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하지 않으면 망하리라! (루가 13,1-9)

2010. 3. 18. 오후 3:33:10

글자
 
 
 
회개하지 않으면 망하리라!
 
 그때에 어떤 사람들이 와서, 빌라도가 갈릴래아 사람들을 죽여, 그들이 바치려던 제물을 피로 물들게 한 일을 예수님께 알렸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그 갈릴래아 사람들이 그러한 변을 당하였다고 해서 다른 모든 갈릴래아 사람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처럼 멸망할 것이다.  또 실로암에 있던 탑이 무너지면서 깔려 죽은 그 열여덟 사람, 너희는 그들이 예루살렘에 사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큰 잘못을 하였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멸망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비유를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자기 포도밭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심어 놓았다. 그리고 나중에 가서 그 나무에 열매가 달렸나 하고 찾아보았지만 하나도 찾지 못하였다.  그래서 포도 재배인에게 일렀다. ‘보게, 내가 삼 년째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달렸나 하고 찾아보지만 하나도 찾지 못하네. 그러니 이것을 잘라 버리게. 땅만 버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러자 포도 재배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주인님, 이 나무를 올해만 그냥 두시지요. 그동안에 제가 그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겠습니다.  그러면 내년에는 열매를 맺겠지요. 그러지 않으면 잘라 버리십시오
.’”(루가 13,1-9)

†찬미예수님

 

 사랑에는 그 종류가 많습니다.  아가페적인 사랑, 에로스적인 사랑.....

 그런데 제일 마음이 아픈 사랑이 뭐냐!  짝사랑~

 

 자글자글한 우리 할머니들도 소싯적,  꽃다운 나이가 다 있었어요.

 짝사랑 한 번도 안 해보고 인생을 끝낸다면 참 불행한 일이지요.

 

 짝사랑에는 세 가지 장점이 있다고 그랬어요.

  첫 번째는 선택이 자유롭다.  연상이든. 연하든. 그 대상이 신부님이든, 수녀님이

든...  입으로 표현만 안하면 문제는 없습니다.

 

  두 번째 장점은 돈이 안 든다.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하는 짝사랑은  상대방이 알

지도 못하게 하니까~

 

  세 번째 장점은 퇴짜 맞을 염려가 없다. 세월이 지나면 소싯적의 짝사랑은 좋은

추억거리로 남아 그 옛날을 뒤돌아보면서 혼자 빙그레 웃을 수 있어요.

 문제는 하느님은 절대로 짝사랑의 대상이 아니라는 겁니다.

 

 어떤 교우들은 세례 받고 죽을 때까지 하느님을 짝사랑하다 끝나요.

 짝사랑의 첫 번째 장점이 선택이 자유롭다고 했지만  하느님과의 사랑은 그게 안

통합니다.   오늘은 돈, 내일은 내 건강, 모레는 취미생활....... 그러다 일주일에 한 시

간, 성당에 몸뚱이는 나와 앉아 있지만  이미 뇌는 뇌사상태에 빠져 앉아 있습니다.

  하느님은 이 것 저 것 중에 하나 선택하는 취미생활이 아니다! 른 것은 다 포기하

더라도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것은 하느님과의 사랑입니다.

 

  두 번째 우리 인간끼리의 짝사랑의 장점은 돈이 안 들지만  하느님과의 사랑은

이 문제가 아니라  내 7대 독자 아들을 내어놓아야 될 때가 있습니다.

 7대 독자 아들이 청천벽력같은 선포를 해요.  “어머니, 아버지 저 신부 될게요.”

 왜 하필 내 아들이...뒷집에 애 많은 김 회장 집 아들이 아니고~

 

  세 번째 장점, 퇴짜 맞을 염려가 없다고 그랬지요?  하느님을 짝사랑하다 보면...처

음에는 봐주는 것처럼 보여요.   하느님이 우리가 죄 지을 때마다 그 자리에서 즉결

심판을 하신다면 지금 우리들 중에 몸이 성한 사람 하나도 없을 겁니다.   니가 지

금은 가라지처럼 잡초처럼 살지만...  너도 회개하면 밀이 될 수 있다고 하는 희망

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다리시는 겁니다.   식물세계에서는 잡초로 태어나서 잡

초로 죽지만   비록 잡초처럼, 쓰레기처럼 살았다고 하더라도.....

