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그 갈릴래아 사람들이 그러한 변을 당하였다고 해서 다른 모든 갈릴래아 사람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처럼 멸망할 것이다. 또 실로암에 있던 탑이 무너지면서 깔려 죽은 그 열여덟 사람, 너희는 그들이 예루살렘에 사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큰 잘못을 하였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멸망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비유를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자기 포도밭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심어 놓았다. 그리고 나중에 가서 그 나무에 열매가 달렸나 하고 찾아보았지만 하나도 찾지 못하였다. 그래서 포도 재배인에게 일렀다. ‘보게, 내가 삼 년째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달렸나 하고 찾아보지만 하나도 찾지 못하네. 그러니 이것을 잘라 버리게. 땅만 버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러자 포도 재배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주인님, 이 나무를 올해만 그냥 두시지요. 그동안에 제가 그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겠습니다. 그러면 내년에는 열매를 맺겠지요. 그러지 않으면 잘라 버리십시오.’”(루가 13,1-9)
†찬미예수님
사랑에는 그 종류가 많습니다. 아가페적인 사랑, 에로스적인 사랑.....
그런데 제일 마음이 아픈 사랑이 뭐냐! 짝사랑~
자글자글한 우리 할머니들도 소싯적, 꽃다운 나이가 다 있었어요.
짝사랑 한 번도 안 해보고 인생을 끝낸다면 참 불행한 일이지요.
짝사랑에는 세 가지 장점이 있다고 그랬어요.
첫 번째는 선택이 자유롭다. 연상이든. 연하든. 그 대상이 신부님이든, 수녀님이
든... 입으로 표현만 안하면 문제는 없습니다.
두 번째 장점은 돈이 안 든다.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하는 짝사랑은 상대방이 알
지도 못하게 하니까~
세 번째 장점은 퇴짜 맞을 염려가 없다. 세월이 지나면 소싯적의 짝사랑은 좋은
추억거리로 남아 그 옛날을 뒤돌아보면서 혼자 빙그레 웃을 수 있어요.
문제는 하느님은 절대로 짝사랑의 대상이 아니라는 겁니다.
어떤 교우들은 세례 받고 죽을 때까지 하느님을 짝사랑하다 끝나요.
짝사랑의 첫 번째 장점이 선택이 자유롭다고 했지만 하느님과의 사랑은 그게 안
통합니다. 오늘은 돈, 내일은 내 건강, 모레는 취미생활....... 그러다 일주일에 한 시
간, 성당에 몸뚱이는 나와 앉아 있지만 이미 뇌는 뇌사상태에 빠져 앉아 있습니다.
하느님은 이 것 저 것 중에 하나 선택하는 취미생활이 아니다! 른 것은 다 포기하
더라도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것은 하느님과의 사랑입니다.
두 번째 우리 인간끼리의 짝사랑의 장점은 돈이 안 들지만 하느님과의 사랑은
돈 이 문제가 아니라 내 7대 독자 아들을 내어놓아야 될 때가 있습니다.
7대 독자 아들이 청천벽력같은 선포를 해요. “어머니, 아버지 저 신부 될게요.”
왜 하필 내 아들이...뒷집에 애 많은 김 회장 집 아들이 아니고~
세 번째 장점, 퇴짜 맞을 염려가 없다고 그랬지요? 하느님을 짝사랑하다 보면...처
음에는 봐주는 것처럼 보여요. 하느님이 우리가 죄 지을 때마다 그 자리에서 즉결
심판을 하신다면 지금 우리들 중에 몸이 성한 사람 하나도 없을 겁니다. 니가 지
금은 가라지처럼 잡초처럼 살지만... 너도 회개하면 밀이 될 수 있다고 하는 희망
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다리시는 겁니다. 식물세계에서는 잡초로 태어나서 잡
초로 죽지만 비록 잡초처럼, 쓰레기처럼 살았다고 하더라도.....
성인, 성녀가 되어서 세상을 마치는 것이 영적인 세계이기 때문에 주님께서 지금
즉결심판을 안 한다고 해서~ 하느님께서 눈이 어두워 못 보시는 게 아니다~ 이겁
니다. 하느님을 짝사랑하는 사람은 기초가 없는 사람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회개하지 않으면 망하리라!’ 실로암 탑에서 무너져 죽은 바로 그
사람들이 아이티에서, 칠레에서, 지진 때문에 죽은 그 사람들이 우리보다 죄가 많
아서 깔려 죽은 것이 아니다! 이겁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망하리라!’
