 40일 동안 우리들 곁으로 오셔서 우리들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개념은 육이 죽어 영으로 사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며 첫째는 이 땅에 사는 날 동안에 사람들의 모든 논리를 자신을 위한 하느님의 논리로 바꾸어 놓고 사람들과 다투지 않는 상태, 마음 중심의 상태이며
둘째 개념은 우리의 믿음 생활의 궁극적 목적인 영원한 천국 생활 때의 온전한 부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상태에도 차별이 있는데 첫째는 최상급의 신앙으로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접붙임을 받은 자요(23), 둘째는 하등의 믿음으로 사람의 모든 것이 죽는 날에 비로소 하느님께 항복하고 천국으로 갈수있는 자요(24), 마지막은 자기가 왕이 되어 하느님을 대적하며 살다가 마귀들과 음부와 사망과 함께 영원한 불 못으로 들어가게 되는 자 입니다(25-26)
"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계시 20:14)
50절의 하느님의 유업은 사람의 죽은 영을 루아흐의 상태로 살리는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51절의 변화는 사람들이 싸우자고 대들거나 비난하거나 비판 비평 판단 정죄를 앞세우는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인간 방법을 따라 대응하지 않는 또 다른 영적 방법의 대응이 어느 순간에 나오게 한다는 하느님의 약속입니다
그리고 인칭으로 기록된 ‘~~ 자’는 인칭이 아니라 사람의 어떤 상태를 말하는 형용사입니다. 그러므로 51, 52절에 있는 죽은 자는 ‘사람에게 있는 어떤 죽은 것’으로 해석함이 옳은 것으로 죽은 자로 드러나던 모습이 살아난 영의 상태로 행동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57절의 '이기는 것'은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되는 것을 뜻합니다.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 열거된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게 잘못을 지적한 후에 회개나 세움을 말하시고 끝까지 견디는 자, 이기는 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 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계 시2:7, 11 ,17, 26, 3:5, 3:12, 3:21)
"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 (계 2:26)
하느님은 인간 마음의 성품을 자기의 형상대로 지으셨지만 사단에게 유혹되어 인간 중심의 욕심으로 타락하여 에덴 동산에서 추방당했습니다.
" 하느님이 자기 형상 곧 하느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 (창 1:27)
" 이같이 하느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 (창 3:24)
그래서 인간은 자신보다 힘센 마귀와 싸워 이기기 위해 항상 육의 생명을 담보로 해야 합니다. 육을 죽여야 마귀에게 이기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인간은 자기의 욕심을 찾으려고 기를 쓰고 싸웁니다.
그래서 마귀는 하느님께 참소를 합니다. 우리를 비웃으며!!!
자신과의 싸움을 이기는 법은 고정 관념의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변화의 법은 인간의 지혜로는 전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 법을 가르치는 곳이며 오직 성경 말씀만이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영적 죽음은 자기를 괴롭게 하는 사람의 말이나 행동에 지기 싫은 자신의 욕심을 앞세워 사람을 보면서 대응하기 때문입니다.
남과 다투어야 할 때 다투기 전에 먼저 생각에서 하느님을 생각하는 것이 하느님과의 동행이라고 하느님의 가르침을 받은 후 저는 제 생각을 바꾸고, 남과 경쟁 할 수밖에 없었던 저의 그릇된 신념을 바꿈을 받는데 몇 년이 걸렸는지 모르며 아직도 진행중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저의 행동이 나오니까요! 오! 주여! 긍휼히 여기소서!
그 후 저의 생각이나 믿음의 문제에서 타인과 나누는 말과 상관없이 타인과의 대화에서 타인을 말할 때 그를 비하시키고 죄인시 하고 원망하는 것들이 하느님이 그 사람을 그렇게 지었다는 것을 믿지 못하고, 하느님이 틀렸다고 하면서 저의 말과 행동에서 하느님을 향한 원망과 하느님이 내게 죄를 지었다고 하느님을 향한 삿대질이 있었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이렇듯 믿음 생활은 타인과의 싸움이 아닙니다.
마귀를 통해 저를 검증하려고 하시는 하느님을 보는 순간 저는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기 시작했습니다.
그 십자가 사건 이후 저는 제 속에서 타인을 향해 올라오는 저의 감정이 거의 없어졌음을 알았고 그 후로는 타인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나 어떤 악 감정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 때 저를 괴롭게 한 사람이나 사건들은 하느님의 사자였고 저는 제 안에 악한 것을 조그마한 것이라도 가지고 있는 악인이었다고 표현한 사도 바울의 고백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 (로마 7:19)
또한 마음에 있는 성품의 변화를 증명하시는 방법도 하느님의 몫입니다.
우리는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여 자신의 거룩함을 사람에게 보이려고애를 씁니다. 그러나 사람의 성품의 변화는 오직 하느님만 하실 수 있다고 하십니다.
인간은 자신의 행동을 고치려고 노력은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사람에게 자기의 마음에 있는 악한 성품을 하느님께 변화시켜 달라고 기도하며 십자가에 철저히 죽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그 성품의 문제는 하느님이 해결하신다고 하시는 것이 바로 성경의 언약인 것입니다. 인간들은 타인의 말과 행동에 울고 웃고 기뻐하고 슬퍼합니다.
그리고 그 상처로 인해 마음에서 분노하고 화내고 욕하고 싸우면서 그 마음의 상태를 머리로 정리하여 관계를 생각하는 사람을 속으로만 삭이지만 자신의 정직성을 말하는 사람은 바로 몸으로 그 마음의 상태를 드러냅니다. 이것이 바로 죽음의 상태입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에서 부활한 자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까요?
문제만 생기면 세상 법을 찾고 세상 법에 지면 또 하나님의 법을 들먹거리면서 상대방의 악을 드러내는 상태에서 말입니다.
이제 우리는 마음에서조차 세상일에 아무 상처 없이 항상 기쁘고 행복하고 하느님과 사람에게 감사하며 자신의 성품문제나 관계의 법을 생각하고 기도하는 부활의 신앙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들은 하느님의 약속은 믿지만 가보지 않은 부활은 전혀 믿지 않고 세상의 부흥, 출세, 명예 등을 믿고 하느님의 뜻을 저버려서 하느님을 대적하며 하느님을 바알신 또는 우상의 존재로 비하시키면서도 하느님께 인정받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뜻대로 살아달라고 빌고 있지는 않는지요?
하느님을 그러한 우상으로 만들었던 미련함을 이제 벗어버리고, 마귀의 나팔이 되어 우리를 공격하는 타인의 말에 좌지우지 되던 우매함을 벗어버리기 위한 참된 신앙의 길로 출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온전히 변화를 받으면 우리를 비난하고 비판하던 자들을 우리가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어서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우리들로 만들어 주신다는 하느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하는 삶으로 변화 받는 것이 바로 이 땅에서의 부활인 것입니다. 그것이 또한 죽은 자를 살리는 하느님의 유업을 받은 하느님의 후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길은 우리의 의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의 삶 속에서 하느님이 원하시는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의 의지를 가질 때 가능한 것입니다. 또한 그 의지조차도 가질 수 있도록 우리는 하느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느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찌니라 " (요일 2:5-6)
인간의 영은 뱀에게 유혹될 정도로 어쩌면 정말 나약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나약함을 알고 육의 생명을 마귀에게 던지는 일사각오의 심정으로 하느님께 몸으로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세상을 살아 부활의 삶을 이어주시는 하느님의 큰 복이 가득하여 삶 전체가 가정 전체가 이웃 전체가 함께 하시는 주님 원하시는 이 땅에서의 부활의 삶이 있기를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