 성인, 성녀가 되어서 세상을 마치는 것이 영적인 세계이기 때문에  주님께서 지금

즉결심판을 안 한다고 해서~ 하느님께서 눈이 어두워 못 보시는 게 아니다~ 이겁

니다.  하느님을 짝사랑하는 사람은 기초가 없는 사람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회개하지 않으면 망하리라!’   실로암 탑에서 무너져 죽은 바로 그

사람들이  아이티에서, 칠레에서, 지진 때문에 죽은 그 사람들이  우리보다 죄가 많

아서 깔려 죽은 것이 아니다! 이겁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망하리라!’

 

 오늘 복음에서 ‘질그릇 같은 우리 속에 보화를 담아두셨다!’   이 세상 모든 그릇

중에서 제일 약하디 약한 그릇이 질그릇이에요.   그러나 아무리 약한 질그릇이라

도  거기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그 존재이유가 달라집니다.

 이 질그릇에 다이아몬드를 담아두면 패물함이 됩니다.

 이 질그릇에 쌀을 담으면 쌀독이 됩니다.

 이 안에다 오줌을 누면 요강이 됩니다.

 이 안에다가 똥을 누면 똥통이 됩니다.

 

 더러운 냄새가 풀풀 나는 내 악습, 욕심, 교만, 우상숭배.... 내 질그릇 속에 있는 그

것들을 끄집어내서  영적 보화로 채우는 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사제인 저도 질그릇 같은 존재입니다.  저도 혼자 있을 때는 내 질그릇이 부서지지

않게끔 몸부림칠 때가 있습니다.   저 위에 계신 성모님은 석고상입니다.

 6.25때 인민군들이 저 성모상을 깨부수려고 총알을 수 백발을 쏘았지만  성모님은

깨어지지 않았습니다.   저 성모님은 흙으로 만든 질그릇 같은 존재이시지만  총알

을 받고도 견디셨고, 당신 몸에 성모칠고를 담아두셨습니다.

 

 많은 이들이 회개의 첫 단추를 잘 모릅니다.   회개는 철저한 방향전환입니다.

 회개는 몸만이 아니라 머리까지 돌려야 됩니다.   몸만이 아니라 생각까지, 정신까

지 돌려야 됩니다.   많은 교우들이 후회로 시작해서 후회로 끝나는 것을 회개로

착각합니다.   미사보고 나오는 교우들에게  “왜 주일 지키십니까?” 하고 물었더니

약 80%가   “성사 보는 게 부담스러스러워서입니다.”

 그런 정신머리로 미사 때 하느님을 만나고 은총을 받겠는가!   대부분 많은 신자들

은 회개하지 않습니다.  후회는 자기중심적입니다.  죄에 떨어진 지 자신이 미운 겁

니다.  죄에 떨어진 지 자존심이 자신을 용납하지 못하는 겁니다.  이런 사람은 성

사를 보더라도 다시 악습에 또 떨어집니다. 자기 자신이 창피한 그것뿐입니다.

 

  후회의 대표적인 사람이 유다스입니다.   유다스는 예수님 딱 한 번 배반했지만

 예수님 배반하기 전부터도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유다스는 열 두 사도 가운데 돈주머니 관리하는 총무였기에  끼니때마다 제일 걱

정을 많이 한 것은 유다스였습니다.  돈주머니는 비어있고, 그러던 참에 유혹이 왔

습니다.  대사제들이  은전 30냥을 줄 테니, 네 스승을 우리한테 넘겨라!”

 그 당시 은전 30냥은 노예 한사람을 사고파는 값이예요.

 은전 30냥만 있으면 열 두명의 식구들이 적어도 석 달 동안 빵을 사먹을 수 있었

어요.  유다스는 그 유혹을 뿌리치지 못 했지요.  유다스는 어떤 자기중심적인 생각

을 했느냐 !  ‘내가 아는 스승님은 그렇게 호락호락 잡혀가실 분이 아니야~

 처음에는 잡혀가시는 척 하다가, 담 모퉁이 돌아서면 도술을 보여서  그냥 그놈들

을 다 물리치고 우리 앞에 짠~하고 나타나실 분이야!  이러면 돈은 돈대로 들어오

고 우리 스승님을 살아서 들어오니  꿩먹고 알먹고.....'

 

 그래서 예수님을 팔아 넘겼는데, 스승이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끌려가셨지요?   유다스는 그 뒤를 쫓아가면서  ‘지금쯤 뭔가를

보여주실 때가 되었는데....’  그러나 예수님은 처참하게 매질을 당하고 가시관을 쓰

고 끌려 올라가시는 거야.   나중에는 못 박혀 돌아가셨지요.  유다스는 절망했어요.