오늘 복음에서 ‘질그릇 같은 우리 속에 보화를 담아두셨다!’ 이 세상 모든 그릇
중에서 제일 약하디 약한 그릇이 질그릇이에요. 그러나 아무리 약한 질그릇이라
도 거기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그 존재이유가 달라집니다.
이 질그릇에 다이아몬드를 담아두면 패물함이 됩니다.
이 질그릇에 쌀을 담으면 쌀독이 됩니다.
이 안에다 오줌을 누면 요강이 됩니다.
이 안에다가 똥을 누면 똥통이 됩니다.
더러운 냄새가 풀풀 나는 내 악습, 욕심, 교만, 우상숭배.... 내 질그릇 속에 있는 그
것들을 끄집어내서 영적 보화로 채우는 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사제인 저도 질그릇 같은 존재입니다. 저도 혼자 있을 때는 내 질그릇이 부서지지
않게끔 몸부림칠 때가 있습니다. 저 위에 계신 성모님은 석고상입니다.
6.25때 인민군들이 저 성모상을 깨부수려고 총알을 수 백발을 쏘았지만 성모님은
깨어지지 않았습니다. 저 성모님은 흙으로 만든 질그릇 같은 존재이시지만 총알
을 받고도 견디셨고, 당신 몸에 성모칠고를 담아두셨습니다.
많은 이들이 회개의 첫 단추를 잘 모릅니다. 회개는 철저한 방향전환입니다.
회개는 몸만이 아니라 머리까지 돌려야 됩니다. 몸만이 아니라 생각까지, 정신까
지 돌려야 됩니다. 많은 교우들이 후회로 시작해서 후회로 끝나는 것을 회개로
착각합니다. 미사보고 나오는 교우들에게 “왜 주일 지키십니까?” 하고 물었더니
약 80%가 “성사 보는 게 부담스러스러워서입니다.”
그런 정신머리로 미사 때 하느님을 만나고 은총을 받겠는가! 대부분 많은 신자들
은 회개하지 않습니다. 후회는 자기중심적입니다. 죄에 떨어진 지 자신이 미운 겁
니다. 죄에 떨어진 지 자존심이 자신을 용납하지 못하는 겁니다. 이런 사람은 성
사를 보더라도 다시 악습에 또 떨어집니다. 자기 자신이 창피한 그것뿐입니다.
후회의 대표적인 사람이 유다스입니다. 유다스는 예수님 딱 한 번 배반했지만
예수님 배반하기 전부터도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유다스는 열 두 사도 가운데 돈주머니 관리하는 총무였기에 끼니때마다 제일 걱
정을 많이 한 것은 유다스였습니다. 돈주머니는 비어있고, 그러던 참에 유혹이 왔
습니다. 대사제들이 “은전 30냥을 줄 테니, 네 스승을 우리한테 넘겨라!”
그 당시 은전 30냥은 노예 한사람을 사고파는 값이예요.
은전 30냥만 있으면 열 두명의 식구들이 적어도 석 달 동안 빵을 사먹을 수 있었
어요. 유다스는 그 유혹을 뿌리치지 못 했지요. 유다스는 어떤 자기중심적인 생각
을 했느냐 ! ‘내가 아는 스승님은 그렇게 호락호락 잡혀가실 분이 아니야~
처음에는 잡혀가시는 척 하다가, 담 모퉁이 돌아서면 도술을 보여서 그냥 그놈들
을 다 물리치고 우리 앞에 짠~하고 나타나실 분이야! 이러면 돈은 돈대로 들어오
고 우리 스승님을 살아서 들어오니 꿩먹고 알먹고.....'
그래서 예수님을 팔아 넘겼는데, 스승이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끌려가셨지요? 유다스는 그 뒤를 쫓아가면서 ‘지금쯤 뭔가를
보여주실 때가 되었는데....’ 그러나 예수님은 처참하게 매질을 당하고 가시관을 쓰
고 끌려 올라가시는 거야. 나중에는 못 박혀 돌아가셨지요. 유다스는 절망했어요.