 ‘내 스토리는 이게 아닌데~ 내가 아무리 돈에 환장한 놈이라 하더라도  내가 스승

을 돈 받고 팔 놈이 아닌데.....’ 유다스가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에 성모님과 열한

제자들이 있는  다락방으로 찾아갔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성질 급한 베드로는 몽둥이로 때려죽이려고 했겠지만 성모님이  “베드로 너 이놈,

너는 세 번이나 배반했잖아, 너도 할 말 없어!”  유다스가 매 맞아 죽을 각오를 하

고 성모님 앞으로 왔으면  유다스는 회개하여 지금 성유다가 되었겠지요.

 유다스는 구원 받고 안 받는 것도 자기가 선택하고 비참하게 죽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중심적이었어요.  ‘후회’ 는 자기 중심적이지만 ‘회개’ 는 하느님 중심

이에요.

 내가 이 죄에 떨어졌을 때 성모님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을까!

 내가 이렇게 막 살았을 때 성령님이 얼마나 힘들어 하셨을까!

 내가 함부로 남을 판단할 때 예수님이 뒤에서 얼마나 가슴 아팠을까!

 

 하느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베드로였지요.  첫닭이 울 때, 베드로는 예수님의 눈이 생각난

겁니다.   차라리 욕이라도 했으면 덜 미안하기라도 한데   예수님은 연민의 눈으로

쳐다보기만 했어요.  회개에는 소극적인 회개와 적극적인 회개가 있는데  적극적인

회개를 많이 해야 됩니다.  주일 빠지고, 도둑질하고, 간음하고.....이런 것들은 소극

적인 죄입니다.   적극적으로 생각해야만 회개할 수 있는 것이 뭡니까?

 첫 번째는 우상숭배하고 살아가는 겁니다.

 하느님이 첫째 자리가 아니고  자식, 내 몸뚱아리가, 취미생활, 돈이... 첫째 자리입

니다.  여러분들, 첫째자리에 하느님 계십니까?  아닐 겁니다.  현대판 우상숭배는

금송아지가 아닙니다.  점집에 찾아가는 게 우상숭배가 아니라  내 첫째자리에 하

느님보다 위에 있는 것이 그게 다 우상입니다.

 24시간 내내 자식걱정을 한다면 자식이 우상덩어리입니다.  24시간 내내 내 건강

을 생각한다면 건강이 우상덩어리입니다.   우상은 눈에 보이는 게 아닙니다.  적극

적인 회개의 첫 번째는 내가 늘 우상숭배에 빠져 산다는 겁니다.

 

 두 번째는 적극적인 선행을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여러분 착하게만 산다고 천당 못 갑니다.  성서에 착하게 살면 천당 간다는 이야기

가 어디에 나옵니까?  적극적인 선을 행해야만 됩니다.

 

 세 번째 적극적인 회개거리는 옳은 일인 줄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겁니다.

 

 야고보서 4장 17절에  좋은 일을 할 줄 알면서도 하지 않으면 곧 죄가 됩니다.

 양심을 통해서, 말씀을 통해서, 내가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알려주십니다.

 

 사제의 강론을 통해서 화해하라고 알려주십니다.  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친 것이

없다고 할지라도  분명히 알면서 행하지 않는 것이 罪입니다.

 

 네 번째 적극적인 회개거리는 영적질투입니다.

 우리들은 많은 경우에 다른 사람이 신앙적으로 크는 것도 질투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열심해지는 것도 샘이 납니다.

 영적질투가 우리의 튼튼한 기초를 제일 좀먹는 것 중의 하나일겁니다.

 

 마지막으로 무관심하게 사는 겁니다.

 가족들에게, 피붙이에게, 부모, 형제, 자매들에게  무관심하게 사는 것, 적극적인 회

개거리입니다.

 

 회개를 통하여 빈 그릇이 되십시오.

 

 후회가 아니라 회개합시다.  내 중심이 아니라 하느님 입장이 되어서

 내가 하느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이 무엇인가를 철저하게 찾아봅시다.

 

 ‘소극적인 회개거리’ 만 묵상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회개거리’ 를 깊이 묵상해

서 이번 판공 때

 우상숭배하고 살았는가!

 사랑을 실천하지 않은 게 뭐가 있는가!

 옳은 일을 행치 않은 게 뭐가 있는가!

 영적질투에 빠져 살지 않았는가!

 무관심하게 살지는 않았는가!

 

 내 영혼의 작은 티라도 끄집어내어서, 내 마음의 평화를 깨는 것은   그때그때마다

준엄한 검사가 되어서 끄집어내어야 됩니다.  회개치 않으면 망하리라! 아멘

 

 

 ♧ 2010년 3월 07일 사순3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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