‘내 스토리는 이게 아닌데~ 내가 아무리 돈에 환장한 놈이라 하더라도 내가 스승
을 돈 받고 팔 놈이 아닌데.....’ 유다스가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에 성모님과 열한
제자들이 있는 다락방으로 찾아갔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성질 급한 베드로는 몽둥이로 때려죽이려고 했겠지만 성모님이 “베드로 너 이놈,
너는 세 번이나 배반했잖아, 너도 할 말 없어!” 유다스가 매 맞아 죽을 각오를 하
고 성모님 앞으로 왔으면 유다스는 회개하여 지금 성유다가 되었겠지요.
유다스는 구원 받고 안 받는 것도 자기가 선택하고 비참하게 죽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중심적이었어요. ‘후회’ 는 자기 중심적이지만 ‘회개’ 는 하느님 중심
적이에요.
내가 이 죄에 떨어졌을 때 성모님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을까!
내가 이렇게 막 살았을 때 성령님이 얼마나 힘들어 하셨을까!
내가 함부로 남을 판단할 때 예수님이 뒤에서 얼마나 가슴 아팠을까!
하느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베드로였지요. 첫닭이 울 때, 베드로는 예수님의 눈이 생각난
겁니다. 차라리 욕이라도 했으면 덜 미안하기라도 한데 예수님은 연민의 눈으로
쳐다보기만 했어요. 회개에는 소극적인 회개와 적극적인 회개가 있는데 적극적인
회개를 많이 해야 됩니다. 주일 빠지고, 도둑질하고, 간음하고.....이런 것들은 소극
적인 죄입니다. 적극적으로 생각해야만 회개할 수 있는 것이 뭡니까?
첫 번째는 우상숭배하고 살아가는 겁니다.
하느님이 첫째 자리가 아니고 자식, 내 몸뚱아리가, 취미생활, 돈이... 첫째 자리입
니다. 여러분들, 첫째자리에 하느님 계십니까? 아닐 겁니다. 현대판 우상숭배는
금송아지가 아닙니다. 점집에 찾아가는 게 우상숭배가 아니라 내 첫째자리에 하
느님보다 위에 있는 것이 그게 다 우상입니다.
24시간 내내 자식걱정을 한다면 자식이 우상덩어리입니다. 24시간 내내 내 건강
을 생각한다면 건강이 우상덩어리입니다. 우상은 눈에 보이는 게 아닙니다. 적극
적인 회개의 첫 번째는 내가 늘 우상숭배에 빠져 산다는 겁니다.
두 번째는 적극적인 선행을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여러분 착하게만 산다고 천당 못 갑니다. 성서에 착하게 살면 천당 간다는 이야기
가 어디에 나옵니까? 적극적인 선을 행해야만 됩니다.
세 번째 적극적인 회개거리는 옳은 일인 줄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겁니다.
야고보서 4장 17절에 좋은 일을 할 줄 알면서도 하지 않으면 곧 죄가 됩니다.
양심을 통해서, 말씀을 통해서, 내가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알려주십니다.
사제의 강론을 통해서 화해하라고 알려주십니다. 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친 것이
없다고 할지라도 분명히 알면서 행하지 않는 것이 罪입니다.
네 번째 적극적인 회개거리는 영적질투입니다.
우리들은 많은 경우에 다른 사람이 신앙적으로 크는 것도 질투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열심해지는 것도 샘이 납니다.
영적질투가 우리의 튼튼한 기초를 제일 좀먹는 것 중의 하나일겁니다.
마지막으로 무관심하게 사는 겁니다.
가족들에게, 피붙이에게, 부모, 형제, 자매들에게 무관심하게 사는 것, 적극적인 회
개거리입니다.
회개를 통하여 빈 그릇이 되십시오.
후회가 아니라 회개합시다. 내 중심이 아니라 하느님 입장이 되어서
내가 하느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이 무엇인가를 철저하게 찾아봅시다.
‘소극적인 회개거리’ 만 묵상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회개거리’ 를 깊이 묵상해
서 이번 판공 때
우상숭배하고 살았는가!
사랑을 실천하지 않은 게 뭐가 있는가!
옳은 일을 행치 않은 게 뭐가 있는가!
영적질투에 빠져 살지 않았는가!
무관심하게 살지는 않았는가!
내 영혼의 작은 티라도 끄집어내어서, 내 마음의 평화를 깨는 것은 그때그때마다
준엄한 검사가 되어서 끄집어내어야 됩니다. 회개치 않으면 망하리라! 아멘
♧ 2010년 3월 07일 사순3주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